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편
<-- 데이트 -->
-데... 데이트?!
“응.”
오랜만에 자신의 함선 디에그 대그로 올라온 이리엘은 자신을 반겨주며 요란을 떠는 켈레브라를 마주한다. 권총안에 영혼만 남은 켈레브라는 리볼버의 해머를 앞 뒤로 철컥거리며 자신이 느끼는 놀람을 몸으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누... 누구랑?!
“그건 알 필요없어. 내가 필요한건 조언.”
찰칵거리는 켈레브라의 권총 앞에 걸터앉은 이리엘은 무끄럼히 그의 권총을 내려보며 말한다.
“블랙로즈들에게 물어볼 수 없어. 그들이 날 켈레브라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상 남성과의 데이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모순.”
-그래서... 나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켈레브라의 말에 이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방안에서 해머를 찰칵거리는 리볼버에게 말을 거는 이리엘의 모습이 다소 멍청하보였지만 그런 이리엘의 얼굴은 한 없이 진지했다.
-으음... 뭐... 일단 도움은 주지. 재미있을 것같네!
어느정도 자신의 놀람이 진정이 되었는지 리볼버는 해머를 앞뒤로 찰칵거리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원통형 실린더를 천천히 회전시키며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 이리엘. 솔직히 너는 여성적인 매력이 부족해.
“...응.”
직설적인 켈레브라의 말에 평범한 여성이라면 화를 낼만했지만 이리엘은 차분한 자세로 고개까지 끄덕거리며 진심으로 켈레브라의 말을 들어간다.
-중성적인 것도 하나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역시 여성은 여성적인게 최고지. 우선 옷차림부터 바꾸자.
“옷차림?”
켈레브라의 말에 이리엘은 자신이 입고있는 옷을 살펴본다. 활동성을 중시한 짧은 가죽 반바지에 하늘거리지 않게 체구에 딱맞는 티셔츠 한 벌. 그게 끝이었다. 움직임에 방해되는 모든 것과 개성이나 매력을 모두 배제한 완벽한 활동성 위주의 옷차림이었다.
-너가 중성적으로 보이는 이유에 옷차림도 포함돼. 간만에 우리 이리엘의 옷장좀 살펴볼까?
약간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떠드는 켈레브라는 즐겁다는 듯이 총구 끝을 가볍게 흔든다. 옷장을 살펴보겠다는 켈레브라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 이리엘은 켈레브라의 리볼버를 움켜쥐고 방 한쪽에 마련된 자신의 옷장으로 다가선다.
철컥.
닫혀있던 이리엘의 옷장이 열리고..
-우와...
켈레브라의 짧은 탄성이 울려퍼진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옷을 잔뜩 구할 수 있는거지?
그가 감탄한 이유는 단순했다. 옷장은 단순한 2층구조로 이뤄져있었다. 1층에는 반으로 접힌 반바지들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 2층은 사각으로 깔끔하게 접힌 티셔츠가 색깔별로 구분되여 작은 탑을 쌓고있었다.
“핸돈마이어 공업사 대량 주문제품.”
-그 회사가 맘에 들긴 맘에 들었나보구나.
“응. 저렴하고 튼튼해. 빨아도 색이 잘 지워지지도 않고.”
-하아...
이리엘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켈레브라. 그녀를 꾸며주고 싶어도 꾸며줄 물건이 없었다. 똑같은 디자인에 색만 미묘하게 다른 반바지들. 색이 다르다고 해도 전부다 초록색 중심에 약간 색을 진하게 하거나 흐리게 한것 밖에 없었다. 티셔츠도 마찬가지. 비록 티셔츠는 반바지보다 다양한 색상을 자랑했지만 문제는 하나하나 전부다 단색티셔츠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밋밋한 셔츠를 장식한 이미지나 이니셜조차도 없었다.
“이거... 어때?”
그때 이리엘은 나름 큰 고민을 한듯 옷장 1층에 쌓인 반바지들중 한쪽에 귀중하게 보관된 반바지하나를 꺼낸다.
-그건 뭔데?
반쯤 포기한 켈레브라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반바지의 정체를 묻는다. 그녀가 입고다니는 평범한 초록색 반바지. 하지만 그 뒤를 돌리자 오른쪽 뒷주머니에 그녀의 함선 디에그 대그가 은색 실로 아름답게 자수가 되어 박혀있었다.
“공업사에서 대량구매에 감사하다며 만들어준 특별한 바지.”
-....
이리엘은 그 바지가 진짜로 마음에 들었는지 눈동자까지 반짝거리며 자랑스럽게 켈레브라를 향해 내보인다. 그런 이리엘을 바라보며 마음같아서는 디에그 대그가 자수되어있는 주머니부분을 한방 쏴주고 싶은 켈레브라였지만... 불행히도 아직 켈레브라 스스로 리볼버의 발포가 불가능했다.
-일단... 이리엘. 너가 나름대로 네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은 있어?
“내... 개성?”
-그러니까... 오늘 기분이나 느낌에 따라서 걸치는 물건이나 악세사리 같은게 있을 것아니야?
켈레브라의 질문에 이리엘은 심각히 고민한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떠올랐는지 옷장 아래에 마련된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거.”
그리고 이리엘은 자랑스럽게 서랍장 하나를 당겨 켈레브라에게 보여준다.
-....
그걸 바라본 켈레브라는 할말을 잃어버린다. 그러자 이리엘은 그 서랍을 뒤져 물건 하나를 꺼내 켈레브라에게 보여준다.
“이건 피엘.”
-.....
이리엘이 켈레브라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준건 다름아닌 이리엘의 속옷이었다. 핑크색 양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게 수놓아진 속옷을 켈레브라에게 보여준 이리엘은 조금은 기쁜듯한 얼굴로 그 양캐릭터를 내려본다.
-왠 속옷 캐릭터에까지 이름을 붙여준거냐?
“소중하니까.”
조용히 그 양캐릭터를 내려보던 이리엘은 드물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소중하게 접어 서랍한쪽에 따로 모아두는 장소에 조심스럽게 내려둔다.
-왜 두 개로 분류한거냐.
이리엘의 속옷 서랍을 조용히 바라보던 켈레브라는 그 속옷서랍의 이상한점을 간파한다. 대부분의 속옷들은 한쪽에 모여있지만 이리엘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속옷들. 방금전의 양 캐릭터가 그려진 속옷들은 또다른 한쪽에 조심스럽게 모아져있었다.
“중요한 날에 입는 속옷.”
-흐음...
이리엘의 설명에 켈레브라는 이리엘이 따로 분류해둔 속옷을 바라본다. 다른 속옷들은 대부분 유치한 캐릭터나 이름모를 삼류캐릭터가 그려진 저가형 속옷이었지만 이리엘이 따로 분류한 속옷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벼운 줄무늬가 그려지거나 무늬자체가 아예없는 것들. 비교적 유치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속옷들이었다.
-꾸며입을 것이 속옷이라니... 평범한 사람들은 데이트를 하면서 속옷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그건 나도 알아.”
켈레브라의 한탄서린 한마디에 이리엘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한다. 하여튼 결론적이로 옷차림을 바꾸는 것으로 이리엘을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직감한 켈레브라는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쉰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이상... 마지막 비장의 한 수가 있어.
“비장의 한수?”
-머리카락.
켈레브라는 마지막 한 수로 이리엘의 머리카락을 지적한다.
-최소한 머리카락이라도 여성스럽게 바꾸면... 어떻게든 매력이 생기겠지.
켈레브라의 말에 이리엘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움직이는데 찰랑거리지 않게 짧게 자른 머리카락. 단발의 머리카락은 그저 이리엘의 목 언저리만을 가린채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릴 뿐이었다.
-가발같은것 없어?
“가발...”
켈레브라의 조언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이리엘은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이리엘은 확신이 가득한 어조로 말한다.
“만들 수 있어.”
-만들 수 있다니... 너 설마 또?!
만들 수 있다는 이리엘의 말에 켈레브라는 기겁한다. 뭔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직감한 켈레브라였지만 이리엘은 그런 켈레브라의 리볼버를 들고 자신의 방에서 걸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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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짓을 계속했다가는 너 천벌 받을꺼야.
이리엘의 손안에서 켈레브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한마디를 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목소리에 힘이 없는것이 이미 켈레브라는 이리엘이 벌이는 짓에 대해 체념한지 오래인 것처럼 느껴졌다.
“천벌이란건 없어. 그리고 이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 증명된거야.”
이리엘이 도착한 곳은 수많은 캡슐들이 마련된 거대한 방. 처음에는 켈레브라도 상당히 놀란 곳이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 방안으로 들어선 이리엘은 무덤덤한 눈으로 캡슐들을 바라본다.
투명한 유리벽넘어로 샛노란 액체가 가득차있는 캡슐 내부에는 이리엘과 똑같이 생긴 클론이 고요히 잠들어있었다.
“기억 주입이 되지 않는 이상 이들은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 잘만들어진 인형이야.”
유리벽 넘어에서 이리엘은 천천히 그런 클론들을 살펴본다. 클론 이리엘은 실제 이리엘보다도 2살정도는 더 어린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체모조차도 자라지 않았고 가슴또한 남자와 비슷할 정도로 납작했다. 그런 클론들을 살펴보던 이리엘은 캡슐 옆에 부착된 단말기를 손으로 두드린다.
이미 과거의 기억을 전부 되찾은 이리엘이 기기를 다루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단말기 화면을 보지도않고 손을 움직여 단말기에 새로운 정보를 입력해나간다. 그러자 캡슐내부에 자욱한 기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기포들은 클론의 머리카락에 붙어가기 시작하고 짧은 머리카락은 눈에 보일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볼때마다 신기하네.
기포에 휩싸인 클론의 머리카락은 천천히 자라나 어느세 어께에 닿을 정도까지 자라난다. 그 모습을 무끄럼히 바라보던 이리엘은 다시 단말기를 조작해 머리카락의 성장을 멈춘다.
-좀더 기르지? 왠만하면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이거면 충분해.”
어께에 닿을 정도로 길러진 클론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런 클론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리엘은 켈레브라의 리볼버를 들어올려 유리격벽을 겨눈다.
타앙!
콰지직!!
한발의 총성이 고요하게 울려퍼지며 단단한 유리격벽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는다. 그러한 구멍을 중심으로 깊은 균열이 번져나가며 내부에 가득챈 샛노란 액체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뿜어져나오는 액체를 피해서 이리엘은 두어걸음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다시금 리볼버를 들어올려 다시금 방아쇠를 당겨나간다.
타앙!! 타앙!!
와장창!!
곧이어 충격을 못이긴 유리격벽이 깨져나가며 그 안에 담겨진 클론의 신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캡슐에 담긴 모습 그대로 고요히 잠들어있는 자신의 클론을 내려보던 이리엘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찰칵.
그리고 호주머니에 담아둔 작은 접이식 주머니칼을 꺼내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끊어내기 시작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듯 차분하게 주머니칼을 움직여 머리카락을 잘라낸 이리엘은 손안에 한가득 잡힌 클론의 머리카락을 내려본다.
그녀와 똑같은 갈색빛을 머금은 머리카락. 기분나쁠정도로 비슷한 빛을 내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내려보던 이리엘은 머리카락이 엉망이 된채로 쓰러져있는 클론을 돌아보지도 않고 등을 돌린다.
“엘. 폐기해.”
-알겠습니다.
이리엘의 지시에 따라 함선 전체를 책임지는 엘은 함선 전체에 퍼져있는 자신의 기계팔을 이용해 쓰러져있는 클론을 집어든다.
========== 작품 후기 ==========
Ernia / 인덱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캐릭터도 참 불쌍하네요...
유운처럼 / ;ㅅ;
마스터칼솔럼 /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네요... 슬프게..
실버링나이트 / 외모는 철컹철컹이지만 나이는... 대충 설정으로 우겨대면 400살도 넘었습니다.
Khanell / 에어컨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일도 올려야지... 그럴려면 열심히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