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편
<-- 마녀와 쓰레기 -->
“이제 마계도 망세구나.”
메트로폴리스를 한바퀴 돌고 온 에페리아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메트로폴리스 곳곳에 있는 용병소개소를 전부 들러봤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그 어떤 용병도 그녀의 경호원으로 지원하고 있지 않았다.
“쩝... 이번엔 진짜 실험용이 아닌데...”
그녀가 투덜거리며 실험실로 돌아왔을때. 여전히 엉망인 그녀의 실험실이 그녀를 반겨준다. 하지만 그런 실험실에 들어선 에페리아의 눈이 천천히 휘둥그레진다.
“오라방!!”
부숴진 잔해 투성이의 실험실 안에서는 붉은 갑주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런 남자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에페리아는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그에게 달려든다.
“청소도 안했는데 왠일이야 오라방~!”
다짜고짜 양팔을 활짝 펼친채 안겨오는 에페리아를 가뿐하게 한팔로 끌어안은 마왕은 하나남은 붉게 빛나는 한쪽 눈으로 에페리아를 바라본다. 마계에서 그 누구도 마주보기를 두려워하는 매서운 마왕의 눈빛이었지만 에페리아는 그런 눈을 마주하면서도 여유롭게 베시시 웃어보인다.
“강제적 차원균열이 느껴졌다. 너가 한 짓이냐?”
“아음... 뭐... 간단한 문제가 있어서?”
반갑게 반겨주는 에페리아였지만 마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적인 말보다 공적인 말이 우선이었다. 그런 마왕의 태도에 약간 서운한 듯 에페리아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원로회들이 너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행동에 주의를 가지도록 해라.”
“그깟 늙은이들...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신경쓸 필요가 있다. 쓸모없지만 형식상 마계인들의 정신적 지주이니.”
“우으..”
마왕까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에페리아는 볼을 부풀린다. 하지만 마왕의 입장을 생각한 그녀는 결국 그녀가 한걸음 물러서기로 한다.
“알았어. 앞으로 주의할게.”
“그렇게라도 말해주니 고맙다.”
그걸로 마왕의 용무는 끝났는지 마왕은 에페리아를 가볍게 끌어안고있던 팔을 풀어낸다.
“아... 저기..”
평소 같았으면 떠나는 마왕을 시원스럽게 배웅해주는 에페리아였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떠나려는 마왕의 팔목을 붙잡는다.
“...음?”
그런 에페리아의 행동이 의외였는지 마왕도 잠시 침묵을 지키다 에페리아를 돌아본다. 스스로의 행동에 당황한 에페리아는 아무말도못하고 멍하니 마왕을 바라본다.
“무슨 일이냐.”
“아니... 뭐...”
무안해진 에페리아는 조심스럽게 붙잡았던 마왕의 팔목을 놓는다. 하지만 마왕은 떠나지않고 마치 에페리아의 마음을 꿰뚫어보듯 그녀를 조용히 직시한다.
“외로움... 의외군.”
“아앗!! 또 그걸쓴거야?! 내 허락없이 나에겐 쓰지 말랬잖아!!”
마왕의 말에 화들짝 놀란 에페리아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이 바락 소리를 지른다. 그런 그녀의 외침에 마왕은 별거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한다.
“너가 먼저 이상행동을 보인거다. 너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대신 알아봐준거지.”
“하지만... 외로움이라니... 뭐가 잘못된 거 아니야?”
“그 뤼베크족이 안보이는 군. 녀석과 연관된 외로움인가?”
마왕의 말에 에피리아의 몸이 움찔 떨린다. 하지만 그런 동요를 스스로 부정한 에페리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억지 웃음을 터트린다.
“그 녀석과는 상관없어. 안그래도 맘에 안들어서 쫓아냈는걸?”
“그래? 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간단하게 에페리아와의 대화를 끝낸 마왕은 더 이상 참견하지 않겠다는 듯이 또다시 등을 돌린다. 그런 냉랭한 마왕의 태도에 에페리아는 입술을 잘근깨문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낸듯 등을 돌린 마왕을 향해 한걸음 내딛은 에페리아는 그런 마왕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외로운 나를 혼자 놔둘꺼야?”
“이건... 무슨 의미냐?”
“나... 기다렸잖아... 많이 기다렸잖아. 얼마나 더 기다려야해?”
“....”
에페리아의 말에 마왕은 침묵을 지킨다. 일말의 미동도 없는 그의 태도가 차가워보였지만 에페리아또한 순순히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도 이제 다 컸어... 방해꾼도 없고... 그러니까...”
“에페리아.”
웅얼거리는 에페리아의 말을 끊으며 마왕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에페리아는 고개를 들어 마왕을 바라본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의 말에 에페리아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렇기에 너에게 손을 댈 수가 없다.”
하지만 뒤이어진 말에 환해진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하지만 난...”
“너에겐 해야할 일이 있어. 내가 하지 못하는 일... 그 일을 부탁한다.”
씁쓸함이 담긴 마왕의 말에 에페리아는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채 끌어안았던 마왕의 허리를 천천히 놓아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고개를 숙인 에페리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그런 에페리아를 보다못한 마왕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 에페리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준다.
“너에겐 더 좋은 인연이 있을거다. 나같은 괴물말고...”
마왕의 손가락에 묻은 에페리아의 눈물이 그의 피부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런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마왕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몸 조심해라.”
그 한마디만 남기며 마왕은 조용히 에페리아의 연구실을 떠난다. 그런 마왕을 붙잡지 못하고 에페리아는 고개를 숙인채 고요히 훌쩍일 뿐이다.
-------------------------------------------
“골목을 굴러다니는... 조금은 큼직한 쓰레기니까. 관심이 있었던 거겠지.”
“호오... 단순히 그걸로 에페리아가 널 받아들였다고?”
거한의 질문에 레오는 그저 의미모를 미소를 지은채 말을 이어나간다.
“받아들였다고... 표현하기 묘하네.”
잠시간 폭력이 멈추는 사이. 레오는 깊게 숨을 들이키며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그래도 난 쓰레기였으니까. 에페리아님 눈앞에서는...”
뻐억!!
에페리아라는 이름에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자 거한은 예고없이 레오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는다. 그런 기습적인 강타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짧은 신음조차 흘리지않는다.
“많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 수십번은... 괴로운 삶의 연속이었어.”
거한은 자신의 주먹에 꿈쩍도하지않는 레오의 모습에 살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뜬다. 하지만 이미 걸레짝이 되어버린 레오의 몸을 확인한 그는 이제 레오가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괴로운 삶이라? 에페리아 밑으로 들어간거라면... 꽤나 즐거운 삶이지 않았나? 마계의 무법자인 에페리아인데.”
“무법자는 에페리아님이시지. 내가 아니니까.”
지금도 다시 되새기기 싫은 과거인듯 레오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의 눈빛에는 여전히 에페리아를 향한 고마움이 담겨져 있었다.
---------------------------------------
마왕이 떠나고 실험실에 홀로남은 에페리아는 반쯤 부서진 의자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실험실 한쪽에 마련된 연구실 문을 향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자신이 분명 두 번다시 열지않겠다고 폐쇄하라고 레오에게 지시를 내렸던 연구실. 평소에는 대충 훑어본거라 몰랐지만 자세히보니 연구실의 문은 폐쇄되었다는 표현에 맞지않게 깔끔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
잠시 그 연구실문을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구실의 문을 향해 다가간다. 연구실의 문고리를 붙잡고 한손으로 가볍게 밀자 녹슨 경첩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날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문은 부드럽게 열려간다. 곧이어 들어나는 연구실 풍경에 에페리아는 입술을 잘근 씹는다. 연구실 안에는 비교적 깔끔한게 최근까지 누군가 정리를 해두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폐쇄하라고 했건만... 그 새끼..”
청소한 범인이 누군지 직감한 에페리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실험실을 돌아본다. 벽면에는 성인이 들어갈만한 커다란 유리관이 다섯 개정도 있었고 오랜시간동안 보관되어 변색된 약물들이 한쪽에 가득했다.
그리고 탑처럼 쌓인 수많은 서류들. 그녀가 연구기록을 빼곡하게 적어둔 서류들이었다. 비록 글씨는 많이 흐려져있었지만 자신이 썼던 서류인만큼 그 글씨를 읽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추억의 장소라는건가? 개뿔이...”
서류를 대충 훑어본 에페리아는 그것이 잔인한 생체실험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정보들이 담겨진 서류를 한쪽에 대충 던져둔 에페리아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실험실 구석구석에는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런 핏자국 위에서 선 에페리아는 아무말없이 무끄럼히 그 핏자국을 내려다본다.
“....쯧.”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볍게 혀를 찬 에페리아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등을 돌린다.
-----------------------------------
“흐흐흠~”
오랜만에 에페리아는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며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최근 실험체를 찾지 못해 안달이 나있던 에페리아였다. 시체로는 실험 효율이 좋지 않았고 살아있는 생물이 필요했는데 미치지 않고서 자진해서 자신의 몸을 바칠 실험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에페리아의 눈앞에는 아직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레오의 몸이 유리관 속에 담겨있었다.
“와아... 진짜 기대되는데? 자신의 내장을 스스로 뜯어 던질만큼 정신나간 근성이 있는 이놈이라면... 어떤 실험을 해도 버텨낼 것같아.”
최고의 효율을 위해 순차적으로 실험할 목록을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해가기 시작한다. 에페리아가 만든 실험용 노트에는 실험계획이 빼곡이 적혀지기 시작한다. 분단위로 적힌 실험 계획은 그 수를 빠르게 불려가고 있었고 끝에가서 노트를 가득채웠을때 실험 계획은 약 1200개에 도달해있었다.
“하악.. 하악.. 계획만짜도 흥분돼!! 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니...”
에페리아는 기대감이 잔뜩 서린 눈으로 자신이 짠 실험 계획노트를 다시금 훑어본다. 그러자 에페리아의 얼굴은 말로 표현못할 기쁨으로 가뜩 상기되어가기 시작한다.
“빨리빨리... 몸만 치료되면 가뜩 귀여워해줄테니까...”
유리관에 담긴 레오의 몸은 빠른속도로 회복되어져가고 있었다. 뤼베크족 특유의 회복력과 세포재생을 돕는 회복제. 거기다가 혼돈의 힘을 중화시키는 에페리아의 마력까지. 신체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레오였지만 그런 손실은 눈에 보일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자.. 그럼 실험 준비를 해볼까?”
레오의 몸이 회복되는 것을 바라보던 에페리아는 기대감이 가뜩 담긴 얼굴로 손을 비비며 한쪽 약물을 보관하는 테이블로 걸어간다. 거기서 온갖 유독한 화학약품과 시약들을 섞어가며 실험을 위한 약물을 준비해나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하얀범 / 덕분에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밤길을걷는자 / 현제는 쏠로입니다! 모쏠은 아니지만... 요즘은 인연이 닿는사람이 없네요.
빨간달팽이 / 언제나 감사합니다!
Solar Eclipse / 이번 기회에 에페리아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