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편
<-- 클론 -->
고급스러운 목재로 된 테이블에 양 다리를 올려둔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는 에페리아는 자신의 얼굴을 책으로 덮어두고 잠에 빠져있었다.
“에페리아님.”
그런 그녀의 등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레오는 그녀를 부른다. 레오의 부름에 에페리아는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책을 슬쩍 들어올려 레오를 바라본다.
“타이 클론들은 어떻게 할까요?”
“상태는 어때?”
“본래 타이의 기량의 약 60%입니다만...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점점 더 완벽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한계가 보이고 있습니다.”
“흐으음...”
에페리아는 피곤한듯 늘어지는 콧소리를 흘리며 살짝 들어올렸던 책을 다시 얼굴에 덮는다.
“어떻게 할까요?”
“보내. 고작 그 정도로는 도움도 되지 않아.”
“보... 보낸다니요?”
에페리아의 말을 이해못한 레오는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묻는다. 그러자 에페리아는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쉰다.
“대륙으로... 타이의 차원이동 디바이스 위치를 추적해서 그쪽으로 절반의 인원을 보내.”
“임무는 뭘로 할까요? 말살인가요?”
“아니. 목표는 타이를 제거 및 표본 확보야. 그 이상의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도록.”
에페리아의 말을 이해못한 레오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자 작게 한숨을 내쉰 에페리아는 말을 이어나간다.
“검은 발톱의 움직임으로 대륙을 향한 관심이 모여지고 있어. 큰 사건은 자제하는게 좋아.”
“알겠습니다.”
조용한 레오의 대답을 들으며 잠시 침묵을 지킨 에페리아는 책상위에 올려뒀던 다리를 내려두며 얼굴을 덮고있던 책을 내려둔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위에 그녀의 발자국이 남은 서류를 한번 쓰윽 훓어본 뒤 입을 연다.
“그리고 이제 진짜 타이는 필요없어. 그녀는 노후된 디바이스의 오류로 차원이동 중에 연락두절. 임무중 실종처리하면 돼.”
“지금 클론들로 그녀를 제거하는데 충분할까요?”
레오의 질문에 에페리아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를 돌아본다.
“지금은 무리겠지. 하지만 거기에 타이가 있는 이상 클론들은 계속해서 성장할꺼야. 그렇게 성장한 클론을 하나라도 회수하면... 우리의 목적은 거의 달성된 셈이야.”
에페리아의 말에 레오는 머리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대규모 차원이동 준비를 하겠습니다.”
“응. 차원이동 관리국엔 대량의 실험 폐기물 전송이라고 말해.”
“알겠습니다.”
레오는 크게 허리를 숙여 에페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홀로남은 에페리아는 책상위에 올려둔 서류를 뒤적거린다.
“계산대로라면... 클론들의 압도적인 승리겠지. 하지만 변수가 하나 있어.”
서류를 뒤적거리던 에페리아는 먼지에 뒤덮힌 낡은 서류를 하나 찾아낸다. 그 서류에는 거대한 괴물이 그려져있었다. 7개의 눈동자를 가진 괴물의 그림을 조용히 내려보던 에페리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로터스. 너의 진짜 본심을 확인해볼 좋은 기회야.”
콰직...
그녀의 손안에 괴물이 그려진 서류가 처참하게 구져버린다.
“너가 마계의 편인지... 아니면 마계를 배신했는지...”
손안에 구겨진 서류를 내려보던 에페리아는 에페리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뭐... 솔직히 배신해줬으면 좋겠어. 복잡하게 앞뒤 생각하고 계획을 짤 필요 없이 전부 쓸어버리게”
구겨진 서류를 휴지통에 툭 던져넣는 에페리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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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비르와 이리엘 사이에 작지않은 사건이 있은 몇일 후. 이리엘의 태도가 묘하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연인지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 복도에서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나 있었다.
“.....”
거기다 매일 아침부터 느껴지는 인기척. 처음에는 그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정오가 지나자 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리엘?”
짐작이 맞았는지 내 부름에 복도 한쪽 귀퉁이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뭔가 불안하기는 했지만... 특별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키르비르의 예상이 맞다면... 이리엘이 내 마음을 얻기 위해 무슨짓을 한다는건데...”
키르비르가 해준 충고를 떠올린 나는 볼을 긁적거린다. 누군가 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상황에 대한 어색함에 그저 작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타이는 이제 곧 일어나겠고... 훈련도 미묘하게 효과가 있는것 같아.”
나는 매일매일 시란에게 훈련을 받고있다. 눈에 띌정도로 커다란 변화는 없었지만 내 몸의 감각이 점점 예민해진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방금전 이리엘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훈련의 한 성과중 하나이다.
쏟아지는 시란의 날카로운 검격에도 적응되었고 전보다 더 예리하고 부드럽게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변화. 내 스스로 말하기도 웃기지만 검을 휘두르는 전략이란 것을 생각할 수 있게되었다.
옛날같으면 그저 단순무식하게 가장 큰 동선과 파괴력으로 검을 휘둘러나갈뿐이었다. 상대가 검술이라는 것을 써봤자 그저 힘과 무게로 짓누르는 것.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검의 전부였다.
하지만 시란에게 배우는 지금. 아무리 화려하고 요란한 검술이라도 틈이 있고 그 틈을 찌른다면 너무나도 손쉽게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내가 강해지고 있긴했다. 하지만 그 성장력이 너무나도 느렸다. 아무리 현란한 검술을 쓴다해도 세계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에페리아의 힘에 이겨낼 수 있으리가 없었다.
“키르비르가 말한대로 타이처럼 나의 길이란 것을 찾는다면...”
해야할 것은 알겠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길이란게 대체 무엇일까. 나의 힘이란게 대체 무엇일까. 그에 대한 실마리조차도 잡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음...?”
그때 등뒤에서 또다른 인기척이 느껴진다. 이리엘이 아닌 또다른 인기척. 하지만 낯익은 인기척이었다. 나는 별 경계없이 인기척이 느껴지는 등뒤를 돌아본다.
“누구...”
촤악!!!
“....?!”
등뒤를 돌아보는 순간. 내 가슴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검광. 살이 갈라지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뜨거운 핏물이 울컥 샘솟는다. 허공으로 치솟아오르는 붉은 혈흔 사이에서 나는 나에게 검격을 날린 존재를 바라본다.
“타...이?!”
생기가 없는 공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타이. 그녀는 크게 횡으로벤 검을 회수하여 검끝을 나를 향해 겨눈다.
“큭!!!”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검에 베어진 가슴을 움켜쥐고 몸을 비틀어 날카롭게 찔러오는 타이의 검을 피해낸다.
“젠장...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내 목숨을 노렸다는 듯이 가슴을 가로지르는 검상은 꽤나 깊었다. 다행히 광혈의 저주로 갈라진 살은 빠르게 이어지며 흉한 검상은 빠르게 재생되어간다. 순식간에 출혈이 멈추자 가슴에서 손을 뗀 나는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른 타이를 노려본다.
“나를... 죽여야해. 나를 모두 없에야해!!”
그녀는 뭔가 정상이 아니었다. 극심한 공황장애가 오는 듯 텅빈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곧이어 나를 향해 날카롭게 검을 세운 타이는 다짜고짜 나를 향해 달려든다.
“큭...!!”
순간 검을 움켜쥐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서 검을 휘두르지 못한다. 다행히 시란과의 훈련으로 날카로워진 감각은 그녀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가볍게 몸을 비틀어 그녀의 투박한 검격을 전부 피해낸 나는 다시금 타이와 거리를 벌린다.
“정신차려!!”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그녀를 향해 소리쳐보지만 타이는 나와의 대화를 완벽히 단절한듯 흐릿한 눈으로 나를 직시하며 양손으로 검을 말아쥐고 천천히 다가선다.
“젠장...”
처음에는 불안한 자세였지만... 어느세 그녀의 자세는 빠른 속도로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어설프게 쥐고있던 혈검또한 양손으로 단단히 말아쥔 그녀는 조금은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으며 나를 바라본다.
“으아아아아!!”
그녀는 거의 괴성과도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든다. 급소를 노리는 살의가 담긴 일격. 계속 도망치거나 피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허리춤에 매어둔 혈검을 꺼내든다.
카앙!
“읏?!”
하지만 내가 검을 꺼내드려는 순간. 내 앞을 가로막는 새하얀 그림자. 순백의 신관복을 펄럭이는 리엔이었다. 그녀의 관자놀이에는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새하얀 건틀렛으로 티에르의 혈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리엔... 너?!”
“방해하지맛!!!”
타이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지 자신의 혈검을 비틀어 리엔의 건틀릿째로 그녀의 손가락을 베어내려한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단단히 움켜쥐어진 혈검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밖에는 없네요!!”
타이를 제압하려는지 리엔은 뒤로 힘껏 팔을 당긴다. 혈검이 붙잡힌 타이가 도망칠 곳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능력이 발휘되어버린다.
스으윽..
“아?!”
리엔의 손안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려버리는 혈검. 핏물로 변해버린 혈검은 리엔의 손가락사이로 새어나와버린다. 그런 낯선 광경이 처음이었던 리엔이 당황한다.
“죽어어어!!”
촤악!
리엔의 손가락 사이에서 새어나온 핏물은 눈깜짝할 사이에 허공에서 단단히 경화되어 날카로운 혈검의 모습을 되찾는다. 곧이어 그런 혈검이 만들어내는 붉은 검광이 리엔의 몸을 가로지른다.
“리엔!!”
“괘.. 괜찮아요!”
리엔은 잘려진 옷자락을 움켜쥐며 뒤로 두어걸음 물러선다. 잘려진 새하얀 신관복에 혈흔이 베어나오기는 했지만 그 양이 미미했다. 다행히도 치명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나는 부상을 입은 리엔을 내 등뒤로 숨기며 타이를 향해 검끝을 겨눈다.
“도데체 어떻게 된거야?”
“타이씨가 깨어나자마자... 발작같은 걸 해버려가지고...”
“발작?”
무슨 큰 일을 겪었던 걸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생기가 없고 공허했다. 거기다 기절의 후유증도 천천히 벗어나가는 상황. 그녀의 검은 더욱 날카롭고 매서워지기 시작한다. 큰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지금 타이의 의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녀를 제압해야만 했다.
“사과는 나중에 할께!”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켜준 후. 검을 말아쥐고 타이를 향해 달려든다. 시란의 힘까지 빌려 그녀와 싸워봤지만 이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에 희망을 품은 나는 그녀에게 달려든다.
카가각!!
“흐엇?!”
하지만 처음으로 그녀와 검이 격돌하는 순간. 타이는 기묘한 손놀림으로 부드럽게 내 검을 미끄러뜨린다.
촤악!
“큿?!”
동시에 그녀의 혈검의 손잡이 부분이 녹아내리며 날카로운 검날을 형성한다. 내 검을 옆으로 미끄러뜨림과 동시에 손잡이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검날이 내 얼굴을 향해 쇄도해온다. 뒤늦게 얼굴을 뒤로 당겨보지만 날카로운 검날이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젠장...”
한수라도 봐주는게 없었다. 지금 이게 단순한 대련이 아닌 실전이라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단 한번의 격돌로 전의를 상실해버린다. 나와 다르게 마치 혈검의 신체의 일부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는 타이. 아무리 빈틈을 노린다고해도 기상천외하게 변형되는 혈검은 그런 빈틈을 깔끔하게 매워버린다.
“죽어어!!!”
그러나 타이는 숨돌릴 틈도 없이 내 목숨을 끊어버리려는 듯이 악착같이 달려든다. 두 걸음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크게 검을 휘두르는 타이. 검이 닿지 않을 거리임이 분명했지만 긴장을 풀수는 없었다.
촤악!
역시나 검의 길이가 늘어나는 혈검. 이미 예상했던 나는 검으로 길이가 늘어난 혈검을 막아내지만 혈검에는 강한 힘이 담겨져있지않았다.
“미끼인가?!”
내가 그녀의 혈검을 막아낸 사이 급격히 거리를 좁혀오는 타이. 그녀는 다른 한손에 작고 날카로운 단검을 만들어낸다. 단검의 검끝은 정확히 내 목.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푸욱!
단검이 내 목을 찌르기 전. 나는 무모하게 맨손으로 그녀의 단검을 막아선다. 날카로운 단검은 내 살과 뼈를 손쉽게 꿰뚫고 내 손등으로 튀어나온 붉은 날을 자랑한다.
“죽어... 죽으라고!!”
타이는 내 손을 관통한 단검을 힘껏 밀어 그대로 내 목을 찔러버리려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주어 타이의 완력에 저항한다. 하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검끝은 천천히 내 목언저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크으으...”
예상을 뛰어넘는 완력이었다. 나에 비해 호리호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광혈의 저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타이는 나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단검을 피해 몸을 뒤로 뺀다면 내가 막고있는 타이의 장검이 자세가 흩으러진 내 목을 기다렸다는 듯이 베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가는 단검에 의해 목이 꿰뚫릴 상황이었다.
타앙!
그때. 매마른 총성이 울려퍼진다. 곧이어 눈을 휘둥그레 뜨는 타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떨궈 자신의 몸을 내려본다. 가슴아래 명치가 있는 부분에 새겨진 총상. 그런 총상에서부터 두꺼운 고무탄이 툭하고 떨어져나온다.
“카.. 하윽..”
숨을 제대로 쉴수 없었던 타이는 입을 벙긋거린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빠르게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리엘?!”
나는 황급히 총성이 들린 곳을 바라본다. 복도 끝. 앉은 자세로 기다란 소총을 조준하고 있던 이리엘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소총을 어께에 짊어진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으로 작은 브이자를 그려보인다.
스륵..
곧이어 숨을 쉴수 없었던 타이는 입을 벙긋거리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린다. 손에 박힌 단검을 빼낸 나는 황급히 타이의 몸상태를 확인해본다. 다행히도 아주 잠시동안 호흡 곤란일뿐이었다.
“일단 타이의 몸을 구속해야해.”
타이가 쓰러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키르비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내 바로옆에 자리잡은채 쓰러진 타이의 몸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너... 너는 언제부터?”
“너가 타이와 피터지게 싸우기 시작할때부터 왔었어.”
타이에게 감각을 집중시켰던 덕분에 키르비르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던것 같았다. 이곳저곳 타이의 몸을 살펴보던 키르비르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한다.
“너무 강한 정신적 충격에 의한 공황상태야. 도데체 이 녀석은 뭘 경험한거야?”
쓰러진 타이는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에서도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굴려 불안하게 사방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 타이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키르비르는 간단한 마법으로 타이의 팔과 다리를 묶는 족쇄를 만든다.
“치료할 수 있어?”
“약간의 휴식이면 돼. 타이도 정신력이 강한 녀석이니까 금방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꺼야.”
“주.. 죽여야해... 나.. 나를 죽여야해...”
시간이 지나자 명치에 가해진 충격이 사라지기 시작하는지 타이는 힘겹게 단어를 내뱉기 시작한다. 그런 타이의 말에 키르비르는 가볍게 인상을 찡그린다. “자기 자신을 죽여야한다고? 이건 무슨 소리야 대체...”
“타이를 정신차리게 만든다면 스스로 설명해주겠지. 이 녀석 어디로 옮길까?”
나는 쓰러진 타이를 들쳐매고 키르비르에게 묻는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키르비르
는 자신의 방을 가리킨다. 그런 그녀의 뜻에 따라 타이를 들쳐맨 나는 그녀의 방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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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는 키르비르에게 맡겨두고 나는 원래 일정대로 공터로 나와 샤란과 티에르를 만난다. 먼저 공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샤란과 티에르는 나를 만나자마자 방금전 소란에 대해 물었다.
“뭐... 타이가 일어났는데 조금 문제가 있어서...”
“발작같은건가?”
내 말에 시란은 조용히 머리를 끄덕인다. 그녀도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있었던 것 같았다. 별 큰 문제 없이 내가 돌아온것을 확인한 나는 일이 잘 처리됬다고 짐작하고 훈련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오늘은 좀 특별한 훈련을 할꺼야.”
시란은 자신의 검을 허공에 흔들어보이며 중얼거린다. 그런 그녀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바로옆에 있는 티에르. 그녀는 뭐가 그리 긴장되는지 가슴에 손을 얹은채 힘겹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오늘 훈련은 바로...”
말끝을 흐린 시란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검을 긴장하고 있는 티에르에게 휙 던져버린다. 그러자 양손으로 어설프게 시란의 검을 잡아낸 티에르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외친다.
“타... 타메르씨! 대련 해주세요!”
“대련?”
-응. 티에르의 몸도 회복됬으니. 가볍게 워밍업좀 하자고.
내 중얼거림에 대답해주는 것은 다름아닌 티에르의 어께에 작은 요정의 모습으로 걸터앉아있는 시란이었다. 그녀는 재미있겠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티에르와 대련이라...”
-너가 혼자 훈련하는 모습을 봤는데... 티에르도 비슷한 기술을 쓰거든.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티에르도?”
시란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란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시란은 티에르에게 뭐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그러자 내 앞으로 걸어나온 티에르는 불안한 눈으로 시란의 요도의 검끝을 나를 향해 겨눈다.
-자자... 준비해. 갈테니까!
시란의 말과 함께 그녀의 형체가 흐려지며 시란의 검을 쥐고있는 티에르의 팔에 스며든다. 그러자 그녀의 팔이 푸른 기운에 휩싸이며 검게 변색된다. 아마도 그녀의 팔에 시란이 서린것같았다. 전문적인 용어로 빙의라고 했던가? 나도 경험해본 일이었다.
“오케이. 준비됬어!”
티에르가 보여줄 그녀만의 기술이라는 것을 기대하며 나는 내 검을 양손으로 감싸쥔다. 내가 준비됬다는 신호를 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킨 티에르는 나를 향해 달려온다.
“으야아아아앗!!”
멍청하고 지조없는 기합이었지만 시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그녀의 팔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검술을 구현한다.
“훗...!!”
가볍게 숨을 들이킨 나는 나를 향해 쇄도해오는 날카로운 검격의 궤적을 뒤쫓는다. 그녀와의 대련경험으로 날카로운 검격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다. 평소와 다를 바없이 침착한 눈으로 그녀의 검을 쫓으며 하나하나 걷어낸다.
이번엔 티에르를 대련시키려는지 시란의 검격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그런 시란의 검격을 손쉽게 걷어내며 티에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다른 팔에 집중한다.
“저... 저도 갈께요!”
곧이어 티에르의 신호와 함께 그녀의 다른 팔이 움직인다. 아무것도 없는 그녀의 손은 무식하게 나를 향해 휘둘러온다. 단순한 주먹질이라고 생각한 나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 그녀의 주먹을 피해내려한다.
촤악!
하지만 그순간. 아무것도 쥐어져있지 않던 그녀의 손에 변화가일어난다. 붉은 문양이 떠오르며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붉은 핏물이 치솟아오른다. 그리고 그런 핏물은 시란과 비슷한 검을 만들어낸다.
“우... 우왓!!”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혈검은 내 콧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이건... 혈검?”
-서프라이즈~
시란을 즐겁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놀린다. 나는 콧끝이 베어 맺힌 핏물을 닦아내며 티에르의 손에 쥐어진 혈검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혈검을 비교해본다.
“저건...”
뭐랄까... 그녀의 혈검은 조금 탁했다. 내 혈검같은 경우는 진한 선홍빛이 가득했지만 티에르의 혈검은 검은 얼룩이 묻어있는 것처럼 탁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재미있는데?”
-자자. 이젠 본격적으로 붙어보자고.
하지만 그런 혈검의 차이는 단순히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 나는 티에르를 향해 검끝을 겨눈다. 티에르는 이도류. 정확히 우측은 시란이 제어하고 좌측은 티에르가 제어하는 현실이었다. 1:2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니다요!!”
티에르의 신호와 함께 그녀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그녀의 양손은 현란하게 움직이며 서로 다른 검술을 구현한다.
“큿...!!”
시란은 빠르고 날카로운 검격을. 티에르는 느리지만 강한힘이 서린 공격을. 오랜시간 같이 싸워온듯 그녀들의 검격은 서로 방해되지 않는 각도에서 교묘하게 나를 괴롭혀온다.
카앙!!
“웃...!!”
익숙한 시란의 검격을 쳐내는 것은 어렵지않았다. 하지만 시란의 검격을 쳐낸뒤 티에르의 검격을 쳐내려하면 예상외로 강한 힘에 내 자세가 흩으러져버린다.
-귀영베기!
힘에 밀린 내 자세가 흩으러지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을 시란의 섬광같은 공격이 터져나온다. 마치 귀신의 그림자를 쫓듯 그녀의 검은 평소와 다르게 배는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들어온다.
“우왓!!”
카앙!!
검을 비틀어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검격을 옆으로 쳐내지만.
“마... 막으세요!!”
곧이어 티에르의 검이 내 정수리를 향해 직격으로 내려꽂혀온다. 척봐도 어마어마한 힘이 서린 일격필살의 공격. 입술을 잘근깨문 나는 내 검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며 검을 변형시킨다.
콰앙!!
“꺄아앗!!”
얇은 세검은 순식간에 거대한 대검으로 그 모습을 변환시킨다. 동시에 대검에 실린 어마어마한 질량은 내려꽂혀오는 티에르의 검 뿐만 아니라 그 검을 움켜쥐고 있던 티에르까지 뒤로 튕겨낸다.
“나도 놀기만한건 아니라고.”
-휘유. 제법인데?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은 티에르는 내가 자신의 검을 막아냈다는 사실에 가볍게 안도하며 다시금 나를 향해 검을 겨눈다.
-그럼 우리쪽도 보답을 해야지. 티에르?
“아.. 으응!”
시란의 말에 티에르는 힘차게 대답한다. 처음에 우물쭈물하거나 주춤거리는 모습은 많이 사라져있었다. 싸울수록 싸움에 익숙해지는 타입인지 티에르는 기대감이 찬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바라본다.
“갈께요!”
티에르는 한손에 쥐고있던 자신의 혈검을 없엔다. 그리고 시란의 검을 양손으로 움켜쥔채 나에게 달려온다. 이도류로 싸우던 티에르가 오직 시란의 검을 들고 달려들자 나는 긴장한 눈으로 그녀의 검을 바라본다.
“흐얏!!”
어설플 정도로 크게 휘두르는 검. 검을 튕겨낼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할 수 있었지만 시란과 함꼐하는 티에르가 이렇게 허술하게 달려들 리가 없었다. 나는 침착하게 한걸음 물러서 티에르의 공격을 주시한다.
“칫...!”
역시나 무언가를 노렸는지 티에르는 내가 반격하지 않자 짧게 혀를 찬다. 곧이어 자세를 바로잡은 티에르는 좀더 날카로운 기세로 나를 노려본다.
“신검합일!”
촤악!
티에르의 기합과 함꼐 시란의 검이 티에르의 손에서 터져나온 피로 감싸진다. 푸른 시란의 검을 휘감은 핏물은 시란의 검과 동화되어 그 크기를 불린다. 검신이 길게 늘어난 시란의 검은 날카로운 태도의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와우..”
부드럽지만 날카로움을 가뜩 품은 곡선을 자랑하며 붉은 빛으로 번뜩이는 시란의 검에 나는 짧게 감탄을 내뱉는다.
“본격적으로 가요!”
시란의 검술이 길다란 태도에 서려 빠르고 예리하게 나를 향해 쇄도해온다.
카앙!!
“우읏?!”
반사적으로 평소처럼 휘두른 그녀의 태도를 쳐내려한다. 하지만 기다란 태도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있었다. 그녀의 검을 쳐내려하지만 오히려 힘에 밀린 내 몸이 기울어진다.
촤악!
곧이어 손목을 비튼 티에르는 거대한 태도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기묘하게 비틀어 재빠르게 공세를 이어나간다.
“큿!!”
자세가 무너진 상태로 싸워봤자 불리하다고 판단한 나는 우선 뒤로 물러서 그녀와 거리를 벌린다. 하지만 그 순간.
“만월베기!!”
내가 거리를 벌리는 것을 확인한 티에르는 크게 디딤발을 딛으며 온몸을 크게 회전시킨다. 그런 회전에 따라 태도가 큰 원을 그리며 빠르게 나를 향해 쇄도해온다. 마치 만월을 그리듯이 휘둘러지는 태도는 날카롭게 내 허리를 노려온다.
“우앗!!”
워낙 넓은 범위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검을 피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명상은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나는 내 검을 거대한 대검으로 변환시켜 방패처럼 태도를 막아선다.
콰앙!!
“크읏!!”
원심력이 더해진 태도이 거세게 내 대검을 후려친다. 어마어마한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내 몸이 볼품없이 뒤로 튕겨지며 공터바닥을 구른다. 추가 공격을 대비한 나는 재빠르게 몸의 균형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런...”
그리고 내 대검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짧은 신음을 흘린다. 태도를 막아낸 부분에 큰 균열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균열은 얼마가지 않아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핏물에 순식간에 매워져버린다.
“헤헷. 어때요? 꽤 쎄죠?”
“아 쎄긴한데...”
대검을 가볍게 허공을 휘둘러 다시 얇은 세검으로 바꾼 나는 씨익 웃는다. 말그대로 티에르의 기다란 태도는 확실히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방금전처럼 충분한 거리가 있었을때 이야기다.
“거리를 좁히면 어떻게 될까?!”
나는 땅을 박차고 단숨에 그녀와 거리를 좁힌다. 갑작스럽게 달려들어오자 티에르는 황급히 나를 막아서려한다. 하지만 기다란 태도로 내 접근을 막아서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태도를 휘둘러보지만 어렵지않게 태도를 피해내며 그녀의 코앞까지 접근한다.
캉!!
근접거리에서 황급히 나를 향해 휘두르는 태도를 막아낸 나는 티에르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이제 어떻게 할꺼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런 기다란 태도를 휘두르는 건 힘들텐데?”
“에... 방법이 없지는 않아요.”
그런 나를바라보며 티에르또한 싱긋이 미소를 짓는다.
슈욱.
곧이어 그녀의 말이 증명된다. 시란의 검을 휘감고있던 핏물이 빠르게 티에르의 손에 스며들어간다. 시란의 검을 움켜쥐고 있던 한손을 떼어내고 다시 순수한 혈검을 만들어낸다.
“웃...!”
내 예상보다 빠른 전환. 내가 내 혈검을 변환시키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믿을 수는 없지만 혈검을 다루는데 있어서 나보다 티에르가 더 능숙했다.
티에르가 근거리에서 휘두르는 혈검을 피해내며 나는 다시금 티에르와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티에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혈검과 시란의 검을 합쳐 기다란 태도를 만들어낸다.
“멋진데...?”
상대의 거리에 따라 능숙하게 검의 형태를 변환시키는 나를 압박해오는 티에르의 모습에 짧게 감탄을 한다. 왜 시란이 티에르와 대련을 시키게 만든지 이해가되기 시작했다.
-자. 어떻게 할꺼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흥미가 가득한 시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근접전으로 몰고가고 싶어도 시란과 티에르가 동시에 구사하는 이도류를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기에 태도의 파괴력이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리고 이런 방법도 있거든요.”
티에르는 내가 생각할 틈도 주지않는다. 태도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아무것도 쥐지 않는 팔을 힘껏 휘두르는 타이. 그러자 그녀의 손 끝에 맺힌 핏물이 나를 향해 쏘아진다.
“우앗?!”
단순히 핏방울이라 생각했지만 그 핏방울은 허공에서 날카로운 바늘처럼 변해 나에게 쏘아진다. 황급히 그런 핏방울을 피해내자 거대한 태도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습격해온다.
“우... 우와아앗?!”
========== 작품 후기 ==========
dgfdgzvc / 아... 수정해야한다는걸 깜박잊고있었네요.
마스터칼솔럼 / 저도 사실은...(삐질..)
Ernia / 최대한 빨리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운처럼 / 다행이네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서...
빨간달팽이 / 1등 축하드립니다만 선물은 없습니다!!!
시험기간에다가... 취업준비하느라 바쁘네요. 엉엉엉..
담주는 반드시 연재일수를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