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48화 (48/298)

48편

<-- Main story. 신성기사단 -->

“시.. 시란... 여기가 확실해?”

티에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울창한 숲풀을 가르며 한걸음씩 전진해나간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험난한 숲길에 티에르는 자신의 피부를 콕콕찌르는 나뭇가지나 가시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확실해. 설마 나의 감각을 믿지 않는건 아니겠지?”

“시란이 예민한 것은 인정하지만... 시란은 방향치잖아.”

“시.. 시끄러!”

티에르의 검집에 들어있는 검이 잠시동안 격렬히 진동한다. 그러자 티에르는 마치 누군가에게 야단맞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움찔거렸다.

“미.. 미안.”

“이번엔 확실해. 아무리 방향치라고 해도.. 이런 한이 가득 맺힌 원령들이 잔뜩 모인 곳은 찾아갈 수 있다고...”

“저.. 정말이야? 그 남자에게 원령이 잔뜩 붙어있다는게?”

시란의 말에 티에르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자신의 검을 내려다본다.

“확실해.”

“하지만... 그렇게 나쁜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남자란 원래 성격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른법이야. 겉으로는 자비로운 성인처럼 보여도 속은 더러운 강간마일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시란의 말에 티에르는 마지못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런 티에르의 눈에는 시란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미묘하게 서려있었다. 하지만 티에르는 묵묵히 시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숲풀을 가르며 걸음을 옮겨나간다.

“아.. 동굴이다.”

그녀의 말대로 어느정도 걸음을 옮기자 우거진 숲풀사이에 절묘하게 그 모습을 숨기고 있는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아! 저기에 있을꺼야! 나도 역시 녹슬지 않았어!”

시란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티에르를 재촉한다.

“알았어.. 왜이리 흥분하는거람..”

입술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린 티에르는 숲풀을 가르며 천천히 주의깊게 동굴을 향해 접근해나간다. 조심스레 동굴 입구를 가리고있는 숲풀을 옆으로 걷어내며 검을 한손에 움켜쥐고 어두운 동굴속으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어두워...”

한치의 빛이 들어오지않아 어두운 동굴속.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티에르는 조급해하지 않고 눈이 어둠에 적응할때까지 동굴 입구에서 참을성있게 기다린다. 그리고 티에르의 시야속에서 어느정도 동굴 내부 풍경의 윤곽이 잡혀나간다.

“...아.”

어느 정도 동굴의 내부를 볼 수 있게되자 티에르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차가운 동굴 벽에 몸을 기댄채 백발의 소녀를 소중히 품에 안고 지친듯 잠들어있는 타메르. 그리고 그런 그의 오른팔 아래에 고여있는 핏물의 모습이었다.

“다.. 다쳤나봐...”

오지랖이 넓은 티에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타메르에게 다가서려한다.

스릉..

“기다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검집에 들어있는 샛노란 도가 자기멋대롤 뽑혀져나오며 허공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시란의 손에 움켜쥐어진다. 그녀는 타메르에게 다가서려는 티에르의 어께를 붙잡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샛노란 검을 휘두른다.

카앙!!

어두운 동굴속. 샛노란 도신이 번쩍임과 함께 튕겨나온 불똥이 잠시나마 어두운 동굴 내부를 밝힌다.

“와아..”

티에르는 어두운 동굴속에서 선명히 보이는 노란 불똥에 작은 탄성을 흘린다. 시란의 도를 막은 것은 다름아닌 뭉뚝한 강철봉.

“타메르를 깨우지마.”

그리고 어둠속에 녹아들어 잘 보이지 않는 수인족 네이가 날카롭게 날이선 눈으로 시란을 노려보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있었다. 하지만 티에르는 이런 심각한 상황속에서도 네이가 가진 고양이 귀와 꼬리가 흥미로운지 연신 나지막한 탄성을 흘리며 좋아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시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네이가 들고있는 강철봉과 함께 허공에 교차되어있는 자신의 도를 회수한다. 어자피 시란의 목적은 네이와의 시원한 대결이었을뿐. 뒤에서 자고있는 타메르라는 남자가 아니었다.

“...잠깐. 타메르?”

그때 시란은 갑작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타메르의 이름을 되뇌인다.

“나가.”

하지만 네이는 그런 시란의 반응에 별 관심없다는 듯이 자신의 봉을 고쳐잡으며 동굴안으로 들어온 시란을 내쫓기 위해 그녀에게 달려든다.

“큿..!”

카앙! 카앙!!

예상외로 날렵하고 날카로운 일격들. 시란은 황급히 뒤로 두어걸음 물러서며 네이의 공격을 막아낸다. 두 세 번의 불똥이 좁고 어두운 동굴안에 번쩍이자 시란은 뒤로 크게 물러서 네이의 공격범위로부터 벗어난다.

“이봐. 변종 고양이.”

“변종... 고양이?”

빠직.

네이를 도발하는 듯한 시란의 발언에 네이의 이마에 작은 혈관마크가 생긴다. 하지만 그녀는 타메르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하게 시란에게 달려들지 않고 타메르 앞에 서서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쏘아볼 뿐이었다.

“그래 너. 뒤에서 자고있는 변태자식의 이름이 타메르라고?”

“....”

시란의 물음에 네이는 흘끗 타메르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한다.

“타메르라...”

그러자 시란의 얼굴이 심각하게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란은 더 이상 용무가 없다는 듯이 네이로부터 등을 돌린다.

“돌아가자 티에르.”

“에?”

갑작스런 시란의 태도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티에르는 멍청히 자신의 곁을 스쳐 걸어나가는 시란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이 변종.”

쉬익!

변종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네이는 시란의 머리를 목표로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를 던져버린다.

카앙!

하지만 시란은 가볍게 검을 휘둘러 허공에 던져진 돌맹이를 옆으로 쳐내버린다.

“내 이름은 네이야.”

“그래그래. 네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네이의 모습에 기세를 죽인 시란은 네이의 눈을 마주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우린 이만 돌아가겠어.”

“....”

시란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에 네이또한 아무말없이 그녀를 노려본다.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간파하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 하지만 시란은 별 관심없다는 투로 어께를 으쓱거리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생각할게 좀 있어서 말이야.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만나게 될꺼야. 그러니까 단단히 준비하고 있으라고.”

“....”

네이는 아무말없이 시란을 노려본다. 그녀의 말의 뜻은 즉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이곳을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뭔가 미심쩍고 불안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네이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리고 크루세이더들이 너희들을 찾고 있어. 우리가 돌아올때까지 최소한 잡히질 않기를 바라마.”

“알았어.”

네이는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들이 크루세이더들과 같은편이었다면 네이는 물론 타메르와 키르비르까지 큰 곤경에 빠질일이었다. 하지만 시란의 말투로보아 그들이 크루세이더들에게 협력할 일은 없었다. 즉 지금이 은신처는 아직 안전하다는 말이었다.

시란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용건은 없다는 듯이 휑하니 등을 돌려 동굴밖으로 걸어나간다. 그러자 동굴에 남아있는 것은 티에르. 그녀는 쭈뼛쭈뼛 조심스럽게 네이에게 다가선다.

“저.. 네이라고.. 하셨나요?”

그런 그녀의 접근에 네이는 반사적으로 봉을 움켜쥐지만... 지금 티에르에게서 이렇다할 살기나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문채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거...”

네이에게 다가온 티에르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양손으로 소중히 움켜쥐고있는 무언가를 네이에게 건낸다. 네이는 그런 티에르를 경계하면서도 그녀가 건낸 물건을 조심스럽게 받아든다.

“붕대에요. 저 타메르라는 분이 다치신 것같은데.. 이건 보답이라고 전해주세요.”

끄덕..

네이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하지만 티에르는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종종 걸음으로 시란을 뒤쫓아 동굴밖으로 달려나간다.

“아~ 그리고.”

하지만 동굴앞에서 걸음을 멈춘 티에르는 네이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면서 말한다.

“그 고양이 귀하고 꼬리. 정말 잘 어울려요!”

“고.. 고마워..”

티에르의 외침에 살짝 얼굴을 붉힌 네이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손을 들어올려 흔들어주는 것으로 티에르의 인사에 대답한다. 그러자 싱긋 웃은 티에르는 동굴밖에서 들려오는 시란의 외침에 움찔 놀라며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나간다.

“....”

티에르가 떠나자 동굴밖에서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낀 네이는 티에르가 건내준 붕대를 움켜쥐고 타메르에게 다가간다. 한동안 그의 얼굴을 내려보던 네이는 잠시 몸을 숙여 키르비르의 안색을 확인해본다.

“키르비르님...”

이름을 불러봐도 미동도없는 키르비르. 아직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네이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타메르의 얼굴을 바라본다.

“....”

잠시 주저하던 네이는 쭈뼛쭈뼛 타메르에게 다가가 그가 깨지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걸터앉는다. 그리고는 타메르가 깨지않도록 살며시 그의 어꼐에 자신의 머리를 기댄다.

“이 기회에... 한번만..”

조용히 타메르의 어께를 베고 눈을 감은 네이의 얼굴에 잠시나마 행복한 미소가 서리기 시작한다.

--------------

어느정도 잠을 잔 것일까. 뼛속 깊숙이까지 파고든 피로때문이 악몽은 커녕 꿈조차 꿀 틈도 없었다. 깊은 숙면 덕분에 온몸의 피로가 어느정도 가신것을 느낀 나는 천천히 내 몸의 감각을 되살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내 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체온.

“...음?”

가볍게 실눈을 떠서 그 체온의 정체를 확인해보니 그 정체는 다름아닌 키르비르였다. 아직도 미동도없이 고요히 눈을 감은채 내 품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져있는 키르비르.

“아직... 깨어나지 못한건가..”

“아. 일어났어?”

그때 내 앞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어온다.

“플루토구나..”

나는 밤새 벽에 기대 잠을 청해 눌려버려 엉망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나갔다.

“그나저나... 내가 얼마나 자고 있던거지?”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플루토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

하루하고 반나절? 그러면 벌써 지상에 내려온지 이틀째가 되었다는 뜻이다.

“젠장!!”

시간이 부족했다. 예상외로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삼일째되는 날. 로터스가 말한 제

제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가슴에 심어진 텐타클의 알이 부화되며 나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으앗!!”

내가 갑작스레 욕을 내뱉자 내 앞에 있던 플루토가 깜짝 놀라며 자신이 들고있던 넓은 나뭇잎을 놓쳐버린다.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안에 담겨있었던 듯한 붉은 열매들이 동굴바닥에 산산히 흩어져 버리기 시작한다.

“이.. 이런..”

플루토는 황급히 그런 열매들을 하나하나 주워 열매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 다시 넓은 나뭇잎에 모아간다. 나는 그런 녀석의 행동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뭐냐? 이 빨간열매들은..”

나는 녀석이 나뭇잎 위에 모아둔 열매중 하나를 집어든다. 손가락 한마디정도의 크기의 탐스러운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열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이것은 식용으로 사용 가능한 산딸기였다.

“식사야. 자고있을때 모아뒀어.”

“....”

녀석의 말에 나는 플루토가 나뭇잎 위에 모아온 산딸기를 내려다본다. 작은 언덕을 이루며 넓은 나뭇잎 가득히 쌓여있는 산딸기들. 이런 험난한 산속에서 저렇게 많은 산딸기를 구하기란 쉽지않은 일이 분명했다. 설마... 내가 잠들어있는 사이 산딸기만 채집해온건가..

“감동할 필요는 없어... 키르비르님을 위한 거니까. 오랫동안 자고 있으니까.. 배고프실꺼야.”

플루토는 애써 내 시선을 외면하며 나뭇잎자락을 잡고 키르비르 앞으로 옮겨나간다. 하지만 분명 장담하건데. 이 많은 산딸기를 키르비르가 먹을 수 있으리가 없었다. 분명 이 산딸기들중 내 몫도 존재했다.

“하.. 하지만.. 조금은 먹어도 좋아. 너무 들떠서.. 많이 따온 것 같으니까.”

“그럼.. 고맙게 먹을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먹으라고 나에게 산딸기를 내미는 플루토의 모습에 지금 상황을 잊고 작은 미소를 짓는다. 나는 솔직하게 녀석에게 감사를 표하며 녀석이 건낸 산딸기를 하나 입에 집어넣는다.

우물..

그렇게 못먹을 맛은 아니였다. 약간 덜익어 새콤한 맛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대로 맛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한두개의 산딸기를 입안으로 가져가며 키르비르의 안색을 살펴본다. 다행히 특별히 나쁜 징조는 없었다. 이제 의식만 차리면 되었지만... 그녀가 언제 의식을 차릴지 알 수가 없었다.

“.....”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없었다.

우적.

나는 한손가득히 산딸기를 집어들고 입안에 쑤셔넣는다. 그런 내행동에 깜짝 놀란 플루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품에 안고 있던 키르비르를 동굴 한쪽에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킨다.

“타메르? 어디가려고?”

“이제 움직여야지. 리엔을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키르비르님이 깨어나고 움직여도...”

“안돼. 남은 시간이 없어.”

솔직히 키르비르가 깨어난다면 큰 어려움없이 모든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하루. 하루만 지나면 끔찍한 고통이 내 머릿속을 걸레짝으로 만들것이고 마지막에 가서는 내 가슴에 심어진 텐타클의 알이 부화할 것이다. 그전에 리엔을 구해내서 베히모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럼... 키르비르님은?”

역시나 키르비르의 충실한 하인답게 플루토는 키르비르에 대해 걱정을 한다. 솔직히 키르비르를 데리고 리엔을 구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의식을 잃은 키르비르는 그저 무거운 짐일 뿐이었다.

“여기에.. 두고갈게.”

“마.. 말도안돼!!”

내말에 플루토는 거의 발작과도 같이 비명을 지른다. 나는 그런 플루토를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녀석이 진정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연다.

“걱정마. 키르비르를 버리겠다는게아니야.”

“그.. 그러면?”

“너가 지켜줘야지. 너의 마스터인데.”

내 말에 플루토의 눈이 더 크게 휘둥그레진다.

“그럼.. 타메르 혼자서 가겠다는거야?”

“뭐.. 어쩔 수 없잖아?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인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솔직히 내가 리엔을 구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키르비르가 이렇게 쓰러질일도. 우리가 베히모스에서 벗어날 일도 없었다. 이제 이 다음의 일들은 전부 내가 수습해야할 일들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에 기대어놨던 대검을 어께에 짊어진다.

욱씬..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하지만 지금 아프다고 칭얼댈 때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하루. 하루안에 리엔을 구해서 베히모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럼...”

나는 네이에게 짧은 작별을 고하며 욱씬거리를 팔뚝을 매만지면서 동굴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겨나간다.

“잠깐.”

그런 내 발걸음을 붙잡는 플루토의 짧은 한마디.

“뭐지?”

플루토의 부름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려는 순간.

“읍..”

무언가 내 멱살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것과 동시에 갑작스레 부드럽고 따듯한 무언가가 강제로 내 입술을 덮어버린다.

“.....”

키스라고 하기에 뭐한 단순한 입맞춤. 플루토.. 아니 지금은 네이로 변한 녀석은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떼어낸다.

“뭐야.. 이건..”

나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그다지 나쁘지 않는 느낌에 입술을 매만지며 네이를 바라본다.

“그.. 그게..”

네이또한 거의 돌발적으로 했던 행동이었는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채 재대로 말도 못하고 쭈뼛거린다. 나는 그런 그녀를 재촉하기 보다 조용히 그녀의 뒷말을 기다려준다. 그러자 네이는 부끄러운듯 고개를 푹 숙인채 기어들어가는 듯한 자그마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내.. 내 첫키스니까..”

“.....”

“그러니까 나중에 돌려줘..”

“...응?”

나는 들릴들 말듯이 작은 그녀의 목소리에 숨소리조차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그게.. 내 첫키스니까.. 나중에 리엔을 구하고 와서... 나에게 돌려달라고..”

“풋..”

나는 어이없는 네이의 이론에 가벼운 실소를 터트린다. 첫 키스를 다시한다고 그 첫키스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비웃을 수는 없었다.

“알았어. 반드시 돌아오지.”

그게.. 그녀만의 방법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것 일테니까..

“만약에.. 못돌아오면...”

“....?”

“지옥끝까지 쫓아갈꺼야.”

“아하하하핫. 환영하지.”

나는 네이의 말에 기분좋게 웃으며 녀석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네이는 이렇다할 저항없이 단지 뾰로퉁해진 얼굴로 나를 쏘아보며 말한다.

“인간으로 변했을때는.. 고양이 취급을.. 우읏..”

나는 나에게 가벼운 투정을 부리려는 네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움직여 부드럽게 그녀의 턱을 간질여준다. 그러자 네이는 기분이 좋은지 말도 끝마치지 못하고 내 손길을 만끽하는듯 눈을 감고 기분좋은 미소를 지을뿐이었다. 아마도 조건반사일까나..

“그럼... 갔다올게.”

“아.. 으응.. 조심히갔다와..”

네이는 자신의 턱을 간질이던 내 손길이 멈추자 아쉽다는 듯이 짧은 탄성을 흘리며 나를 배웅해준다.

“걱정마. 이래뵈도 광혈의 저주에 걸린 몸이야.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고..”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이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다음 나는 교단이 있는 거대한 도시가 있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나간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네이의 커밍아웃. 으아아아아 이번엔 오글거려서 버틸 수가 읍따!

abcbbq / 헛?! 본듯합니다! 본듯해요! 으허허헛;;

유이버 / 아이고... 고작 이정도로 살아나신다면 몇십편이라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요.

Lizad / 하지만 반응이 없다. 잠든 것 같다?

실버링나이트 / 뭐.. 에고소드죠. 네 에고소드. 싸움바보의 에고소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