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167화 (167/298)

167편

<-- Main story 4. 배신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 이제곧 꺼질듯 하늘 거리는 새하얀 빛의 조각을 중심에 두고 5명의 그림자가 둘러싸 서있었다. 그들은 몸을 기울여 이제 곧 꺼질 듯이 하늘거리는 빛의 조각을 바라보며 말한다.

-끝이군.

-끝이야.

-끝이네요.

그들은 한마디씩 말을 내뱉는다. 곧이어 그들은 기울였던 자세를 바로잡으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난 그녀를 살리겠어.

불편한 침묵 속. 마지막에 네이를 도와줬던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다른 4명의 그림자는 그런 목소리에 놀라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우리에게 남은 힘은 없어. 있다고 해봤자... 틈새에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힘뿐이야.

베르카의 늙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목소리는 자신의 뜻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지 빛의 조각을 향해 한걸음 다가서며 몸을 웅크린다.

-우리는 가망이 없어. 하지만 그녀에겐 가망이 있어. 나는 그녀에게 희망을 걸꺼야.

-우리에게 가망이 없다니. 틈새에서 우리의 존재만 유지한다면... 언젠간 기회는 되돌아온다!

-에페리아 년이 자신의 명줄을 다살고 죽은 뒤쯤에?

여성의 목소리와 베르카의 늙은 목소리가 서로 언성을 높인다. 두 그림자 싸움사이에 또다른 그림자가 끼어든다.

-나도 도우겠어.

그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아닌 리시아였다. 그녀는 어리지만 당찬 목소리로 여성의 그림자와 같이 빛의 그림자 곁에 웅크려앉는다.

-리시아!! 비록 검은 마녀 파라고 하지만 너는 내가 인정한 마녀다. 너까지 그런 선택은...

-언니의 말이 맞아. 우리는 가망이 없어. 우린 실패했잖아? 두 번의 기회는 오지않아. 네이가 바로 우리의 기회였고 우리는 놓쳐버린거야.

-리시아...

-그래도 에페리아 년의 명줄은 위협했잖아? 솔직히 차원의 조율자만 없었으면 우린 이겼어. 그리고 그런 희망을 남겨두는거야.

리시아의 회유에 베르카의 단단한 고집이 흔들리는 듯 그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흔들린다.

-꼭 우리가 복수할 필요는 없잖아. 네이라면 할 수 있어. 우리를 대신해서. 할배도 느꼈잖아. 네이라는 녀석의 재능과 집념을.

-...그렇지만..

-이리와 할배.

잠시 키득거린 리시아는 멀뚱하게 서있는 한 그림자의 손을 억지로 잡아 자신의 옆에 웅크려앉힌다. 그러자 그림자는 움찔움찔 거리다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빛의 조각을 보호하듯 옆에 웅크려앉아버린다.

-자. 리디는?

-저는 성녀에요. 희생과 봉사는 제 트레이드 마크인데요?

리시아의 말에 리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빛의 파편옆에 걸터앉는다. 이로소 네명의 그림자가 빛의 파편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남은 그림자는 단 하나.

-쟈크는?

정체불명의 여성의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그러자 가벼운 콧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제 가명을 쓸필요는 없지?

-응. 그러네. 그러면 다시 물을게. 타메르는?

-너가 원한다면 너의 뜻을 따라야지. 네이.

타메르의 이름을 가진 검은 그림자는 시원스레 남은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어두운 기운속에 보호받은 빛의 파편은 꺼질듯이 그 빛을 흩뿌리지면 그림자들은 그런 빛을 보호하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빛의 파편을 감싼다.

-모두들. 잘 알꺼야. 네이를 위해 우리 힘을 쓰면. 우리는 사라져. 아무힘도없는 영혼이 끔찍한 틈새에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모두 이별이군.

리시아의 설명에 씁쓸한 베르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말에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 가볍게 터지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럼 마지막에 각자 한마디씩 해볼까? 서로에게 아쉽거나 서운했던것. 다 거침없이 말해보자구!

마지막이라는 상황에 걸맞지 않게 유쾌함과 즐거움이 넘치는 리시아의 말이 들린다. 그런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거린 그림자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우선 나부터! 할배. 그동안 재미있었어. 맨날 투닥거렸지만. 할배가 있어서 지루하지는 않았어. 뭐... 그래. 마지막이니까 말해줄게. 솔직히 할배의 마법이 도움되기는 했어.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그림자에 스며있는 어둠이 흘러내려 천천히 빛의 파편에 스며들어오기 시작한다. 빛의 파편안에 어둠이 스며들자 빛이 사그라들기는 커녕 흐려진 빛이 조금은 환해진다.

-모두와 같이했던 생활. 잊지않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름 즐거웠어.

어둠이 모두 빠져나가자 거기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마녀모자를 비스듬이 쓴 검은 단발머리카락의 소녀였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환히 웃고있었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크흠. 답을 해야겠지? 건방진 꼬맹아. 너의 그 오만하고 헛바람든 말투는 진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백색마녀 원로회 앞에서 주눅들지 않았던 꼬맹이는 너가 최초였지.

또다른 그림자에서 어둠이 빠져나와 빛의 파편에 스며든다. 그리고 들어나는 것은 고풍스러운 로브를 몸에 들은 한 늙은 노인이었다. 그는 얼굴에 난 굵은 주름은 그가 얼마나 고집있는지를 증명해고 있었다.

-하지만 부러웠다. 그런 젊은 패기가. 지금은 나도 너 못지않게 오만하다고 자부하지만 너같은 나이때에는 비굴하기 짝이없었지. 너는 멋진녀석이었다. 명줄이 좀 길었으면... 아마 마계 역사상 최고의 마도학자가 될 수 있었겠지.

노인은 단단히 팔짱을 낀채로 자신의 힘을 받아 좀더 강한 빛으로 빛나는 파편을 바라본다. 수많은 경험과 나이가 묻어나오는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떨린다. 하지만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겨버린다.

-에에... 다음은 제가 할께요.

그다음으로 나서는 것은 리디였다.

-으음... 저는 뭐 딱히 한게 없네요. 그래도 4896명의 사람들의 고민이나 문제를 들어주고 해결해줄 수 있어서 보람찼어요.

어둠이 빠져나와 빛의 파편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리고 어둠이 빠져나간 곳에는 새하얀 신관복을 입은 한 여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라... 성녀라는 말답게 아주 깔끔하고 꼼꼼한 결말이네요.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빛나는 빛의 파편을 부드러운 눈길로 내려본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일말의 후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분신같은 존재야. 우리가 못이뤘던 꿈과 바램. 그녀라면 반드시 해결해줄 수 있을꺼야.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또다른 그림자의 어둠이 벗겨진다. 그리고 들어나는 것은 고양이 귀의 단발머리카락의 여성. 약간 성숙해 보이는 네이라고 표현하기 알맞았다. 하지만 볼에 새겨진 흉터와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반쯤 찢어진 한쪽 귀가 그녀와 전혀다른 또다른 세상에서 싸워온 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고... 그녀는 나니까. 나는 당했지만. 에페리아의 위험을 알고있는 그녀는 나와 다르게 에페리아는 제압할 수 있을꺼야.

그녀는 검게 가라앉은 눈으로 빛의 파편을 내려다본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는 그녀가 얼마나 크나큰 단련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사라지는게 아니지. 우리의 힘을 그녀에게 넘겨줘 그녀를 지킴으로써 그녀에게 우리의 의지를 남기는거지.

마지막 남은 그림자에서 어둠이 빠져나와 빛의 파편에 흘러들어간다. 그럼으로써 빛의 파편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혼자서는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빛을 발한다. 어둠이 빠져나간 그림자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한 남자였다. 얼마나 많은 전장을 해쳐왔는지 몸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와 강인한 인상. 불탈듯이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이제. 우리의 일은 끝났다. 지나간 역사는 조용히 사라져야할때지.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5인의 남녀는 조용히 빛의 파편을 바라본다. 하지만 곧이어 그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헤헤헷. 할배! 틈새가 상당히 끔찍하다는데 그 늙은 몸으로 어떻게 견딜꺼야?

-아파서 나에게 매달려 울지나 말아라 꼬맹아.

베르카와 리시아는 서로 투닥거리면서도 사이좋게 어둠속으로 걸어간다. 그런 그 둘을 쫓아서 리디또한 달려간다.

-같이가요! 나만 놔두지 말아요오!

빛의 파편을 앞에두고 이제 타메르와 네이만이 남아있었다. 조용히 빛의 파편을 응시하던 그들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본다.

-이제 진짜 이별이네.

-아니라고 할 수는 없군.

그 둘은 서로에게 짧게 한마디를 남긴다. 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채 무뚝뚝한 얼굴로 빛의 파편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고마웠다.

타메르는 짧게 한마디를 남긴다. 그런 그의 한마디에 네이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린다.

-그 말. 20년만인거 알아?

-그렇지. 미안하다. 너를 잊고 지냈어. 하지만 이제야 뒤늦게 알게되었다.

과거를 후회하는 듯이 무거운 목소리로 타메르는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너를 피해다녔다. 너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하지만 이 녀석 덕분에 내가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잠시 입을 다문 타메르는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끝까지 내 생각을 했었어. 내가 너를 찾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 그림자 아래에서 나를 도왔지.

네이는 짧게 혀를 차지만 그녀에게 타메르를 싫어한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그가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감정만 묻어나올 뿐이었다.,

-웃기시네. 난 버림받은게 아니야. 단지 너의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뒤로 살짝 물러나있었을 뿐이야.

네이는 단단히 끼고있던 팔짱을 풀며 타메르를 바라본다. 그런 네이를 돌아본 타메르는 면목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리깐다. 그리고 슬쩍 빛의 파편을 돌아보며 말한다.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몰랐을꺼야.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하여튼... 진짜...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무식하고 어리버리한건 여전하네.

살짝 숙이고 있는 타메르의 얼굴에 묻어있는 진심어린 후회와 미안함을 발견한 네이는 그제서야 단단히 굳어있던 얼굴 표정을 푼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우뚝 서있는 타메르의 팔에 팔짱을 끼며 씨익 미소짓는다.

-미안하다면 이제 곧 틈새로 돌아가는데 그때까지 에스코트라도 좀 해줄래?

-물론이지.

그리고 곧이어 그 둘은 빛의 파편을 홀로남긴채 뒤돌아선다. 그리고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간다.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했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 마음은 지금도 변치않고 앞으로 영원히 변치않을꺼야. 그것만 잊지말아줘. 그거 하나만으로 내가 존재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홀로 남겨진 빛의 파편이 어둠속에서 반짝이고 있을때 마지막으로 네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이 지금 사라진 네이의 목소리인지 반짝이고 있는 빛의 파편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인지 알 길은 없었다. 곧이어 모두가 사라진 어둠속에서 빛의 파편만이 고요히 빛날뿐이었다.

------------

“....아.”

두어번 눈을 꿈벅인다. 흐릿하고 몽롱한 시야의 초점이 천천히 잡혀지며 흔들리는 꽃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

화들짝 놀란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주변을 돌아본다. 아름다운 꽃밭. 타메르가 나에게 알려준 유적지 뒤편에 존재하는 꽃밭이었다.

“후우... 이 악몽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않네.”

나는 조용히 내 가슴을 매만진다. 조심스럽게 옷의 단추를 풀러낸 나는 벌어진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내 가슴의 흉터를 내려다본다. 마치 뒤틀린 별이 있는 것처럼 내 가슴 정중앙에는 흉한 흉터가 있었다.

“....”

나는 살았다. 내 스스로 내 죽음을 감지하고 모든 것을 포기했을때. 내 몸안에 머물던 5명의 그림자가 마지막으로 나를 도왔다고 한다. 타메르의 말로는 내 몸은 거의 빈사상태로 죽어가고 있었다고했다. 하지만 내 몸에 생긴 상처들은 전부 혼돈의 기운이 뭉친 힘에 의해 지혈되고 있었고 덕분에 리엔이 올때까지 내 신체는 죽지않고 버틸 수 있었다.

다행히 에페리아는 우리들을 위협했지만 그녀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었고 나중에 알았지만 나를 방해했던 아리엘이라는 소녀또한 에페리아가 돌아가자 흔적도 찾지 못할정도로 귀신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아. 시간이...”

하늘에 떠있는 해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대충 가늠한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따듯한 햇살에 나도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황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가볍게 몸을 털어 몸에 묻은 꽃가루나 꽃잎따위를 털어낸다. 그리고 허겁지겁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나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유운처럼 / 헐.. 제가 과민반응을 한것같네요. 끵 ;ㅅ;

dgfdgzvc / 아니죠. 똑같은 내용입니돠

Solar Eclipse /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죠.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뿐입니다.

라시아이언 / 안쥭는다니깐.. 으히힛.

이걸로 끝났네요.

다음화는 모든 사건이 종료된 뒷이야기인 '후유증'편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