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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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함선 밖으로 나서자마자 그 앞에 키르비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팔짱을 낀채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필요하지?”
“그걸 어떻게...”
내 물음에 키르비르는 아무말없이 자신의 손목을 톡톡 두들겨보인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나는 내 손목을 걷어 내 손목에 남겨진 붉은 띠를 확인한다.
“말했잖아. 그게 남아있으면 어느정도 감정 공유가 되. 뭐... 미묘한 텔레파시? 그 정도의 느낌이지만.”
“그것 참 편하네.”
손목에 남아있는 붉은 띠를 문질러본 나는 피식 웃으며 키르비르와 같이 이리엘과 리니아가 있는 의료실을 향한다. 이미 리니아는 리볼버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는지 양손을 리볼버 위에 올려둔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면 되?”
“리니아가 시간을 벌어달라고 했어. 리볼버에 영혼이 구속된 방법을 분석해서 소멸되는 영혼을 다른 물건에 귀속시킨다네?”
“흐음... 일단 리니아의 모습이 저런 것을 보니 이미 리볼버에 자신의 영혼을 담았다는거네? 그럼 내가 할 일은 하나지.”
리니아의 말대로 키르비르는 자신이 할 일이 뭔지 알았다는 듯이 리니아가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리볼버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휘젓자 유리창처럼 얇은 벽이 생겨나 리볼버를 감싼다.
“지금 뭘한거야?”
“부분적 차원 분리. 이 안은 작게나마 다른 세상이 된거야. 영혼도 흩어지지 않고 이 안에 고여있게 되지.”
“오호... 그런 것도 가능하단 말이야?”
“이론과 원리를 이해하고 세상을 다른 차원에서 볼 수 있는 감각을 기르면 어렵지 않아. 조금 컨트롤 하기는 어렵지만 이정도 작은 물건만 분리시키는 건 어렵지 않지.”
키르비르는 오랜만에 힘껏 거드름 피며 자신이 만든 벽안에 봉인된 리볼버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본다.
“조금 도와줘볼까?”
그리고 자신의 손끝을 휘젓는다.
“뭐 한거야?”
“약간의 시간가속. 분리된 차원안의 룰을 약간 바꿔봤어. 어자피 영혼상태이니 노화같은 것도 걱정없고... 일도 빨리 끝나니 서로 좋은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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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집중해 리볼버 속에 자신의 영혼을 담아내는데 성공한 리니아는 천천히 눈을 뜬다. 자신의 기억이 맞으면 리볼버 속에 남아있는 영혼은 두 종류. 하나는 켈레브라라는 남성의 영혼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리엘의 언니라는 아리엘의 영혼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 켈레브라의 영혼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하고 리니아는 천천히 눈을 뜬다. 각 사람의 영혼세계는 그 세계의 주인의 성격에 비례해서 다양한 풍경으로 나타난다고 알고 있었다. 이 세계의 주인은 바로 켈레브라.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궁금하면서 두려워하고 있는 리니아의 눈앞에 보인 풍경은 단 하나였다.
“흐... 아읏... 켈레브라아...”
그녀가 기억하는 무표정의 이리엘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담긴 황홀한 얼굴로 낯선 남자 아래에 깔려 나체로 군침을 흘리는 이리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켈레브라라고 불리우는 남자는 자신의 나체를 서슴없이 들어낸체 이리엘을 억누르고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 어... 이건...”
스윽.
그때 리니아의 눈앞에 어두운 장막이 들이운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눈을 가린 것이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낮뜨거운 상황을 가려주는 고마운 배려라고 느껴질 수 있었지만...
“당신은. 누구?”
곧이어 다른 한손으로 자신의 턱을 붙잡자 뒤늦게 상대가 자신에게 호의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 나는 검은 마녀 리니...”
우둑.
그녀의 자기소개가 끝나기도 전. 검은 마녀라는 말에 의문의 상대의 손이 주저없이 움직인다. 그대로 리니아의 목을 90도로 꺽어버린 것이었다. 단숨에 목이 꺽여져버리자 리니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는다.
“으... 까... 깜짝이야!!”
90도로 꺽여진 목을 바로잡으며 리니아는 황급히 발버둥쳐 정체불명의 사람의 품에서 빠져나온다. 영혼 상태인 그녀에게 목이 꺽인다는 것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야가 억지로 90도 비틀어지는 결코 좋지 않은 경험에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당신은 누구야!!”
리니아는 자신의 목을 꺽어버린 여성을 노려보며 정체를 묻는다. 그녀는 리니아가 죽지않자 아쉽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툭툭 털어낸다.
“내 이름은 아리엘.”
“당신이 아리엘?! 내가 도와줘야할 사람이야?!”
“네가 돕다니? 그건 무슨 소리지?”
그때 자신의 용무를 다마친 걸까. 어느세 리니아의 등뒤에 선 켈레브라는 느끼한 목소리로 물으며 리니아의 엉덩이를 두드린다.
“으... 으햣!! 뭐하는거야!!”
“아가씨. 몸매에 자신있어도 그건 좀 심하잖아? 가릴 곳을 가려야지.”
“으... 으아아아앗!!”
리니아는 뒤늦게 자신의 몸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영혼의 세계. 자신의 의지가 없는 한 영혼은 태초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 반영되어버린다. 황급히 자신의 치부를 가린 리니아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보... 보지마!!”
“아니아니... 보지말라고 소리를 지르지말고 너가 스스로 옷을 만들면 되잖아.”
자지러지는 리니아의 외침에 켈레브라는 볼을 긁적거리며 대답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리니아는 영혼상태가 되어본 경험이 없었다. 스스로 옷을 만들면 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켈레브라를 노려볼 뿐이었다.
“어... 이것 참... 이런 경우는 또 난감하네.”
켈레브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체가된 리니아를 내려본다. 그러는 사이 슬금슬금 켈레브라의 등뒤로 다가온 이리엘은 그의 바지춤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말한다.
“에잉... 이러면 간단하지. 모두 알몸이 되면 되는거야. 그럼 부끄러울게 없잖아?”
“호오... 그런가?”
이리엘의 말에 맞장구치며 켈레브라는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는다. 그런 그 둘을 보다못한 리니아는 소리를 빽 질러버린다.
“둘 다 무슨 소리하는거얏!!”
“큭... 장난이 심했다. 이리엘.”
그제서야 켈레브라는 장난끼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지우고 조금은 진지해진 얼굴로 리니아를 바라본다.
“너가 아리엘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람이야?”
켈레브라의 물음에 리니아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우선... 우선 당신을 분석해야해.”
리니아의 말을 듣는 순간 켈레브라의 얼굴에 장난끼가 급격히 차오른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있던 이리엘은 아무말없이 그런 그의 옆구리를 꽉 꼬집어버린다.
“크흠... 나.. 나를 분석한다고?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건 이제 시도해볼 생각이야. 이런 방식은 나도 한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거든.”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가 너에게...”
“꺄앗!!”
그 순간 켈레브라의 곁에 있던 이리엘이 짧은 비명을 지른다. 동시에 그녀의 모습이 빠른속도로 희미해지며 그 자리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리엘?!”
이리엘이 사라지자 켈레브라는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다.
“키르비르가 왔나보네...”
“그게 무슨 소리야?”
“키르비르라면 아마도 이 리볼버 주변 공간을 단절 시킬 꺼야. 저번 사과파이를 봉인한 것처럼...”
리니아의 말에 켈레브라는 불안한 얼굴로 되묻는다.
“그럼 이리엘은...”
“이 일이 끝날때까진... 못 볼꺼야. 그 특이한 이리엘은...”
“후우... 거참. 꽤 힘든 일이 되겠는데...”
켈레브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기며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진지해진 얼굴로 리니아를 바라보며 말한다.
“빨리 일을 처리하자. 나도 녀석 없는 세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으니까.”
“알았어... 그러면....”
자신의 치부를 가리느라 주춤주춤하던 리니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고 켈레브라를 바라본다. 변태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꺼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는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켈레브라의 태도에 조금이나마 믿음이 생긴 리니아는 조심스럽게 켈레브라에게 다가선다.
========== 작품 후기 ==========
임대가르시아 /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데 모기는 여전히 쌩쌩하군요.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