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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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을 완벽하게 성공시킨 이리엘은 천천히 자신의 권총을 재장전하며 조심스럽게 튕겨져나간 켈레브라를 향해 걸음을 옮겨나간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온몸이 산산조각나 즉사할 공격이었지만... 뭔가 말로 표현못할 꺼림찍한 느낌이 이리엘을 이끌고 있었다.
철컥..
그녀는 켈레브라가 튕겨져나간 방향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한걸음 한걸음 주의깊게 내딛는다. 자욱한 흙먼지 때문에 시야가 잘보이지는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의 온몸의 감각을 전방에 집중시킨다.
투욱..
뭔가 일어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이리엘은 걸음을 멈추고 가늘게 뜬 눈으로 전방을 노려본다.
투두둑..
돌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소리. 그런 소리가 천천히 그녀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아직 켈레브라는 건재하다. 그 사실을 꺠달은 이리엘은 조용히 뒤로 물러선다.
타앙!!
그 순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요란한 총성이 들려온다. 그런 총성에 이리엘의 몸이 먼저 반응한다. 총성이 들림과 거의 동시에 몸을 옆으로 던진 이리엘은 무너진 벽돌더미 뒤로 몸을 숨긴다.
“쥐새끼가...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약간의 분노가 서린 켈레브라의 외침에 이리엘은 아무런 대답없이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자신의 어께를 감싸쥔다. 계속해서 격한 움직임을 펼치니 상처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엇다. 이대로는 계속 싸워봤자 불리한 것은 이리엘 쪽이었다.
“어디한번 더 보여봐!! 그 잘난 잔재주를!!”
켈레브라는 성대가 반쯤 끊어진 것처럼 귀에 거슬리는 기괴한 목소리로 이리엘에게 외친다. 그러면서 이리엘이 숨어있는 엄폐물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행동에 이리엘은 아무말없이 자신의 리볼번의 손잡이만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침착하게...”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리볼버를 바라보며 조용히 웅얼거리는 이리엘의 동공이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룰 굴려도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의 저격장소를 눈치챌정도로 예리한 시력. 거기다 그 먼거리를 빠른속도로 좁혀올 신체능력. 무시할 수 없는 사격술까지... 평범한 인간이었던 이리엘이 감당하기엔 만만치않은 상대였다.
“크크큭.. 잔머리가 다 떨어지신건가?”
그 순간 자신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켈레브라의 목소리에 이리엘의 몸이 흠칫 떨린다.
“그럼 더 이상 볼 필요도없겠군.”
철컥.
이리엘이 고개를 돌렸을때. 이미 어느센가 그녀가 밟고 있는 엄폐물 위에 올라타있는 켈
레브라의 모습이 보였다. 수류탄의 폭발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그의 몸 이곳저곳에는 날카로운 수류탄 파편이 박혀있었지만 출혈이 나지는 않았다. 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이리엘의 머리를 향해 리볼버의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잘가라.”
켈레브라의 작별인사가 떨어지는 순간. 이리엘은 반사적으로 그의 사격을 피해 몸을 옆으로 던지려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켈레브라는 다른 손에 들린 리볼버로 그녀가 도망칠 곳을 조준한다. 완벽하게 당했다는 사실에 이리엘은 신음을 삼킨다.
삐비빅..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이리엘은 자신의 등뒤에서 발사되어 켈레브라를 향해 쏘아진 작은 원통형 물건을 발견한다. 마치 슬로우 영상을 보는 듯이 그를 향해 쏘아진 원통 한쪽 벽이 천천히 갈라지며 그안에 들어있는 수천개의 작은 구슬들을 켈레브라를 향해 내보인다.
콰앙!!
“크읏?!”
원통은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천개의 구슬들을 켈레브라을 향해서만 쏘아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이리엘을 겨누고 있던 켈레브라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버린다.
“스마트탄..?!”
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것은 대구경 저격총용 대인 스마트탄이었다. 엄폐물 뒤나 혼전된 상황에서 아군의 피해없이 표적만을 제거하기 위해 마련된 탄환이었다. 그녀의 기억상 그런 탄환을 만들어준 것은 후방에서 장거리 저격지원이 가능한 이누시카밖에 없었다.
-이리엘님의 위험을 판단. 임의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리엘님의 구조를 최우선으로...!!
곧이어 들려오는 이누시카의 침착한 무전소리에 이리엘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곧이어 팀의 리더인 로잔나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인한 지시가 내려진다.
“이건... 또 뭐냐?!”
켈레브라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낯선 무기에 당황하며 자신의 몸에 파고드는 수천개의 작은 구슬들을 내려본다. 하지만 별 타격은 아니라는 듯 그는 자신의 몸을 털어 박힌 구슬을 빼낸다. 그 사이 멀지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잔나가 이리엘을 향해 재빠르게 뛰어온다.
“이리엘님! 일단 퇴각을 하셔야합니다.”
“....”
자신의 상처를 잘 알고있던 이리엘은 어께를 꽉 눌러 지혈하며 로잔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뒤를 맡겠습니다.”
뒤를 맡겠다는 로잔나의 말에 이리엘은 슬쩍 고개를 돌려 로잔나를 바라본다. 이리엘을 위협하는 적이자 과거의 자신의 상관이었던 켈레브라를 노려보며 로잔나는 자신의 어께에 견착한 소총의 노리쇠를 뒤로 잡아당긴다.
“빨리가세요!!”
“아.. 으응..”
누군가에게 자신의 뒤를 맡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듯 그녀의 심연에 잠들어있는 기억들중에서도 로잔나의 행동에 반응하는 기억은 없었다. 과거부터... 그녀의 기억이 최초로 시작되었던 때부터 그녀는 언제나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홀로 싸움에 임해왔었다.
“쥐새끼가 어딜 도망치는거냐!”
켈레브라에게 등을 돌리자 적이 자신의 등을 노린다는 불안감이 이리엘을 덮친다. 그런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 이리엘은 반사적으로 리볼버를 움켜쥐고 부상당한 몸으로 켈레브라를 노리려한다.
“빨리요!!”
투다다!!
로잔나는 이리엘을 노리려는 켈레브라를 향해 자동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켈레브라는 자신을 위협하는 로잔나의 사격에 이리엘을 노리지 못하고 그녀의 사격을 피해 몸을 숨긴다. 그러자 이리엘은 자신을 위협하던 불안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느낀다.
“아리엘님! 이쪽으로...”
로잔나가 켈레브라를 맡고있을 때. 후방에서 숨어있던 올리비아가 그녀를 부른다. 그제서야 정신을 퍼뜩 차린 이리엘은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올리비아를 향해 달려간다.
“로잔나는 걱정마세요. 금방 돌아올 거에요.”
타메르에 의해 양 눈을 잃어버린 올리비아는 보이지 않는 눈대신 기계로 된 두꺼운 고글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잃어버린 눈을 대신하기 위해 마련된 탐색 장비로 비록 진짜 눈같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능으로 그녀의 시력을 보조하고 있었다.
“우선 돌아가서 치료부터하세요.”
“로잔나님이 돌아올때까지 저희가 지킬테니까요.”
쿠웅..
싸우고있는 로잔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이리엘 옆에 있는 석벽에 커다란 중기관총이 거치된다. 그런 중기관총을 붙잡고있는 것은 에스멜라다였다. 그녀는 자신의 어께에 짋어지고 있는 커다란 탄약 상자를 내려두며 중기관총에 탄약을 연결시켜나간다.
“동료...”
그런 올리비아와 에스멜라다를 바라보던 이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다. 싸움을 같이하는 동료. 그저 사전적 의미로만 알고있는 뜻이었다. 남들과 같이 협력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했던 그녀는 지금 로잔나나 올리비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개개인의 능력은 이리엘보다도 떨어지는 그녀들이었다. 비록 로잔나가 강한 다리와 뛰어난 육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이리엘과 같은 동체시력이나 반사신경은 없었다. 올리비아는 기민하고 날렵하지만 사격실력이 형편없었다. 에스멜라다는 힘이 넘치지만 돌발상황 대처에 미숙했다. 마지막으로 이누시카는 사격실력이나 임기응변은 수준급이었지만 근접전투를 힘겨워했다.
“....”
모두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이리엘보다 뛰어날 수도 있는 장점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이리엘은 자신의 앞에서 적을 막아주는 로잔나. 양옆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올리비아와 에스멜라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후방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이누시카. 그녀들로 하여금 그 어느 때도 느껴보지 않았던 든든함을 느끼는 이리엘이었다.
“옵니다!”
그때 자신이 장비하고 있는 탐지장비를 통해 벽넘어의 로잔나와 켈레브라의 싸움을 지켜보고있던 올리비아가 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올리비아의 곁에 있던 에스멜라다나는 자신이 거치한 중기관총을 움켜쥔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꼐 벽이 무너지며 로잔나가 흙먼지를 뚫고 튀어나온다. 켈레브라와 싸움이 쉽지는 않았는지 그녀의 호흡은 많이 거칠어져있었고 그녀가 들고있던 자동소총은 어디간지 보이지 않았다.
“사격 개시!!”
로잔나가 벽을 뚫고 거리를 벌리자 올리비아는 에스멜라다에게 사격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에스멜라다는 로잔나가 튀어나온 흙먼지를 향해 중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투두두둥!!
자동소총과 전혀다른 묵직한 총성과 함께 눈에 보일정도로 굵은 총탄이 흙먼지를 가르며 그 안으로 쏘아진다. 굵직한 총탄은 유적벽이나 땅을 헤집으며 더욱 자욱하고 짙은 흙먼지를 일으킨다.
“총원 철수해!!”
에스멜라다의 제압사격에 켈레브라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로잔나는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리엘님. 가요!”
올리비아는 이리엘의 손목을 붙잡고 안전한 지역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 올리비아에게 이끌려 달려가며 이리엘은 흘끗 로잔나와 에스멜라다를 바라본다. 어느정도 충분히 사격했다고 판단한 에스멜라다는 능숙하게 중기관총을 회수하여 어께에 짋어지고 있었고 그런 에스멜라다를 호위하기 위해 그녀의 곁을 지키는 로잔나는 비상용으로 허벅지에 매어둔 리볼버를 꺼내 흙먼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곧이어 아무런 위협요소가 발견되지 않자 로잔나는 에스멜라다와 함께 올리비아를 쫓아 달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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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리엘은 블랙 로즈팀의 도움으로 별 무리없이 비공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이리엘을 쫓는 켈레브라의 움직임이 보였지만 켈레브라가 그녀를 추적하기전 이리엘은 미리 설치해둔 방어시설의 도움으로 그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상대는 언데드인가...”
비공정으로 돌아온 이리엘은 자신이 머무는 중앙탑 전체의 지도가 펼쳐진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원래 지도의 대부분은 방어시설을 표시하는 푸른색 점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하지만 켈레브라를 표시하는 붉은 점은 그런 방어시설을 뚫으며 이리엘과 일행들이 있는 비공정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언데드와는 달라...”
잠시동안 켈레브라를 상대했었던 이리엘은 그 순간을 회상한다. 언데드라는 성향에 맞지않는 날렵한 움직임을 보였던 켈레브라였다. 보통 죽은 시체인 언데드는 신체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무슨 모종의 수작을 부린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배는 강해진 운동능력을 보여준 켈레브라의 모습에 이리엘은 작게 인상을 찡그린다.
“상당히... 까다로워.”
그녀의 주특기인 장거리 저격도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한지는 모르겠지만 육안의 범위에서 벗어난 거리에서의 사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켈레브라는 어렵지않게 그 사격을 피해냈다. 거기다 순식간에 이리엘의 위치까지 포착해버리는 괴물같은 육감에 이리엘은 작게 혀를 내두른다.
“이리엘님...?”
그때 지도를 주시하고 있던 이리엘의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소리에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있던 이리엘은 퍼뜩 놀라 자신을 부른 존재를 바라본다. 그녀를 부른 것은 다름아닌 로잔나였다.
“상처가..”
“....”
로잔나의 말에 이리엘은 켈레브라에게 피격당한 자신의 왼쪽 어께를 바라본다. 총탄에 당한 상처는 이떄까지 별 응급조치 없이 방치되어 끔찍하게 짖뭉개져 핏물이 흘러나와 그녀의 왼팔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괜찮아.”
하지만 그럼 심각한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이리엘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리고서는 별 것아니라는 듯이 상처를 외면한다. 그런 이리엘의 행동에 그녀의 끔찍한 상처를 보고있던 로잔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리엘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로잔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설뿐이었다.
투둑.. 투둑..
이리엘의 손끝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방울저 바닥을 붉게 적셔가기 시작한다. 이리엘또한 자신의 어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함장님. 심각한 부상이 있습니다.
“해결책은?”
엘의 말에 이리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해결책에 대해 묻는다. 아무리 자신의 기억을 뒤져봐도 이런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경우 기존의 신체를 폐기 후 새로운 신체로 대체합니다.
“....”
엘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리엘의 심연에 잠들어있던 기억중 일부가 깨어난다. 함장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 경우 그 함장은 교체된다. 같은 이리엘이지만 그녀가 아닌 또다른 이리엘. 엘에 의해 상시 저장되는 이리엘의 최근 기억이 옮겨진 복제품이 꺠어나 지금의 이리엘을 대체하게 된다.
“알았어.”
하지만 이리엘은 별 고민없이 그런 엘의 말을 수락한다. 그것은 수많은 위험한 전투를 치뤄온 그녀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으며 새롭게 깨어난 또다른 자신이 자신의 할 일을 이어가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신체로 대체를 개시합니다. 새로운 신체에 기록되는 기억은 기억전송 실패의 순간입니다.
“....잠깐.”
그러나 곧이어진 엘의 말에 이리엘은 엘의 행동을 제지시킨다.
“그게 무슨말이야? 기억전송 실패의 순간이라니?”
-이리엘님은 과거 1회의 기억전송 실패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생성된 함장은 불완전한 함장으로 처리. 그 함장님의 기억은 저장되지 않습니다.
“.....”
순간 이리엘의 얼굴에 큰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당혹감과 두려움. 그녀는 아무말없이 입을 꾹 다문채 자신을 주시하는 중앙컴퓨터 엘의 붉은 렌즈를 바라본다.
-예외적으로 지금 이 상황에 적응하기 쉽도록 최소한의 객관적 정보는 같이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작업 중지.”
-작업을 중지합니다.
작업을 중지한다는 엘의 말에 이리엘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순간 가슴을 뒤흔들었던 당혹감과 두려움을 숨길 수는 없었다. 엘에게 이때까지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이리엘은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나 고통, 외로움이나 괴로움까지. 그 모든 것도 이리엘에게 두려움을 줄수가 없었다. 엘에게 저장되는 모든 기억을 통해 치명적인 상처나 생명활동이 정지되었을 때 새로운 신체로 대체되어 절대로 죽지 않을 수 있는 이리엘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녀의 기억이나 추억들은 엘에 의해 보관되어 새로운 신체로 이전된다는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라는 낯선 감정의 충격에 이리엘은 천천히 자신의 어께를 바라본다.
“아... 아아...”
무덤덤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왼쪽 어께의 상처가 그 어느때보다도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 상처가 천천히 자신의 숨통을 조이며 목숨을 갉아먹어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그녀는 어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어께를 움켜쥔다.
“이리엘님?”
그런 이리엘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로잔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간다. 로잔나의 접근에 움찔 놀란 이리엘은 다가오는 로잔나를 경계했다.
“이리엘님. 이 상처는 응급조치를 해야합니다.”
“알았어.”
이리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로잔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허벅지의 포켓에서 작은 의료상자를 꺼낸다. 능숙하게 한손으로 의료상자를 연 로잔나는 안에서 간단항 붕대와 긴급소독제같은 약품을 꺼내며 흘끗 이리엘을 바라본다.
“....”
이리엘은 살짝 걱정과 두려움이 섞여 떨리는 눈동자로 로잔나가 꺼내든 의료상자를 바라본다. 이리엘의 기억으로 치료라는 행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신체에 장애가 생기면 새로운 신체로 바꾸면 그만이었던 그녀였다. 그런 이리엘을 바라보던 로잔나는 조심스럽게 이리엘의 팔을 붙잡는다.
“조금 아플꺼에요.”
로잔나는 미리 꺼내둔 소독 스프레이를 두어번 흔든다음 이리엘의 어께를 조준하여 스위치를 누른다.
치이익!!
“읏..!!”
소독 스프레이에서 터져나오는 액체가 상처를 자극하자 이리엘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나온다. 그런 이리엘의 신음소리에 로잔나는 살짝 눈동자를 굴려 이리엘을 바라본다. 그러다 이내 그녀로부터 관심을 끊고 그녀의 상처에 집중한다.
“이걸로 감으면... 괜찮을 꺼에요.”
지혈제가 섞인 소독스프레이 덕에 이리엘의 어께에서 터져나오던 출혈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러자 붕대를 꺼낸 로잔나는 조심스럽게 이리엘의 어께에 거즈를 덮고 붕대를 감아가기 시작한다. 두어바퀴 붕대를 돌려 이리엘의 상처를 단단히 묶어 지혈한 로잔나는 응급치료를 마무리한다.
“됐어요. 응급조치이니까 빨리 제대로된 치료를 해야해요.”
“알았어. 일단 지금은... 눈앞에 들이닥친 문제부터 처리해야해.”
새하얀 붕대에 감싸져 더 이상 끔찍한 상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어께를 바라보며 이리엘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비록 욱씬거림은 사라지지 않지만 출혈이 눈에 띄게 없어졌다는 사실에 이리엘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사라진 것을 느낀다.
“엘. 지도를 보여줘.”
상처가 어느정도 진정되자 이리엘은 다시금 엘에게 지도를 보여달라고한다. 그러자 엘은 화면에 중앙탑의 지도를 보여준다. 외곽에있던 붉은 점은 수많은 방어시설을 뚫고 중앙탑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상대는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강화 언데드... 홀로 싸우기는 힘들어.”
마른침을 삼킨 이리엘은 지도에서 눈을 떼고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네명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들은 한치의 미동없이 이리엘의 명령을 기다리는지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들을 돌아보던 이리엘은 천천히 입을 연다.
“작전을 말해주겠어.”
타인에게 뭘 맡기기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이리엘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안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보좌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4명의 여성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으으....
한해를 마무리 하는 중요한날에 즐겁게 연재를 할 수 있게되서 다행이네요.
모두들 즐거운 신정이 되시고 앞으로 후회없고 즐거운 한해가 되기를 기도할께요.
모두들 해피 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