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1화 (11/245)

3. 노팅엄호의 새 선장님 (5)

점심 식사가 끝날 때까지 김도운은 특별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평소 운동은 하냐, 여기 생활은 어떠냐, 맛있는 집이 있는데 나중에 같이 가자.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만 했다.

그리고 홍차가 두 잔 놓였을 때, 김도운이 물었다.

“뭘 그렇게 불안해하세요?”

“그동안 겪어온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감독님을 내쫓을 것 같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감독님은 우리 구단의 노예거든요. 이 구단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하셔야 할 거예요.”

표정으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갔다. 잭슨이 말없이 김도운을 바라보자 김도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에요. 그 정도로 저는 감독님을 신뢰하고 있다 이겁니다. 그리고 물어볼 게 있습니다만.”

“말해보세요.”

“올리버를 내보내도 강등은 안 당할 수 있죠? 혹시 이번 시즌에 올리버가 꼭 필요합니까?”

선수들은 대부분 다 큰 어른이고 김도운은 다 큰 어른을 갱생시킨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사흘을 참지 못해 단장에게 찾아오는 선수라면 더.

회귀 전, 감독과 선수가 싸웠을 때 둘을 화해시키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 시즌이 망했다.

각자 살아온 세월은 길고, 맞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프로축구클럽은 학교가 아니다.

구단에서 판단했을 때,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선수라면 다른 팀으로 빠르게 보내야 한다. 그게 수뇌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김도운은 문제가 지금 터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이 막 부임한 시즌 초반이라면 핵심 선수를 정리해도 충분히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으니까.

“감독님의 방식에 불만을 가진 선수는 올리버 말고 둘밖에 없습니다. 이 둘은 후보급 선수들이니 적당한 선수를 보강해 드리겠습니다.”

걱정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워 잭슨은 헛웃음을 흘렸다.

“약속대로군요.”

“네,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되실 분과 3부리그급 공격형 미드필더를 천칭에 달아보면, 어디로 기울지 뻔하잖아요? 아쉽지만 포기해야죠.”

김도운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잭슨은 미소지었다.

“올리버를 내보내 주십시오. 다른 선수를 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영입해온 선수들이 아주 훌륭하거든요.”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온 제임스가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올리버를 판다고···?”

“응.”

“도니, 올리버는 팀의 핵심이야.”

“잭슨이 충분히 메꿀 수 있다고 했어. 무엇보다.”

제임스와 마리아의 불안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선수 하나를 희생하더라도 우리 구단이 감독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는 걸 보여줘야 해. 지금은 감독에게 힘을 실어줄 때야.”

“네가 확신한다면야···.”

지난 시즌 핵심 선수를 빼고 시작할 새 시즌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제임스를 그대로 두고, 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이, 나야.”

-응, 알아.

“올리버를 팔 거야. 올리버의 에이전트 전화번호를 나한테 보내주고, 잉글랜드의 3부, 4부 구단에 전부 팩스 보내줘. 이적료는 미정으로.”

-뭐? 어··· 파격적이네. 그래. 알았어. 일단 올리버의 에이전트 전화번호는···.

나는 전화번호를 받아적었고, 조이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 알겠습니다.

새 시즌 구상에 올리버 톰슨이 없다고 말했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얘기했다. 에이전트는 조용히 내 말을 듣더니 선선히 수긍했다.

“이번 시즌에도 함께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네요. 올리버는 정말 훌륭한 선수였어요. 지난 시즌 보여줬던 헌신은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세요.”

-올리버도 즐거웠을 겁니다.

에이전트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 보였다.

일반적인 에이전트라면 이적 얘기를 반길 수밖에 없었다. 에이전트는 선수가 이적을 많이 할수록 돈을 버는 직업이니까.

뭐, 올리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

“뭐?”

-노팅엄의 단장에게서 전화가 왔어. 지난 시즌 보여줬던 헌신은 잊지 않겠대. 아무튼, 그래서 다른 팀을 좀 알아봤는데···.

“하?”

프로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긴 했다. 이적시장 중이라면 언제든지 팀을 옮길 수 있으니.

하지만 새 감독과 자신 중 감독을 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자신의 가치가 그런 욕쟁이 감독보다도 못한다니.

“내가 안 떠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계약이 끝난 건 아니라 가능하긴 하겠지만··· 굳이 그래야겠어? 여기선 뛰지도 못할 텐데.

“빌어먹을··· 생각할 시간 좀 줘.”

한 시간을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팀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데 훈련장을 자신의 발로 찾아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올리버는 에이전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4부 리그 팀으로 알아봐 줘. 다른 데는 갈 생각 없어.”

-3부 리그 팀에서도 관심을 보였는데···.

“됐어.”

*

올리버는 짐을 챙기기 위해 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가지고 간 큰 캐리어에 유니폼과 축구화를 쑤셔 넣는데, 드레싱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이 시간까지 뭐 하는 거야? 캡틴··· 아니 샌더스.”

개인 운동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알렉산더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알렉산더는 말없이 올리버의 손과 캐리어를 바라보았다.

올리버는 막 쑤셔 넣으려던 신가드(정강이보호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당신은 내 캡틴이 아니거든. 나,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

“···그런가. 아쉽군.”

“그러게 말이야. 내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당신이랑은 오래 뛰고 싶었는데.”

“영광이군.”

“오늘따라 말이 많은데?”

“떠난다고 하니까.”

올리버가 픽 웃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당신은 감독이랑 단장 어떻게 생각해?”

“감독의 방식은 마음에 든다.”

“단장은?”

“좀······ 불편하지.”

“불편?”

알렉산더가 입을 다물었고, 올리버는 대답을 기다리다가 포기했다.

“단장이랑 감독한테 말 좀 전해줄 수 있어?”

알렉산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더럽지만 일단 나가준다고. 대신, 날 다시 만나게 될 때 각오해야 할 거라고.”

“4부 리그 팀으로 이적하는 건가?”

“열 받아서 말이야. 난 샌더스처럼 늙지도 않았고. 한 시즌 정도야 괜찮겠지.”

올리버의 말에 알렉산더가 아주 살짝 웃었다.

“기대하지. 그동안 수고 많았다.”

**

잠에서 깨자마자 확인한 메일함에는 올리버가 4부리그의 최강팀 중 하나인 MK돈스, 그리고 우리 팀과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 팀인 노츠 카운티와 이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감독과의 불화만 아니었다면 계속 함께했을 선수여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위안하며 나는 출근준비를 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새벽 다섯 시. 아직 깜깜한 시간대였기에 불이 켜진 사무실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건물로 들어가 불이 켜져 있던 사무실로 향했다.

노크하고 문을 여니 경기장 모양이 그려진 종이가 잔뜩 늘어진 책상과 안경을 쓴 잭슨이 보였다.

“부지런하시네요.”

“늙으면 밤잠이 없어집니다.”

“저 악덕 고용주라고 잡혀가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잭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커피포트를 작동시켰다.

“무슨 차로 드릴까요?”

“카모마일로요.”

나는 면담용으로 비치해 둔 소파에 앉았다. 잭슨이 찻잔 두 개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요즘은 어때요?”

“만족스럽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프리시즌 성적이 괜히 좋은 게 아니었네요.”

프리시즌 네 번째 경기까지 치렀고, 노팅엄 FC는 전승 중이었다.

네 번째 경기는 3부 리그 팀과의 경기였기에 올리버의 방출로 생겼던 팬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었다.

“믿어준 만큼 결과로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대할게요. 아, 그건 그렇고 요즘 운동하신 적 있어요?”

“없습니다만···.”

“역시, 사실 그것 때문에 왔어요. 자요.”

잭슨은 직접 뛰면서 가르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나보다는 아니겠지만 활동량이 아주 적다.

감독은 많은 체력이 필요한 직업이었기에 나는 잭슨을 위해 준비한 트레이닝복을 건넸다.

“뭔가요?”

“선수단에도 딱히 문제가 없다 하니··· 오늘부터 조깅이나 하자고요. 저번에 운동하셔야겠다고 했잖아요. 같이 뛰어드릴게요.”

얼마 전에 밥을 먹으며 얘기했었다. 단장이든 감독이든 체력관리가 꼭 필요한 직업이라고.

내가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지 잭슨은 떨떠름한 미소만 지었다.

“음···.”

“딱 30분만 뛰죠. 일주일에 세 번 정도만.”

“허허허.”

“체력을 길러야 우리 구단에서 이십 년은 해 먹을 거 아니겠습니까?”

조깅은 사실 핑계고 잭슨과 더 친해져서 다른 구단에 눈 돌릴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잭슨은 기분이 좋은지 웃음기 낀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십 년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는 여든인데···.”

“하하, 오래 일하면 좋죠. 아무튼, 함께 하실 거죠?”

잭슨이 트레이닝복을 받아들었다. 노팅엄 FC 엠블럼이 박혀있는 이번 시즌 신상품이다.

“좋습니다. 제가 나이는 많아도 선출입니다. 30분이라면 따라오기 힘드실 겁니다.”

“저도 프로 데뷔는 못 했지만, 유소년 출신인데요.”

“허, 시합해 보죠.”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훈련장 주변을 30분 동안 뛰었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겼지만, 그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첫 번째 프리시즌이 무척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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