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180화 (180/298)

180편

<-- 발전 -->

부숴진 유적지의 잔해를 밝히며 또다시 새로운 아침해가 떠오른다.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 내 눈을 따갑게 괴롭히는 햇살을 느끼며 나는 밤새 굳어 뻑뻑한 몸을 침상에서 일으킨다. 피곤한 머리를 좌우로 털며 침상에서 일어난 나는 침대맡에 기대져있는 내 대검을 바라본다.

“....”

대검의 절반이 부러진채 방치된 내 검. 그런 검을 씁쓸히 바라보던 나는 허리를 굽혀 기대어진 대검을 들어올린다. 과거와 같은 묵직한 무게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훨씬 가벼워진 대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던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대검을 등에 짊어진다.

“좋은 아침이에요! 타메르씨~!”

나에게 가장 먼저 아침인사를 건낸 것은 다름아닌 티에르였다. 그녀는 이제 막 머리를 씻고온듯 촉촉함을 머금은 머리를 가볍게 털며 내 방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키르비르에 의해 방문이 박살난 덕분에 침대에서 일어난 나를 발견한 티에르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낸다.

“너... 팔은 괜찮은거냐?”

그녀는 부상 때문에 한쪽 팔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하나남은 팔로 저 긴머리를 스스로 감아낼 수 있으리가 없었다. 그런 내 질문에 티에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혈아~!”

그리고 정겹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자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멀스멀 머리카락을 일으켜세우기 시작한다.

“뭐야 그건...”

“혈이에요! 제 친구이자 동반자라고나 할까요?”

티에르는 자신의 의지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순한 양처럼 티에르의 손길에 이리저리 부드럽게 흔들릴 뿐이었다.

“설마했더니... 역시 정상적인 사람이 없구나.”

시란은 인격을 가진 요도요... 티에르는 괴상한 생물을 머리위에 키우는 이상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이런 사람을 만나도 별로 놀라지 않는 내 자신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부숴진 문을 통해 복도로 걸어나온다.

“아~ 리엔씨가 아침준비를 다했다네요. 가서 먹어요!”

“먼저가. 난 일이 있어서...”

“아... 그러세요? 그럼 나중에 식당에서 뵈요!”

같이 가자는 말에 내가 거절을 표하자 티에르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다시 환히 웃으며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종종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 티에르를 보낸 나는 자연스럽게 내 방의 바로 옆방의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키르비르. 들어간다.”

그 방은 다름아닌 키르비르의 방. 두어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연 나는 침대위에 볼록 솟은 이불덩어리를 바라본다.

“아침이야 키르비르.”

그런 이불자락을 움켜쥔 나는 단숨에 이불을 잡아당겨 억지로 이불을 걷어낸다.

“으우우우... 추워...”

침대 위에는 파자마 차림의 키르비르가 누워있었다. 내가 이불을 벗겨버리자 한기를 느낀 키르비르는 몸을 웅크리며 베고 있던 베게를 품안에 끌어안아버린다.

“아침이야. 일어나.”

나는 그런 베게를 단숨에 빼앗아버린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잠시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자신의 어께를 끌어안은채 더욱 작게 몸을 웅크린다. 살짝 자세를 낮춘 나는 누워서 한기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키르비르의 부드러운 볼을 콕콕 찌르며 말한다.

“아침 먹어야지? 일어나 키르비르.”

“안먹어.”

그러자 내 장난에 참지못한 키르비르는 잠에 취해 몽롱한 눈을 날카롭게 뜨며 나에게 답한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눈썹을 날카롭게 세워도 저렇게 잠에 취한 눈으로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 키르비르의 협박에 피식 웃은 나는 웅크려 누워있는 키르비르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침대가장자리에 앉혀버린다.

“먹기 싫어... 시리얼 줘... 시원한 우유랑 같이...”

“난 시리얼이라는 음식을 몰라. 시원한 우유도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앳된 투정을 부리며 다시 침대에 누우려는 키르비르를 억지로 붙잡은 나는 그녀가 잠에 깰 수 있게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쓸어내려준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앉아서 머리를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한다. 그런 키르비르를 확실히 꺠울 방법을 고민하던 나는 씨익 미소를 짓는다.

“이제야 알겠다. 이렇게 맨날 아침을 빼먹으니까...”

그리고는 슬쩍 그녀의 납짝한 가슴을 주무른다.

“흐이약!!!”

“아직도 이렇게 가슴이 납작한거지.”

뻐억!!

가벼운 성희롱에 그녀의 대답은 간결했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자신의 등뒤에 앉아있는 내 명치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러버린 키르비르. 예고없이 급소를 맞은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린채 컥컥거릴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키르비르는 벌개진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그녀에게 얻어맞은 명치의 통증은 빠른속도로 회복되어갔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나는 키르비르가 완전히 잠에 깼다는 사실에 씨익 웃을뿐이었다.

“아침 빼먹지마. 다 네 건강을 위해서야.”

“쓸데없는 참견이거든요?! 나도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길 수 있거든?!”

역시나 그녀는 변한게 없었다. 한마디도 지지않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키르비르. 오히려 그런 그녀가 익숙했던 나는 나도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스스로에게 만족해버린다.

“아침부터 뭐야... 소름돋았잖아...”

그녀는 과장된 모습으로 자신의 팔을 쓱쓱 쓸어내리며 투덜거린다. 그리고 아직 잠이 덜깬듯 길게 하품한 그녀는 비틀비틀 방 한쪽에 마련된 옷장을 향해 걸어간다.

“아직 잠이 덜깼나봐? 확실히 꺠개 해줄까?”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음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그런 내 물음이 어이없다는 듯이 짧막한 콧방귀로 대답할 뿐이었다. 옷장으로 걸어간 그녀는 부숴진 탑의 파편에서 꺼내온 자신의 옷을 돌아본다. 탑이 붕괴된 덕분에 그녀가 구한 옷은 3벌밖에 되지 않았다. 부실한 옷장의 상태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 키르비르는 옷 한 벌을 꺼내 갈아입기 위해 한쪽에 걸어둔다.

“나 옷갈아입게 나가.”

“예예~”

여느떄와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에 안심하며 나는 그녀를 위해 방을 나간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그녀와 같이 식당에 가기 위해 벽에 몸을 기댄채 느긋하게 시간을 떄우고 있을 무렾. 타다만 낡은 갈색모자를 머리위에 쓰고있는 이리엘이 내 앞을 지나간다.

“이리엘. 그건 뭐냐?”

나는 처음본 그녀의 모자에 흥미를 보이며 이리엘에게 묻는다. 그런 내 질문에 걸음을 멈춘 이리엘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음?”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주 찰나지만 뭔지모를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고요한 빛을 품은 이리엘의 갈색눈동자였지만 오늘따라 왠지모르게 그 갈색빛이 평소보다 더 깊다고 느껴져왔다.

“유품이야.”

이리엘은 낡은 모자챙을 매만지며 대답한다. 그녀가 모자의 챙을 매만지자 타다만 검은 잿가루가 투투둑 떨어져버린다.

“유품? 너의 동료?”

“거추장스러운 동료.”

내 질문에 이리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못미덥다는 말로 대답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복도 가장 끝의 방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현재 아리엘이 감금되어 있었다. 그녀의 존재를 아는 것은 네이가 죽는 순간. 거기에 있었던 나와 리니아뿐이다.

“너.. 혹시 가족같은 사람이 있어?”

아리엘의 외모는 이리엘과 거의 쌍둥이라고해도 다름없었다. 거기다 비슷한 이름. 그 사실로부터 아리엘과 이리엘이 범상치 않은 관계라는 사실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않았다.

“있어.”

내 물음에 이리엘은 긍정을 표한다. 그런 그녀의 대답에 나는 살짝 마른침을 삼킨다. 하지만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한번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빠? 아니면... 동생?”

“언니 한명.”

이걸로 이리엘과 아리엘의 관계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같았다. 아리엘은 이리엘의 언니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이리엘로부터 아리엘을 감금한 사실을 비밀로붙이기를 결심한다. 아무리 무덤덤한 이리엘이라고 해도 혈육의 정앞에는 어떻게 변할지 미지수였다.

“무슨 이유 때문에?”

내가 침묵을 지키며 나만의 생각에 빠져있자 이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던진 질문의 의도에 대해 묻는다.

“아니... 그냥... 너와 같은 혈육이면 너와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이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아침식사의 달콤한 향이 흘러나오는 식당을 향해 걸어간다.

“후아암...”

곧이어 굳게 닫힌 키르비르의 방문이 열리며 늘어지게 하품 소리와 같이 키르비르가 걸어나온다. 아직도 잠에 취했는지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던 키르비르는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퀭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본다.

“기다린거야?”

“공주님을 보필해드려야죠.”

“흥... 웃기지도 않아.”

내 농담에 키르비르는 가볍게 콧방귀를 뀐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입가엔 기분이 좋은 듯한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런 그녀의 긍정적인 반응에 용기를 얻은 나는 한쪽 발을 무릎을 꿇고 과도한 제스쳐를 취하며 키르비르를 향해 손을 내민다.

“자. 가보실까요? 키르비르님.”

“참나... 오늘은 대체 무슨 약을 먹었길레...”

키르비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내민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얹는다. 그런 키르비르의 손을 따듯하게 감싸쥐며 그녀를 이끌고 아침식사가 기다리는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

“몇마리 째야?”

“몰라... 세는건 이미 포기했어 언니.”

어둠이 깔린 숲안. 이미 말라비틀어진 나무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두 여성이 검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정체불명의 생물체들의 시체 사이에 서있었다.

“당했네...”

붉은 적발머리카락의 여성은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붉은 도를 허공에 털어내며 중얼거린다.

“왠지... 너무 어설프다고 생각했어.”

그녀와 등을 맞댄 검은 머리카락에 특이한 고양이 귀의 소녀는 기다란 봉을 어께에 걸치며 답한다.

“이미 늦지 않았을까? 언니?”

고양이 귀의 여성은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에게 묻는다. 그녀의 말에 동감하는 듯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임무는 수행해야지. 작은 흔적이나 증거라도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흐음... 우리의 추적까지 예측한 에페리아가... 그런 흔적을 남겨놓을까나...”

“시도하지 않고 단념하는 것보다 어리석은건 없어.”

주변에 더 이상 살아숨쉬는 생물이 없자 적발의 여성은 자신의 붉은 검을 허공에 크게 휘두른다음 검집에 갈무리해 넣는다.

“주변에 흐릿한 마나의 흔적이 남아있어. 이걸 추적해줘.”

“알았어.”

고양이 귀의 여성은 자세를 낮춰 검은 피로 물든 대지를 매만진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정신을 집중시키자 그녀가 매만지는 땅을 중심으로 은은한 마나의 기운이 흐르며 작은 마법진을 그린다.

“찾았다. 근데 너무 늦어가지고... 좌표가 많이 왜곡 되어졌어.”

“임무는 완수해야지. 잘못해서 땅에 파묻히기 싫으니까... 10m 상공으로 좌표를 보정해서 이동하면 돼.”

“알았어 언니.”

마나의 기운을 찾은 네이는 자신의 힘을 그 기운위에 덧씌운다. 그러자 흐릿한 마법진이 더욱 환한 빛을 머금어간다.

“그럼 이동할께!”

곧이어 말라죽은 어두운 숲을 밝히는 환한 빛과 함께 수많은 괴물들의 시체 한가운데에 있던 두 여성의 신영이 사라진다.

========== 작품 후기 ==========

USB분실... 과재의 재림...등의 여러가지 악재가 겹쳤습니다 ;ㅅ;

거기다 스토리는 너무나도 긴장된것같아서 조금은 풀어주기 위해 일상물을 넣을생각.

결론적으로 180화를 교체합니다 ;ㅅ;

죄송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