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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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나는 퉁퉁부운 얼굴로 아침 식탁에 걸터앉는다.
“흥..!!”
그런 내 맞은편 자리에 키르비르는 단단히 팔짱을 끼고 맘에 들지 않는 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
그런 나와 키르비르를 번갈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리엘은 조용히 걸음을 옮겨 식탁의 다른 한자리를 차지하고 조용히 걸터앉는다.
“으르르릉..”
이를 바득바득 갈며 아직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 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는 키르비르의 시선에 나는 쓴웃음을 머금은채 고개를 떨군다. 결국 어젯밤 키르비르는 내 숙소까지 찾아와 한바탕 뒤짚어 엎었다.
아마도 내가 약점을 쥐고 있었던 덕분일까. 다행히 저번처럼 내가 기절할때까지 패지는 않아 리엔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키르비르의 주먹이 가볍지는 않았다. 광혈의 저주로도 잘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손으로 문지르며 슬쩍 키르비르의 눈치를 살핀다.
“...부부 싸움?”
“아니야!!!”
눈치없는 이리엘의 물음에 키르비르는 바락 소리를 지른다. 너무나도 강한 키르비르의 부정에 이리엘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무언가를 자기 스스로 수긍해버린다.
“이건 맛보기야. 말하기만해봐. 너랑 나랑 아주 같이 죽어버리는 거야...”
“아.. 예예..”
같이 죽는다는 사실이 좀 오묘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키르비르의 결의가 얼마나 단단한지 예상하는 한마디였다. 저건 진심일 것이다.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숙적인 로터스에게 알려진다면... 얼마나 큰 놀림거리가 될지 뻔했다.
“키르비르님 오랜만이네요!”
그때 주방에서부터 반가운 리엔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채 능숙하게 식탁에 자신이 만든 음식들을 정렬해놓은다. 조용히 나를 노려보던 키르비르는 자신의 앞에 먼저 놓여진 달콤한 디저트 케잌을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띄운다.
“그나저나... 네이가 보이지 않네요.”
리엔은 식탁에 비어있는 한 자리를 발견하고 키르비르에게 묻는다. 그러자 키르비르또한 퍼뜩 놀라며 빈자리를 바라본다. 아마도 식사시간까지는 돌아올거라 믿었던 걸까. 식사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네이의 존재에 키르비르의 안색이 눈에 띄게 불안해진다.
“미안... 일이 있어 좀 늦었어..”
하지만 그 순간. 네이는 조용한 사과와 함께 등장한다. 왠지 힘없는 그녀의 모습에 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이가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걸터앉아 리엔은 별다른 것을 묻지 않고 그녀의 몫의 음식을 그녀의 앞자리에 놓아준다.
“으으음~! 달아!”
즐거운듯 자신의 몫의 케잌을 잘라먹으며 미소짓는 키르비르. 하지만 종종 그녀는 나를 날카롭게 노려본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음식을 야금야금먹어가지만 곁눈짓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이.
“....후우..”
나는 나도모르게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뭔가 가슴이 답답한 상황이 상당히 낯설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좋은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무식한 내 머리로는 명쾌한 해답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서먹하고 어색함. 그리고 나를 노리는 날카로운 시선속에서 나는 내 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억지로 입안으로 구겨넣어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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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답답한 식사시간이 간신히 넘어갔다. 디저트로 나온 케잌만 먹은 키르비르는 식사가 끝날때까지 무언의 경고로 내 몸이 찌릿찌릿해질 정도로 노려보고 있었줬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식사가 끝나자 빈그릇을 치워가는 리엔을 흘긋 돌아본 키르비르는 이내 짧은 콧방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자 네이!”
그리고 네이를 부르는 키르비르. 그런 그녀의 명령에 네이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자그마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 날렵하게 키르비르의 어께위에 올라탄다.
“....”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색했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자리가 아닌 듯 불편해 보이는 모습. 몇 달전만해도 잘 어울려보이던 키르비르와 플루토가 아니었다. 키르비르가 스텝에 올라타 키르비르의 탑으로 돌아갈준비를 하자 플루토는 뭔가 미련이 남는 듯 나를 돌아본다. 그런 녀석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던 나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릴 뿐이었다.
“...무슨 고민?”
키르비르가 떠나고... 그릇을 처리하고 뒷정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리엔 대신 이리엘을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녀는 자신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디저트 케잌 접시를 손에 든채로 작은 포크로 야금야금 아껴먹어가고 있었다.
“뭐... 남녀간의 문제일뿐이야.”
리엔에게도 솔직하게 말하기 버거운 사실. 하지만 이리엘이라면 가능했다. 아직 어리고 둔감한 이리엘은 내가 무슨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왠지 가슴이 꽉 막힌듯한 답답함 속에서 나는 내 고민을 이리엘에게 털어두기 시작한다.
“이리엘. 너는 어쩌겠어?”
“뭘?”
역시나 이리엘은 별 관심없다는 듯이 자신의 케잌을 작은 포크로 야금야금 먹어가며 내 물음에 대답한다.
“너가 가지고 싶은 물건이 두 개 있어. 그럼 넌 두 개중에 뭘 선택하겠어?”
“....?”
내 질문에 이리엘은 이해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거둔다. 어자피 이리엘에게 설명해줘도 모를 일이 분명하다.
“질문이 이상해. 왜.. 둘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전제조건을 건거야?”
“...응?”
“필요하면 둘다 가지면 되잖아.”
참으로 명쾌한 해답이었다. 두 개 다 원한다면 둘다 가지면 그만이었다.
“만약 두 개 같이 있을 수 없는 상극이라면? 불과 얼음같은것...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가 사라진다면?”
“....”
나는 질문을 좀더 복잡하게 바꾼다. 그제서야 이리엘은 이번에 내 질문의 요지를 꺠달았는듯 살짝 이맛살을 찡그려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이리엘은 조용히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빨리 사라지는 것을 가져.”
“...응?”
“불과 얼음이라면... 빨리 꺼지거나 녹는 것을 가져. 그리고 하나가 사라지면... 그 다음 남아있는 다른 걸 또다시 가지면 돼잖아.”
“하핫...”
이리엘의 대답에 나는 나도모르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 그녀의 말도 틀린 게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두 개다 단순한 물건이라면 말이지... 사라지는 것을 먼저 가져라...
“사라지는 것을 먼저가져라...”
나는 다시금 그녀가 한말을 상기한다. 사라질 것. 그러니까... 나로부터 먼저 떠나 사라질 사람.
“근데 왜 불이나 얼음이 필요해? 그건 배에 많아. 플라즈마라던가... 액체 질소라던가..”
“....”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다시금 케익을 크게 하나 베어문 이리엘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답답함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크게 쓸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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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어둠이 감싸진 유적지. 높디 높은 키르비르의 탑 지붕위에는 고요한 달빛을 온몸으로 받고있는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
“....”
네이.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슬쩍 지상을 내려본다. 어두운 어둠이 감싸진 유적지중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작은 구조물. 바로 타메르와 일행이 있는 숙소였다. 그런 숙소를 조용히 바라보던 네이는 다시금 짧게 한숨을 흘린다.
“흐흐흠~ 고민이라도 있나봐?”
“...!!”
그런 그녀의 뒤로 나타나는 낯선 인기척. 네이는 자신의 감각에 걸리지않고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정체불명의 존재에 기겁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채 뒤를 돌아본다.
“요!”
커다란 마녀모자를 머리위에 쓰고 칠흑처럼 검은 로브를 밤바람에 휘날리는 아름다운 여성.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네이를 향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낸다.
“에페리아...?”
하지만 네이는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무참하게 인상을 구겨버린다. 서로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날카롭게 세워진 발톱을 회수하지 않고 오히려 송곳니까지 들어내며 에페리아를 향한 적개심을 들어내는 네이. 하지만 에페리아는 그런 네이의 위협에 느긋하게 어께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너무 흥분하지마~ 내가 비록 너를 싫어한다지만... 오늘은 널 도와주러 온것이니까.”
“무슨 헛소리야?”
네이의 물음에 에페리아는 피를 머금은듯 붉은 입술로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네이를 바라본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섬뜩한 그녀의 시선에 네이의 몸이 움찔거린다.
“적의 적은... 아군이지. 안그래?”
“....”
애매모호한 에페리아의 질문에 네이는 침묵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대답에 별 상관없다는 듯이 에페리아는 자신의 말을 풀어나간다.
“너가 알다싶이 나의 적은 키르비르야. 오늘 너의 한숨소리를 들으니까... 키르비르에게 불만 많은 것 맞지?”
“없어.”
에페리아의 질문에 네이는 일말의 주저없이 부정을 표한다. 하지만 그런 네이의 대답을 예상했다듯이 에페리아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한다.
“에이... 애써 숨길필요 없어. 키르비르를 향한 하찮은 동정심은 이제 버려. 너는 이제 그녀보다 더 중요한 걸 얻었잖아?”
“....”
이어진 에페리아의 말에 네이는 부정을 하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에페리아를 노려보고 있을뿐. 그런 네이의 모습에 에페리아의 입가의 미소가 짙어진다.
“더 이상 키르비르에게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이제 너의 삶을 찾으라구.”
“하지만...”
에페리아의 말에 네이는 이를 악문다. 하지만 에페리아는 이미 천천히 자신의 회유에 넘어오기 시작하는 네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자신의 품속을 뒤져간다.
“너가 걱정하는 사실에 대해 잘 알아. 만약 너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너에게 보복할 생각은 없어. 좀 늦어지긴 했지만 내 목적이 달성된거니까. 그러니까...”
스윽..
에페리아는 품안에서 작고 검은 구슬 하나를 꺼낸다. 그런 낯선 물건의 등장에 네이는 더욱 긴장하며 에페리아의 손에 들린 검은 구슬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킨다.
“너가 키르비르를 죽이면... 그 뒤의 일은 상관안할게. 그냥 영원히 이곳에서 지내도 좋고... 원한다면 마계로 돌아올 수도 있어. 어때?”
에페리아의 말에 네이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에페리아를 바라본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에페리아의 미소를 바라보던 네이는 다시 시선을 내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은 구슬을 바라본다.
“이건 너를 위한 나의 작은 배려야. 너의 손을 더럽히기 싫다면... 이걸 사용하면 돼. 효과는 확실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
네이는 주춤주춤 에페리아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갈등의 빛이 가득했다. 결국 에페리아가 건내는 검은 구술을 받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손길을 멈추는 네이. 그런 네이의 모습에 에페리아는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언제 인상을 찡그렸냐는 듯이 환히 웃으며 말한다.
“네이. 잊지마. 너의 남은 수명은 길어도 6년이야.”
“....”
그녀의 말에 네이는 그동안 애써 외면해오고 있던 사실을 자각한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에페리아를 바라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혼돈의 힘. 그런 힘을 몸에 품은 네베르족이나 뤼베크족의 평균수명은 짧지. 아마 요즘 네베르족 평균수명이 한 25년정도 되나? 장수한다해도 30년.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않아.”
에페리아의 말에 네이는 아무말없이 입술을 꽉 꺠문다. 그녀의 고운 입술을 찢으며 이빨사이로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핏물이 그녀가 얼마나 큰 갈등을 겪는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조용히 에페리아의 손에 쥐어진 검을 구슬을 바라보던 네이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가 건내는 검은 구슬을 받는다.
“키르비르의 근처에서 그 구슬을 깨뜨려. 그러면 너의 모든 고민이 해결될꺼야.”
네이가 검은 구슬을 받아내자마자 에페리아의 신형은 마치 안개처럼 허공에 산산히 흩어져버린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에페리아의 신형을 멍하니 바라보던 네이는 천천히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은 구슬을 내려다본다.
“남은... 수명..”
얼떨결에 받아버린 검은 구슬을 내려다보며 네이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녀또한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생활속에서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
구슬을 바라보던 네이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런 밤하늘에는 혼란스러운 네이의 마음과 다르게 고요한 별빛과 달빛만이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lsc3030 / 응앜ㅋㅋ 발견되어버렸다!
Solar Eclipse / 쩝... 저도 복잡해서.. 제가 이끌어가는게 잘 이끌어가는지 의문이네요.
실버링나이트 / 읭? 복선같은걸꺼나?
Lizad / 으.. 으허허헛.. 뭐.. 그런거죠.
타카요 /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3년전에 이런식으로 스토리를 끌어가게 만든 독자들을 탓하세요 ;ㅅ;
불쌍한 네이. 과거 외전격으로 만들었던 네이 중심스토리에서도... 네이는 오래 못갔죠. 하지만 네이 대신 귀요미 딸들이.. 헠헠..
어찌됬건... 짧고 굵은 임팩트. 그것이 바로 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