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219화 (219/298)

2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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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엘의 안내에 따라 그녀와 같이 그녀의 함선인 디에그 데그앞에 선다. 비록 탑에 박혀있는 꼴이었지만 은백색으로 빛나는 신비한 금속재질과 거대한 몸집은 묘한 위압감을 자아내며 나를 짓눌러온다.

“이쪽이야.”

그러나 나와 다르게 이리엘은 그런 함선앞으로 다가가 벽을 매만진다. 그러자 전혀 입구처럼 보이지 않은 벽에 금이가면서 천천히 옆으로 열린다.

“신기하네...”

이리엘을 앞에 세우고 디에그 대그안에 들어선 나는 밖과는 다르게 기분이 좋아질정도로 선선한 내부온도에 살짝 놀란다. 깔끔할 정도로 새하얀 복도. 나무나 석재로 이뤄진 유적지와 다르게 차가운 금속재질로 도니 낯선 복도를 둘러보며 이리엘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긴다.

“여기는 휴게실.”

이리엘의 안내에 따라 온 곳은 상당히 넓고 커다란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깔끔한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있었다. 일단 이리엘의 안내에 따라 탁자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기는했지만...

“....”

새하얀 탁자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에 앉아 멀뚱멀뚱 새하얀 방을 돌아보던 나는 이리엘에게 시선을 돌린다.

“기다려. 간식거리... 챙겨올테니까.”

심심해하는 나를 바라보던 이리엘은 뭔가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는지 자신이 품에 안고있던 책을 탁자위에 내려놓고 황급히 휴게실과 이어진 다른 방으로 뛰어간다. 그런 이리엘의 행동에 피식 웃은 나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에 몸을 기댄채 느긋하게 이리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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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간식?”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이동한 이리엘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얼떨결에 타메르를 함선에 초대는 했지만 뭘해야할지 모르는 이리엘이었다. 책에서 읽은 대로 우선 간식을 내와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간식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

“일단... 먹을거..”

이리엘은 자신의 방 한쪽에 마련된 냉장고를 열어본다. 그안에 가득한 것은 사각으로 각진 퍽퍽한 휴대식량뿐. 무미 무향 무취로 악명이 높은 휴대식량은 이리엘이 생각해도 간식거리로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엘. 간식거리로 쓸만한 것좀 알려줘.”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한 이리엘은 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엘...?”

-함장실에 준비해놨습니다. 과자와 약간의 달콤한 음료입니다.

이상할 정도의 엘의 대답이 늦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간식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는데에 걸린 시간이라고 생각한 이리엘은 엘의 대답에 의심없이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그리고 엘의 말대로 함장실에 엘이 준비해둔 간식거리를 가져가기 위해 이리엘은 자신의 방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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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탁자에 앉아있던 나는 변함없는 새하얀 휴게실에 질려 작게 하품을 한다.

“이리엘?”

그 순간 방안으로 들어갔던 이리엘이 다시 걸어나온다. 이제야 좀 지루함이 사라질거라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부르지만. 이리엘은 아무말없이 성큼성큼 다른 한쪽문을 향해 걸어갈뿐이었다.

“바쁘나보네...”

“조금만 기다려. 준비해올테니까.”

식탐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나에게 간식은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나를 대접해주려는 생각에 이리저리 바삐움직이는 이리엘을 막아서기는 싫었다. 그녀가 나를 생각해준다는 마음에 조용히 미소지은 나는 그저 눈동자를 굴려가며 이리엘의 움직임을 뒤쫓을 뿐이었다.

기이잉.

그녀가 한쪽 벽으로 다가가 벽에 부착된 작은 스위치를 매만지자 문이 열린다.

“....?”

그 순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 밖에 없었다. 이리엘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안으로 들어가려는 이리엘의 어께 넘어로 그 방안에 마련된 커다란 의자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기이잉.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의 정체를 미처깨닫기도 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이리엘이 방안으로 들어서고 곧이어 문은 자동으로 닫혀버린다.

“뭐지? 방금 그건?”

단순한 착시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이상했다. 말못할 불안감.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순한 기우였을 수도 있지만 일단 확인을 해본다해서 손해볼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리엘이 들어간 문앞에 서서 이리엘이 했던것처럼 스위치를 조작해본다.

“뭐야 이건...”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문은 반응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나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이리엘을 부른다.

“이리엘!! 잠깐 이문좀 열여봐! 뭔가 확인해야할...”

파치치지지직!!

“크아악!!”

하지만 두어번 문을 두드리는 순간. 강렬한 전기 충격이 내 팔을 휘감는다. 예상치 못한 강한 전기공격에 당황한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서 내 팔을 확인해본다.

“....”

시꺼멓게 타버린 팔. 광혈의 저주 덕분에 까맣게 타버린 살점은 떨어져내리고 새살이 빠르게 돋아나고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하고 즉사할만한 강렬한 전압의 전기충격이었다.

-더 이상의 야만적인 행동은 삼가주십시오.

그때 낯선 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진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곳에는 붉은 렌즈를 번뜩이는 작은 소형 카메라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데체 무슨일이지? 이 문을 잠근 것. 네 놈이 한짓이냐?”

허리춤에 매어놨던 검을 꺼내 붉은 렌즈의 카메라를 겨눈 나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하지만 그런 내 외침에 별 느낌도 안받는 다는 듯이 카메라는 느긋하게 렌즈의 배율을 조절하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이리엘님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안에서 무슨일이 벌어지는거야?”

타앙!!

그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방 내부에서 울려퍼진다. 그런 총성에 퍼뜩 놀란 나는 총성이 울려퍼진 방을 바라본다.

“젠장!!”

정체도 모를 놈과 말싸움으로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뭔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나는 다짜고짜 문을 향해 내 검을 힘껏 휘두른다.

“흐읍..!!”

내 검이 문과 격돌하기 일보직전. 내 의식을 집중시켜 거대한 대검의 형상을 떠올린다. 그러자 검을 움켜쥔 손에서 붉은 선혈이 빠져나가며 순식간에 얇은 도검은 묵직하고 거대한 대검으로 그 모습이 변한다.

콰아앙!

가벼운 도검을 휘두른 속도와 거대하게 변한 대검의 묵직한 질량이 합쳐져 거대한 충격량으로 변화한다. 방안의 집기들이 살짝 들썩거릴 정도의 충격에 내 손바닥이 욱씬거리지만 일단 이리엘을 구해야한다는 일념아래 그런 고통은 가뿐하게 삼켜버린다.

“젠장...”

하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충격속에서 문은 박살나지 않았다. 크게 찌그러지고 파손되기는 했지만 문은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내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단순한 물리력으로 부숴질 장갑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끝날떄까지 차분히 기다려

주십시오.

“시끄러!!”

건조한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다시금 내 검을 들어올린다. 한번으로 박살나지않으면 수십번 두드려주면 그만이었다. 일단 문이 타격을 입은 걸 확인한 이상. 내 힘으로 어떻게든 이 문을 박살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흐압..!!”

재수없는 붉은 렌즈의 카메라가 보는 앞에서 나는 다시한번 온몸을 비틀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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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실로 들어온 이리엘은 온몸을 딱딱히 굳힌채 자신의 의자에 앉아있는 낯익은 존재를 바라본다. 이리엘과 닮았지만 살짝은 더 어려보이는 외모. 제멋대로 잘려 엉망이 된 짧은 머리카락이 유독 신경쓰이는 또다른 이리엘이었다.

“엘에게 처리하라고 명했는데...”

“그 처리라는 명령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거든.”

이리엘의 중얼거림에 의자에 앉아있던 이리엘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확실히 현재의 이리엘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있는 또다른 이리엘. 그녀를 마주한 순간 이리엘은 또다른 이리엘이 모든 기억을 되찾은 완전한 이리엘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 우린 초면이지?”

“아니.”

짧은 머리카락의 이리엘의 말에 이리엘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런 그녀의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새로 태어난 이리엘은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만난 적있어. 진짜 이리엘.”

이리엘의 말대로 그녀는 진짜 이리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의 기억이 전부 돌아오는 순간. 심연의 의식속에서 만났던 또다른 자기 자신. 그런 그녀와 대면했던 이리엘은 진짜 이리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흐음...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닌데... 뭐 어찌됬든 그렇다고 해두자.”

하지만 진짜 이리엘은 이리엘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리엘이 경험한 것은 모두 그녀의 심연의 의식 속. 엘에게도 기록되지 않았으며 이리엘 본인이 아닌이상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가뿐한 몸놀림으로 의자에서 내려온 진짜 이리엘은 허리에 매고있는 갈색 가죽띠에서 낯익은 리볼버를 하나꺼낸다. 바로 켈레브라의 영혼이 담겨있는 리볼버. 그런 리볼버가 어째서 진짜 이리엘의 손에 쥐어져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런 이리엘을 앞에 둔 이리엘은 온몸을 긴장시킨다.

“어자피 넌 이제 곧 없어질테니까.”

진짜 이리엘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서린다.

“어째서지?”

하지만 이리엘은 그런 진짜 이리엘의 위협적인 말 앞에서 주눅들지않고 당당히 그 이유에 대해묻는다. 그런 이리엘을 조용히 바라보던 진짜 이리엘은 마치 선심썼다는 듯이 어께를 으쓱거리며 이유를 설명한다.

“규칙이야. 함장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5년에 한번씩 교체가 돼. 신체가 성장하면서 전투효율이 점점 떨어지게 되거든.”

“....”

하지만 그런 대답은 이미 이리엘또한 예상하고 있던 말이었다. 지금 진짜 이리엘의 기억또한 이리엘 머릿속에 심어져있었다. 이 함선에 규정된 규칙또한 하나도 남김없이 속속들이 알고있는 이리엘이었다. 그녀의 질문은 단순한 시간끌기. 자신이 늦게 나오면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타메르가 도우러 와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

“아씨... 뒤지기 일보직전인 놈이 궁금한게 많네. 단순한 빌미야. 이미 엘은 너를 불순물로 의식하고 있어. 괜히 너에게 알렸다가 일이 복잡해지니까. 좋은 기회를 노린거지.”

“그렇다면...”

“시끄럽고. 그냥 뒈져.”

타앙!!

이리엘의 말을 끊은 진짜 이리엘은 예고없이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자 요란한 총성과 함께 기습적으로 날라온 총탄이 이리엘의 어께를 관통한다.

“아윽..!!!”

단순한 권총탄과 다르게 켈레브라의 리볼버는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어께를 관통당했다 생각했지만 총상을 입은 자신의 어께를 감싸쥔 이리엘은 그 생각을 크게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

정제된 화약의 폭발로 만들어진 충격과 강렬한 회전력을 몸에 품은 총탄은 그녀의 어께를 관통했다기보다 그대로 잡아 뜯어버렸다는 표현이 걸맞은 참상을 만들어버렸다. 살점자체가 떨어져나갔는지 감싸쥔 손가락의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핏물. 그리고 감각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팔까지.

“이제 깨달을 수 있겠지? 느긋하게 머리를 굴리면서 여유부릴 시간이 아니야.”

“아...”

강렬한 격통과 함께 끔찍한 자신의 상처를 확인한 이리엘은 눈을 휘둥그레뜬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실실 웃음을 흘리는 진짜 이리엘이 총구를 그녀의 미간에 겨누고 있었다.

콰앙!!

동시에 타메르가 있는 휴게실로 통하는 문이 크게 요동친다. 외벽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비교적 단단한 장갑을 가진 격벽은 쉽게 부서질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리엘의 예상대로 타메르가 자신을 위해 움직여주고는 있지만 그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무리였다.

“걱정마. 저승길 동무로 네 친구들도 다 보내버려줄테니까. 뭐... 사고로 만들어진 너라는 존재가 저승이라는 곳에 갈리는 없겠지만... 혼자 쓸쓸히 사라지는 것보다 좋잖아?”

살짝 우그러진 문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진짜이리엘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다. 그리고 새하얀 연기를 흘리고 있는 리볼버의 총구를 이리엘의 미간에 갔다 덴다.

치이익..

“아... 으으...”

뜨겁게 달아오른 총구가 이리엘의 이마에 닿으며 살이 녹아내리는 소음이 잔잔하게 울려퍼진다. 그러한 고통속에서 이리엘은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리볼버의 방아쇠를 움켜쥐고 있는 진짜 이리엘의 손가락에 의식을 집중할 뿐이었다.

지금 이것은 꿈도... 심연의 의식속의 상황도 아니었다. 이마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화상이 이 모든 것을 현실이라고 그녀를 일꺠워주고 있었다. 저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다는 두려움 앞에 이리엘은 몸을 바들바들떤다. 죽음을 몰랐던 이리엘에게 다가오는 낯선 죽음의 공포는 그녀 나름대로 세워둔 전략과 전술도 흐릿하게 만들어버린다. 새하얗게 텅비어버린 머릿속에서 이리엘은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기만을 기원할뿐이었다.

“겁내지마. 생각이나 감각을 느끼는 뇌자체가 한순간에 사라질테니... 이론상 아프지는 않을꺼야.”

잔인한 미소를 지은 진짜 이리엘은 천천히 방아쇠를 당겨나간다. 조금씩 방아쇠가 뒤로 당겨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리엘의 동공또한 천천히 확대되어가기 시작한다.

“잘가. 너의 추잡한 업보와 같이 사라져버려.”

마지막 한마디와함께 진짜 이리엘은 시원스럽게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찰칵...

“응?”

하지만 공허한 찰칵거림만 들릴 뿐이었다. 진짜 이리엘은 인상을 구기며 두어번 방아쇠를 더 당겨보지만 리볼버 안에서는 힘빠지는 찰칵소리만 들려온다.

“젠장... 정비불량. 망할년.”

빠악!!

인상을 처참하게 구긴 진짜 이리엘은 주저없이 어께를 움켜쥐고 있는 이리엘을 발로 걷어차 버린다. 가슴을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진 이리엘은 짧게 신음을 흘리며 진짜 이리엘을 올려본다.

“네놈은 쓰레기야. 너의 기억을 대충 훑어봤는데 폐기물이라고 표현할 방법밖에 없더라!!”

신경질적으로 켈레브라의 리볼버를 바닥에 내 팽겨친 진짜 이리엘은 씩씩거리며 이리엘을 노려본다. 진짜 이리엘이 집어던진 켈레브라의 리볼버는 이리엘의 발치에 떨어지지만 지금 이리엘은 그 리볼버를 주울 여력이없었다.

“곱게 죽여주려했는데... 마지막까지 정떨어지게 만드네...”

찰칵.

진짜 이리엘은 가죽 허리띠 안쪽에 숨겨진 접이식 단검을 꺼낸다. 휴대용으로 만들어진 접이식 단검이었지만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만큼 그 날은 어떤 검보다도 날카로운 예리함을 품고있었다.

“이 작은 검으로 생명을 빼앗긴 쉽지않거든. 네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 꽤나 고통스러울꺼야...”

잔인한 미소를 지은 진짜 이리엘은 천천히 이리엘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그런 이리엘을 마주 바라보고 있던 이리엘은 어느세 공포에서 벗어나 침착함을 되찾은 후였다. 예상외로 강력한 켈레브라의 총격에 두려움을 떨던것도 잠시뿐. 이성을 되찾은 이리엘은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연다.

“알고 있었어. 이런 상황이 언젠간 나에게 다가 올꺼라는것.”

이리엘의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차분하게 입을 열어간다. 그런 이리엘의 말을 단순한 유언이라 생각한 진짜 이리엘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쓰러져있는 이리엘의 목을 붙잡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단검을 그녀의 몸에 박아넣을 기세로 꽉 움켜쥔다.

“내가... 아무런 대비도 안했을 것 같아?”

번뜩이는 단검의 날을 바라보며 이리엘은 자신의 몸에 올라탄 진짜이리엘을 노려본다. 그런 그녀의 눈을 마주바라보며 진짜 이리엘은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그래봤자 약간의 부비트랩이겠지. 하지만 말이야. 너도 알잖아. 난 죽지않아. 나는 수많은 또다른 내가 준비되어있지만... 너는 지금 너 하나뿐이잖아? 결과는 생각할 필요도 없지.”

푸욱!!

“카흑...!!”

날카로운 단검이 이리엘의 오른쪽 가슴 아랫부분을 찌른다. 날카로운 단검의 날은 단숨에 그녀의 폐를 관통해버린다.

“무슨 수를 쓰던... 아무것도 나에게 위협이 되지않아.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의 고통이나 즐기라고..”

파악!

단검이 빠져나오자 이리엘의 가슴에서 그녀가 숨을 들이킬때마다 붉은 핏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구멍이난 폐속에 핏물이 가득차오르기 시작하며 이리엘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위협이 될꺼야...”

자신을 비웃는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이리엘은 새파랗게 질려가는 얼굴로 대답한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작은 스위치가 달린 신호기가 쥐어져있었다.

“내가 없에는것은... 진짜 너니까.”

“무슨 개소리야? 기록저장코어를 말하는것 같은데... 그것은 이 함선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있어. 그걸 너가 건들 수는 없다고.”

“.....”

이리엘은 아무 대답없이 보란듯이 진짜 이리엘이 보는 앞에서 신호기의 스위치를 누른다.

쿠웅...

고요하고 낮은 충격음이 선체를 뒤흔든다. 뭔가 폭발했음을 직감한 진짜 이리엘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본다.

“너는 궁금해하지 않아하더라... 무한히 반복되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게 무슨소리야?”

이리엘은 가볍게 기침을 하여 목에 고여가는 핏물을 뱉어내며 말한다.

“기곗덩어리에 자신의 기억을 담아둔채 몸을 바꿔가며 사는 삶. 비정상적이잖아. 너는 그 사실에 대해 한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어.”

“엘!!!”

뭔가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낀 진짜 이리엘은 황급히 이 함선 전체를 책임지는 엘을 호출한다. 그런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듯 엘의 목소리가 침착하게 방안에 울려퍼진다.

-무슨일입니까? 이리엘님.

“방금전 폭음의 정체는? 그리고 그에 대한 피해!”

엘에게 명령하는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이리엘은 힘없이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한다.

“기억 저장장치... 숨겨져있지는 않았어. 오히려 찾아달라는 듯이 클론 생산소 한가운데에 서 있었어. 마치 누군가 파괴해달라기를 바라는 듯이...”

-기억저장장치 파손률 89% 저장장치로의 기능 소실. 담겨진 모든 정보는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

엘의 말에 진짜 이리엘의 몸이 딱딱히 굳는다.

“거... 거짓말...”

“난 궁금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웅얼거리는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이리엘은 입안에 고여가는 핏물을 삼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는다.

“지금의 너가 진짜야? 아니면 방금 사라진 너가 진짜야?”

“나... 나는...”

진짜 이리엘은 이리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이리엘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내가 진짜야.”

그런 이리엘의 손에 방금전 진짜 이리엘이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진 켈레브라의 리볼버가 쥐어져있었다.

타앙!!

곧이어 요란한 총성이 작은 방안을 뒤흔든다.

========== 작품 후기 ==========

봉식이의 대출노트 / 도플갱어덮밥?! 사.. 상상도하지 못했던 물건인데?!

sereson / 으잌ㅋㅋ 제 평소이미지가 어때서요 ;ㅅ; 전 건전합니다.

자사팍 /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도플갱어 덮밥이 아니라... 더 깜찍한것을 준비해놨습니다.

실버링나이트 / 이리엘과 이리엘이 싸우면 이리엘이 이기죠.

참 힘드네요.

똑같지만 다른 성격의 두존재를 표현한다는 것이.

그래서 깔끔하게 한화로 이야기를 끝내버림니다.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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