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편
<-- 에필로그(타메르) - 작품 후기포함 -->
무식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일분 일초가 아까운 나는 이리엘이 제안한 방법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대 차원용 미사일을 통해 차원벽을 뚫고 마계로 진입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에페리아가 있을 마계의 중심지를 노린다면 요격당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마계 외곽을 목표로 잡아야했다.
“마지막 작별인사정도는 해. 금방 다시 볼 수는 없을테니까.”
이리엘은 간단한 수리도구를 챙기며 나에게 한마디를 해준다. 그녀의 말에 나는 함교에 있는 일행들을 돌아본다.
“곧 뒤쫓아 갈께요. 마계는 상당히 추우니까... 몸조심하세요.”
가장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낸 것은 마계의 상황에 대해 잘 아는 타이였다. 그녀는 상당히 얇은 내 옷차림을 걱정하듯이 가볍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타메르씨와 저 같은 혼돈의 힘... 그러니까 광혈의 저주를 가진 사람들에겐 위협이 되지 않지만 몸을 굳게 만드는 한기로 신체를 움직이는데 조금 불편할꺼에요.”
“염두해둘게. 고마워.”
내 감사에 타이는 살며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이어 그녀의 곁에 서있는 티에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지 환한 미소를 지어으며 나를 응원해준다.
“타메르씨라면 괜찮을거에요!”
“그래. 걱정마.”
마지막은 리엔이었다. 그녀는 뭔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손등에 박혀있는 성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거냐?”
“란슈씨가 조금 힘들어하네요. 이 공간자체가 영혼들에게는 부정정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리엔의 말에 나는 티에르의 허리춤에 차고있는 요도 시란을 바라봤다. 시란은 아무런 반응없이 조용히 요도 속에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란슈를 걱정하던 리엔은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리 걱정을 해도 좋을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나를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미래를 봐드릴까요?”
“전에 봤던 미래와 지금은 전혀 다른가보지?”
내 질문에 리엔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외부의 존재가 개입해서 그런 것 같았다.
“대신 전에 봤던 미래가 뭐였는지 말해줘.”
이미 변해버린 미래였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에페리아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내가 맞이했을 미래. 나는 과연 모두들과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걸까?
“네이와 행복해져요. 불행히 그 미래는 에페리아에 의해 네이씨가 죽을때부터 뒤틀려졌었지만요...”
“그래? 네이였나.”
리엔의 말이 진실인지 나를 위한 거짓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네이와 행복해진다는 말에 나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힘없이 흘릴 뿐이었다.
“그러면...”
리엔은 내 미래를 읽기 위해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는 듯이 자신의 오른팔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잃어버린 행복한 미래에 대한 미련을 깊은 한숨과 함께 토해낸 나는 나에게 펼쳐진 또다른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리엔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세계가 멸망해버렸지만 그녀의 몸에 아직 잔재되어있는 새하얀 신셩력이 천천히 내몸으로 스며들어와 한바퀴 순회하고 다시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리엔은 천천히 눈을 뜨며 내 이름을 부른다.
“타메르씨.”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슬픔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새롭게 펼쳐지는 내 미래는 배드 엔딩이라는 걸까.
“괜찮아. 어차피 미래는 정해진게 아니잖아?”
빌어먹을 에페리아는 나에게 행복한 미래를 빼앗아 갔었다. 비록 지금의 내 앞에는 불행한 미래가 준비되어 있지만 나는 에페리아에게 빼앗겼던 행복한 미래를 되찾아올 것이다.
“그럼요. 정해진 것은 아니죠.”
운명을 믿으며 그것에 순종해오던 리엔은 작은 미소와 함께 내 말에 동의를 해준다. 많이 변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그녀의 어께를 두드려주는 것으로 내 뜻을 그녀에게 전해줬다.
“그럼 먼저 가있을께.”
모두와의 작별인사를 끝내자 이리엘은 함선을 수리할 간단한 도구들을 챙긴 뒤 입을 열었다.
“엘이 출발준비는 다 끝냈을 거야. 떠나기 전 그녀는 한번 확인하고 가야지.”
“리니아...”
이리엘의 말에 입술을 꽉 깨문다. 에페리아의 손에 의해 가장 처참히 당한 희생자. 에페리아에 의해 새겨진 몸과 마음의 상처는 리니아의 숨이 다할 때까지 거머리처럼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이리엘은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묵묵히 앞장서서 상처입은 리니아가 있는 캡슐이 가득한 방으로 나를 인도했다. 방 한가운데에 마련된 성인 한명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의 캡슐안에는 나체의 리니아가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상태는 어때?”
“악화만 막았을 뿐이야. 아직 치료는...”
이리엘은 말끝을 흐린다. 척봐도 모든 조명이 꺼져있는 방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캡슐안에 있는 리니아또한 상처투성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함선이 안전해지면 최우선적으로 그녀를 치료할테니까 걱정마.”
“후유증은 없을까?”
“......”
내 질문에 이리엘은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이 그다지 좋지 않은 느낌을 자아냈다.
“몸은 내가 책임지고 회복시켜줄수 있어.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건 리니아가 극복해야할 일이야... 리니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꺼야.”
나는 리니아를 믿는다. 그녀의 정신력과 의지라면 어떻게든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떠나자.”
상처투성이의 리니아를 더 이상 두고 바라볼 수 없었던 나는 이를 악문채 그녀로부터 등을 돌린다. 이대로 내가 여기있다고 해도 상처투성이 리니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듯 이리엘은 다시금 앞장 서서 내 길을 인도해준다.
그녀를 쫓아 상당히 긴 거리를 이동한 후. 나는 수많은 기계가 가득한 방으로 나를 인도해줬다. 그 방안에서 나는 커다란 쇠기둥같은 물건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기둥의 첨단부분이 텅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 쇠기둥이 내가 타야할 미사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에 내가 들어가는거야?”
“응. 그리고 이거...”
이리엘은 짧은 대답과 함께 호주머니에서 작은 끈 같은 것을 꺼내 나에게 건낸다. 가죽이 연상되는 기묘한 재질의 질긴 끈 한가운데에는 둥그스름한 작은 기계가 달려있었다.
“뭐야 이건?”
마치 작은 팔찌와 같은 악세사리를 받아든 나는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소형 통신기야.”
이리엘은 끈 한가운데에 달려있는 작은 기계 측면에 마련된 자그마한 단추를 누른다. 그러자 통신기라 불린 기계에 은은한 빛을 흩뿌리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빛이 들어온 둥그스름한 기계 안에는 다양한 숫자들이 떠오른다.
“단순한 통신만이 아니야. 이건 기온, 이건 대기의 유독성 등. 간단히 주변 환경을 조사하고 생존에 위험이 되면 경보가 울리니까 참고해. 경보가 울리면 뭐가 위험한지 화면에 떠오를테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거야.”
세세하게 기계에 대해 설명해주는 이리엘의 모습에서 나 혼자 마계로 보내는 그녀의 걱정이 가득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엘의 배려에 작게 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가 건내준 통신기를 내 손목에 묶으려했다.
“아...”
그 순간. 나는 네이의 영혼이 담긴 붉은 방울을 떠올린다. 팔찌의 끈의 얇기가 방울을 매달기 딱 좋은 얇기였다. 이리엘이 선물해준 팔찌에 붉은 방울을 매단 나는 그 팔찌를 그대로 손목에 묶었다.
“왼쪽 위의 버튼을 누르면 이 함선과 통신이 될 거야. 하지만 함선이 어느정도 수리되서 동력의 여유가 남기 전까지 대답해주기는 힘들 것 같아.”
“알았어. 고마워.”
이리엘이 준비한 선물을 잘 챙긴 나는 주저없이 이리엘이 미리 만들어놓은 미사일의 텅빈 공간에 올라탄다. 타인에 비해 약간 몸집이 큰 내가 간신히 몸을 구겨넣을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다.
“한숨 자.”
“이렇게 비좁은 곳에서 잠은 무슨... 거기다 난 잠도 못자는 체질이거든.”
“아... 그랬어?”
이리엘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간단하게 엘에게 지시를 내려 커다란 기중기로 미사일에서 분해했던 장갑판을 들어올린다. 견고한 장갑판은 내가 몸을 집어넣은 공간을 단단히 격리시킨다.
치지지직...
그리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음이 이리엘이 내가 격리된 공간을 단단히 밀폐시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완벽한 어둠속에서 내 오감은 조금씩 날카로워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어야할 어둠속에서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젠장... 편한 여행은 되지 않겠군.”
그동안 잊고 지냈던 원령들. 내 손에 의해 죽거나 나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렸던 불운한 희생자. 나를 향한 지독한 원한을 가진 그들의 영혼이 나에게 들러붙어 끝없이 나를 괴롭혀왔었다.
매우 드물기는 했지만 내가 잠들어 의식이 옅어질 때마다 그들은 내 몸을 물어뜯어왔다. 그들이 물어뜯을 때마다 살점이 뭉텅뭉텅 뜯겨져나가는 고통은 아무리 고통에 익숙해진 나라고해도 견디기 쉽지 않았었다.
-크히히히힛!!
오랜만에 대면한 원령은 여전히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를 향해 달려들어온다.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에 쓴 웃음을 지은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이제 곧 엄습해올 격통에 대비했다.
딸랑...
-키히이잇?!
그 순간 손목에서 울려퍼지는 고요한 방울소리. 좁은 밀실에 맴도는 그 방울소리에 나에게 악의를 가지던 영혼들이 겁을 먹고 황급히 뒤로 물러선다.
“네이...”
나는 이리엘이 선물해준 팔찌에 매달아 둔 붉은 방울을 바라본다. 내 부름에 응답하듯 방울은 고요하고 기분좋은 방울소리를 울려퍼뜨린다. 그런 방울 소리에 내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에페리아로부터 키르비르를 구해내는거야. 너도 원하는 일이지?”
딸랑...
또다시 작은 방울소리를 퍼뜨리는 붉은 방울. 그녀와 어떻게든 소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조심스럽게 방울을 감싸쥔다.
쿠웅!!
그 순간. 미사일이 발사 된 것일까. 비좁은 공간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감이 차단되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마치 나를 위로하는 듯한 속삭임처럼 고요히 밀실에 울려퍼지는 방울소리가 나를 감싸안아갔다.
“가자.”
미지에 대한 불안감과 원령들이 가진 원한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따듯한 기운을 느끼며 나는 에페리아를 향한 증오를 불태운다.
========== 작품 후기 ==========
로터스의 하인 1부가 이렇게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고3. 그러니까 19세에 던파타임이라는 곳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후 이런저런한 일을 겪고 군대까지 갔다오고 다시 한번 장교로 군대를 또가게 되고 직장을 가지고...
끝에가서 제가 29살이 되는 올해에 이 소설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걸로 제 생애에서 처음으로 완결을 낸 기념비적인 소설이 되겠네요.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독자분들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독자들의 기다림과 기대를 전부 무시해버리는 무책임함.
한때 이 소설을 반드시 완결내겠다고 독자들에게 세번정도 약속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글쓰는 사람으로써의 자격도 능력도 없는 비루한 저를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기다려주신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독자님들에게 정말 정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감정이 격해져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은 힘들 것같습니다.
그저 저를 기다려주시고 제 소설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로터스의 하인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주신 독자분들 덕분에 늙어서 치매가 걸려도 저 스스로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글이 될 것같습니다.
두서없는 후기끝에 다시한번 독자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