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칼 슈나이더 (2)
알렉산더 : 알렉산더 샌더스입니다. 스무 살부터 이 구단에서 뛰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알렉산더 : 저는 이 팀의 주장이고···.
알렉산더는 더 할 말이 생각나질 않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알렉산더 : 훈련하러 가 보겠습니다.
[우리의 무뚝뚝한 캡틴이었습니다.]
잭슨 : 감독(Head coach), 잭슨 포터입니다.
[감독(Manager)이라는 표현을 안 쓰시네요?]
잭슨 : 미스터 킴과 역할을 분담하고 있으니까요.
제임스 : 브이~ 제임스 휘팅엄입니다. 노팅엄 FC의 구단주죠.
김도운 : 이 팀의 운영 전반을 맡은 김도운입니다. 선수 영입 및 방출, 홍보 정책 등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 와우, 자기만 표정 관리하는 거 봐.
김도운 : 너도 좀 관리해라.
표정을 찡그린 채 제임스에게 핀잔을 주던 김도운은 이게 촬영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황급히 말했다.
김도운 : 마리, 이것 좀 편집해줘요.
마야와 손민국은 노팅엄 TV를 통해 선수들뿐만 아니라 감독, 구단주가 누군지까지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벨기에에서 날아온 3인방을 만나보겠습니다.]
한스 : 한스 슈테른베르크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오른쪽 수비수로 뛰고 있습니다. 아직 영어를 못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하.
[잘하는데요?]
한스 : 고맙습니다.
요한 : 요한 위페르입니다. 프랑스 국적이고 왼쪽 윙으로 뛰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슈나이더는 어디 갔어요?]
마야가 목을 더 빼며 영상에 집중했다.
마리아가 찾고 있는 칼 슈나이더는 마야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선수였다.
축구 초보인 마야가 보기에도 칼은 대단해 보였다. 칼이 공을 잡으면 경기장이 들썩들썩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고, 개인기든 패스든 슛이든 높은 확률로 감탄이 나오는 플레이를 펼쳤으니까.
더불어, 칼은 얼굴도 꽤 괜찮았다.
한스 : 하하. 안 보이네요. 화장실에 갔나?
영상에는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이며 칼 슈나이더를 찾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칼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검은 배경에 흰 자막만 나왔다.
「결국, 슈나이더는 못 찾았어요 :(」
「절 피해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영상에는 꼭 담아올게요!」
“도망쳤대. 귀여워.”
“그런가?”
예전부터 칼 이야기만 꺼내면 뚱한 표정을 짓는 손민국을 지켜보던 마야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식 SNS와 뮤튜브에 주기적으로 영상을 올릴 거라고, 많이 찾아달라는 문구가 나오고 전광판을 통한 선수소개가 시작됐다.
선수들은 어느새 필드에서 다 사라졌다. 곧 경기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경기 시작 5분 전, 선수들이 줄지어 입장했고 마야는 영상에 나오지 않은 칼 슈나이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칼 슈나이더는 오늘 경기에서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나온 무득점 경기였다.
*
출근 시간이 되자마자 마리아를 사무실로 불렀다.
마리아는 찔리는 게 있는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하하하··· 봐주실 거죠? 주급 안 깎을 거죠?”
“디저트나 한 번 사요.”
기왕이면 무겁고 진중한 이미지를 팬들에게 새기고 싶었는데, 이게 다 제임스 때문이었다.
내 말에 마리아는 밝게 웃으며 종이봉투를 들어 보였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사 왔어요.”
스위스의 유명 초콜릿 브랜드였다. 나는 커피포트를 켜며 마리아에게 물었다.
“그거 엄청나게 단 거 아녜요?”
“단 걸 좋아해서요. 차는 완전 씁쓸하게, 아시죠?”
“당연하죠.”
우리는 차가 끓을 때까지 잡담을 나눴다. 그리고 차가 나왔을 때, 노팅엄 TV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응이 괜찮아요.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생각해온 컨셉이 몇 개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실래요?”
“좋아요.”
마리아는 미리 준비해 온 것 같은 깔끔하게 정리된 A4용지들을 다발로 꺼냈다.
나는 마리아의 말을 들으며 고개만 계속 끄덕였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으니 마리아가 설명하다 말고 물었다.
“예스맨이에요?”
“다 괜찮게 들려서요. 컨셉 자체는 나무랄 데 없는 것 같아요.”
내 솔직한 말에 마리아가 머뭇거리다가 고맙다고 말했다.
“여기까지예요.”
“계속 맡겨도 되겠네요.”
“···너무 띄워주지 마요. 진짠 줄 안다고요.”
“사실인걸요. 아, 이 일 맡기면서 제가 부탁했던 거 있었잖아요. 혹시 없나요?”
마리아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마리아가 아, 있어요. 라고 답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메모 앱을 켰다.
나는 마리아에게 또 하나의 업무를 맡겼다. 선수 간에 문제가 생기면 알려달라고.
선수들 사이에 들어가기도 쉽고, 감독보다 심리적으로 더 편안한 사이이기 때문에 감독이 볼 수 없는 미묘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칼 슈나이더 말이에요.”
“···왜 시작부터 가장 잘하는 선수 이름이 나오죠.”
칼 슈나이더는 6경기 동안 1골 4어시스트로 이달의 선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회귀 전에는 다음 시즌에나 두각을 나타냈었는데, 영입하고 보니 출장만 보장받으면 바로 실력을 발휘할 능력 있는 선수였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만큼 중요한 선수라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세를 편하게 했다.
“그냥··· 외로워 보여서요. 늘 혼자 다니더라고요.”
“외국에서 온 선수니까 시간만 더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마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영어도 안 배운대요. 라이언이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어도 적당히만 대답하고 피한대요. 다른 선수들도 칼은 우리랑 친하게 지내는 게 싫은 것 같다. 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마리아는 선수들을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기에 칼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나는 회귀 전 여러 선수와 만나며 칼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을 몇 봐왔다.
축구선수들이 모두 동료와 친해지는 건 아니었다. 구단을 직장처럼 생각하고, 해야 할 일만 하고 굳이 동료들과 교류하지 않는 선수들. 이들은 어지간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팀을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편했다. 나는 칼을 그런 선수라고 일단 판단하고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칼의 스타일일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존중해줘야죠.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럴까요···.”
마리아가 나름 납득한 것 같았기에 나는 화제를 돌리며 다른 선수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선수들 사이에서 감독의 실력이 좋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고 했다.
나는 안심하며 마리아를 훈련장으로 돌려보냈다.
**
나와 잭슨은 새벽 일과가 된 조깅을 마치고 샤워장에서 씻고 있었다.
“칼 슈나이더 말입니다.”
또 칼 슈나이더다.
“영어를 안 배웁니다.”
어제는 마리아더니 이번에는 감독 잭슨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이번 시즌에 문제가 될까요?”
팀을 이끄는 잭슨의 걱정이라면 한층 더 깊게 생각해봐야 했기에 물었다.
잭슨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 팀 수준에 슈나이더 정도면 한동안은 괜찮습니다. 훈련도 열심히 하고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하니.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선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팀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거든요.”
잭슨의 대답에 안심한 내가 말했다.
“벨기에에서 데려온 3인방은 어차피 우리 구단이 지킬 수 없는 수준의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잘 써 주시고, 다음 시즌에 판매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애초에 칼도 그걸 원했고요.”
나는 칼 슈나이더를 영입할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칼 슈나이더는 독일 최고의 팀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출신이었다. 뮌헨에서 기회를 잡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던 칼은 어린 나이에 벨기에 2부리그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적하자마자 어린 선수보다 베테랑을 선호하는 감독이 부임하게 됐고, 칼은 한 시즌 동안 교체로만 간간이 출전했었다.
칼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팀을 나왔고, 뛸 수 있는 팀을 원했다.
나는 즉시 전력감으로 써먹을 수 있고,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선수를 원했다.
그렇기에 나는 잭슨과 상의한 후, 칼에게 주전 보장조항 15회를 집어넣은 계약을 체결했다.
처음에 30회를 불러서 협상하느라 참 고생했었지.
칼 슈나이더는 회귀 전, 오 년간 하부리그를 전전하고 결국 고향 팀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주전으로 뛰게 되는 선수였기에 잘 넣지 않는 주전 보장조항까지 넣으며 데려온 것이었다.
거기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분데스리가 팀에게서 제안이 오면 500만 파운드(약 75억)짜리 바이아웃 조항까지 넣어가며 데려왔다. 1000만 파운드로 하고 싶었는데, 너무 완고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튼, 칼 슈나이더는 우리 구단을 상위 클럽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잭슨 또한 칼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다.
“계속 함께하고 싶은 선수였는데··· 아쉽군요.”
“더 괜찮은 선수를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내년 여름에는 칼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을 겁니다.”
사고팔아야 하는 선수에게 감정이입을 자주 하면 이 일을 하기 어렵다.
나는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로컬 보이들, 할리-로드-라이언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정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하, 그렇습니까. 아무튼, 걱정은 덜었군요.”
“예. 다음에도 고민거리가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
잭슨과 오전에 조깅을 하고, 오전에는 서류작업을 한 후 오후에는 스폰에 관심이 있다는 회사의 담당자와 긴 미팅을 했다.
저녁에는 제임스도 일이 있다고 했으니 집에 가도 혼자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퇴근하는 길에 발견한 독일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슈니첼(독일식 돈까스. 송아지고기나 칠면조고기가 들어가기도 한다) 냄새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어?”
그리고 어제오늘 이야기를 들었던 당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칼 슈나이더가 슈니첼을 썰고 있었다.
“여기에 합석할게요.”
나는 점원에게 말하며 칼의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