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205화 (205/298)

205편

<-- 계획 -->

“......”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침묵속에서 나는 아리엘이 말한 이야기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담담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것이 내가 원했던 결과일 수도 있어... 이리엘이 차원계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아마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후련하게 털어내서일까. 그녀의 입가에는 힘없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에페리아에 대한 정보는 줄게. 대신... 이리엘을 행복하게 해줘.”

“너무 큰 짐을 떠맡기는데?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쉽지않은 일이야.”

“그런 건 몰라. 난 행복이란 감정과 관계가 없었으니까.”

“...”

아리엘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문다. 입을 다물고 있던 나를 바라보던 나는 아리엘은 그녀가 약속한 에페리아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에페리아는 특이한 인물로 기록되어있어. 자기 스스로 차원계를 초월한 유일한 인격체.”

“너희들 또한 차원계를 초월하지 않았나? 근데 왜 에페리아가 유일하다는 거지?”

시작부터 질문을 던지는 내 태도에 아리엘은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떨궈 바닥을 내려다보며 내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관리자님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하지만 에페리아는 자기 스스로 차원계를 뛰어넘었어.”

“자기 스스로라...”

“일반적인 생물이 차원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해. 그들에게 부여된 생명은 복잡한 차원계를 이해하기에 너무 짧으니까. 하지만 에페리아... 통칭 검은 마녀. 그녀들은 자기 스스로 차원계를 초월했어.”

“하지만... 너의 말로는 인간이 차원계를 이해하기에 그들에게 부여된 생이 너무 짧다고 했잖아.”

“기적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어. 누군가 조작했을지도...”

내 질문에 아리엘은 갑자기 동문서답을 한다. 그런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참을성있게 아리엘의 입술을 바라본다. 짧게 한숨을 내쉰 아리엘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간다.

“검은 마녀들의 공통점은 그들은 거의 비슷한 파장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

“비슷한... 파장의 영혼?”

“마계에 올라탄 검은 마녀는 자신이 연구한 모든 자료와 정보를 다음 검은 마녀에 전달. 다음 검은 마녀는 그 연구를 이어나갔어. 그리고 특유의 천재성과 창의성으로 급격히 기술을 진보시킨 끝에... 두 번째 검은 마녀에서 차원을 뛰어넘었지.”

“두번째?”

에페리아가 검은 마녀를 검은 마녀들이라고 복수라고 취했을때 한 몇십명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작 두 번째 검은 마녀가 차원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나는 기겁한다.

“두번째 검은 마녀는 마법과 과학을 결합시켜 창조한 마도학으로 차원을 뛰어넘었어. 그리고 세 번째 검은 마녀인 에페리아는 그 마도학을 심화시켜서...”

잡시 입을 다물고 있던 아리엘은 분한 듯이 가볍게 몸을 떤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간다.

“우리에게 최초이자 치명적인 타격. 이리엘의 디에그 데그를 격침시켰지.”

역시나 이리엘과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일까. 이리엘의 함선을 격침시켰다는 말을 하면서 아리엘은 에페리아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에페리아는 3세대에 걸친 지식과 지혜를 보유하고 있어. 그리고 그런 지식이 단순한 지식이 아닌 마계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3세대에 걸친 지식과 지혜라...”

어느정도인지 체감은 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무지하게 똑똑하다는 뜻 같았다.

“솔직히 나도 에페리아의 진정한 전력이 어느정도인지는 몰라. 이떄까지 경험해본 결과. 에페리아는 전세를 뒤엎을 비장의 무기를 두 세 개정도는 숨기고 있을꺼야.”

“골때리는 군. 그럼... 녀석의 약점같은 것은 없나?”

일단 에페리아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바로 에페리아의 약점이나 빈틈. 나는 실날같은 희망을 기대하며 에페리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없어.”

에페리아의 대답은 단호했다.

“에페리아는 전략, 전술에 능해. 계략이나 책략에도 강하고... 그렇다고 개인적인 힘이 약하지도 않아. 거기다 자기 일은 모두 자기가해야하는 외곬수같은 성격이라 함정이나 암살까지도 불가능해.”

“그렇다면... 녀석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건가?”

“정면 승부밖에...”

나를 바라보던 아리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정면 승부. 너무나도 가당치 않은 말이었다.

키르비르와 버금가는 마법실력과 차원계에 존재하는 전함이라는 디에그 데그를 격침시킬 수 있는 화력.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전략 전술을 내가 감당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이 느껴졌다.

“검은 마녀는 마계에만 있는게 아니야. 너의 곁에도 있어.”

“내... 곁에 검은 마녀라니...”

아리엘의 말을 어이없다는 말투로 되받아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리니아...?”

“네번째 검은 마녀. 네 번째가 되야할 검은 마녀가 너의 곁에 있어. 그게... 에페리아에게 대항할 유일한 카드일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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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을 홀로 독방에 놔두고 나는 천천히 그방에서 빠져나왔다.

리니아

그녀가 네 번째 검은 마녀라... 솔직히 리니아가 그녀의 나이에 비해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상대했던 에페리아와 리니아를 비교해볼때 아직 리니아는 에페리아의 발끝조차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다시금 에페리아와 나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에페리아는 나보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다. 머리를 쓰는 방법이나 싸우는 방식. 심지어 개인적인 힘까지도. 무엇하나 그녀를 이길 수 있는게 없었다.

“키르비르...”

좌절하는 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인물. 그것은 바로 키르비르. 내가 모든 것이 에페리아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그녀보다 뛰어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료. 아리엘의 말대로라면 에페리아는 외곬수같은 성격으로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고 한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내 곁에는 동료가 있었다. 최강의 마법사라는 키르비르, 차원 구축함의 함장인 이리엘, 네 번째 검은 마녀라는 리니아까지.

“하아...”

하지만 그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었다. 나 또한 강해져야한다. 최소한 네이의 복수는 내 손으로 직접 에페리아에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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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과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 차원계에서 벗어난 길잃은 영혼들은 끝이 없는 무한한 시간을 틈새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이미 차원계에서 벗어난 이상 소멸이나 환생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틈새에 가득찬 태초의 힘인 혼돈의 기운에 자아가 붕괴되어가며 자기 자신이나 이름모를 상대를 물어뜯으며 끝없이 괴로워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은 두터운 차원의 벽넘어로 보이는 수많은 차원계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또다른 생물들을 향해 끝없는 증오를 불태워나간다.

콰장창!!

그런 공간속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난다. 그리고 틈새속에 던져지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여성. 그녀의 정체는 다름아닌 타이였다.

-살아있는 생물.

-생명이 느껴진다...

서로의 신체를 물어뜯어가던 망령들은 살아있는 생생한 생물의 존재를 포착하고 눈을 붉게 충혈시킨다.

-도... 돌아가야해. 난 아직 할 일이..

-크아아아!! 보.. 복수를 해야한다!!

수많은 망령들이 타이를 향해 달려든다. 영혼의 상태로 차원의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신체를 가지기만 한다면 차원의 벽을 뚫을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망령들은 이 끔찍한 틈새에서 벗어나기 위해 득달같이 타이의 몸을 차지하려한다.

-비켜!!

-크어어어어!!

타이를 향해 달려오던 망령들은 서로 엉키며 타이의 몸 주변에서 그녀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콰악!!

망령이 뒤엉킨 곳에서 튀어나온 하나의 굵은 손이 의식을 잃고 틈새에 떠있는 타이의 팔을 움켜쥔다.

콰악!!

하지만 그 팔 하나뿐이 아니라 사방에서 타이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망령들의 손이 그녀의 사지를 하나하나 붙잡아나간다. 다른 망령들보다 비교적 자의식이 강하고 생전에 강했던 망령들이 타이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입맛을 다신다.

파악!

-뭐... 뭐냐!!

그때 타이의 몸을 차지하지 하려하지 않고 타이의 몸을 붙잡은 팔을 쳐내는 한 망령이 있었다.

-이 녀석에게 손대지마!!

그 망령은 오랜 시간동안 틈새에 있어 자의식이 많이 무너진듯 자신의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흐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목에 매달린 자그마한 방울만이 마치 트레이드 마크처럼 가장 명확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방해하지마라... 녀석의 몸을 통해 이곳에서 벗어나야해...

방울의 망령에 의해 튕겨져나간 팔은 다시금 타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방울의 망령은 다시 그런 그의 손을 막아선다.

-안돼. 너희들은 이 아이를 건들 수 없어.

-크크크.. 너 혼자서... 뭘 어쩌겠다는...

화악..

망령의 말이 끝나기도전 뒤엉킨 망령들 틈사이에서 몇몇의 망령이 튀어나와 타이의 몸을 둘러싸 그녀의 몸을 붙잡은 팔들을 전부 떼어낸다. 타이의 몸에 접근할 수 없게되자 애가타는 망령들은 타이의 몸을 지키는 망령들에게 소리를 친다.

-너도 벗어날 수 있다. 이 지옥에서!! 다시 현세로 돌아가 살아있을 수 있다!! 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려는거냐!!

-나도 몰라. 하지만 막아야해. 이 아이를 지켜야해. 그래야만 할 것 같아.

-아직도 현세에 미련이 남았군! 이미 현세는 너희를 잊었다. 너는 존재하지 않아. 환생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지옥속에서 끝나지 않은 고통을 받아야만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려는거냐?!

방울 망령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 망령들은 다같이 하나되어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런 수백의 망령들의 비난속에서도 방울과 다른 망령들은 그저 꿋꿋히 타이의 앞을 지킬 뿐이었다.

-나도 알아. 내가 멍청한 짓 한다는거... 하지만 내 가슴이 이 아이를 지키라고 하고 있어.

쿠웅...

그때 틈새속의 공간이 크게 요동친다. 주변을 흔드는 떨림에 타이를 포위하고 있던 망령들이 두려운듯 몸을 바르르 떤다.

-녀... 녀석이 온다... 포식자가 온다... 이게 모두 너희들 때문이다...

틈새의 공간을 가르며 뭔가 거대한 위압감을 풍기는 무언가가 타이를 향해 다가온다. 거대한 검은 덩어리 같은 망령은 꿈틀거리며 움직이자 주변에 있던 망령들은 두렵다는 듯이 허겁지겁 사방으로 흩어진다.

-누구더라... 정겹긴한데...

방울의 망령은 자신보다 수십배나 큰 거대한 망령의 앞에서 주눅들지않고 녀석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조그만 망령에게는 관심없다는 듯이 크게 입을 벌린 거대한 망령은 타이와 함께 방울의 망령을 삼켜버린다.

콰득..

그 순간 거대한 망령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괴로운 듯 잠시 온몸을 비틀던 거대한 망령은 갑작스럽게 몸이 일그러지며 그 크기가 줄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콰드드득.. 콰득 우지직..

거대한 크기가 빠르게 줄어나간다. 크기가 빠른속도로 줄어든 거대한 망령은 어느세 의식을 잃은 타이의 몸안으로 스며들어가버린다. 그리고 타이를 지키고 있던 방울의 망령또한 거대한 망령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두근..

곧이어 타이의 몸이 크게 꿈틀거린다. 그리고 굳게 감겨져있던 타이의 눈이 천천히 떠진다. 그런 그녀의 눈은 눈동자의 위치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붉은 색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크...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핫!!!”

타이는 굵은 목소리로 큰 웃음을 터트린다. 차원의 틈새가 흔들릴 정도로 우렁찬 그녀의 웃음소리에 주변에 있던 망령들이 두려운 듯 구석으로 숨어들어간다.

“다.. 다시 몸을 얻었다.. 다시 몸을 얻었어!! 보.. 복수.. 복수!! 크헛..!!

미칫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기쁨에 미쳐날뛰던 타이는 갑작스런 비명과 함께 몸을 우뚝 멈춘다. 그런 그녀의 어께에서부터 반투명한 영체가 흘러나와 자신의 형체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은 자그마한 검은 고양이. 녀석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타이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정신차려. 이 아이를 구해야해.

“크... 내.. 내가 왜 그런 짓을..”

-복수를 위해서야.

“복수!! 복수!!!”

복수라는 고양이의 한마디에 뭔가 최면에 빠진것처럼 타이는 호쾌하게 소리를 지르며 고양이의 말에 동조를 한다. 그런 타이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고양이는 눈을 돌려 가장 멀지 않는 차원계를 바라본다.

-저기야.

“복수!!!”

고양이가 그 차원계를 지목하자 타이는 괴성을 지르며 그 차원계를 향해 달려간다.

쩌엉!!

하지만 단단한 차원의 벽이 그녀를 막아선다. 그러나 타이는 자신을 막는 벽을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손을 크게 허공으로 휘두른다.

촤악!!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에서 뿜어져나온 핏물이 기다란 검을 만들어낸다. 그런 검을 움켜쥔 타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차원의 벽을 바라본다.

“강검술. 붕괴.”

피로 만들어진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강하게 움켜쥔 타이는 있는 힘껏 그 검으로 차원의 벽을 내려찍는다. 타이의 검은 마치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박살낼 어마어마한 기세로 차원의 벽을 향해 쇄도해나갔다.

콰지직!!

타이의 검이 두터운 차원의 벽에 박히며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차원의 벽이..

-무너진다...

아직 타이에게 미련이 남아있던 망령들은 그녀의 주변을 맴돌다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차원의 벽을 바라본다. 그들의 진입을 막고 있던 거대한 벽이 부숴져내리기 시작하고 그안에서 생명들이 즐겁게 살아가는 세상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세계다!! 돌아갈 수 있어!!

-으어어어어!!

망령들은 일제히 부숴진 차원의 벽을 통해 그 차원계로 진입하려한다. 하지만 부숴진 차원의 벽을 통해 차원계로 들어가려던 망령들은 또다른 방해꾼을 만나버린다.

-갈 수 없어요. 더 이상 차원계에 혼란을 주면 안돼요.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 너희들은 이곳에서 썩는게 어울리거든.

망령들의 진입을 막는 존재는 그들과 비슷한 또다른 망령들이었다. 두 망령들은 오랜 시간동안 틈새에 지내 형체가 반쯤 무너져내리고 있었지만 각자의 자의식은 강하게 남아있는지 다른 망령과 다르게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비교적 자그마한 망령은 커다란 마녀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런 망령보다 좀더 큰 또다른 망령은 목에 매고 있는 작은 십자가 목걸이가 새하얀 빛으로 선명히 반짝이고 있었다.

-비켜어어어!!

다시 차원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회에 망령들은 광분해서 날뛰기 시작한다. 부숴진 차원의 벽을 막고 있는 두 명의 망령들을 뚫고 차원계로 들어가려하지만 마녀모자의 망령과 십자가를 걸친 망령은 어렵지 않게 다른 망령들의 폭주를 막아선다.

-빨리. 그 아이를 돌려보내!

고양이의 신호에 타이는 자신이 부순 차원의 벽 사이로 뛰어들어 그 안의 세계로 몸을 던지려한다. 하지만 그런 타이의 몸이 차원 내부의 세계와 차원의 틈새의 접합부 사이에서 멈춘다. 아직 차원의 틈새에 남아있는 고양이의 몸과 타이의 몸이 이어진채 고양이가 그녀를 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가면 안돼.

“나는... 나는 복수를... 복수를 해야한단 말이야!!”

-안돼. 안돼는 것 당신도 알잖아...

자신과 이어진 고양이의 몸을 끊어내기 위해 타이는 발버둥치지만 그녀의 힘으로 형체가 없는 고양이의 몸을 끊어낼 수는 없었다.

-아... 기억났다.

그때 고양이는 뭔가가 떠오른듯 환한 얼굴로 작게 소리치며 타이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말에 타이는 발버둥을 그만두고 고양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타메르. 가지마.

“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고양이의 한마디에 타이는 정신을 차린 듯 눈을 휘둥그레 뜬다.

-또... 날 버리고 갈꺼야?

“....”

조용한 고양이의 목소리에 고양이를 바라보던 타이는 천천히 눈을 감아간다. 그러자 발버둥치던 그녀의 몸이 천천히 힘이 빠지며 축늘어진다. 곧이어 그녀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천천히 빠져나온다.

-미안..

붉은 눈동자를 가진 망령은 고양이의 몸을 부드럽게 휘감으며 녀석에게 사과한다. 그러자 고양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서린다.

-이것으로 우리의 일은 끝이야.

고양이는 마지막으로 타이의 몸에 이어져있는 자신의 몸을 빼낸다. 그러자 의식을 잃은 타이의 몸은 천천히 차원의 벽 내부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았어.

차원 속 세계로 천천히 잠겨드는 타이를 바라보며 붉은 눈의 망령은 무언가를 결심한듯 자신의 팔을 힘껏 뒤로 당긴다. 그러자 그의 팔이 갑작스럽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이건 내 사심이 가득 담긴 선물이다.

붉은 눈의 망령은 부풀어오른 자신의 팔을 타이를 향해 휘두른다. 그러자 그의 팔에 뭉쳐있던 검은 덩어리가 타이를 향해 쏘아진다.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차원의 벽 사이로 간신히 파고들어간다. 그런 검은 덩어리는 정확히 타이의 몸에 달라붙어 감쪽같이 그녀의 몸안에 스며들어간다.

-내 아이야... 부디 큰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붉은 눈의 망령은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점점 사라지는 타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런 붉은 눈의 망령 곁에서 고양이의 외형을 가진 망령은 잔뜩 뾰로뚱해진 얼굴로 붉은 눈의 망령을 바라보며 말한다.

-난 당신과 같이 저런 아이 낳은 기억은 없는데?

-아... 어...

고양이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붉은 눈의 망령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 망령의 모습에 고양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알아 알아... 또다른 세계의 나의 아이라는 걸... 당신과 나의 딸이라... 꿈에만 그리던 일인데 마지막에나마 이렇게 보게되네.

-그러게 말이야...

붉은 눈의 망령과 고양이의 망령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타이가 사라진 곳을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두 망령의 형체가 천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끝이네.

-마지막 힘을 다 쏟아부었으니까...

-우리도 저렇게 이름모를 망령이 되겠지.

고양이는 씁쓸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의 주변에 목적없이 텅빈 눈으로 떠도는 망령들을 바라본다. 붉은 눈의 망령또한 그런 망령들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의미있는 일을 했으니까...

-큰 도움이 될꺼야.

그 둘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다. 그런 그들의 몸의 형체는 천천히 무너져내리고 다른 망령들과 비슷하게 텅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그리고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맹목적으로 어두운 틈새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봉식이의대출노트 / 허허허헛..

abcbbq / 오! 저도 화학병입니다! 하지만 그 특수용제는 구할 수 없더라구요 ;ㅅ;

실버링나이트 / 아마도... 언젠간?

유운처럼 / 그저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요즘 힘든일이 많네요... 그래도 글은 열심히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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