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편
<-- 발전 -->
“그냥... 그것이면 되는 것입니까?”
타이는 마치 내 심중을 꿰뚤어 보겠다는 듯이 살며시 눈꼬리를 세우며 나에게 묻는다. 하지만 한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던 나는 어께를 으쓱거리며 태연하게 대답한다.
“뭐... 그래. 약간 수치스러울지는 몰라도... 목덜미를 물어뜯기는 것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그렇...네요.”
잠시 주저하던 타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한다. 그리고 천천히 나로부터 등을 돌린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면 부끄러울 것 같으니까.. 이렇게 부탁드릴께요.”
“그래. 좀만 참으라고.”
솔직히 그녀의 피를 제대로 흡혈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무리 광혈의 저주라고 해도 타인의 피를 직접적으로 빨아드릴 순 없다.
광혈의 저주가 담긴 피를 타인에게 주입한다면 광혈의 저주가 담긴 피가 타인의 몸에 알맞게 변형된다. 하지만 그 반대는 조금 문제있었다. 타인의 피를 억지로 내 몸속 혈관에 집어넣는다면 자연스럽게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결국 내 피와 맞지않는 타인의 피는 그 자리에서 응고되어버리고 광혈의 저주에 분해되어 사라질뿐이었다.
“내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내가 그릇이 아니라는거지?”
“그렇네요.”
나는 나로부터 등돌린 타이에게 다가가 가볍게 그녀를 감싸듯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올린다. 상당히 낯간지러운 자세였는지 타이의 숨결이 가느다랗게 떨리는 것이 느껴져왔다. 나또한 괜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사실을 숨기며 왼손을 그녀의 가슴을 향해 가져간다.
“여... 여기입니다.”
내가 제대로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공을 더듬자 타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내 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
“....”
동시에 손안에서 만져지는 부드러운 촉감. 왠지모르게 아쉬운 크기를 가진 말랑한 촉감에 나와 타이의 몸이 동시에 딱딱히 굳어져버린다.
“아... 어..”
그때 내 콧가에서 느껴진 달짝지근한 향기에 나는 황급히 재정신을 차린다. 차잎의 향기가 은은하게 섞인 향. 왠지모르게 애타게 그리워했던 향이었다. 나는 코를 가볍게 킁킁거리며 그 향의 진원지를 찾아본다.
“주.. 준비는 되셨나요?”
“너...”
그 향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타이를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에 담겨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렇게 타이와 밀착하니 그녀의 몸에서 상당히 그리운 향이 은은하게 풍겨져나오고있었다.
“타메르씨?”
“아.. 아아... 준비됬어. 그럼 시작한다.”
하지만 타이가 나를 부르는 순간. 나는 과거의 그리움에서 벗어나 타이를 내려다본다.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 색과 비슷하게 잔뜩 붉어진 그녀의 귀가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플지도 몰라...”
“목을 뜯기는것보다는 괜찮겟죠.”
타이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은 나는 천천히 내 몸에 담긴 저주의 힘을 끌어올린다. 오랜만에 해봤지만 다행히도 저주의 힘은 내 의지를 따라 일깨워지며 내 왼팔에 붉은 문신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읏...”
동시에 타이는 가볍게 몸을 움츠리며 통증에서 도망치듯 뒷걸음질 친다. 하지만 나를 등지고 있었던 덕분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몸에 기대버린다.
“기... 기분이... 좋은건 아니네요...”
내 몸에 기댄채 입술을 악물고 낯선 고통을 참는 타이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이런 낯부끄러운 행동을 끝내기 위해 저주의 힘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린다.
슈욱..
그러자 붉은 문신이 가득차오른 내팔을 따라 타이의 피가 천천히 휘감겨올라오기 시작한다.
“이제... 이걸 내 피와 섞으면 된다 이거지?”
나는 내 팔에 휘감긴 타이의 붉은 선혈을 바라보며 살짝 마른침을 삼킨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볍게 내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운만좋으면 어마어마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금 바로잡는다.
슈욱..
곧이어 내 의지에 따라 내 팔에 휘감긴 타이의 선혈이 내 팔속에 스며들어간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타이의 선혈이 스며들어간 내 팔의 혈관이 흉하게 돌출되어버린다.
“윽...!”
하지만 혈관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에 나는 신음을 내뱉는다. 전형적인 거부반응. 내 피와 맞지않는 타인의 피가 혈관속에 들어오며 응고되는 거부반응이었다. 하지만 고통은 잠시뿐. 내 몸을 해하려는 물질을 광혈의 저주가 재빨리 분해시켜버리기 시작한다.
“이거... 꽝인것같은데...”
고통을 참아낸 나는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슬쩍 타이를 내려다본다. 그녀또한 내 팔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터라 아무말없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 순간 내 눈앞이 가볍게 흔들린다.
“아닌 것... 같네요.”
결국 타이또한 마지못해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 사실을 수긍해버린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흐릿하게 들려온다. 그녀가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되지 않았다.
“아...”
내 눈은 단 한곳에 집중되어있었다.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 인간의 급소이자 다량의 피가 흐르는 동맥이 있는곳. 무언가에 홀린듯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며 입안 가득히 고인 군침을 허겁지겁 삼킨다.
“타... 메르씨?”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타이는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그 순간이 아주 느릿하게 지나간다고 느껴진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타이를 바라보며 나는 말로 표현못할 위기감을 느낀다. 그녀가 나를 보기전에 끝내야만했다.
하지만... 무엇을?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내 몸은 그런 내 질문을 비웃듯 내가 하려는 일을 그대로 시행해버린다.
콰직...!!
“아읏..!!”
작은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기는 감촉이 입안으로 느껴짐과 동시에 짧막한 타이의 비명이 귓속을 찌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양 팔로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고 다시금 힘껏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콰지직!!
“아... 아으으...”
내 품안에 안긴 타이의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관심없었다. 단지 나는 내 입안에 가득채워가는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혈향을 즐길뿐이었다. 입안 가득히 핏물이 베어나오지만... 만족할 수는 없었다.
우지직..
더욱 힘껏. 더욱 깊숙이 이빨을 박아넣는다. 살갗을 뚫고 근육을 찢고 여린 뼈를 부수며 가장 깊숙이 파고든 날카로운 이빨은 그녀의 혈관을 난도질한다. 뜨거운 핏물이 입안 가득히 울컥울컥 베어나온다.
“아.. 흐윽..”
타이의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미 그녀의 저항이 잦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여나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은채 작은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그녀의 피를 마신다.
점점 타이의 심장박동이 약해져간다. 약해진 심장박동에 따라 터져나오는 선혈또한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마셔야한다는 욕심에 나는 다시금 입을 벌려 더욱 크게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했다.
“아... 아빠...”
그 순간. 나는 살짝 눈물이 맺힌 타이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살짝 동공이 풀려있었지만 그녀는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하던 나는 물어뜯으려 힘껏 벌린 입을 천천히 닫아간다.
“아...”
깊은 심해를 보는 것처럼 그 깊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침착한 눈동자. 자신이 괴로운 상황에서도 나를 걱정하듯이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 마치 온몸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환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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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던 걸까. 타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넋을 잃었던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는 환한 햇살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여기는...?”
멍하니 서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꺠달은 나는 퍼뜩 놀라며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뭔가 익숙한 풍경이었다. 넓은 공터와 오래된 낡은 유적 구조물들. 크게 한번 주변을 둘러본 나는 이곳이 내가 지내는 숙소의 바로 앞 공터라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 의식을 잃었던거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숙소를 바라본다. 하지만 왠지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져왔다. 평소와 비슷한 숙소였지만 묘하게 낡았다고 표현해야하나... 내 기억속의 숙소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비이상적인 고요함.
“다들... 어디갔나?”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요리를 하는 리엔도.. 책을 읽는 리니아도.. 온갖 잡다한 기계장치를 만지던 이리엘도.. 언제나 티격태격하던 시란과 티에르도.. 그리고 키르비르까지. 아무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뭐야?”
묘한 괴리감과 이질감속에 불안감을 가슴에 품은 나는 내 눈으로 직접확인해보기 위해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 순간...
타타탁..
멀리서 가볍고 날렵한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본다. 하지만 관리를 안해서인지 숲풀이 잔뜩 우거져 달음박질 소리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살짝 마른침을 삼키며 점점 가까워지는 달음박질 소리에 긴장한다.
파악!!
“으아. 으아. 으아아아!! 일등 일등 일드응!!”
그리고 숲풀을 뚫고 나오는 것은 어린 수인족 소녀. 그녀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일등이라는 말을 수없이 외치며 나를 향해 어마어마한 기세로 달려온다. 그런 기세에 움찔 놀란 나는 나도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서버린다.
“아싸 내가 일드...”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번뜩이며 자세를 낮추고 나를 향해 도약하려는 어린 수인족 소녀. 하지만 그녀가 도약하기 위해 땅을 딛인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그녀가 딛인 땅이 아래로 푹 꺼져버린다.
“드으으으으갸갸갸갸갺!!”
일등을 외치던 단어는 어느새 비명으로 바뀌어 땅속으로 푹꺼진 함정속에서 아련히 메아리친다. 그런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함정의 가장자리에서 그 안을 내려다본다. 그러자 그녀의 키만한 깊이의 함정속에 빠진 어린 수인족의 소녀는 미묘하게 비좁은 함정속에 끼어서 바동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부스럭.
“이번에도 타이가 이겼지?”
곧이어 수인족 소녀가 튀어나온 숲풀을 가르고 한 어린 소녀가 느긋하게 걸어나온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인상에 귀엽고 애교많아 보이는 붉은 장발머리카락의 소녀는 함정의 가장자리를 걸으며 그안에 빠진 수인족의 소녀를 놀리듯이 혀를 내민다. 그런 소녀의 도발에 땅속에 몸이 꼭 끼인 수인족소녀는 양팔을 바동거리며 분하다는 듯이 외친다.
“비겁해!! 치사해!! 야비해!!”
“뭐라해도좋아. 애시당초 타이는 몸이 네이르보다 약하니까... 이런 일로 내기한 네이르 잘못이 커.”
그리고 내 곁으로 다가온 타이라는 소녀는 함정에 빠져 분해하는 수인족 소녀. 네이르의 눈앞에서 내 다리를 감싸안고 친숙하게 내 허리에 머리를 기대어온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타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내려준다.
“그러면... 약속대로 타이가 언니지?”
“우으으... 인정못해.”
네이르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그런 타이는 그런것에 별 상관없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아빠. 이제 타이가 언니야.”
“....”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서린다.
========== 작품 후기 ==========
dgfdgzvx / 읔...ㅋㅋㅋ;;
Solar Eclipse / 키르비르가 변하면 되나요. 츤의 대표인데 ;ㅅ;
숲속의곰2 / 감사합니다!!
이러저러한폐인 / 엌ㅋㅋㅋㅋㅋ 그게... 왜그럴까요. 으하하하핫;;
BrightBiz / ㅎㄷㄷㄷ... 바쁜 일상을 살아가기에 세상살맛 나는거죠. 화이팅입니다!
평행세계떡밥은 수없이 뿌려졌죠.
삭을대로 삭은떡밥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평행세계떡밥이 제일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