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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하인-229화 (229/298)

229편

<-- 클론 -->

어째서 티에르가 내 이름을 알고있던걸까. 그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 티에르를 만나본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그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심장에 검상...”

시란이 나에게 준 힌트는 바로 심장에 검상을 입고 죽은 티에르. 내 기억속에서 나는 대륙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해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 의도치 않은 광혈의 저주의 폭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 기억은 많이 흐릿했다.

“크으으...”

머릿속에 안개가 낀듯한 답답함에 신음을 내뱉은 나는 다시 티에르를 돌아본다. 그녀는 작은 시란에게 방금전 대련에 관한 조언을 듣고 있었다. 배우려는 의욕은 강한건지 그녀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티에르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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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혈의 저주.

그 이름에 걸맞게 이것은 끔찍한 저주이다. 이 저주에 걸린 사람은 강력한 힘과 괴물같은 재생력을 자랑하는 신체를 얻게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성이 사라지게 되고 사리 분별없이 충동적인 분노에 날뛰는 한 마리의 괴물이 되어버린다.

“오랜만이군.”

그런 괴물이 지금 내 앞에 있다. 새하얗게 빛나는 족쇄에 얽매여 허공에 매달려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 바로 과거의 나였던 타메르였다. 그런 그를 불러보지만 그는 의식이 없는지 그저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

그런 그의 양팔과 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새하얀 족쇄. 그 족쇄는 그의 몸을 봉쇄할 뿐만아니라 그의 팔을 타고 오르려는 듯 꿈틀거리는 붉은 살점덩어리들을 막아주고 있었다. 저것이 아마도 광혈의 저주의 본체였던 걸까. 저 새하얀 구속구는 어떻게 만든지 몰라도 과거의 타메르를 광혈의 저주에 먹히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의 영혼이 광혈의 저주에 먹히면 어떻게 될까. 내가 똑똑한 편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광혈의 저주에 미친 과거의 타메르는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 할 것이고... 원래 이 몸의 주인인 타메르를 내가 이겨낼 방법은 없었다. 결국 내 의식은 옆으로 밀려나고 광혈의 저주에 폭주한 타메르가 내 몸의 제어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대화는 불가능할 것 같군.”

축늘어진 그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나는 작게 투덜거린다. 나의 과거는 나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간접적인 기억을 전달받은 것 뿐. 상세한 기억은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헛걸음인가...”

가볍게 혀를 찬 나는 축 늘어진 타메르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금 내 의식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려는 순간..

“끄르륵..”

어두운 심연의 의식 한 귀퉁이에서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내 등골이 섬뜩해질정도로 끔찍한 울음소리. 그런 울음소리에 움찔 놀란 나는 울음소리가 들린 공간을 바라본다.

“끄흑... 크륵...”

어두운 공간속에서 무언가가 기어나온다. 하지만 그건 이미 생물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저 꿈틀거리는 기괴한 살점덩어리. 내 허리에 올정도의 크기를 가진 커다란 살점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나와 가까워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뭐야... 저건...”

난생 처음보는 생물의 모습에 나는 당황한다. 괴로운듯 몸을 뒤틀며 나에게 다가오는 살점덩어리는 마치 팔처럼 생긴 촉수를 끌어올려 나를 향해 허우적거린다. 어떻게보면 상당히 애처로워보였지만... 그 끔찍한 형상은 그저 욕설을 내뱉게하기 충분했다.

“이런 미친.”

내 심연의 의식속에 저런 기괴한 생물이 산다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비록 의식속의 세계였지만...

촤악!

나는 어렵지않게 내 손안에 날카로운 혈검을 뽑아낸다. 오히려 의식속의 세계라서그런지 더욱 손쉽게 혈검의 형태가 변환된다. 나는 그런 검끝을 기괴한 생물체를 향해 겨눈다.

“끄어어어..”

의식이나 이성자체가 없는 걸까. 날카로운 도검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생물체는 어떻게든 나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한다. 그런 녀석을 노려보던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짧게 검을 휘두른다.

촤악!

그러자 나를 향해 허우적거리던 녀석의 촉수가 큰 뭉텅이로 잘려나간다. 곧이어 잘려나간 단면에서 피처럼 붉은 액체가 치솟아오른다.

“끼에에에에!!”

고통은 느끼는 걸까. 그 괴생물체는 잘려진 자신의 촉수를 몸안으로 허겁지겁 숨기며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뒤튼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왔던 속도와는 비교되지 않을 속도로 다시 어둠속에 몸을 숨겨버린다.

“뭐야... 저건?”

콰직.

나는 잘려나간채로 꿈틀거리는 기분나쁜 촉수를 발로 짓밟아 으깨버리며 녀석이 도망친 어둠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간다.

“끼이이이..”

어둠속 한 귀퉁에서 고통을 참아가는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어느정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도망칠 수 없는 귀퉁에서 어떻게든 내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작게 움츠린 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같은게 내 의식속에 남아있는게 맘에 들지 않아.”

보는것 자체만으로도 혐오감을 일으키는 괴상한 생물이 내 의식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은 녀석을 끝장내기 위해 나는 천천히 어둠속으로 발을 딛으려한다.

-일... 어나... 일어나!!

“응?!”

그때 의식속을 뒤흔드는 시란의 목소리. 다급함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춘다. 동시에 내 주변의 세상이 산산히 꺠어지기 시작하며 내 의식은 억지로 심연속에서 끄집어 내어진다.

“무슨... 일이야 시란...”

달콤한 단잠을 방해받은 것같은 기분나쁜 찝찝함이 머릿속에 가득채워진다. 내 의지가 아닌 억지로 의식의 심연속에서 깨어나니 몽롱한 감각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이 순간에 잠이 쳐오는거야?!“

그리고 내 눈앞을 보는 순간. 그런 몽롱한 감각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나를 덮치려는 수많은 붉은 칼날들. 그리고 그런 칼날을 시란이 막아서고 있었다.

“시.. 시란!!”

몇 개의 칼날은 시란의 검이 막아내줬지만 수많은 칼날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는지 수십개의 칼이 그녀의 몸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몸에서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내 검을 움켜쥐고 지금 나를 노리는 수십개의 칼날의 진원지를 바라본다.

“티에르?!”

칼날의 주인은 다름아닌 티에르.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아움직여 날카로운 검을 만들어 나를 덮치려고 했던 것이다.

“혈아... 그만해 혈아!! 진정해!!”

티에르또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쥔채로 자신의 제어를 벗어난 머리카락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붉은 칼날은 나를 찌르려는 듯이 바들바들 몸을 떨며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크윽... 그만두지 못해?!”

칼날이 나에게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칼날이 관통한 시란의 몸은 더욱 처참하게 헤집어진다. 온몸이 칼날에 난도질당하는 고통을 내색하지 않은 시란은 외친다.

“혈!! 무리했다간 티에르의 몸도 나마나지 않아!!”

“아흑...”

시란의 말대로 티에르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지기 시작한다. 혈이라는 존재의 힘이 모두 나를 공격하는 머리카락에 모였던 걸까. 망가진 그녀의 심장을 움직여줄 혈이의 힘이 사라지자 티에르는 빠른속도로 죽어간다.

움찔.

그러자 나를 위협해오던 칼날이 허공에 멈춰선다. 마치 혈이라는 존재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주듯 어쩔줄 몰라하던 칼날은 결국 나를 포기한다는 듯이 재빠르게 날카로운 날을 숨긴다.

“아우으으...”

혈이가 힘을 거두자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붉은 칼날이 사라지며 평소와 다름없는 티에르의 붉은 머리카락이 되어 힘없이 스르륵 흘러내려버린다. 타이가 돌아오자 티에르는 괴로운 듯한 신음을 흘리며 크게 심호흡을 해나간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는데...”

그런 티에르를 내려보던 시란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 뭔가가 있어.”

“....”

시란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티에르의 몸에 있다는 혈이라는 존재가 왜이리 격하게 반응했던걸까. 지금에서는 그 이유를 짐작조차할 수 없었다. 다시 티에르를 돌아본 시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티에르의 몸을 부축해 일으켜세운다.

“오늘은 쉬어. 더 이상 훈련할 상황이 아니네.”

“알았어.”

시란은 그 한마디만을 남기며 공터 한쪽으로 티에르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옮겨나간다. 그런 시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찝찝한 기분을 가슴에 안은채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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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런거야.”

시란은 분노를 숨기지 않는 매서운 눈으로 헐떡이는 티에르를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자 조용히 티에르의 머리카락을 응시하던 시란은 낮게 깐 목소리로 말한다.

“저 녀석이 범인이야? 티에르를 이 꼴로 만든 범인?”

-모르겠다...

긴 침묵후 들려오는 혈이의 대답. 그런 그의 목소리에도 큰 혼란이 서려있었다.

-나도... 혼란스러워.

“네가 한짓인데 혼란스럽다면 도대체 뭐야!!”

혈이의 대답에 참지못한 시란은 녀석을 윽박지른다. 하지만 그런 시란의 외침에 겁먹은 것은 되려 티에르였다. 아무런 죄도 없이 시란과 혈이사이에 낀 그녀는 신체적 피로까지 겹쳐 불안한 눈으로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갑자기... 그냥 갑자기였다. 그를 죽...여? 아니. 제지해야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받아서...

“네가 짐승이야?! 자신의 의지조차도 제어안돼?!”

계속되는 혈이의 동문서답에 답답함을 참지못한 시란은 외치지만. 그런 시란의 소매를 티에르가 조심스럽게 움켜쥔다.

“화... 화내지마 시란.”

“아... 미안. 티에르.”

“아니 괜찮아. 그보다... 혈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티에르는 자신의 몸에 공생하고 있는 혈이를 변호한다. 하지만 그런 티에르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란은 여전히 혈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시란을 위해 티에르는 몇가지 말을 덧붙인다.

“나도 조금이지만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어. 지키려고 한거야. 혈이는 무언가를...”

“무언가를 지켜야한다고? 도데체 그 무언가가 뭔데?!”

-말로 표현이 안되는... 뭔가 소중한 것이다.

혈이의 대답에 시란은 녀석의 말을 이해못한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긴 한숨을 내쉰다.

“참고로 말하자면. 타메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어. 그냥 졸고 있었다고 녀석은!!”

-....

“....”

시란의 반박에 할말을 찾을 수 없었던 티에르와 혈이는 입을 다문다. 그런 티에르를 조용히 노려보던 시란은 답답함에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린다. 결국 이런식으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시란은 자신의 화를 가라앉힌 뒤에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일단 이유는 모른다 이거지.”

-면목없지만... 긍정한다.

“알았어. 그러면 만약에 지금처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든 나에게 신호를 보내. 알았지?”

-알겠다.

혈이는 시란의 말에 깔끔하게 대답한다. 그런 혈이의 대답에 티에르를 지긋이 바라보던 시란은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오케이. 그럼 됐어. 괜히 심각해지지 말자고.”

뒷끝없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버리는 시란의 대답에 티에르는 조금이지만 안도한 얼굴로 시란에게 묻는다.

“시란 몸은 괜찮아?”

“아.. 조금 아프긴하지만... 움직이는데는 지장없어.”

시란은 보란듯이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말대로 혈이의 칼날에 관통당한 상처는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진 후였다. 영체를 실체화시킨 그녀는 물리적 공격에 큰 타격을 받지않는다. 단지 그 고통이 뼛속까지 각인될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지지만... 영체의 생활을 오래해온 시란에게는 견뎌내기 별 무리없는 고통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유운처럼 / 마무리 뒤에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는게 좋다라... 낯설지만 노력해보곘습니다.

dgfdgzvc / 아하하핫. 설마 리엔을 못이기겠어요? .... 못이기려나...

요번주는 시험기간이라 정신없어 올리지 못했네요..

구질구질하게 변명할바에 차라리 주말 내내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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