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노팅엄 푸드 리그 (1)
좋은 선수단을 만드는 것과 팬들이 즐길 수 있는 구단을 만드는 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오늘은 선수단을 운영하는 단장이 아닌 구단을 운영하는 사장의 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역시 계약하길 잘한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필요한 건 없나요? 불편한 거라도 괜찮아요. 참고하려고요.”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에서 판매량 3위를 차지해 시범적으로 정식 계약까지 한 핫도그 가게 사장님, 로라 쿡의 얼굴은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무척 밝아져 있었다.
나는 로라에게서 경기장에서 가게를 하는 데 생기는 애로사항에 관해 듣고 있었고, 로라는 그걸 말하는 걸 빙자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곧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넌지시 꺼내자, 로라가 본론으로 돌아와 줬다.
“문제는 아무것도 없어요. 다 좋아요. 아, 그런데 다른 가게는 언제 들어오는 거예요?”
“<노팅엄 푸드 코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신청서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이따 구단주와 의논해보기로 했어요. 저희가 요식업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까 고민이 많네요.”
우리의 홈구장에 팬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을 넣자는 계획은 <노팅엄 테마파크 프로젝트>, 그 계획의 하나로 이번 시즌에 음식점을 유치해보겠다는 계획은 <노팅엄 푸드 코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몇 년 뒤에는 최상위권, 하위권 할 것 없이 웬만한 구단이라면 경기장 내에 간단한 매점이 아닌 전문적인 식당들을 들여놓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한 프리미어리그 최상위 구단이 경기장 복도에 바와 관람시설을 들여놓아 아주 큰 수익을 꾸준하게 올린 덕이었다.
경기장이 낡아서 시설 자체를 들여올 순 없었지만, 저번 페스티벌을 하며 푸드 트럭처럼 이동할 수 있는 시설들을 미리 들여놔서 괜찮았다.
“좋은 가게가 많이 들어오면 좋겠네요. 딱 우리 가게가 장사 잘될 정도로 만요.”
로라의 솔직한 말에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
“5584명, 6111명, 6979명··· 7777명! 세븐! 세븐! 세븐! 세븐! 럭키 세븐이라고!”
제임스가 프리시즌 네 경기의 관중 숫자를 반복해서 읊고 있었다.
“다 네 덕이···.”
고개를 흔들어 제임스의 말을 끊었다.
“그만 좀 띄워. 이러다 날아가겠다.”
프리시즌 관중이 꾸준히 늘고 있었다.
원래 프리시즌 첫 경기에는 ‘이번 시즌에는 다르지 않을까···.’생각한 팬들이 돌아오고, 새 감독 잭슨의 지휘 덕에 4연승을 달리고 있기에 관중이 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기에 <노팅엄 푸드 코트> 계획이 더 중요해졌다.
이렇게 팬들이 늘어갈 때, 양질의 먹거리를 제공해 이 구단에 더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니까.
“4,271장. 시즌권도 순조롭게 팔리고 있어. 저번 시즌 이 시기에 3,000장쯤 팔렸으니까 올해는 7,000장쯤 팔릴 것 같은데? 솔직히 좀 좋아해라.”
“흐흐.”
시즌권 판매현황을 알려주러 왔다가 차가 맛있다며 눌러앉은 조이를 향해 일부러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줬다.
“웃는 게 멋지네.”
조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홀짝였다. 괜히 진 것 같아서 눈썹을 찌푸렸다.
“근데 굳이 그걸 알려주러 여기까지 와야겠냐. 메일도 있잖아.”
“제임스가 가장 비싼 차는 여기에만 놨단 말이야. 겸사겸사지.”
그때 우리의 눈치를 보던 제임스가 손뼉을 두 번 쳤다.
“도니, 우리 오늘 왜 모였는지 안 잊었지?”
예전처럼 투닥댔을 뿐인데 혹여나 우리가 싸울까 봐 불안한가 보다. 전혀 그럴 생각 없었는데. 조이도 제임스의 걱정을 눈치챘는지 내게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좀 더 있다 가도 돼? 오전에 할 일 다 해서.”
“마음대로. 아이디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줘.”
“오케이.”
제임스는 조이의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중이 늘어난 만큼, 시범적으로 계약한 세 가게가 무척 잘 되고 있었고, 수요가 너무 많은 나머지 질이 낮은 매점 음식들도 잘 팔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입점만 한다면 장사가 잘될 거라는 걸 깨달은 음식점의 사장들이 <노팅엄 푸드 코트>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앞다투어 신청서를 내서 아주 골치가 아파졌다. 일곱 가게만 뽑으려고 했는데 신청서는 칠십 장이다.
나는 걱정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내부 시식회만으로 좋은 가게를 선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일단 다음 주에 구단 직원들에게 음식을 선보이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종선별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공고했긴 하지만···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제임스가 한쪽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어떻게든 해야지. 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음식 전문가가 아니잖아. 아, 전문가를 초빙해 볼까?”
“그것도 괜찮긴 해.”
더 좋은 생각이 없을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제임스가 이상한 의견을 내놓았다.
“경연을 열면 어떨까?”
“응?”
“’이번 시즌 함께할 음식을 여러분의 손으로 뽑아주세요!’ 같은 캐치프라이즈로 행사를 여는 거지.”
“오?”
제임스의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관통했다.
“가게 사장의 역량도, 관중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좋은데?”
“그렇지? 재밌겠지?”
“이번에는 식권 식으로 나눠줘서 보자마자 눈에 가는 거 하나만 먹을 수 있게 하면 되겠다. 추가로 먹고 싶으면 돈 내라고 하고.”
잔뜩 신난 것 같던 제임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돈이···.”
“이번에는 지원금이 적어도 괜찮을 거야. 대신 수익이 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하면 되니까.”
“아.”
그때 조이가 끼어들었다.
“70개의 가게를 수용할 시설은?”
“신청서를 통해 검토하고, 시식회에서··· 구단 직원 입맛에 미달되거나, 준비가 너무 오래 걸리는 가게는 빼자. 20개 정도면 되잖아? 신청서 보니까 직접 시설을 가져다 놓겠다는 사장님들도 있었고.”
미처 생각 못 한 부분이지만, 조이에게 대답하며 구체화했다. 조이는 구단 직원이다 보니 우리가 생각 못 한 실무적인 내용을 이것저것 물어봐 줬고, 덕분에 자잘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었다.
조이가 또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생각인데··· 기왕 이렇게 된 거 경연을 한 시즌에 두 번 여는 건 어떨까? 겨울 휴식기에 여는 친선경기는 늘 재미가 없었거든. 이거 같이 개최하면 즐길 게 생기는 거니까··· 도운 네가 말하는 경기 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요소잖아?”
“좋다!”
나는 손바닥을 쫙 펴서 들었고, 조이도 마주 들었다. 짝하는 하이파이브 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제임스가 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
“사람 진짜 많다. 헨리, 잘 될까? 들키는 거 아냐?”
“절대 안 걸린다니까? 걱정하지 마, 로지.”
헨리와 로지는 다른 지역에서 <노팅엄 푸드 코트> 공고를 보고 찾아온 연인이었다.
“나 조금 불안한데···.”
로지의 말에 헨리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옆 도시에서 가장 잘 팔리는 타코 재료를 사 왔잖아. 우리는 직접 만드는 척을 하다가, 완성된 음식으로 바꿔치기해서 합치기만 하면 돼. 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누가 우리한테 신경 쓰겠어?”
로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팅엄 FC에서는 이번 시식회를 위해 훈련장의 조리실을 빌려주었고, 식당에는 신청서를 낸 사람들만 수십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리실의 사람이 빠지면 교대로 들어가 준비한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노팅엄 FC의 직원들이 앉아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준비한 걸 생각하는지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노팅엄의 직원들은 음식을 먹느라 참가자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지도.”
“괜찮을 거야. 근데 이 구단도 참 웃긴다. 이렇게 허술해서야.”
참가자들이 어떻게 요리하는지 간섭하지 않겠다는 게 구단의 방침이었다. 참가자들이 미리 주문한 신선한 재료를 제공해주기만 하는 게 구단이 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완성된 재료를 가지고 온 자신들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로지, 헨리! 그리고 마이크! 들어오세요!”
그리고 이들의 차례가 됐다.
*
“정말 안 걸렸어.”
로지는 양상추, 양파, 토마토를 자르는 척하다가 포장해 온 재료와 바꿔치기하고, 만들던 건 가방에 집어넣었다.
헨리는 고기를 다지는 척하다가 로지처럼 가방 속의 완제품과 바꿔치기했고, 자연스럽게 프라이팬 위에 올려 볶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하던 헨리도 긴장했던 건지, 이마에 땀이 나고 있었다. 로지가 헨리의 땀을 닦아주었다.
“됐다 됐어. 이제 우리 돈 벌 수 있는 거지?”
헨리가 씩 웃었다.
“그래, 옆 도시에서 가장 잘 팔리는 타코니까, 무조건 1등이야.”
이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최종평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시식회보다 중요한 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여기서 1등을 하면 자리만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얻은 뒤에는 쉬웠다.
오늘처럼 다른 가게에서 대량으로 재료를 사 온 다음에 적당히 데워서 판다.
한 시즌 동안 목돈을 마련해 다른 사업을 시작한다. 요리보다 멋지고 대단한, 뭐 그런.
“와··· 저 사람 봐. 이게 뭐라고 저렇게 열심히 한데?”
여유가 생긴 로지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근처 튀김기에는 머리를 빡빡 민 흑인이 두건을 두른 채, 땀을 흘리며 신중하게 기름을 빼고 있었다.
“멍청한 거라니까? 세상은 이게 잘 돌아가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저기요. 우리 다 했어요.”
헨리와 로지는 완성된 타코들을 접시에 담아 밖으로 나갔다.
*
머리를 빡빡 민 흑인의 이름은 마이크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마이크는 스무 살이 넘자마자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올해 영국으로 돌아온 서른 살 청년이었다.
그는 각국에서 온갖 요리를 먹어보고 배운, 열정 넘치고 실력 있는 요리사이기도 했다.
여러 나라를 돌며 벌어온 돈으로 푸드 트럭을 구매했고, 영국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다 최근 노팅엄에 정착했다.
노팅엄의 명물인 숲의 경치가 마음에 들었고, 약 한 달 후 학기가 시작되면 찾아올 대학생들의 젊은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중, 뮤튜브를 통해 노팅엄 FC에서 주최했던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을 보게 되었다. 자신도 여기 있었으면 재밌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영상 끝에 <노팅엄 푸드 코트>에 관한 광고가 흘러나오는 걸 보게 된 거다.
축구 경기장에서 제대로 된 길거리 음식을 선보인다는 건 색다르고 재밌는 경험일 것 같았다. 한 시즌 계약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이크는 이곳에 지원했다.
‘여기 사장이 한국 출신이라고 했지.’
촥, 촥하고 기름이 떨어진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튀김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필살기다!’
붉고 달짝지근해 보이는 소스가 보울에서 살짝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이크는 닭튀김을 보울에 집어넣고 붉은 소스를 묻히기 시작했다.
*
“오늘 시식회의 1등은 헨리와 로지입니다. 타코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마이갓, 감사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분에게 1등을 주고 싶었는데··· 투표에서 밀렸어요. 마이크, 훌륭한 한국식 양념치킨이었어요. 2등입니다.”
김도운이라고 했나? 사장의 뒷말은 헨리와 로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1등을 했고, 최종평가가 뭐든 간에 장사할 자리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 거니까.
그때, 사장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 순위를 바탕으로 최종평가를 할 계획입니다. 1위부터 20위까지만 최종평가에 참여하실 수 있고, 최종평가를 위한 1위부터 자리선택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예?”
“예?”
헨리와 로지는 자신들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나가는 걸 막지 못했다.
“지난 시즌 막바지에 했던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 같은 행사입니다. 다음 주 경기에서 직접 판매를 하고, 많은 관중이 찾거나 좋은 평가가 많은 가게에 가산점을 줘 최종적으로 일곱 가게를 선발할 계획입니다.”
7위 밖에 있던 사장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7위 안에 든 몇몇 사장들은 항의했다.
사장, 김도운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오직 실력으로 평가받는 거죠. 대회의 이름은 <노팅엄 푸드 리그>가 어떨까 생각합니다.”
헨리와 로지는 눈을 똥그랗게 뜬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