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칼 슈나이더 (1)
시즌 개막 후 2승 1무.
3경기 평균관중 약 12,000명.
프리시즌 평균관중이 약 9,000명이었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분명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즌 첫 경기에 12,000여 명이 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어느 팀이나 시즌 첫 경기 관중은 늘 평균관중보다 많으니까. 예상대로 2라운드에서는 1,000명가량이 줄었는데··· 3라운드에서 갑자기 3,000명 정도가 늘어 14,000명이 되었다.
제임스는 생각 없이 좋아했지만, 나는 원인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3라운드의 여러 수치를 분석하고 4라운드가 열리는 오늘, 직접 관중석을 거닐고 있었다.
시즌권이 아닌 현장 구매표 입장 비율이 높아졌고, SNS에 우리 구단이 언급되는 수치가 올라갔다. 이국적인 푸드 코트 음식이 잘 팔렸고, 팬샵에서는 관중이 늘어난 만큼 값이 싼 머플러나 배지 계통의 기념품이 많이 팔렸다.
평일 동안 괜히 고민했었던 것 같다. 직접 와보니 느닷없이 늘어난 관중의 정체를 한 눈에 알 수 있었거든.
“대학생들이네.”
*
<4R 구단 평가>
vs 위컴(홈경기)
2-0 승리
(중략)
-관중 수 : 13,988 명(3,000~4,000여 명이 대학생, 신규 팬으로 추정됨)
※대학생 관중을 붙잡을 방법을 찾아야 함.
어제 적었던 구단 평가서를 보며 고민에 잠겨 있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 대학생이 많이 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이번 시즌까지 이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달라진 경기력, 구단이 변하고 있다는 모습만으로 기존 팬들을 잡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성적이 계속 좋다면 남아 있을 것이고, 나빠지면 다시 떠났다가 좋아졌을 때 돌아오겠지.
하지만 대학생들은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팬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무척 예민하고 섬세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쉽게 경기장을 떠나버리니까.
그렇기에 접근법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노크 소리가 들리고 활기찬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나는 들어오라고 답했고, 문을 열고 마리아 로스가 들어왔다.
*
“본업으로 돌아가니까 어때요?”
“예전이랑 똑같아요. 인터뷰도 잔뜩 들어오고, 언론에서 요청하는 것도 보내주고, SNS페이지도 관리하고···.”
마리아는 내 구단 적응을 위해 제임스가 붙여줬던 임시 비서였고, 어느 정도 구단 상황을 파악한 후에는 본업이었던 홍보팀으로 돌려보냈다. 구단 전체가 엄청나게 바빠졌으니까.
“도니, 같은 건물에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생각해보면 마리가 옆에 있을 때 참 편했는데.”
“그럼 저 좀 다시 불러주세요. 도니랑 일하는 게 더 재밌었어요.”
“정말요?”
“네, 지금 홍보팀 일은 사실 누굴 갖다 놓아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아.”
어중간하게 대답하며 속으로는 Yes! 를 외쳤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해서 새 일을 거절하면 어쩌나 고민했었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왜 부르셨어요?”
“몇 가지 의논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일단 천천히.
“의논이요?”
“3라운드부터 대학생 관중이 늘어났다는 건 알고 있죠?”
“네. 방금도 언론에 구단 추정 숫자 보내주고 오는 길인걸요.”
“대학생 관중, 젊은 신규 팬들을 어떻게··· 아니, 일단 마리아는 어떻게 노팅엄의 팬이 되었어요?”
마리아는 천장을 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지 드문드문 입을 열었다.
“알렉산더 샌더스가 멋있어서··· 경기장에 찾아오다가 자연스럽게···.”
“그래요. 그거예요! 보통 한 선수에게 정을 붙이고, 그 선수를 응원하다가 자연스럽게 팀을 응원하게 되고, 그렇게 팬이 되는 거죠.”
마리아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마리아, 요즘도 업무 외 시간에 선수들 훈련하는 거 구경하죠?”
“네.”
“업무 시간에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네?”
“노팅엄 TV를 만드는 거예요. 선수들의 매력적인 부분을 찾아내 새 팬들에게 소개하는 거죠. 선수들, 직원들과 친한 마리아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저기··· 도니가 신난 건 알겠는데 뭘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아.”
나는 큼큼하고 헛기침하며 생각보다 앞질러나갔던 말을 멈췄다.
“정리할게요. 저는 새로운 팬들을 이 팀의 팬으로 만들기 위해 선수들을 더 친근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네.”
“마리아가 그 매체를 만들어줬으면 해요. 선수들의 일상을 찍고, 편집해서 우리 SNS 채널과 뮤튜브에 올리는 거죠. 직원들을 찍어도 좋고요.”
새로운 팬들뿐만이 아닌 기존 팬들에게도 선물이 될 것이다.
축구 팬들은 지난 주말의 축구 얘기를 하며 평일을 보내는데, 그 이야깃거리를 더해주는 거니까.
마리아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말··· 제가 해도 돼요?”
하고 싶은 것 같아 보여서 단호하게 말했다.
“네.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혹시 전문가가 필요하다면 요즘 크리에이터나 편집자들은 넘쳐나니까 두 명 정도까지 고용해도 됩니다.”
“구단에서 정해놓은 컨셉이 있나요?”
“선수들과 구단이 명예훼손 안 되는 선에서, 자유롭게 선수들의 매력을 보여주면 돼요.”
내 말이 계속될수록, 마리아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아요! 해 볼래요! 일단 저 혼자!”
“그러세요.”
“오늘부터 해도 돼요?”
마리아는 약 이 주일간 훈련장과 경기장을 끊임없이 돌아다녔고, 퇴근도 거의 하지 않고 구단에서 살았다.
얼마나 좋은 건지 날 볼 때마다 재밌다고 말하며 실실 웃곤 했다.
5라운드 원정 경기가 끝나고 다시 홈에서 열리는 6라운드 경기가 시작하기 전, 노팅엄 TV가 구단의 낡은 전광판으로 방영되는 동시에 뮤튜브에 업로드되었다.
*
“쏜! 이 양념 정말 맛있다. 너희 나라에는 이게 흔하다고? 왜 우리한테 안 해 준 거야!”
“내가 귀찮게 왜··· 잠깐, 내 닭 다리 어디 갔어!”
“자.”
“뼈만 남았잖아!”
“사실 이건 내 거고··· 네 건 여기 있지요.”
“하아···.”
주근깨 많은 붉은 머리 여학생 마야가 닭 다리를 든 채로 단정한 투블럭 검은 머리를 한 남학생 손민국을 놀리고 있었다. 둘은 노팅엄 대학교의 학생으로 원래는 코피와 히메나라는 두 친구도 함께 있었어야 했지만, 둘은 교수들의 과제 폭탄으로 축구장에 오지 못했다.
이들은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노팅엄 FC에 막 관심이 생긴 대학생들이었다.
“여기 맥주.”
“땡큐.”
둘은 맥주를 반 잔가량 마시고, 비슷한 타이밍에 입을 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여기만 오면 속이 뚫린다니까.”
마야의 말에 손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개강한 후, 홈경기가 있는 주말마다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 한 시간 전에 입장해서 한적한 경기장을 보며 이번 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들에게 노팅엄 FC의 경기장은 일주일을 정리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이었다.
오늘 있을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과 직원들, 경기를 보기 위해 하나둘 들어오는 사람들. 경기가 시작하면 만 명가량이 하나가 돼서 노팅엄의 선수들을 응원한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경기 전까지 무한 반복되던 활기찬 광고음 대신 지지직거리는 파열음이 흘러나오자 좌석에 앉아있는 관중이 일제히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전광판에는 라는 글자가 나타났고, 글자는 곧 사라지며 잔디밭을 배경으로 세 명의 선수가 나타났다.
“쟤들 쟤네 아냐?”
마야가 손가락으로 필드 위에서 한참 패스를 주고받던 세 명의 선수를 가리켰다. 손민국의 시선이 필드로 내려가다가 해맑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전광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너희가 처음이야. 라이언, 자기소개부터 부탁해.]
라이언 : 어··· 처음이요? 부담스러운데.
[그럼 로드부터.]
로드 : 로드 테일러입니다. 작년까지 유소년에서 뛰다가 이번 시즌부터 1군에서 뛰고 있습니다. 라이언?
라이언 : 라이언 브라우니입니다···. 로드, 할리와 함께 유소년에서 뛰었고 이번 시즌에는 후보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입니다!
[할리?]
할리 : 구단에서 재밌는 걸 하네요.
로드 : 자기소개 하라니까.
할리 : 할 거야. 잔소리 좀 하지 마. 마리, 한 마디도 편집하지 말아 주세요.
[너 하는 말 들어보고.]
할리 : 훗날 국가대표로 이름을 떨칠 할리 콕스입니다. 지난 네 경기 골 보셨죠? 이건 제 전설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멋진 모습을···.
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드가 너는 그 입이 문제라면서 할리를 막았고 라이언은 둘이 투닥대는 꼴을 보며 막 웃었다.
홀린 듯 영상을 보던 마야가 웃음기를 꾹 머금은 채로 필드 위를 가리켰다.
“쟤네 봐.”
영상 밖의 할리는 부끄러울 게 없다는 듯 관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고, 로드는 근처에 있기도 싫다는 듯 라이언의 유니폼을 끌고 할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저런 애들이었구나···.”
이들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투지 넘치게 뛰는 모습이나 골을 넣은 후 만 명이 넘는 관중의 환호를 받는 걸 보다 보면 실감 나지 않았었다.
“귀엽네.”
손민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마야는 이어지는 영상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할리 : 아무튼, 앞으로 제 더 멋진 모습과 일상을 보고 싶다면 제 개인 SNS로···.
로드 : 야! 구단 영상을 사리사욕으로 쓰면 어떡하냐?
할리 : 내가 잘 되면 구단이 잘 되는 거지.
라이언 : 마리··· 이래도 돼요?
[음···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너무 걱정하지마 로드. 안된다면 내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니까.]
머리가 아픈지 로드가 관자놀이를 감싸 쥐었고, 할리는 신나서 말했다.
할리 : 그럼 말해도 되죠? ■■■■에서 ■■■■■■■■를 검색하시면 돼요. 많이 찾아와 주세요!
할리가 말한 주소가 음성 모자이크처리 되어버렸다.
밝았던 할리의 얼굴이 일시에 굳었고, 로드와 라이언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할리를 놀리러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장면이 전광판에 확대돼 잡히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선수들을 마야와 손민국이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