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노팅엄 푸드 리그 (2)
“괜찮으십니까? 얼굴이 창백한데.”
“예··· 오늘 배가 좀 아프네요.”
시식회에서 1위를 한 커플의 표정이 나빴다. 헨리와 로지라고 했던가.
“리그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가요? 경기장에 의사 몇 분을 모셔왔는데···.”
“아뇨! 아뇨! 괜찮아요!”
“정말인가요?”
“······예!”
오늘은 <노팅엄 푸드 리그>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난주 시식회에서 참가자들은 대부분 참여하겠다고 말했고, 나를 비롯한 우리 구단의 직원들은 홍보다 시설 설치다 식권 만들기다 뭐다 일주일 동안 불철주야해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물론 추가수당은 지급했다.
“혹시 아프시다면 무전기를 통해 연락 주세요. 조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분 뒤부터 입장 시작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지난주에 먹었던 타코는 아주 맛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양념치킨이 더 좋았지만, 타코도 아주 맛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맛집에서 먹어본 것 같은 맛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예매된 표로 예상해봤을 때, 관중석은 1만 석 가량이 찰 것 같았다.
완전 무료였던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에 비하면 훌륭한 성과였지만, 그때의 2만 관중이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라서 나는 욕심부리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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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추도 있고, 양파도 있고··· 다진고기도 있어. 헨리 이거면 충분하겠지?”
“좀 조용히 해 봐. 머리 아프니까.”
“헨리!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
“언제 소리를 질렀다고 그래.”
“방금!”
헨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찌푸린 미간을 부여잡았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여자친구라는 로지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짜증을 부르고 있었다.
‘경기장에 입점할 가게를 누가 이런 식으로 뽑아.’
정신 나간 구단이 틀림없었다. 헨리는 말도 하지 않으려는 로지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괜찮아 로지. 어차피 이렇게 팔 생각이었잖아. 먼저 해 본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겠지?”
“별거 아니야. 프라이팬에 대충 데워서 주면 되는 건데 뭐.”
*
헨리의 자신감은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저기요. 이거 안 익었는데···.”
“죄송합니다.”
“퉤퉤, 얼었잖아요!”
“죄송합니다···.”
“미쳤어? 이딴 걸 팔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손님이 적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장사를 해 본 적이 없는 헨리와 로지의 밑천은 순식간에 드러났다.
손이 바빠지자 데우는 것조차 대충 하기 시작했고, 각종 실수가 쏟아진 것이었다.
술집에서 주먹 싸움도 자주 일어나는 영국에서 자란 헨리는 험악해진 주변 남자들의 얼굴을 보며 패닉에 빠져 있었다.
“자, 잠깐 쉬겠습니다!”
헨리는 불과 30분 만에 가게를 제멋대로 닫아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저기 가서 얘기 좀 하자.”
“응? 어, 어어.”
넋이 나간 채로 음식을 데우던 로지까지 데리고.
둘의 뒷모습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던 한 노팅엄 팬이 말했다.
“불은 끄고 가야 할 거 아냐?!”
“꺼 주세요!”
“저런 미친놈이···.”
사람들이 없는 계단 아래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헨리가 로지에게 말했다.
“도망가자.”
“뭐?”
“팬 평가는 무조건 최악일 거고, 우리가 경력을 허위로 적어놓았다는 게 걸릴지도 몰라. 경찰에 잡혀가면 어떡해.”
“정말?”
그제야 로지의 멍한 얼굴이 겁에 질렸다.
잠시 후, 몇몇 팬들은 앞치마에 소스를 군데군데 묻은 채로 도망치듯 경기장을 떠나는 커플을 볼 수 있었다.
*
“허.”
“하하.”
“하하하.”
시식회에서 1위를 한 커플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직원에게 들었다.
제임스에게 그대로 전하니 말없이 웃기만 해서, 나도 웃는 중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임스가 경연을 해보자고 안 했더라면 골치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운 좋은 자식이네.”
“응?”
내 말을 뒤늦게 이해한 제임스가 당당하게 가슴을 펼쳤다.
“후후, 내가 괜히 구단주를 맡은 게 아니지. 내가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웃기시네,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선한데.”
“하하.”
제임스가 해맑게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중얼거렸다.
“불만 생긴 팬들은 어떡할까?”
“새 식권이랑 경기 티켓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권 드렸어. 30분가량이라 피해자가 많진 않더라고.”
제임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임스와 나는 관중석 절반가량을 채운 관중을 보고 있었다. 관중의 손에는 먹을거리가 들려있었다.
이번 시즌 내내 유지됐으면 하는 풍경이다.
“가게별로 스크린도 설치해서 복도에서 경기를 볼 수 있게 할 거야. 그리고 가게 숫자도 평균관중 숫자에 따라···.”
나는 신이 나서 앞으로의 계획을 늘어놓았고, 제임스는 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알아서 해. 가만히 있는 구단주가 최고의 구단주라고 했어.”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크흠··· 우리도 좀 먹으러 가 볼까. 네가 맛있다고 한 한국식 양념치킨이라는 거 먹어보고 싶은데.”
“예이, 예이.”
“감독님이랑 선수들 것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제임스가 내 눈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미리 말해놨어. 경기 후에 씻고 올라오면 먹을 수 있다고.”
“역시 도니라니까.”
“아무튼, 가자. 다 떨어지기 전에.”
*
“없네···.”
시식회 2위는 진짜배기였나보다. 마이크의 가판대에 설치된 요리용 철판에는 여기에 양념치킨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제임스가 시무룩해졌고, 날 발견한 마이크가 먼저 인사했다. 저번 주 시식회 때 양념치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조금 친분이 있었다.
“오! 미스터 킴!”
“다 팔렸네요. 혹시 남은 거 없어요? 이 녀석이 너무 아쉬워하네요.”
팬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마이크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당~연히 있죠. 경기 끝나고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 직원이 올라올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능글맞은 목소리가 타고난 장사꾼이다.
“고마워요. 그러면 경기 끝나고 와야겠네요.”
“여기서 일하는 거 너무 재밌습니다. 보통 길거리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한 경기를 위해 수천수만 명의 사람이 모이고, 전부 같은 주제로 얘기한다니. 정말 매력적이에요. 한동안 여기서 일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런데···.”
“네.”
“여기 스크린 하나 설치하면 좋겠는데요. 경기 시작 시간이 되니까 팬들이 엄청나게 불안해하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경기를 못 봐서 그렇다고 해서요.”
“안 그래도 시즌 시작 전에는 준비하려고요. 나중에는 한쪽 복도 전체를 식당가처럼 만들고, 식사할 수 있는 공간에 대형 스크린을 들여놓을 계획이에요. 굳이 경기장에 급히 들어갈 필요도 없고, 모여서 응원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이야, 그렇게 하나둘 들여놓으면서 테마파크처럼 만들면 괜찮겠네요.”
“오?”
“오?”
나와 제임스가 마이크의 말에 동시에 반응했다.
마이크가 자신이 말실수라도 한 게 있는지 우리 눈치를 본다.
“우리 장기 계획이 그거였거든요. 테마파크.”
“테마파크라니··· 그냥 해 본 소리인데··· 음··· 어떤 공간이 되는 거죠?”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청사진을 간략하게 말해줬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경기장이 노팅엄시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커뮤니티요?”
“경기가 없는 날에도 이곳에서 축구뿐만 아니라 도시의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죠. 축구를 보기 위해 모인 도시의 사람들은 여기 모여 사업도 의논하고, 동네 사람들의 안부도 묻고, 친구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축구를 보며 동질감을 갖게 되겠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전부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있으니까요. 또··· 선수들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최대한 간추려서 말하려 노력했고, 마이크는 얌전히 내 말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 같았다.
내 말이 다 끝나도 마이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슬슬 노팅엄 팬들이 우릴 알아봐서 움직이고 싶은데.
마이크가 갑자기 격하게 소리치며 내 양손을 거머쥐었다.
“환상적이에요. 재미있겠어요!”
“아, 예··· 그렇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하하···? 무슨 생각이 바뀌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연만 계속 통과해 주신다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에 스위치가 켜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의욕이 넘쳐 보이니 나도 좋았다.
우리는 이날 팬들의 선호도, 만족도를 종합해 마이크를 포함해 치킨, 스시, 케밥, 햄버거,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가게를 경기장 내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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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선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 잭슨 감독의 짧은 불호령이 지나간 후 선수들은 샤워장을 향해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슈나이디, 너는 푸드 코트 안 가? 로드랑 할리랑 같이 갈 건데 너도 어때? 맥주도 있대.”
슈나이디라고 불린 금발 머리의 선수는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 너 영어 못하지. 로드!”
“응?”
“얘한테 좀 물어봐 주라. 같이 갈 거냐고.”
유소년 삼인방인 라이언의 부탁에 로드가 슈나이디, 그러니까 이번 시즌 영입된 칼 슈나이더에게 짧은 독일어로 물었다. 구단에서 행사를 하고 있는데 같이 이것저것 먹고 맥주도 마시지 않겠냐고.
로드의 말을 이해한 칼 슈나이더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라이언에게 Sorry라고 짧게 말한 후 걸음을 빨리해 샤워장으로 가 버렸다.
“라이언, 쟤는 왜 신경 써주냐? 영어 배울 생각도 없어 보이는 녀석인데.”
“예전에 나 전학 왔을 때 생각나서. 그때 너랑 할리가 아니었으면 난 계속 왕따였을 거야.”
“예전 얘기 구질구질하게 하지 말라니까? 야, 라이언, 로드, 우리 누가 빨리 씻나 내기하자. 진 사람이 맥주 쏘는 거다? 먼저 간다!”
옆에서 휴대폰만 보던 할리가 라이언에게 쏘듯이 말하고 달려갔다.
순간 당황해서 멈춘 로드와 라이언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앞다투어 샤워장으로 뛰어갔다.
자신을 앞질러 가는 세 명의 뒤통수를 본 칼 슈나이더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똑같은 보폭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 칼 슈나이더를 마리아가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