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편
<-- 클론 -->
중앙도서관에 들어왔을때. 이미 외부에서 일어난 상황을 짐작한듯 그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키르비르는 마법진을 지워나가고 있었고 리엔이나 티에르는 그런 키르비르를 도와주고 있었다. 리니아는 도서관의 책 하나를 들고 그런 키르비르를 흘끗흘끗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리엘은?”
도서관으로 돌아와 인물들을 한번 훑어본 나는 보이지 않는 이리엘에 대해 묻는다.
“여기엔 오지 않았는데요?”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리엔이었다.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린 나는 가슴속에서 묘한 불안감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올라가봐.”
그때 마법진을 제거해가던 키르비르가 뜬금없이 한마디를 툭던진다.
“아리엘의 공간이동 흔적... 이 탑의 상층부로 이어져있어.”
“하지만 이리엘은...”
나는 말을 하려다말고 입을 다문다. 키르비르도 전부 알고있는 눈치를 보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기 떄문이다. 그런 그녀의 담담한 모습을 보니 불안감은 더욱 확연해진다.
“젠장...”
아리엘이 이리엘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상처입은 그녀가 아무런 상처없는 진짜 아리엘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불안감을 가슴에 안은채 나는 황급히 중앙 탑을 오르는 계단을 밟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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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엘!!”
불안감이 천천히 현실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중앙탑은 군데군데 격한 전투로 인한 파손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시체들을 뛰어넘으며 나는 이리엘이 있을 층을 향해 급하게 올라간다.
여러개의 문을 지나고... 곧이어 커다란 방안에 박혀있는 거대한 함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이리엘의 함선인 디에그 대그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이리엘!!”
다시한번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함선 안은 그 어느때와 다르게 고요하게 그지없었다.
“엘!!”
-신분확인. 타메르. 무슨 일입니까?
이 함선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엘을 부르자 녀석은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 기계음으로 만들어진 고요한 목소리로 용건에 대해 묻는다.
“이리엘은 어디있어?!”
-이리엘님은 현재 의무실에 있습니다.
“의무실?!”
상처라도 입은 걸까. 그녀가 의무실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황급히 그녀가 있다는 의무실의 위치를 엘을 통해 확인하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리엘!!”
엘이 자동으로 열어준 문 넘어로 이리엘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무곳도 다치지 않은지 그 여느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건...”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는 그녀와 비슷한 소녀가 담겨진 투명한 유리관이 있었다. 연노랑빛 액체속에 담겨진 소녀는 나체의 모습으로 잠을 자듯 눈을 감고 있었다.
“아리엘...?”
살짝 여윈 몸과 어께의 상처, 손목에 남겨진 수갑의 흔적까지.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독약을 마셨어. 현재의 아리엘로부터 나를 숨기기 위해.”
그녀가 담겨진 유리관 앞에 선 이리엘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나에게 사실을 전달한다. 그런 그녀의 곁에 선 나는 유리관 속의 아리엘을 조용히 바라본다.
“녀석... 약속을 지킨건가... 너를 지켜준다는 그 약속.”
“응. 하지만 난 지키지 못했어. 언니를 지켜준다는 약속.”
“.....”
이리엘의 말투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지만 묘하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감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런 아리엘을 바라보던 나는 이리엘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녀는 죽은거야?”
“죽어가고 있어. 단지... 독약이 퍼지는 시간을 끄는 것 뿐이야.”
말을 마친 이리엘은 피곤하듯이 비틀비틀 걸어 방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털썩 걸터앉는다.
“세포자체를 괴사시키는 독약... 치료장치의 재생력으로 괴사를 막는 것이 한계야.”
“리엔의 신성력은...?”
“리엔의 힘은 치료장치의 재생력보다 강해. 하지만 국소부위에만 영향. 전반적으로 세포를 괴사시키는 독약의 힘을 따라잡을 수 없어.”
“.....어쩔 수 없는건가...”
유리관안에 담겨진 아리엘을 바라보며 나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정이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리엘은 강력한 전력이었다. 이리엘이 있는 이상 무조건적으로 우리편이 되어줄 정도의 믿음직한 아군인 것이다.
“타메르...”
아리엘을 바라보며 잡념에 빠져있는 사이. 내 등뒤로 조용히 이리엘이 다가왔다. 그녀는 예고없이 내 손을 움켜쥐며 내 등에 작은 머리를 기댄다.
“도와줘... 언니를 살려줘...”
“하지만... 너와 리엔도 못하는데... 나라고 무슨 방법이...”
“언니를 잃기 싫어... 아리엘 언니는 달라. 나의 진짜 언니가 되준 아리엘이니까... 잃으면 안돼.”
“.....”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서 애절함이 느껴져왔다. 진짜 언니가 되준 아리엘... 그녀의 말을 다시금 상기하며 아리엘을 올려다본다.
“그녀가 그걸 원할까?”
“.....”
내 물음에 이리엘은 침묵을 지킨다. 아리엘은 규칙과 규율에 철두철미한 녀석. 독약을 먹었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세운 규칙과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그녀를 되살리면... 과연 그녀가 좋아할까? 아니면 오히려 또다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갈까? 이 질문에 대해 이리엘조차 대답하지 못한다.
“내가 원해.”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이리엘의 대답은 고집이었다.
“언니를 잃기 싫으니까... 난 안 잃을꺼야. 난 이제 규칙과 규율에 억압받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아리엘도 규칙과 규율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거야?”
“노력해볼꺼야.”
“....알았어.”
이리엘의 고집에 나는 마지못해 수긍해보인다. 어자피 나에게 손해가 오는 일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아리엘은 이 세계에 영향을 주면 안된다는 규칙아래 그녀 스스로 별 피해없이 조용히 숨을 거둘 것이다.
“방법이 있어.”
실제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린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네이. 죽어가는 대상의 신체에 광혈의 저주가 담긴 피를 이식한다. 그 결과 광혈의 저주의 괴물같은 회복력에 의해 대상의 신체에 새겨진 치명상들이 회복되어지며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큰 부작용이 있었다.
그건 바로 광혈의 저주의 생존본능이다. 타인의 신체에 스며든 광혈의 저주는 그 신체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멸된다. 하지만 이런 소멸을 거부한 광혈의 저주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떠한 방법이라도 사용하게 된다.
“해줘. 어떤거라도... 언니를 살려줘.”
하지만 이리엘은 나에게 자세한 설명도 들으려하지 않은채 오직 아리엘을 살려달라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그런 그녀의 다급함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이 관을 열어줘.”
“진짜 살릴 수 있는 거지? 이 관을 열면... 언니의 수명은 45초야.”
“지독하게 짧군...”
얼마나 심각한 독이길래 저 정도로 강력한걸까... 광혈의 저주가 버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열어줘.”
내 신호에 이리엘은 조심스럽게 유리관의 개방스위치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그녀는 몇초간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개방스위치를 눌러간다.
치이익!
그러자 유리관 내부의 액체가 빠져나가며 힘없이 아리엘의 몸이 축 늘어진다. 곧이어 유리관이 개방되자 의식이 없는 아리엘은 내 쪽을 향해 쓰러져온다.
“웃...!!”
황급히 그런 아리엘을 품에 안아든 나는 그녀의 몸상태를 확인해본다. 지나치게 가벼운 체중. 마치 내부가 텅 빈것같은 괴리감을 느끼게 해줬다.
“이런...!!”
예상보다 강력한 독약이었다. 유리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척추를 타고 그녀의 피부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것이 선명히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한번도 본적없었던 나는 기겁하며 내 몸의 광혈의 저주를 끌어올린다.
“제발... 통해라!”
다급함에 별생각없이 그녀의 심장이 있을 왼쪽가슴을 움켜쥔다. 그러자 내 팔에 붉은 문양이 떠오르며 내 다급함에 반응하듯 다량의 광혈의 저주의 피를 담은 피가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어간다.
얼마나 많은 양이 들어갔으면 그녀의 피부가 전부 붉게 달아오른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몸의 빈자리를 채우듯 잔뜩 흘러들어간 광혈의 저주는 그녀의 몸을 회복시켜나간다. 썩어들어가던 그녀의 신체가 멈춘다. 곧이어 광혈의 저주의 회복력이 독약의 독성을 이겼는지 썩었던 피부가 천천히 재생되어간다.
“느려... 이 정도나 피를 넣었는데도... 너무 느려...”
내 몸에 서린 광혈의 저주 덕분일까... 아리엘의 몸에 얼마나 많은 양의 광혈의 저주의 피가 스며들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는 독에 의해 괴사당한 상태. 그녀의 몸을 채우는 혈액의 90%는 전부 광혈의 저주를 담은 피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은 그녀의 신체가 재생되는 속도는 지나치게 느렸다.
“회복되고있어...!!”
하지만 단순히 썩어가는 신체가 회복되는 것을 확인한 이리엘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답지않게 작게 소리를 지른다.
“일단... 그녀는 살아날... 우왁!!”
아리엘의 상세한 상태에 대해 이리엘에게 설명하려는 순간. 그녀는 대뜸 나에게 달려와 내 목을 끌어안는다. 그런 그녀의 열정적인 감정표현에 당황한 나는 황급히 그녀를 끌어안는다.
“고마워... 정말...”
내 목을 꽉 끌어안은 이리엘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몸을 바들바들떤다. 그렇게 기쁜것일까... 나는 흘끗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한 아리엘을 내려다본다. 90%이상의 광혈의 저주를 수혈받은 아리엘. 그녀에게 무슨 변화가 생길까... 그녀가 일어날때까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이다. 이 녀석을 살릴 수 있어서.”
나는 나를 끌어안은 이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런 이리엘의 입에서는 말조차도 나오지 않는걸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내 말에 대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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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회복되는 아리엘은 함선의 인공지능인 엘에게 맡겨둔 나는 이리엘을 이끌고 숙소로 내려왔다.
“뭐야... 이건?”
유적지로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강철로 만들어진 큼직한 상이었다. 한손에는 마법지팡이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마치 불처럼 타오르는 형상을 가진 덩어리를 들고있는 소녀의 모습.
“키르비르?”
그 상의 정체를 말해주는 건 다름아닌 내 곁에 서있던 이리엘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강철로 만들어진 상은 키르비르를 본따만든 상이었다. 아마도 유적지에 떨어진 강철관을 녹여만든것 같았다. 이런 일을 할만한 사람은 단 한명.
“어때? 멋지지?”
키르비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철상의 어께에 걸터앉은채로 우리를 반긴다.
“이게 뭐야?”
“뭐... 그냥 한가해서...”
키르비르는 키득키득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라는 듯이 손짓한다. 그녀의 손짓에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유적지에서 우리가 지나가는 동선에 떨어졌던 강철관들은 어느세 깔끔하게 회수된 후였다. 강철관들이 감쪽같이 없어진것이... 아마도 모두 이 강철상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잘했어. 멋있네.”
나는 스스럼없이 키르비르를 칭찬한다. 그러자 피식 웃은 키르비르는 강철상에서 사뿐하게 뛰어내려 내 옆에 착지한다.
“모두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어.”
“다행이네. 안그래도 소개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키르비르는 뭔가 짐작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내 곁에 서있는 이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의문을 표하는 이리엘을 이끌고 나는 키르비르와 같이 숙소로 걸어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슈미델 / 하지만 커플로 인해서 소설이 달달해지죠.
dgfdgzvc / 으앙 판상!! 이.. 잊고있었다!
유운처럼 / 감사합니다!
Solar Eclipse / 에페리아... 그 쪽은 순애로 갈생각... 나중에 나올 비극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기 위해서!
abcbbq / 크툴루가 뭐죠? 처음들어보는데요?
akdldkssm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칼솔럼 / 오랜만이네요!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할뿐입니다!
빨간달팽이 / ㅇㅅㅇㅁ???
오늘 밤!
고백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