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편
<-- 키르비르 -->
“으으읏...”
나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간신히 비공정에서 걸어나온다. 그런 내 품에는 아직도 지쳐 깊은 잠에 빠져있는 리엔이 안겨져있었고 등에는 내 목을 감싸안은채 잠들어있는 키르비르가 업혀져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머리위에는 어느세 고양이 모습으로 변해 잠들어있는 플루토가 떡하니 얹어져있었다.
“조.. 조심스럽게..”
일단 깊게 잠든 그녀들을 이 비공정에 놔둘 수는 없었다. 숙소외부는 텐타클이 돌아다니는 위험지역. 비록 로터스의 제어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떤 사고가 일어날줄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정수리 위에 올려둔 플루토가 떨어지지 않게. 그리고 목을 감싸안은 키르비르의 팔이 풀어지지않게 균형을 잡으며 숙소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걸음을 내딛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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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앗..!!”
나는 크게 숨을 돌리며 품에 안았던 리엔을 숙소의 침대위에 던져놓듯이 내려둔다. 비록 그녀들의 무게는 내가 짊어지고 다니던 대검에 비해서 한없이 가볍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든 떨어뜨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걸어오느라 몸의 피로는 몇배나 더 크게 느껴졌다.
“우앗!!”
하지만 리엔을 내려놓는 순간. 마지막이라 방심한 걸까 내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내 목을 끌어안고 있던 키르비르의 팔이 힘없이 풀려진다. 그러자 당연히 스르륵 미끌어져 흘러내리는 키르비르. 나는 황급히 몸을 비틀어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려는 키르비르의 몸을 한팔로 받아낸다.
“후.. 으앗!!”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내가 몸을 비트는 순간 자연스럽게 원심력에 의해 머리 위에 얹어놨던 플루토또한 미끌어져내려진다. 나는 신속하게 팔을 움직여 머리에서 흘러내리려는 플루토를 한손으로 받혀준다.
“젠장... 이거 무슨 서커스 광대도 아니고..”
혼자서 괴상한 쇼를 부린 내 처지에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침대에 누워잠들어있는 리엔의 안색을 확인해본다. 다행히도 별 이상은 없어보였다. 이제 그다음은 키르비르와 플루토를 그녀들의 방으로 되돌려줄 차례.
“....오 이런.”
숙소에서 걸어나온 내 입에서 힘없는 욕설이 흘러내린다. 잠깐 잊고있었지만 키르비르의 방은 바로 유적지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거대한 마법사의 탑. 하늘을 찌를듯이 우뚝 솟아있는 높은 탑을 올려다보는 내 다리에서 힘이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건 무리다.”
그리고 미련없이 탑을 오르는 것을 포기한다. 주저없이 등을 돌린 나는 다시 숙소로 걸어들어와 빈방중 나름 깔끔한 방. 그러니까 바로 내 방으로 걸어들어가 내가 사용하던 침대 위에 키르비르의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두었다.
“으으음..”
그러자 키르비르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침대가 편안한듯 이불자락을 붙잡고 몸을 웅크린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내려보던 나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고와 걸터앉아 머리위에 얹어져있는 플루토를 집어들어 조용히 내 무릎위에 얹어둔다.
“캬응..”
플루토는 갑작스레 자신의 뒷덜미를 붙잡은 손길에 작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지만 이내 내 무릎위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취해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내 허벅지에 머리를 비비며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뭐... 딱히 할 일은 없으니까..”
나는 그런 플루토의 몸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키르비르를 내려다본다. 일단 어찌됬든 나는 그녀의 처녀를 빼앗았다. 평소의 키르비르의 성격같으면 이 유적지를 전부 뒤엎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깨어나기다린 뒤에 그녀의 결정이나 처벌을 받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마 이 사건을 크게 부풀리지 않고 끝내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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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 나는 그 동안의 긴장이 풀어지며 갑작스런 수마가 덮쳐옴을 느꼈다. 그런 수마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뜬 내 앞에는..
“하이~”
“....?!”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한 여성이 서서 나를 향해 친근하게 인사를 건내온다. 커다란 마녀모자를 머리위에 쓰고 온통 새까만 옷을 입고있는 여성. 그녀는 피를 머금은 듯 붉은 입술로 작은 반달을 그리며 나를 바라보고 웃음짓고 있었다.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올리는 없을텐데...”
나는 한손으로 허벅지를 꼬집는다. 허벅지에서 선명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꿈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선명한 내 감각들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경고해주고 있었다.
“뭐.. 그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지.”
커다란 마녀모자에 가려져 여성의 눈동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두운 모자 그늘아래 매섭게 빛나는 눈빛으로 보아 심상치 않은 녀석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녀석은 가볍게 입가를 끌어올리며 나를 비웃는다. 그런 그녀의 비웃음에 나는 등뒤에 짊어지고 있는 대검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어보지만..
“...칫..”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러고보니 리엔과 키르비르, 플루토를 데려오기 위해 대검은 비공정에 놔두고 온 상황.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된 눈으로 정체불명의 여성을 노려본다.
“뭐..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너랑 싸우고 싶은 맘이 없거든.”
“넌.. 누구지?”
일단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절대 호의를 가지고 등장한 녀석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워 녀석에게 집중하며 그녀를 뚫어질듯 노려본다.
“내 이름은 에페리아. 저 넘어의 마계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검은 마녀라 불리우고 있지.”
“검은... 마녀?”
절대로 좋지 못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검은이라는 것과 마녀라는 뜻. 결코 좋은 성격을 가진 존재가 아닐거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천천히 맨손으로 주먹을 움켜쥐어 들어올린다.
“간만에 제자 녀석은 만나러 온 것뿐이야. 뭐... 이제는 아니지만 사제의 정이라는게 끊기 쉬운게 아니거든.”
키득거리는 에페리아는 슬쩍 내 뒤에 관심을 가진다. 당연히 내 등뒤에는 침대 위에서 고요히 잠들고 있는 키르비르가 누워있었다.
“키르비르가 목적인거냐?”
“목적이라 지칭하면 뭐가 이상하잖아. 마치 내가 녀석을 죽이러 온 것처럼 들리네?”
괜히 넌스레를 떨며 과장스럽게 어께를 으쓱거리는 에페리아의 모습에 내 눈살이 가볍게 찡그려진다. 왠지모르게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녀의 모든 것이.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엄청나게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거든.”
“.....”
나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 키르비르와 거리를 좁히며 그녀를 경계한다. 어찌됬건 녀석의 목표는 키르비르. 결코 좋은 뜻으로 그녀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보호할 요량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여성을 노려본다.
“뭐야.. 녀석을 지키려는거야? 녀석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것도 아니잖아?”
그런 내 행동에 에페리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비웃음을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하아... 정말 고지식하구만. 왜 시대착오적인...”
쉬익!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 그녀의 몸이 희미해진다. 그녀의 움직임을 뒤쫓기 위해 나는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지만..
“기사도정신이야? 촌스럽게.”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바로 내눈 앞. 그녀는 내 코앞에서 내 눈을 직시하며 비릿하게 미소짓는다.
타악!
그 순간 내 발목에 뭔가 가볍게 걸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세상이 한바퀴 빙글 돌아버린다.
쿠웅!!
“크읏!!”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바닥에 시원하게 쓰러져버린 나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천정을 바라본다.
콰악!!
그런 내 미간에 에페리아가 신고있는 날카로운 하이힐의 굽이 닿는다. 그녀는 내 머리를 밟으며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연다.
“성가셔. 너같이 힘도 없는 녀석이 주제도 모르고 누굴 지키려고 들이대는 모습이 말이야.”
꾸욱..
“크.. 크윽..”
점점 미간을 누르고 있는 하이힐의 굽에 담기는 힘이 강해진다. 그녀의 입장에서 체중의 반에 반도 실지 않은 무게였지만 날카로운 힐의 굽은 엄청난 힘으로 내 미간을 짓눌러가기 시작한다.
우득.. 우드득..
조금씩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고 머리를 울리며 뇌에 직접적으로 전달되어온다. 광혈의 저주는 빠른속도로 부러진 뼈를 복구해나가지만 그렇다고 누르는 하이힐의 힘에 저항할 정도의 회복력을 가지지 않았다.
“저주받은 피를 가져도.. 대가리가 깨어지면 그대로 즉사지. 너같은 놈을 한두번 상대해본건 아니거든.”
에페리아는 키득키득 웃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키르비르를 향해 관심을 돌린다. 그녀는 몸을 숙여 침대에 곤히자고 있는 키르비르를 내려다보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기묘한 미소를 지은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가 뭔일을 저지른지 알아? 뭐...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거겠지. 너가 나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고... 지 아비처럼 일단 일은 저지르고 보자는 성격인가? 뭐 하튼.. 이건 날 고생시킨 벌이야.”
조용히 자고있는 키르비르를 향한 독백을 마친 에페리아는 손가락을 튕겨 키르비르의 이마를 가볍게 때린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키르비르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던 에페리아는 천천히 숙였던 상체를 일으켜 나를바라본다.
“그리고... 너는 어떻게 처리할까. 죽일 수는 없고.. 뭐 심플하게 날 잊지못할 깊은 흉터나 하나 새겨줄까나?”
나는 내 눈앞에서 나를 조롱하는 에페리아를 노려보며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하이힐의 굽이 내 이마를 누르고 있것은 물론이고 온몸에 무슨 이상한 마법에라도 걸린듯 거대한 족쇠에 고정된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그녀를 노려보는 일 뿐이었다.
“타메르!!”
그때 비명과도 같이 내이름을 울부짖는 목소리.
콰앙!!
동시에 검은 그림자가 에페리아를 덮친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나를 밟고 있던 에페리아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나는 그제서야 내 몸을 억누르는 족쇠같은 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의 자유를 되찾은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에페리아를 노려본다.
“오호라... 오랜만이네.”
“.....”
그녀를 덮친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아닌 네이. 언젠지 모르지만 잠에서 깨어난 네이는 날카롭게 세워진 눈으로 자신의 봉을 허공에 붙잡은 에페리아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아.. 그렇게 무섭게 쏘아보지 말라고. 오늘은 싸우러 온게 아니라고 했잖아?”
실실 웃은 에페리아는 가볍게 자신이 움켜쥐고 있던 네이의 봉을 뒤로 밀친다. 그러자 네이또한 뒤로 두어걸음 물러서며 곧바로 달려들지 않고 경계하는 듯이 에페리아를 노려본다. 하지만 정작 에페리아는 그런 네이에게 별 관심이 없는지 그녀의 봉을 붙잡았던 손을 탈탈 털어나간다.
“뭐.. 하여튼 더 이상 소란부렸다가는 그 망할 촉수괴물에게 들키겠네. 아쉽지만 이만 떠나봐야겠어.”
여유롭게 나와 네이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에페리아. 그런 그녀의 몸 주변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기이하게 외곡되어져가기 시작한다. 그런 변화에 깜짝놀라 그녀의 도주를 막으려고 발을 내딛었지만..
스윽..
네이는 아무말없이 팔을 들어 내 앞길을 막아선다. 그와 동시에 흐릿해진 에페리아의 신영은 이내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도데체... 무슨 녀석이야? 저놈은..”
“검은 마녀 에페리아. 마계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녀석이야.”
에페리아가 사라지자 네이는 그제서야 내 앞길을 막았던 팔을 천천히 내려둔다. 그리고 안도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봉을 다시 조그만 방울 모양의 악세사리로 바꿔 자신의 꼬리에 걸어둔다.
“마계? 너희들이 살았다는 그 세계를 뜻하는거야?”
“으응.. 설명하자면 복잡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에페리아라는 사람은 마계에서도 제어가 불가능한 막무가내의 마법사라는 거야. 지금 이렇게 아무문제 없이 떠나는 것도 작은 기적이거나... 그녀의 변덕일꺼야.”
“그런 녀석하고 키르비르와 무슨 관계가 있는거야? 녀석이 하는 말로는 키르비르에게 목적이 있어서 왔다는데?”
“....”
내 질문에 네이는 꺼내기 껄끄러운 듯이 입을 다물며 시선을 회피한다. 하지만 아무말없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자 결국 버티지 못한 네이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간다.
“한때... 키르비르님이 에페리아 밑에서 학문을 배운적이 있어... 물론 그때의 경험은 모두 독이 되었지만...”
“...독?”
“에페리아는...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키르비르님을 무지 싫어했었어... 그리고 키르비르님을 제자로 받아드린것도 좋은 뜻은 전혀 없었어..”
“그럼 대체 왜...”
“내..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다음은.. 몰라.. 말하고 싶지도 않고..”
내 질문이 끝나기도전 네이는 황급히 등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난다. 왠지 뒷끝이 찜찜한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가 뭔가를 알고있음이 분명히 나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네이의 입장에서 왠지 꺼내기 껄끄러운 이야기 같았다.
“뭐.. 나중에 물어보지 뭐..”
너무 조급하게 꼬치꼬치 따질필요는 없었다. 느긋하게 조금씩 캐물어간다면 나중에가서는 알아서 그녀가 모든 사실을 나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몹쓸 성격이군.”
나는 에페리아의 하이힐에 짖밟혔던 내 미간을 문지른다. 광혈의 저주의 특성상 상처는 모두 말끔히 회복되어있었지만 그때 잘근잘근 짓밟혔던 통증은 아직도 쓰라리게 남아있었다.
빠악!!
“크아악!!”
그 순간. 뭔가 통쾌한 타격음과 함께 내 뒷통수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자리가... 사나웠던 이유가 여기있었네.”
“키... 키르비르?!”
나는 내 뒷통수를 때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서는 어느센가 잠에서 깨어난 키르비르 침대위에 걸터앉은채 내 머리를 강타한듯한 주먹을 가볍게 허공에 털어내고있었다.
“네 녀석이... 나랑 같은 공간에 있으니 꿈이 그따위지!!”
“자.. 잠깐!!”
빠악!!
그녀의 자그마한 주먹이 정확히 내 미간을 정통으로 강타한다. 그와 동시에 에페리아에게 짓발혔던 통증과 어마어마한 힘이 실린 주먹의 충격이 동시에 몰려오며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져온다.
“기.. 기다려!!”
나는 참을 수없는 통증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며 키르비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진정하기는 커녕 그런 나를 노려다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주먹을 가볍게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너.. 각오해. 내가 기억 못할 것 같았지?!”
“자.. 잠깐. 대체 뭐 때문에..”
“아~ 이제는 모른척하시겠다?”
키르비르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서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며 퍼뜩 떠올린 내 죄는 단 하나. 비공정에서 그녀에게 저지른 조금 거친 행동뿐.
“잠깐!! 그건 너가 허락해준다고 했잖아! 무슨 일을 해도 허락해 준다고..”
“아.. 그랬지. 그건 인정할게. 나는 너에게 내게 무슨짓을 해도 된다고 허락해 줬어.”
“휴우...”
그녀 스스로 그 사실을 기억하고 인정하자 나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용서해준다고는 안했지.”
“....뭐?!”
뻐억!
그와 동시에 내 턱에서 강렬한 통증과 함께 내 시야가 위로 들어올려진다.
“크윽!!”
나는 턱을 가리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 키르비르로부터 거리를 벌린다. 키르비르는 그런 나를 쫓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살벌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채 말한다.
“각오해. 오늘 한번... 죽기 직전까지 맞아보자.”
“자... 잠깐..”
“아~ 걱정마. 죽지는 않을테니까. 이러기 위해서 리엔을 살린거거든. 신성한 자인 리엔은 거의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니까... 내가 죽이고. 리엔이 살리고. 죽이고 살리고. 상상만해도 즐겁지않아?”
그녀의 입가에 살기가 가득한 살벌한 미소가 서린다. 그런 그녀와는 다르게 내 입가는 어이없을 정도로 강한 공포에 의해 흉하게 뒤틀려져가기 시작한다. 진심이었다. 그녀가 내 뱉는 말 한마디한마디에 그녀의 진심이 담겨있었고 어느때보다도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지금 이 일을 행하는데 엄청난 의욕이 담겨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 우아앗!!”
나는 재빨리 출구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서!!”
키르비르또한 갑작스레 내달리는 나를 쫓기위해 몸을 움직이려했지만..
“아욱..!!”
몇걸음 내딛지도 못하고 키르비르의 몸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버린다.
“....?”
나는 갑작스레 쓰러진 키르비르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멈춘다. 얼핏보니까 속임수나 미끼는 아닌것처럼 보였다. 키르비르의 성격상 저렇게 속여가면서까지 나를 유인할 위인은 아니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묻는다.
“괘.. 괜찮냐? 무슨..”
하지만 그녀에게 접촉하지않고 약간의 거리를 둔채 그녀의 상태에 대해묻는다.
“아.. 아파..”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를 붙잡은 상태에서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아프다니.. 어디가?”
그런 상태로 나를 공격할 수 없을거라 생각한 나는 조금더 용기를 내어 좀더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랫배가... 욱씬거려..”
“....”
나는 그녀의 고통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비공정안에서의 거친 성행위. 그리고 처녀상실에 의한 후유증이 분명했다. 아마도.. 몇일간은 괴롭겠지.
“으윽..”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날카로운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부축해줄 생각으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이게 모두 망할 네놈때문이잖아!!!”
그녀는 거의 쓰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움켜쥐고 매달린다.
“우.. 우으아악!!”
나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지만 불굴의 키르비르는 간신히 움켜쥔 내 멱살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죽어! 이 빌어 처먹을 놈아!!”
뻐억!!
살기와 마나가 잔뜩 서린 그녀의 주먹이 내 안면에 직격한다. 순간 단숨에 코뼈를 으깨버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충격 앞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낀다. 나는 비명조차 지를 틈도 없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죽어라아아!!”
빠악 빠악 빠악!!
그런 내 몸위에 올라탄 키르비르는 다짜고짜 내 안면에 주먹질을 날려대기 시작한다.
“이.. 이게 무슨 소.. 꺄아아앗!!”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요란한 소음에 이끌려 방문을 열고 리엔이 등장한다. 그녀는 내 몸위에 올라타 나를 일방적으로 구타하고 있는 키르비르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벼운 비명을 지르며 키르비르에게 매달려 그녀를 말리기 시작한다.
“키.. 키르비르님!! 그러다 죽어요!!”
“그럼 너가 치료하면되잖아! 치료해!”
그리고 간신히 그녀의 구타가 멈추고.. 따듯한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들며 빠르게 상처가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편안한 기분속에서 간신히 의식일 차린 내가 눈을 천천히 떠가자..
빠악!!
들어오는 것은 키르비르의 매서운 주먹.
“꺄아앗! 애써 치료했는데.. 그러시면!!”
“시끄러!!”
빠악! 빠악!!
계속되는 주먹질과 얄밉게도 내 의식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흘러들어오는 회복의 기운 사이에서 지옥같은 순회가 반복되어진다.
========== 작품 후기 ==========
abcbbq / 엌ㅋㅋ 저는 13시간만에 엔딩. 하드코어로 봤죠..
Lizad / 키르비르!
YUKIKAZE / 이제 시작이죠. 육체적이 아니라 정신적 정복...?!
아르마티스 / 내 소설에 주인공의 파워업은 없었엉ㅋㅋㅋㅋ 응앜ㅋㅋ 그리고 시란은 칼이잖아? 먹다가 고자크리되면 좀 끔찍할듯싶네요..
실버링나이트 / 으음... 어디보자.. 다음 스토리에서 나오는 신규 히로인은.. 이리엘이네요.
엌ㅋㅋㅋ 지난주 금요일 연재 실패. 요즘 바쁜일이 약간 있어서 비축분을 만들어 놓지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