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0화 (10/245)

3. 노팅엄호의 새 선장님 (4)

선수들이 휴가에서 돌아오고 일주일이 흘렀다.

나와 직원들이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즌이 끝났을 때부터 하던 일을 계속해나갈 뿐이었다.

노팅엄 FC의 2부 리그 시절 수석 스카우트였던 분을 다시 모셔왔고, 회귀 전 눈 여겨봤던 선수들을 조금 무리해서라도 데려왔다. 네 명 중 세 명을 데려왔고 한 명은 실패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한, 감독과 협의해 수석코치와 코치 하나도 영입했다.

팀에 남지 않겠다고 선언한 선수들을 처분하는 것도 일이었다. 계약이 끝난 선수들은 상관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다른 구단과 에이전트들에게 연락하고 이적료 협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수단 정리를 얼추 끝냈다.

남은 건 잭슨이 직접 선수들을 훈련 시켜 보고, 정리할 선수를 정하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프리시즌 첫 경기 상대인 레이튼 오리엔트(5부 리그 팀)를 4-0으로 가볍게 이겼다.

아직 잭슨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선수는 없었다.

잘 된 거 아니냐고 잭슨에게 물어보니, ‘일주일 동안은 선수들을 파악하려 합니다.’라고 말하더라.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일한다는 거겠지. 그때부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거겠고.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지켜봐야 하는 처지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대로라면 별일 없을 것 같기도 했고, 할 일이 많기도 해서.

**

“톰슨! 지금 장난치는 거야? 이리 와 봐!”

훈련장에 잭슨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일주일간, 마치 인상 좋은 할아버지같이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던 잭슨이었기에 선수들이 움찔했다.

잭슨이 부른 톰슨, 그러니까 올리버 톰슨은 다른 선수들의 눈치를 보며 잭슨에게로 다가갔다.

“장난 같은 거 안 쳤습니다만.”

지금 분위기는 마치 어린 시절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에게 혼나기 직전 분위기 같았다. 그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올리버는 변명하듯 먼저 말했다. 하지만 잭슨의 얼굴에는 불쾌감만 더 차오를 뿐이었다.

잭슨은 팔짱을 낀 채로 올리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훈련 시작 전에 말했을 텐데. 오늘부터는 훈련에 임하는 태도를 보겠다고. 구단에서 돈을 받으면 프로답게 하라고.”

잭슨은 선수단을 일주일 동안 지켜봤다.

새 감독이 부임했을 때, 선수들은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잭슨은 일주일 전의 올리버를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과 비교할 수 있었다.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그때와는 아주 다르다는 걸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올리버 또한 마음 한구석이 찔리긴 했다. 어제 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훈련 끝나고 만나기로 해서 조금 살살 뛰고 있었기 때문에.

“주의하겠습니다.”

올리버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좋아. 믿어보지.”

잭슨은 설렁설렁 뛰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고, 첫 타겟이었던 올리버는 네 번이나 더 혼났다.

“올리버, 이거나 마시면서 마음 풀어.”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올리버는 감독에게 가서 따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올리버는 그에게서 탄수화물이 다량 함유됐다는 특수 음료를 받아서 들어 한 번에 들이켰다. 달콤한 맛이 불쾌한 기분을 쓸어 내려간다.

“저 감독 원래 저럽니까? 아니면 내가 맘에 안 드나?”

올리버의 물음에 잭슨의 추천으로 수석코치가 된 잭슨의 옛 제자, 존 스미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잭슨은 이십 년 전에도 저랬지.”

존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열심히 고민했다.

‘큰일 났네. 잭슨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불만이 쌓이면···.’

존의 역할은 잭슨의 분위기에 선수들이 적응할 수 있게 기분을 풀어주는 것, 존은 웃으며 올리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능력 하나는 알아주니까 말 들어서 나쁠 건 없을 거야. 잭슨의 요구에 맞춰서 조금만, 열심히 해 보자고.”

올리버는 대답하지 않은 채로 잭슨의 뒤통수를 노려봤고, 존은 머쓱하게 웃고 자리를 떠났다.

*

“으아아아아!”

“아이씨, 깜짝이야. 갑자기 왜 지랄이야.”

며칠 후, 노팅엄의 드레싱룸에서 올리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가 1부 리그에서 뛰는 것도 아니고! 프리 시즌인데 너무 팍팍한 거 아니야? 저 감독, 여기가 무슨 군대인 줄 아나?”

잭슨의 불호령은 오히려 더욱더 심해졌고, 올리버를 비롯한 몇 선수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특히 가장 많이 불려간 올리버는 그들 중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존나 마음에 안 들어. 자꾸 뭐라고 해서 지난 시즌처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그래? 난 괜찮던데. 지난 시즌 감독이랑은 수준이 다른 게 확 와닿지 않냐?”

“수준이 다르긴 무슨.”

노팅엄의 선수단 내에는 두 개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감독이 마음에 든다 와 마음에 안 든다.

마음에 든다는 측은 이번 시즌 새로 이적해 온 세 명의 선수와 유소년에서 올라온 세 명의 선수, 그리고 기존 선수 절반가량이었다.

이들은 애초에 지난 시즌의 분위기를 모르거나, 낮은 훈련 수준에 불만이 있던 선수들이었다.

잭슨은 2, 3부 리그에서 주로 활동했던 감독답게 확실히 수준 높은 훈련과 더불어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로드, 너도 감독님이 별로야? 나는 너무 좋은데.”

“너는 감독님이 예뻐하니까 그렇지. 나도 뭐··· 싫지는 않지만. 별생각 없어.”

유소년 출신 3인방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모여 있었다. 로드와 라이언이 속삭이는 사이, 할리는 올리버가 떠들든 말든 스마트폰을 보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우리 팀이 대단한 팀도 아니고, 나도 지난 시즌이 그립긴 해.”

올리버에게 동조하는 선수들의 대표적인 의견이었다.

감독이 마음에 안 드는 부류들은 대체로 감독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애초에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팀은 강등권으로 평가받는 팀이었으니까, 적당히 훈련하고 급료만 받아가면 그만이라는 게 그들의 기본 생각이었다. 이들은 그렇게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처럼 두 시즌가량을 보낸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의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목소리가 점점 커져 드레싱룸을 가득 채우게 됐을 때, 낮고 굵은 목소리가 이들을 중재했다.

“훈련 시작 10분 전이다.”

노팅엄 FC의 주장, 알렉산더 샌더스가 신발 끈을 고쳐 묶고 고개를 들었다.

노팅엄에서만 15년을 뛴 공격수이자 지난 시즌 최다득점자이기도 한 그의 말에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빨리 준비하고 나와.”

그렇게 말한 알렉산더는 물병을 챙겨 들고 드레싱룸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로드를 비롯한 유소년 셋이 나갔고, 선수들도 하나둘 빠져나갔다.

“캡틴은 불만 없는 모양이네.”

“어떻게 알겠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양반이잖아.”

올리버가 나가는 선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뭐가?”

“감독의 방침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단장에게 따져야겠어.”

“···될까? 저 감독 단장이 데려온 거잖아.”

“내가 이 팀에 얼마나 공헌했는데.”

옆의 선수는 올리버의 말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들어 주겠다. 편해지면 나야 좋지.”

“잘 되면 바에서 술이나 사라.”

“오케이.”

*

“그러니까···.”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에 검지를 댄 채로 말했다.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고요. 감독이.”

“그렇습니까.”

“새로 부임해서 의욕이 넘쳐 흐르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 해 오던 게 있는데,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그런 식으로 윽박지르면 기분만 나빠지잖아요.”

축구팀을 운영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것 중 하나가 선수와 감독의 불화다.

특히 내 앞에 앉아있는 올리버 톰슨은 지난 시즌 팀 내 득점 2위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핵심 중의 핵심 선수라 이거다. 그는 나와 스카우트가 판단하기로 3부 리그로 승격한 후에도 제 몫을 해 줄 선수였다.

선수가 단장에게 찾아올 정도면 감독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내 앞에서는 좋게 말하고 있지만··· 경험상 이렇게 됐을 때는 어지간해서는 대화로 안 끝났고, 둘 중 하나가 떠나야만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나는 올리버의 푸념 같은 항의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다.

거의 30분가량의 불만 표출이 끝난 후에야 올리버의 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잭슨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단장님은 말이 통하시는군요.”

**

“부드럽게는 못 해요?”

잭슨의 수석코치 존이 말했다.

“내가 안 해 본 줄 알아?”

존은 20년 전, 잭슨의 선수로 뛰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잭슨은 존만은 편안하게 대했다.

“존, 잘 들어. 하부 리그의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상위 리그의 선수들보다 프로 의식이 부족해. 그런 선수들에게 어중간하게 부드럽게 대한다? 만만하게 보여 팀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고. 그럴 바에야 트러블이 생기더라도 강하게 나가는 게 좋아. 내가 존경하는 알렉스 퍼거슨 경은 말이야···.”

불 호랑이 감독의 대명사 알렉스 퍼거슨은 잭슨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었다.

그 대단했던 베컴의 얼굴에 신발을 집어 던지고, 잉글랜드 최강에 군림했던 스타플레이어들이 그의 얼굴이 붉어지면 덜덜 떨었다지.

“하지만 잭슨은 계속 실패했잖습니까.”

“분위기와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할 수 있어. 그동안은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고, 내 편을 들어주는 보드진도 없었지.”

“여긴 다르다는 겁니까? 미스터 킴이 잭슨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같긴 하던데···.”

존이 자신을 찾아왔던 김도운을 떠올리며 말했다. 잭슨을 도와서 함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일궈내자고 했었지.

정신 나간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잭슨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 승낙했다.

“그래, 날 무조건 믿어준다고 했어.”

“근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십니까?”

“내가 언제?”

존이 잭슨의 다리를 바라봤고, 잭슨 또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 봤다. 한쪽 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크흠···.”

“그리고 킴 좀 그만 쳐다보세요. 선수들이 슬슬 눈치챈다고요.”

“그래.”

훈련장 구석에서는 김도운이 쉬는 중인 골키퍼들을 하나씩 불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잭슨은 존을 통해 올리버 톰슨이 김도운에게 불만을 말했다는 걸 들었다.

잭슨은 솔직히 불안했다.

이십 년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결과도 비슷했다.

보통 팀의 핵심 선수가 불만을 내비치면 구단은 자신과 선수 둘 중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문제를 내버려 두곤 했다.

그렇게 갈등은 깊어지고, 분위기가 나빠져 팀은 제 성적을 못 내게 되고 자신은 경질당한다.

간혹 구단이 한쪽 편을 들 때가 있긴 했는데, 그럴 때는 늘 선수의 편을 들어줬었다. 선수 측은 보통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빌어먹을. 할리! 칼 쪽이 비었잖아! 집중 안 해?”

잭슨은 걱정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지금은 훈련 중이었으니까, 자신부터 집중하고 모범을 보여야 선수들을 따르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남은 30분의 훈련이 진행됐고, 벤치에 앉아 훈련을 구경하던 김도운이 다가왔다.

“감독님, 점심이나 같이 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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