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220화 (220/298)

220편

<-- 데이트 -->

“싫어... 싫어... 거짓말.. 이건 아니야...”

배를 감싸쥔 이리엘이 눈물을 흘리며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의 상처를 감싸안아보지만 그녀의 복부를 꿰뚫은 깊은 총상은 매정할 정도로 그녀의 몸안에 담긴 생명을 밖으로 게워내고 있을뿐이었다.

“콜록.. 콜록..”

쓰러진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리볼버를 손에 쥔 이리엘이 피가섞인 기침을 하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이리엘을 올려다보는 진짜 이리엘은 주저앉은채 그녀를 향해 팔을 내밀며 묻는다.

“거짓말이지? 응..? 거짓말이지? 내가 사라질 리가 없잖아...”

“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이리엘은 흘끗 붉은 렌즈를 번뜩이는 엘의 카메라를 바라본다. 녀석은 지금 함장의 자리를 맡고있는 진짜 이리엘이 죽어가는 상황속에서 그저 조용히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을뿐이었다.

“죽는거야? 나 죽는거야? 사라져버리는 거냐고... 또다른 내가 나를 대신하지 않는거야?”

“이제 너는 없어. 그리고...”

조용히 진짜 이리엘을 내려다보던 이리엘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한다.

“죽는거... 익숙하잖아.”

그녀의 말대로였다. 죽는것은 익숙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수천번? 수만번? 셀수도 없을정도로 죽어왔다. 하지만 그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자신을 대신할 완벽히 똑같은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싫어... 싫어!! 사라지기 싫어... 살려줘... 살려줘 이리엘!!”

그녀는 애원하기 시작한다. 피가 샘솟는 자신의 복부를 움켜쥔채 마지막 지푸라기도 잡겠다는 듯이 엉금엉금 기어 이리엘쪽으로 다가온다.

“너는.. 너는 나잖아.. 내가 지금 느끼는 공포... 두려움... 그 이유를 다 알잖아!!”

“미안해...”

그런 진짜 이리엘을 바라보며 이리엘은 작게 사과한다.

“말했잖아. 난 너가 초면이 아니라고.”

“그... 그게 무슨...”

감정변화가 없는 이리엘의 얼굴에 슬픔의 감정이 떠오른다. 아무리 그녀라고해도 또다른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에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너를 한번 만났어. 그리고...”

“...죽였어?”

진짜 이리엘이 이리엘의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이리엘은 그저 침묵으로 대답할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매정한 대답에 진짜 이리엘의 마지막 희망이 꺽인다. 이리엘을 향해 내뻗었던 그녀의 팔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마지막 그녀의 슬픔이 섞인 울음소리가 고요히 울려퍼질뿐이었다.

“....”

그런 진짜 이리엘을 앞에두고 그녀에게 다가간 이리엘은 자세를 낮춘다.

“으윽...”

그녀 몸또한 망신창이였지만 지금 또다른 자신인 진짜 이리엘을 내버려둘수는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온몸을 둥글게 웅크린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삶을 연명하기 위해 서글플 정도로 안간힘을 쓰는 이리엘의 볼을 쓰다듬는다.

“괜찮아... 이리엘.”

이리엘의 목소리에서 전에 없던 따듯한 온기가 묻어나온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 또다른 자신이지만 불행하게 엇갈려버린 진짜 이리엘을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너는 사라지지 않아. 너는 나야. 내가 너를 기억할게. 내 숨이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나... 나를 기억해주는거야?”

“응.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이제 기곗덩어리 속이 아닌... 내 가슴속에 너를 남길테니까.”

“이... 이리엘... 나는 사라지지 않는거야?”

마치 위로하듯 조용히 진짜 이리엘의 볼을 쓰다듬는 이리엘. 그런 그녀의 얼굴에 따듯한 미소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라져도... 나와 같이 사라질꺼야. 외롭지않게...”

“이리엘!!”

따듯한 한마디에 진짜 이리엘은 마지막 사력을 짜내듯 이리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목을 감싸안는다.

“잊지말아줘... 나.. 나 절대로 잊지말아줘!! 사과할게... 내가 한말 전부다 사과할테니까... 나 절대 잊으면 안돼!!”

격한 움직임에 구멍뚤린 그녀의 복부에서의 출혈이 격해진다. 동시에 빠른속도로 진짜 이리엘의 몸이 죽어간다. 그 사실을 알고있는 이리엘이었지만 진짜 이리엘의 행동을 제지하지않고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뿐이다.

“이리엘... 제발.. 날 잊지마. 응? 약속해줘... 날 잊지않는다고..”

점점 진짜 이리엘의 목소리가 옅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부탁에 이리엘은 아무말없이 조용히 그녀의 등을 토닥일뿐이었다. 얼마가지않아 이리엘의 몸을 감싸안은 진짜 이리엘의 몸에 힘이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울먹이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고 숨소리가 천천히 옅어진다. 곧이어 마지막 남은 생명을 내뱉듯 작게 딸꾹질을 한 진짜 이리엘은 이리엘의 몸에 온몸을 기댄채 축 늘어져버린다.

“....”

손끝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던 심장박동이 천천히 잦아든 것을 확인한 이리엘은 자신의 몸에 엉겨붙어있는 진짜 이리엘의 몸을 옆으로 밀쳐낸다. 이리엘의 팔에 밀려 진짜 이리엘의 시체는 초라할 정도로 쓸쓸하게 함장실 바닥을 나뒹군다. 그런 시체를 바라보던 이리엘은 피곤하다는 듯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엘. 전에 개발한 응급치료도구를 가져와줘.”

-알겠습니다. 이리엘님.

이리엘의 지시에 엘은 고분고분하게 그녀의 말에 따라 치료도구가 들어있는 상자를 기계팔로 옮겨나간다. 자신의 상처를 꽉 눌러 지혈을 하고있던 이리엘은 붉은 렌즈를 번뜩이는 엘을 바라보며 묻는다.

“왜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거야?”

-저는 규칙대로 시행했을뿐입니다.

“규칙정도야 나는 알고 있어. 하지만 그녀를 도와주지 않을 이유는 없는데?”

-차원 구축함 디에그 대그 한정 특정 규정 제 0항이 있습니다.

“....?”

이리엘은 엘의 말에 머릿속을 뒤져본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규정은 1항부터 시작되었다. 즉 0항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리엘이 기억 저장장치를 파괴할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파괴한 이리엘에게 모든 함선의 제어권과 자유의사를 부여한다.

곧이어 엘은 알려지지 않은 0항에 대한 설명을 이어준다. 그 규칙을 들은 이리엘은 쓰러져 차갑게 식어가는 진정한 이리엘의 모습을 고요히 내려볼 뿐이었다.

콰득... 콰드득..

“이.. 망할... 문같으니라고!!”

그때 이리엘이 이방으로 들어왔던 문틈사이로 날카로운 검이 박혀들어오며 낑낑거리는 타메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리엘은 문틈사이로 끼어넣은 혈검을 이리저리 비틀어 억지로 문을 열어가는 타메르를 조용히 돌아본다.

“자유의사...”

-이제 이리엘님은 모든 임무에서 해방됩니다. 원래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이리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도 모두 이리엘님의 의사에 따르겠습니다.

“....”

이리엘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엘의 말을 이해했다는 제스처를 취해보일뿐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콰앙!!

곧이어 짧은 욕설과 함께 이리저리 험하게 망가진 문이 타메르의 발길질에 의해 튕겨나와 바닥을 나뒹군다. 간신히 방안으로 들어온 타메르는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다 방 한가운데에 피를 흘리며 서있는 이리엘을 발견한다.

“이리엘!! 괜찮은거야?!”

타메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이리엘에게 달려온다. 그런 타메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이리엘은 헐레벌떡 달려온 타메르가 자신의 앞까지 당도하자 아무말없이 팔을 벌려 그런 타메르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이... 이리엘?”

그런 이리엘의 행동에 타메르는 살짝 놀란 얼굴빛을 띄우지만 방안에 놓여진 싸늘한 시체를 보며 아무말없이 자신을 끌어안은 이리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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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무슨일이 벌어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리엘또한 방안에서 일어난 일을 나에게 말해주기 꺼려하고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왠지 피로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리엘에게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을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아무말없이 그녀가 따로 마련해둔 낯선 응급치료물품을 사용해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

그런 내 시야에 유독 눈에 띄이는 시체 한구. 그 시체는 이리엘과 쌍둥이처럼 빼닮아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리엘보다 조금은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두렵지 않은지 편안한 얼굴로 숨이 멎어있었다.

“미안해. 괜히 걱정시켜서.”

이리엘의 말을 들으며 그녀의 가슴과 어께에 새겨진 끔찍한 상처에 스프레이형 약물을 뿌린다. 세포 재생제라는 이리엘의 설명대로 상처에 스프레이를 뿌리자 찢어진 근육이나 부러진 뼈, 신경등이 빠른속도로 되살아나고있었다.

“데이트... 실패했네.”

이리엘은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데이트를 생각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짓는다.

“이런 문제가 생길거라고... 너도 예상한건 아니잖아?”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는 어께의 상처를 바라보며 나는 붕대를 하나 준비한다. 아무리 빨리 회복이 된다해도 예쩐처럼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 신경계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정되어야한다는 이리엘의 설명이었다.

나는 천천히 이리엘의 옷을 찢어낸다. 불행히도 한쪽 어께를 움직일 수 없는 이리엘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녀가 입고있는 티셔츠가 찢어지며 새하얀 그녀의 살결과 살짝 봉긋해진 그녀의 가슴이 들어난다. 하지만 이리엘은 별로 부끄럽지 않은지 자신의 가슴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조용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데이트야 나중에 언제라도 할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그녀의 어께에 조심스럽게 붕대를 매어가기 시작한다. 두세번 붕대를 둘둘 매어 그녀의 어께를 단단히 감싸맨 뒤 그녀의 가슴위로 붕대를 크게 둘러 그녀의 어께를 고정시킨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가슴 아래에 새겨진 검상이 치료된 것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됐어. 이걸로 치료는 끝났어.”

“끝?”

“응. 이제 좀만 쉬면 괜찮아질꺼야.”

끝났다는 말에 이리엘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어께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바라본다. 그런 이리엘로부터 관심을 끊고 나는 바닥에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이리엘과 비슷한 외모의 여자아이를 바라본다.

“저 아이가 이 소란의 원흉이야?”

“응.”

이리엘의 응급조치가 끝나자 나는 조심스럽게 쓰러져있는 소녀에게 다가가본다. 이목구비나 아담한 체형. 전부 이리엘과 닮았다.

“이 녀석의 정체는 뭐야?”

“나야.”

“너?”

이리엘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한다. 그런 그녀의 대답에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지만 이리엘은 나에게 모든 진실을 말해줄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타메르에게 부탁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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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리엘의 시체는 이리엘의 부탁대로 타메르가 가지고 나갔다. 고정된 어께 때문에 상의를 입을 수 없었던 이리엘은 타메르가 부탁한 일을 해올때까지 함선에 기다리기로 했다. 홀로 함장실에 서있는 이리엘은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을 돌아본다.

-함장실을 세척할까요?

“아니. 내가 직접할게.”

주변을 둘러보던 이리엘은 일단 조금 쉬고싶은지 힘없이 함장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는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이리엘은 작게 한숨을 뱉으며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된 자신의 과거 기억을 뒤진다.

“나는 진화의 이리엘...”

그녀의 말과 다르게 자신은 진화와 거리가 멀었다. 변함없이 일관된 생각과 개념, 가치관과 감정을 차가운 강철상자에 담은채 똑같은 형태의 몸으로 매일 몸을 바꾸는 것이 바로 이리엘이라는 존재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은 인형.

“하지만... 이제 모두 끝났어.”

이리엘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기억 저장장치의 파괴.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하지만 파괴되기전 그녀는 한번 직접 대면해보고 싶었다. 바로 과거 진정한 이리엘이라는 존재를...

하지만 그런 만남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진짜 이리엘은 자신의 상황에 아무런 의심을 품고있지 않았다. 진화라는 이름이 무색하도록 그녀는 그저 현실을 당연시 여기며 변화없는 삶을 추구해오고 있을 뿐이었다.

-축하합니다. 이리엘님.

그런 그녀를 무끄럼히 바라보던 엘은 아무말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를 축하한다. 그런 엘의 축하에 여러 뜻이 담겨있지만 이리엘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해줄뿐이었다.

========== 작품 후기 ==========

dgfdgzvc / 훨씬더 파탄적인 성격을 만드려고했는데...

abcbbq / 엌ㅋㅋ 해봤습니다. 로터스. 간지가 뻥뻥 터지더라구요. 난이도도 어려워지고...

자사팍 / 그렇죠. 우린 모두 건전합니다. 건전해야죠.ㅋㅋㅋ

sereson / 클론들은 모두 이리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사용될것입니다.

火炎無 / 으흐흐흐... 기대하지않으시는게... 나름 노력해보겠지만요..

이리엘도 정리해야하고..

리니아도 정리해야하고..

리엔도 정리해야하고..

키르비르는 흥하게 해야하고..

로터스는 더 멋있게 리메이크됬고...

하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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