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팅엄호의 새 선장님 (1)
“잭슨 포터··· 잭슨··· 포터···.”
제임스가 앓는 소리를 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태블릿에 떠 있는 프로필을 봤다가, 고민하다가를 반복하다가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리아.”
“음······ 으음··· 아뇨. 저도 못 들어봤어요.”
“저기, 안 들어본 게 당연한 거야. 그렇게 유명한 감독이 아니니까.”
2022-23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난 다음 날, 선수들과 코치진은 휴가를 떠났지만 우리는 쉴 수 없었다.
노팅엄이라는 배를 이끌 선장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감독 후보의 프로필을 띄워놓은 태블릿을 보여주며 어때? 라고 물어보았고, 제임스와 마리아는 어제의 성과 덕에 내가 대단한 감독을 데려왔을 거라 착각하고 고민에 빠졌었다.
장장 5분 동안 끙끙댄 게 억울했는지 제임스랑 마리아가 날 흘겨보았다.
“얼마나 고민했는데!”
“반응이 재밌어서.”
“성격 나쁘네.”
“성격 나빠요.”
“고마워.”
씩 웃어주며 대답했다. 다시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던 제임스가 물었다.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몸에 특별한 이상도 없고, 뭣보다 아직 이룬 게 없는 감독이라 은퇴 걱정은 필요 없을 거야.”
만으로 60세, 감독경력 25년.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나이이긴 했다. 하지만 회귀 전의 그는 67세에 전성기를 맞는 감독이었다.
“어느 정도 감독인데?”
“조건이 갖춰진다면 몇 년 만에 바이에른 뮌헨을 맡을 수 있는 감독.”
“뭐?”
나는 이 감독, 잭슨 포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벨기에의 팀을 운영할 때, 벨기에의 강팀 브뤼헤에 낙하산으로 부임한 잭슨 때문에 우승이 예상보다 3년 늦어졌다.
그는 부임한 첫해에 리그를 우승했고 두 번째 해에는 리그 우승과 함께 챔피언스리그를 거머쥐었다. 만약 그가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우리 팀이 우승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거다.
“조건?”
“단점이 명확한 감독이거든.”
“단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감독의 스펙을 줄줄 읊었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제임스는 받아들였고 나는 감독과 만나서 이 조건을 얘기해보겠다고 말했다.
연락하기에 앞서 오늘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그래서 그런데 이번 시즌에 얼마 쓸 수 있어? 예산안 나왔어?”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태블릿의 메모 앱을 찾아 켜고, 손가락 끝으로 파운드화 기호와 함께 숫자 몇 개를 그렸다.
“이 정도?”
“좋아.”
역시 모든 걸 동시에 진행할 돈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4부 리그에 있을 뿐이니, 한 시즌에 한 분야씩 차근차근 진행하면 될 것이다.
“이번 시즌에는 감독, 코치진, 선수단 구성에만 집중하자. 그 외에는 푸드 코트 입점만 신경 쓰는 거로.”
“미안···.”
“아니야.”
정말 괜찮았다. 왜냐면.
“선수 사 와서 팔면 되거든.”
“선수?”
“메일로 목록 보내뒀어. 궁금하면 봐 둬. 일단 감독을 데려와야 일이 진행될 테니··· 마리아, 감독 연락처는요?”
“조이가 알아놨다고 했어요.”
“···조이가요?”
“네, 사무실에서 기다린다고 했어요. 가죠. ···도운?”
마리아가 머뭇거리는 나를 불렀다. 내 앞에 앉아있는 제임스가 능글맞은 얼굴을 하며 실실거렸다.
“조이랑 아직도 어색해?”
“전혀.”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
역시··· 어색해.
“너 왜 자꾸 내 연락 피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 나를 쏘아붙이는 여자의 이름은 조이 우드.
그녀는 노팅엄 FC의 연락담당자 겸 행정팀장을 맡고 있었다. 주말에는 티켓 검사까지 돕는 노팅엄 FC에 없어서는 안 될 직원이었다.
제임스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어린 시절부터 늘 붙어 다녔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놀러 다니고 공도 차고 경기장에서 응원도 하고··· 이십 대에는 일 년 사귀기도 한 복잡한 관계···.
헤어진 후에는 제임스 없이 둘이 만난 적도 없었다. 우연히 만난다 해도 짧게, 조금, 용건만. 조이는 늘 밝게 인사해줬지만, 내가 괜히 어색해서.
회귀 전에는 벨기에에 가는 바람에 몇 년 동안 얼굴을 못 보다가 제임스의 장례식 때 만났던 게 다였다.
“내가 언제 피했다고 그래. 일정이 있다고 했잖아.”
“시간 없다고 답장한 날에 제임스랑 펍에서 논 거 모를 줄 알아?”
제임스··· 이 물에 집어넣으면 입만 둥둥 뜰 새끼.
조이가 저번 주까지 휴가여서 메시지 앱으로만 연락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좋은 아침이에요. 해피. 로라, 아이샤, 몰리···.”
“안녕하세요. 미스터 킴. 근데 뒤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인사한 몰리가 재밌다는 듯 나와 내 뒤의 조이를 보고 있었다. 나머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이가 눈을 찌푸린 채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어서 내 몸 전체를 훑는다.
양손으로 가슴팍을 가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변태.”
“미쳤냐? 너··· 와이셔츠 직접 다린 거야?”
“응, 잘 다렸지?”
“예전부터 말했잖아. 너는 손재주가 없으니까 세탁소에 맡기라고. 내가 괜찮은 곳 알려줄 테니까 거기에 맡겨.”
“옙.”
“아침은 뭐 먹었어?”
“대충 토스트···.”
한숨 한 번 쉬시고.
“괜찮은 가게 알려줄 테니까 아침 잘 챙겨 먹어.”
사무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음흉한 눈빛들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관계를 묻지 않는 거 보니 입 싼 제임스가 이미 떠들고 다닌 모양이었다. 사무실의 조이랑 사장 겸 단장이 된 내가 오래전부터 친구였고, 사귄 적이 있다고.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자취 경력이 몇 년인데.”
“···아. 습관이 돼서.”
이제야 사무실 사람들의 반응을 봤는지 조이가 얼굴을 붉혔다. 헤어진 후, 제임스까지 껴서 만나도 조이는 늘 이랬다.
조이가 화제를 돌리려는지 내 옆에 멀뚱멀뚱 서 있던 마리아에게 말했다.
“마리, 도운이랑 같이 일하는 거 어때요?”
“아직 이주 일도 안 됐지만, 정말 재밌어요. 정말요. 목표도 높고 꼼꼼하시고··· 본받고 싶은 것도 많고.”
마리아가 조금의 틈도 없이 바로 답했다. 진심인 것 같아서 살짝 감동했다.
조이는 정말? 하는 입 모양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이, 잭슨 포터 연락처 좀 줄래?”
“아, 응. 여기. 직접 걸게?”
조이가 들고 있던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이메일과 전화번호가 몇 개 적혀있었다.
“반드시 모셔와야 하는 감독님이라서. 다음에 카페라도 가자고. 아니면 너희 펍에 놀러 갈게.”
“응, 꼭. 우리 부모님도 너 보고 싶어 해.”
“오케이.”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바로 감독, 잭슨 포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런던의 한 낡은 호텔 카페에 새하얗게 머리가 센 중년과 노인의 경계에 선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느린 손으로 노팅엄 FC라는 구단에 관해 찾아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잭슨 포터, 얼마 전 스페인 3부 리그의 한 팀에서 해고당한 나이든 감독이었다.
‘잭, 이게 몇 번째에요.’
‘아빠, 이제 쉬어도 되잖아요? 엄마가 매일 걱정해요.’
‘언제까지 떠돌이 생활을 할 거예요. 당신은 할 만큼 했어요. 이제 일 그만두고, 나랑 같이 산책도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편하게 지내면 되잖아요.’
잭슨은 노팅엄 FC의 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과 했던 통화내용이 머릿속에서 반복재생돼서.
잭슨은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노팅엄 FC.
저번 시즌에는 간신히 강등을 면한 4부리그 최약체 구단.
감독경력의 절반 이상을 2부리그급 팀을 맡아왔던 자신에게는 많이 부족한 구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먼저 제안을 해 온 유일한 구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늘 여기로 찾아온다는 단장을 만나기로 한 거고.
“그만둬야 하나···.”
전술을 짜는 것도, 경기에 나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것도, 그걸 통해 승리를 일궈내는 것도 자신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운 일이었다.
‘당신이랑 하는 축구는 재미가 없어요.’
‘왜 그렇게 무리해야 하죠?’
하지만 지난 시즌 해고당한 팀에서 겪은 일들이 그를 괴롭게 했다.
축구는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종합스포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승리를 갈구하는 강한 정신이라는 게 잭슨의 지론이었다.
그가 꿈꾸는 건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팀이었다. 승리를 목적으로 훈련 중에도 늘 최선을 다하는 승리를 향한 의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가 있는 팀.
그런 선수들이 모인 팀은 질 경기도 승리한다. 실력보다 더 높은 경기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그런 선수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마찰이 필요하다 해도 기다려주는 구단은 없었다.
위닝 멘탈리티 뿐만이 아니었다. 투지 있는 선수들조차 찾아보기 힘든 게 2020년대의 현실이었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버텼는데, 그런 유형의 선수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시대의 흐름이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강하게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십니까.”
요즘 젊은이들의 나이는 구분하기가 힘들다. 20~30대라면 더. 동양인이라면 더더욱.
“노팅엄 FC의 단장 겸 사장, 김도운이라고 합니다. 잭슨 포터 감독님 맞으시죠?”
“아···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감사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앞으로의 축구계를 이끄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김도운이 입을 열었다.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제발 우리 팀에 와 주십시오.”
*
잭슨은 내가 새 홍차가 나올 동안 쏟아낸 말을 들으며 멍한 기색으로 앉아있었다.
“···제가 필요하다고요?”
“예. 반드시.”
“뭘 하겠다고요?”
“6년 뒤에 프리미어리그 승격. 10년 안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요.”
“허허.”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목표가 뚜렷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하는 게 중요했다.
기가 막혀서 그런 건지, 내 말에 정말 당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잭슨은 계속 허허거리면서 따뜻한 홍차를 홀짝이기만 했다.
잭슨이 찻잔을 다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 잭슨이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자신만만하게 하셔서 당황스럽네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저는 감독님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원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감독님의 능력이 제대로만 발휘된다면 제가 말한 계획은 몇 년 더 단축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꽤 능력 있는 사람이고요.”
잭슨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별로 없었는지 표정 관리를 어려워 했다.
“원석이라는 말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요. 당장 내일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고···.”
“잭슨, 예순이면 젊어요. 알렉스 퍼거슨, 마르첼로 리피도 일흔 살까지 일했는걸요.”
이 사람이 잘 되는 걸 안다고 해서 모든 게 잘 풀리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구슬려서 우리 팀으로 데려와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찾아온 거 아닙니까?”
“제대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저번 팀에서 왜 잘렸는지는 아십니까?”
“예. 선수들에게 부담을 많이 주셨다죠. 기대에 못 미치면 소리치고, 싸우고.”
잭슨 포터는 온갖 하부리그를 전전한 저니맨(이 팀 저 팀 떠도는 선수나 감독) 스타일의 감독이었다.
또한, 제임스에게 말했던 대로 장단점이 명확한 감독이기도 했다.
스포츠과학의 시대에 옛 가치로 치부되던 ‘정신력, 투지, 태도’를 유난히 강조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범한 훈련 중에도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걸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회귀 전의 잭슨은 이 시기에 감독 일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고, 또 실패했다.
그렇게 완전히 은퇴하려던 찰나, 그는 한 에이전트를 만나 날개를 펼치게 된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스포츠과학이 지나치게 강조되자 멘탈이 약한 선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자연스레 이 감독이 추구하는 게 맞아 들게 됐으니까.
회귀 전에 어떻게든 이 감독을 이겨보려고 별의별 걸 다 조사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요즘 선수들이랑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금까지 은퇴할까 고민했습니다.”
“은퇴는 절대 안 됩니다. 잭슨은 축구계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우리 팀에는 더더욱이요.”
“...내 문제는 내가 가장 잘 압니다. 얘기하려고 하셨던 걸 계속 말해주시겠습니까? 제게 어떤 제안을 하실 건지 듣고 싶습니다.”
“예.”
일단 준비해온 걸 말하기로 했다.
“저도 감독님처럼 선수들의 정신력을 중요시합니다. 경기를 볼 때도 그렇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는 응원하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말입니다. 선수들은 그걸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선수들도 사람 아닙니까? 어떻게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까. 가끔 풀어질 때도 있는 거지. 감독님에게 충성하는 선수도 문젭니다. 보나 마나 무리할 테니까.”
내 말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지 잭슨은 쓸쓸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저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감독님에게 필요한 게 있습니다.”
잭슨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감독님의 고삐를 잡아줄 코치진입니다.”
“···.”
“감독님은 감독님의 단점을 보완해 줄 코치진이 필요합니다. 감독님이 없을 때 선수들을 달래줄 수도 있어야 하고, 무리하는 선수들을 자제 시켜 줄 코치가 꼭 필요해요.”
알렉스 퍼거슨, 조세 무리뉴, 펩 과르디올라도 자신들의 단점을 보완해줄 코치진이 없다면 그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코치진이 늘 함께했다.
“감독님은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감독이 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그의 눈가의 주름이 자글자글하든, 머리가 하얗게 셌든 상관없었다. 세월에 흐려지지 않은 잭슨의 맑은 눈동자가 날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나 또한 눈을 부릅뜬 채로, 단호하게 말했다.
“함께 전설을 만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