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편
<-- 변화 -->
“크윽!!”
이때까지와 수준이 전혀달랐다. 마치 나를 난도질할 기세로 어마어마하게 휘몰아치는 검풍. 큰 치명타를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검격을 전부 막아내기 버거웠다.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검풍속에서 내 몸에 새겨지는 상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시란류 쾌검술...”
휘몰아치는 검풍속에서 눈이 어지러워질 무렵. 날카로운 파공음 사이로 시란의 고요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뭐... 뭐야?!”
동시에 나를 압도하던 어마어마한 검격의 폭풍이 잦아든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전의 고요였다. 나를 향해 휘몰아치던 검풍은 다시 발도자세로 되돌아온 시란의 손에 모여든다.
“멸풍!!!”
그녀의 손에 모여든 응축된 힘이 단숨에 터지듯 폭발적인 기세로 다시 나에게 쏘아진다. 수십개의 검이 내 몸을 갈갈이 찢어버릴 듯이 전방에서 압도적인 기세로 휘몰아쳐온다. 나는 어떻게든 그 검격을 막아내기 위해 내 혈검을 들어보지만 휘몰아치는 푸른 폭풍속에서 내 검은 그저 불안하게 흔들리는 붉은 깃대처럼 보일 뿐이었다.
“크으으윽!!!”
모든 검격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그녀의 검을 쳐내기보다 몸을 웅크려 급소를 가리는 방어자세를 취하려한다.
두근...
그 순간 또다시 심장이 크게 박동하며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나는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억누르지 않고 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방치한다.
촤악!
순간 내 양어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동시에 뿜어져나오는 붉은 피보라. 시란의 검에 베여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내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핏물은 마치 의지를 가진듯 서로 엉켜나간다.
콰아아앙!
그 순간. 시란의 무지막지한 검풍이 나를 휩쓸어버린다. 사방에서 나를 베어오는 수많은 검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나를 베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모르는 장벽에 막혀 내 살을 베어내진 못하고 있었다.
“.....”
거칠고 무자비한 폭풍인 만큼 오래지속되지 않고 금방 잦아들었다. 하지만 폭풍에 담긴 무시못할 힘에 내 주변의 땅에는 시란의 검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참상이 새겨져있었다. 온몸을 두드리던 충격이 사라지자 나는 웅크렸던 고개를 들어 내 몸을 살펴본다.
“이건...”
내 몸을 붉은 망토같은 것이 감싸고 있었다. 처음 만져보는 기이한 재질. 부드러우면서도 손쉽게 찢어낼 수 없을 정도로 질긴 강도를 자랑하는 망토였다. 망토를 살펴보던 나는 검풍이 몰아치기 직전. 고통이 느껴졌던 어께를 매만져본다.
“.....”
내 어께에는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망토가 이어져있었다. 살갖을 찢고 내 몸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붉은 망토의 모습에 나는 할말을 잃는다.
“뭐... 뭐야 그건...”
비장의 한수까지도 막혀버리자 시란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붉은 망토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타이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피를 이용해 물질을 만드는 것. 타이가 검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 망토또한 내 피로 만들어져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라져.”
나는 조심스럽게 망토에게 명령을 내려본다. 내 피로 만들어진 만큼 내 의지를 따를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슈우욱..
내 말에 망토는 액체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다시 핏물로 변한 망토는 자연스럽게 내 피부한으로 스며들어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게... 타이가 나에게 준 능력인가...”
피를 내 뜻대로 다루는 힘. 단순히 피를 움직이는 것을 뛰어넘어 핏물을 이용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이한 힘에 나는 마른침을 삼킨다.
“그렇다면...”
슬쩍 입술을 훑은 나는 내 얇은 혈검을 바라본다. 그리고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혈검을 내려보며 그 검을 양손으로 꽉 움켜쥔다.
“나의 검은... 육중한 대검.”
그리고 머릿속으로 내가 원하는 검을 상상한다. 내가 로터스에게 받았던 붉은 대검. 그 대검의 모습을 정확히 떠올린 나는 그 상상에 의지를 싣는다.
슈우욱..
그러자 검을 움켜쥔 내 팔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곧이어 그 핏물은 내 검을 천천히 휘감아가기 시작하고... 검의 크기는 점점 거대하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쿠웅...
곧이어 예전과 비슷하게 육중한 모습으로 변모한 거대한 붉은 대검이 대지를 뒤흔든다. 손안에 가득히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만족하며 대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말아쥔다.
“그 무거운 대검으로... 내 검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을 것같아?”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무거운 대검을 다루는건 힘들었겠지.”
시란의 도발에 피식 웃은 나는 거대한 대검을 한손으로 움켜쥔다. 확실히 그 무게가 전에 얇은 검에 비해 몇배는 더 육중해졌지만 광혈의 저주로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완력을 가진 나에게는 한손으로 휘두르는데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흐읍...!!”
단순히 힘으로만 무지막지하게 검을 휘두르던 전과 다르게 이번엔 시란이 알려준 요령대로 온몸에 힘을 빼고 힘보다 속도를 중시하며 부드럽고 재빠르게 대검을 휘둘러나간다. 평소와 달리 거대한 대검이 날렵하게 허공을 가르는 낯선 날카로운 감각이 손안에 가득 느껴져왔다.
“우앗!!”
처음에는 내 검을 막아보려던 시란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베어오는 내 대검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선다.
콰아앙!!
거대한 대검이 마치 시란을 위협하듯 크게 허공을 베내자 위협적인 폭풍이 휘몰아친다.
“아...”
대검에 의해 휘몰아친 날카로운 검풍에 뒤로 물러섰던 시란의 머리카락이 몇가닥 잘려진다. 잘려진 시란의 머리카락을 하늘거리며 떨어지다 그 자리에서 푸른 영체로 변해 다시 시란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어때? 쓸만하지?”
시란에게 배운 요령대로 베어낸 한수였다. 대검을 사용하니 오히려 얇은 검을 사용했을때와 비슷한 날카로움에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더해졌다.
“도데체... 너는 누구의 검술을 쓰는거야?”
그런 나를 바라보며 시란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에게 묻는다.
“누구의 검술이라니...”
그녀의 어이없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연히 너가 알려준 검술이지.”
“하지만 너가 내 검을 막은 기술은 내 검술이 아니야!”
“....”
시란이 화내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부탁을 하여 그녀의 검술을 배웠다. 하지만 방금전 그녀와 대련했을때 나는 내 몸이 움직이는 대로 내 몸이 기억하는 검술로 그녀의 검을 막아 냈었다.
시란은 나름 성심성의껏 나에게 자신의 검술을 알려주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렇게 자신이 알려준 검술이 아닌 또다른 검술을 보여주니 그녀가 실망한 것이었다.
“날 놀린거야?! 얼마나 날 우습게봤으면... 검술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검술을 알려달라고 한거야!!”
이를 악문 시란은 마치 원수를 바라보듯이 분노로 타오르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이건...”
“처음부터 네놈이 마음에 안들었어... 괜한 동정심이 문제지...”
까득..
이를 악문 시란은 다시금 자신의 푸른 요도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나를 겨눈다. 이제 시란은 거의 노골적으로 나를 향한 적의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시란을 바라보며 나또한 주춤주춤 내 대검을 들어올린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같은데... 나도 이 검술에 대해선 모른다고!!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거야!”
“그딴 변명을 믿을 것 같아?! 어디한번 그 잘난 네 놈의 검술로 덤벼봐!”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시란은 자신의 검술이 모욕당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며 나와 결판을 지어버릴 기세였다.
“저기...”
그때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황속에서 어리벙벙한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퍼진다.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방해자의 목소리에 나와 시란은 목소리의 진원지를 동시에 돌아본다.
“싸... 싸우시려는 거에요?”
거기에는 우리를 위해 챙겨온 듯한 빵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손에 들고 입에 크로와상을 물고 우물거리는 티에르가 있었다. 그녀의 존재에 움찔 놀란 시란은 허겁지겁 나를 향한 분노를 거둔다.
“아... 아니야... 그냥 오해가 있어서...”
티에르가 보고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는지 시란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검을 회수하며 슬쩍 나에게 눈치를 준다. 나또한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여 적당히 시란의 말에 장단을 맞춰준다.
“그냥 그 동안 훈련받은 것을 테스트받아본 것 뿐이야.”
나름 변명한다고 해본건데 훈련 받았던 것을 단순히 테스트해본다는 내 말에 시란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아무래도 적지않게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자신에게 검술을 배운 내가 가르쳐준 검술이 아닌 전혀다른 검술을 사용하다니... 그 사실이 시란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 것이었다.
“다행이에요. 전 또 둘이서 싸우는 줄 알고...”
진심이 가득 담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티에르를 바라보며 나와 시란은 무언의 눈치를 서로에게 보낸다.
========== 작품 후기 ==========
마스터칼솔럼 / 그렇긴하죠... 네... 좀 눈살찌푸리는 관경이 끊이질 않더라구요.
실버링나이트 / 그런말을 하시니... 완결될때까지 절대 연중할 수 없겠네요!
유운처럼 / 아! 그말이셨구나... 캐릭터가 팍팍튀어나와서 관리하기 힘들다는 것은 비밀..
자사팍 / .....전 우울한게 좋은데... 해피는 일주일가지만 배드는 한달이상 기억되거든요.
abcbbq / 근데... 먹은건요? 먹은건 우짜죠? 으아아아아앙.. 먹었잖아?! 난 안될꺼야 아마.. 으히히힝..
.....
데이트.
이히히히히히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