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188화 (188/298)

188편

<-- 발전 -->

결국 식사는 엉망이 되었다. 제대로 된 음식도 없이 오래끓여서 지나치게 짠 스프와 허겁지겁 마련한 과일들로 우리는 부실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안그래도 기분이 언짢아있던 키르비르는 아무말없이 뚱한 얼굴로 대충 식사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리니아는 그런 식사라도 맛있었는지 연신 즐거운 얼굴로 내 무릎위에 앉아서 야무지게 자신의 몫을 챙겨먹었다.

그리고 시란과 약속한 오전 훈련시간. 나는 또다른 난감한 상황에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타메르씨...”

공터에 나오자마자 상당히 실망했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티에르. 그런 그녀의 곁에 시란은 팔짱을 낀채 나를 바라보고 한숨을 내쉴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대낮부터 그런 대범한 짓을 하니까... 뭐라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다. 왜?”

내 질문에 시란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런 그녀의 한마디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 뭘 말하는거야?!”

하지만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으며 애써 모른척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티에르는 작게 얼굴을 붉히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그... 리엔씨랑... 그렇게 각별한 사이라는거... 처음 알았어요.”

“....”

아... 모두에게 들킨거구나. 다른 사건으로 착각하기를 바랬지만 그런 나의 희망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대낮부터 그런 짓을 저질렀던걸까... 후회가 해일처럼 몰려오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일단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려는 이리엘씨를 데리고 도망치듯 나왔긴했는데... 조심해주세요.”

“미안...”

별다른 할말이 없었던 나는 반쯤 넋이나간 얼굴로 작은 목소리로 그녀들에게 사과를 한다. 무뚝뚝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란. 그리고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잔뜩 얼굴을 붉힌채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티에르를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부끄러움에 나는 발걸음을 뒤로 돌린다.

“어디가려고?”

그런 내 앞을 키르비르가 막아선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어왔다.

“지금 이 상황에 훈련은 무슨 훈...”

뻐억!!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전. 키르비르는 예고없이 분노가 서린 다리를 휘둘러 내 가랑이사이를 걷어찬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는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곧이어 내 근본이 있는 곳에서부터 갑작스레 치솟아오르는 고통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거랑 니 훈련이랑 뭔상관이야? 너무 힘을 빼서 훈련할 기운도 없는건 아니잖아?”

“끄으으으...”

키르비르는 퉁명스럽게 나를 질책한다. 내 가랑이를 움켜쥔 나는 그에 대한 항변도 못한채 바닥에 쓰러져 끙끙거릴뿐이었다.

“시란. 훈련하는데 지장없지?”

“아... 뭐... 그렇긴 하지...”

퍽.

어리둥절해 하는 시란의 대답을 들은 키르비르는 주저앉아 끙끙거리는 내 몸을 발로 시란의 앞으로 밀어낸다.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아까운 시간 낭비하려하지마. 니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은 확실히 구분해. 시란. 부탁할게.”

키르비르는 그 말만을 남긴채 꼴 보기 싫다는 듯이 차갑게 뒤돌아서 숙소로 걸어들어간다. 그런 키르비르의 뒷모습을 흘끗 바라본 시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네 음란한 사생활에 뭐라 간섭할 마음은 없어.”

“으으으...”

나는 시란의 내민 손을 마주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시란은 나를 일으켜세운 손을 팡팡털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긴다.

“하지만... 최소한 주변사람들에게 피해가지 않게 해달라고... 낯부끄러워서 여기에서 지낼 수가 있나...”

“미... 미안...”

그녀의 질책에 할 말이 없었던 나는 낮은 목소리로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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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흠~”

한적한 숙소의 복도 내부에서 리니아는 즐거운듯 콧노래를 부르며 고대 도서관에서 찾은 진귀한 고서들을 품에 잔뜩 안고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등뒤에서 지독할 정도로 절제되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살기가 은은하게 쏘아지고 있었다.

“우.. 우아아악!!”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걸음을 옮기던 리니아는 거대한 거인의 손이 자신을 붙잡은 듯 온몸을 쥐어짜는 압박감을 느낀다. 동시에 자신의 몸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라버리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만 바동거린다.

“키.. 키르비르?!”

이것이 마법인 것을 직감한 리니아는 비명을 지르며 등뒤를 돌아본다. 수식이나 주문없이 단순히 마력을 극도로 응축시켜 물리력까지 만들어내는 괴물같은 마력.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키르비르 밖에 없었다.

콰앙!!

“꺄앗!!!”

키르비르는 아무말없이 허공에 뜬 리니아를 향해 뻗은 팔을 크게 옆으로 휘두른다. 그러자 허공에 붕뜬 리니아의 몸이 키르비르의 팔을 따라서 복도의 벽을 향해 거세게 내동댕이 쳐진다. 얼마나 강한힘이 서렸는지 작은 리니아의 몸이 단단한 벽돌로 이뤄진 벽을 부수고 방안에 처박혀버린다.

“이제야 간신히 둘만 남게 되었네?”

키르비르는 자신의 손을 탁탁털며 리니아의 몸이 부수고 들어간 방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리니아는 갑작스런 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듯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키르비르를 바라본다.

“쫄지마. 널 죽이려는 건 아니야. 그 증거로 지금 다친데는 하나도 없잖아? 그냥 난 너랑 단둘이 아주 평화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키르비르의 말대로 리니아의 몸에는 부서진 돌가루만 묻어있을 뿐 티끌만한 상처도 남아있지않았다. 그녀를 내동댕이 치기전 키르비르는 리니아의 몸을 마나로 이뤄진 벽으로 막아줬기 때문이다. 부숴진 벽의 파편을 밟고 올라선 키르비르는 두려운 듯 몸을 움츠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리니아를 내려보며 그녀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이야?”

“무... 무슨 뜻이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되묻는 리니아의 태도에 키르비르는 콧방귀를 뀌며 파편에서 뛰어내려 그녀의 다리앞에 착지한다. 그리고 단단히 팔짱을 끼며 차가운 눈으로 리니아를 내려본다.

“우왓!!”

그때 리니아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들어올려진다. 그러자 그녀의 팔목에 채워진 검은 팔찌가 가볍게 흔들린다. 키르비르의 차가운 눈동자는 그런 그녀의 팔찌에 고정된다.

“난 너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 못하겠어.”

“놔!! 이거 놔!! 오라방에게 일러버릴꺼야!!”

리니아는 황급히 팔을 당겨 검은 팔찌가 채워진 자신의 오른팔을 숨기려한다. 하지만 키르비르는 그녀의 오른팔을 봉쇄한 자신의 힘을 거둘려고 하지 않았다. 잠시 검은 팔찌를 바라보며 리니아에게 시선을 돌린 키르비르는 담담한 어조로 그녀에게 묻는다.

“이 팔찌로 타메르를 조종한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뭐... 뭣?!”

키르비르의 말에 리니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너무나도 예리하게 비밀을 찔러버리니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리니아는 그저 무슨 농담을 하냐는 듯이 어색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내가 싫으면 타메르를 직접 조종해서 덤비면 되잖아? 근데 왜 번거롭고 피곤한 일을 자초하는건데?”

리니아는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한다. 그런 리니아를 내려다보던 키르비르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너... 혹시 관음증이야?”

“아니얏!!!”

수치스러운 질문에 리니아는 바락 소리를 질러버린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이제까지 숨겨왔던 키르비르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들어내기 시작한다.

“널 단순히 혼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 우리 오라방을 노린 대가. 아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

“오호... 그래? 어떻게 하려고?”

리니아의 분노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키르비르는 빙그레 웃는다. 그러자 이를 바득바득 갈던 리니아는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놓은 야욕을 그녀에게 들어내버린다.

“아주... 아주 후회하게 만들꺼야. 마음이 박살나서 두 번다시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정도로... 한때 내 오라방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꺼야!!”

“무슨... 소설을 많이 읽었나...”

그런 리니아의 야욕에 키르비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어꼐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역시나... 어린애네...”

“뭐얏?!”

바락 소리를 지르는 리니아를 바라보며 키르비르는 딱딱히 굳어있던 얼굴을 푼다. 그리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자세를 낮춰 리니아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런 키르비르의 호의적인 행동에 움찔 놀란 리니아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키르비르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하나 착각한게 있는데... 난 타메르를 사랑하지 않아. 타메르도 날 사랑하지 않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그저 동료야. 친구일뿐이야. 너가 생각하는 그.. 뭐랄까... 미래를 약속하고 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가는 사이가 아니란말이야.”

부드러운 키르비르의 말에 리니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그리고 억지스럽게 자신의 눈꼬리를 세우며 그녀에게 공격적으로 묻는다.

“그.. 그럼 왜... 오라방이랑 한 침대에서 나뒹군건데?!”

“뭐... 꼭 사랑해야만 나뒹구나? 하긴. 어린 리니아는 아직 모르겠지.”

키르비르는 마지막까지 리니아를 어리다고 조롱하며 일이 끝났다는 듯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뻔뻔한 키르비르의 말에 뭐라 할말을 잃은 리니아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키르비르가 등돌려 무너진 파편을 넘어가는 순간 리니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녀에게 외친다.

“거짓말 하지마!!! 내가 속을 줄 알아?”

그런 리니아의 외침에 키르비르의 발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그녀를 흘끗 돌아보며 말한다.

“그럼 타메르에게 직접 물어봐.”

“타메르에게... 직접?”

“너의 그 똑똑한 머리로 타메르의 속마음을 파헤쳐봐. 뭐... 팔찌를 쓰지않는다면 믿지도 못할 너지만.”

리니아는 키르비르의 말에 자신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를 바라본다. 그녀의 말대로 팔찌의 힘이라면 타메르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검은 팔찌가 타메르를 조종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팔찌를 놔두고 가는 키르비르의 행동에 입술을 깨문다.

“이... 이딴 팔찌. 없어도 돼!!”

날카롭게 소리친 리니아의 외침을 들으며 방에서 벗어나는 키르비르는 작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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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위의 푸른 창공에서 예고없이 밝은 섬광이 번뜩인다. 곧이어 두 여성의 그림자가 지상을 향해 떨어져내린다.

“역시나 이차원이었나...”

하늘에서 내리쬐는 환한 태양빛을 등지고 두 여성이 지상에 사뿐히 착지하자 그녀들이 밟은 꽃밭에서 부드러운 꽃가루가 치솟아오른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꽃가루 사이에서 두 여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나간다. 한명은 어꼐까지 기른 붉은 적발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붉은 머리색과 다른 침착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사방을 천천히 훑어본다.

“우아아.. 밝아! 이런 따듯한 햇살은 진짜 오랜만이네.”

그런 그녀와 다르게 짧은 검은 단발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은 시원스레 기지개를 피며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을 올려다본다.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과 다르게 검은 머리카락의 여성은 특이하게 머리와 엉덩이쪽에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취향을 위한 장식은 아닌듯 그녀가 이리저리 움직일떄마다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가볍게 쫑긋거리거나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조심해. 마녀의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헤헷. 함정은 무슨. 처음 우리를 골탕먹였던 2중도약이 유일한 함정일껄?”

적발의 여성의 경고에 별거 아니라는 듯 흑발의 여성은 팔을 좌우로 벌려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듯한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아아... 이대로라면 솔라빔이라도 쏠 수 있을 것같아.”

“헛소리를 그만하고 임무에... 커헉!!”

여유롭게 농담을 던지는 흑발의 여성을 질책하던 적발의 여성의 허리가 갑작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진다. 그런 적발의 여성의 행동에 흑발의 여성은 딱딱히 굳은 얼굴로 그녀를 돌아본다.

“어.. 언니? 왜그래?!”

“콜록! 콜록!! 수.. 숨이...”

자신의 목을 움켜쥔 적발의 여성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버린다. 그리고 땅을 움켜쥔채 자신의 폐를 꺼낼기세로 격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하... 함정이야. 도망가!!”

그녀는 마지막 사력을 짜내어 자신의 곁에 서서 우왕좌왕 하는 흑발의 여성을 밀친다. 그러자 엉거주춤 뒤로 밀린 흑발의 여성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에게는 아직 특별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괴로워하는 적발의 여성의 행동은 단순한 장난같은 것이 아니었다.

“어.. 언니 진정해!! 여기에 함정같은게 있으리가..”

“콜록! 콜록! 가... 떨어져!!”

적발의 여성은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린다. 그런 흑발의 여성은 적발의 여성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른다. 그런 흑발의 여성은 뭔가를 알아챘는지 자신의 고양이 귀를 크게 쫑긋거린다.

“이 기운은... 키르비르님?!”

주변에 흐르는 마나의 기운을 읽은 흑발의 여성은 화색이 된 얼굴로 기운의 진원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분명한 확신이 생긴듯 괴로워하는 적발의 여성을 바라보며 외친다.

“조금만 더 버텨 언니!!! 키르비르님을 데려올테니까!!!”

곧이어 그녀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키르비르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콜록.. 콜록.. 아직... 복수도 못했는데...”

홀로남은 적발의 여성은 원통한듯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채 힘없이 꽃밭에 쓰러진다. 그런 그녀를 치솟아오른 노란 꽃가루들이 천천히 덮어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이러저러한폐인 / 키르비르는 다 알고 있습니다~ 모두 리니아의 짓이라는 것을. 그러니 무덤덤..

유운처럼 / 으허허헛... 좀 쉬세요. 느긋하게 쉬시면서해야죠.

레리꿀 / 그... 그건 무리...

BrightBiz / 여... 연참은 안됩니다... 제작속도가 못쫓아가요 ;ㅅ;

후우... 이제좀 스토리를 진행하겠네요.

새로운 여캐들 등장이지만... 엑스트라들입니다. 메인 히로인이 아네요. 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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