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노팅엄 더비 (1)
『노팅엄 FC는 이번 시즌에도 우리 아래 있을 거다. - 스콧 라이트(노츠 카운티 CEO)』
『노팅엄의 단장과 감독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팀으로 왔다. 팬들과는 좋은 기억뿐이다. - 올리버 톰슨(전 노팅엄 FC 선수, 현 노츠 카운티 선수)』
노팅엄시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들의 헤드라인이었다.
신문을 잡은 제임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도니! 두고 볼 거야? 우리도 인터뷰하자!”
“네가 하게?”
“응!”
“자아, 일단 차를 한 잔 마시고 생각해보자.”
“생각은 무슨 생각! 망할 노츠 카운티 녀석들이 저렇게 입을 털고 다니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지난주부터 노팅엄시의 최대 화젯거리는 이번 시즌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기 시작한 노팅엄 FC와 같은 노팅엄시를 연고로 하는 지역 라이벌 팀 노츠 카운티의 더비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지였다.
노츠 카운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팀이라는 근본이 있는 팀이었고, 이번 시즌 4부 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후로는 노팅엄에 늘 밀렸지만.
그래서 저렇게 까부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다. 예전에는 2부 리그와 4부 리그라는 아주아주 큰 격차가 있어서 라이벌로 취급도 안 하던 녀석들이었으니 더.
현재 노팅엄 FC의 순위는 5위, 노츠 카운티의 순위는 2위.
언론 또한 순위대로 대부분 노츠 카운티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열두 살에 노팅엄시로 이사 왔던 나는 제임스와 조이에 의해 자연스럽게 노팅엄 FC의 팬이자 유소년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 탓에 학교에서 노츠 카운티의 팬인 녀석들과 자주 말싸움을 벌였었다.
‘4부리그가 시끄럽네.’ 이런 식으로 디스해서 늘 이기곤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정말 끔찍하다.
“생각할수록 열 받네. 노츠 카운티 주제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 팬들이 고생한다고!”
“그래, 맞는 말이야. 기자 부르자.”
축구의 나라 영국에서 더비전의 의미는 아주 크다.
학교나 회사에서, 심지어는 국회나 성당에서도 축구 얘기가 일상처럼 나오는 곳인데 양 팀의 팬이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는 지역 더비 경기를 졌을 때는 정말···. 그 팀의 팬은 비참해진다. 다음 더비 경기 전까지 계속.
그러니까, 잭슨에게 보양식 좀 가져다 줘야겠다. 열심히 일하게.
*
웨인 리처드, 35세.
아버지 고든 리처드의 영향으로 노팅엄 FC를 33년간 응원했던 팬이다.
왜 33년이냐면 팀이 나락으로 떨어진 후, 2년간은 경기장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막 경기에 열린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에 끌려가긴 했지만, 이번 시즌에도 웨인은 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아빠! 요즘 우리 팀 최고예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들 휴고까지 팬이 되었지만, 그래도 웨인은 가지 않았다.
3년 전, 태어날 때부터 응원하던 팀이 순식간에 몰락했었다.
팬들과 팀에 애정을 보이던 선수들도 슬금슬금 도망쳤다. 경기장도 빼앗겼다.
남은 건 빚뿐이었고, 팀은 프로도 아닌 세미프로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다고 했다.
웨인은 노팅엄 FC가 5부리그에서 치른 첫 경기에 갔었다. 유일하게 팀에 남아준 알렉산더가 고마워서.
하지만 알렉산더 주변의 선수들은 급하게 영입한 선수들이었고, 알렉산더가 답답해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과거 많은 상위클럽이 수많은 이유로 리그 강등을 당했지만, 그들에게는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희망적인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노팅엄에는 돈도 없었고, 남은 선수도 없었다. 관중도 많이 줄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훤히 보였다.
‘우리는 못 올라간다.’
사랑했던 팀이 더 망가지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웨인은 이날 이후로 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4부리그에 승격했을 때도 부정적이었다.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한계였다. 노팅엄은 강등권에서 아등바등하다가 간신히 잔류했다.
평소에도 노팅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상념에 빠지게 된 건 티타임 동안 다른 직원들과 이번 더비 얘기로 계속 떠들고 있는 저 녀석 때문이었다.
“웨인, 이번 주에도 경기 보러 안 가냐?”
웨인은 어느새 콧등을 타고 내려간 뿔테안경을 눌러 쓰며 답했다.
“안 본다니까.”
“우리 팀이 이길까 봐?”
“하? 노츠가?”
“너희 노팅엄은 이제 우리보다 아래라고.”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해리는 평소에는 좋은 녀석처럼 보이긴 하지만, 노츠 카운티를 응원한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기 때문에 종합해서 나쁜 놈이었다.
노팅엄이 5부 리그로 추락했을 때 놀려대서 정말로 주먹다짐까지 한 적이 있는 앙숙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노팅엄이 4부리그에 올라오는 바람에 더비가 있을 때마다 시비를 툭툭 걸었었지.
“그래도 이번에는 어려울걸. 노팅엄 홈경기고 순위도 별로 차이 없잖아.”
“경기 보러 안 간다더니 거짓말 아니야?”
“아버지랑 아들이 떠드니까 어쩔 수 있나.”
“그래도 이번에는 노팅엄이 이길걸요? 새 감독 전술이 얼마나 뛰어난데, 지금까지 교체로 따낸 승점만 10점이에요.”
옆에서 노팅엄을 응원하는 다른 직원이 거들었다.
해리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에이, 그건 10위 아래 팀들을 상대로 낸 성적이고, 우리 같은 상위권 클럽에는 안되죠.”
“웃기지 마요. 지면 어쩔건데요?”
“내기할래요? 노츠 카운티 그룹이랑 노팅엄 그룹으로 나뉘어서. 진 쪽이 펍에서 다 쏘기.”
“그래요. 해요!”
노팅엄을 응원하는 직원이 해리를 쏘아붙이고는 웨인에게 말했다.
“웨인도 할 거죠?”
해리도 다른 직원들에게 함께할 거냐고 묻고 있었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웨인은 노팅엄과 엮이고 싶지 않아 머뭇거렸다.
그때 해리가 물었다.
“왜, 노팅엄이 질 것 같냐?”
얕은 도발이었지만 웨인이 노팅엄에 가진 애증은 정말로 컸다. 욕을 해도 내가 욕하지 남이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발끈한 웨인이 말했다.
“아니? 무조건 이길걸.”
“난 비싼 곳에서 먹을 거야. 그렇죠?”
노츠 카운티를 응원하는 직원 측이 환호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노팅엄을 응원하는 측의 직원들 또한 틀림없이 이길 거라고 소리쳤다.
노팅엄의 작은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같은 시각, 노츠 카운티의 구단주실에서는 CEO와 구단주의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거 봤나?”
『노츠 카운티는 최근 20년간 2부 리그 문턱도 구경해보지 못한 근본 없는 팀, 우리가 질 리가 없다. - 제임스 휘팅엄(노팅엄 FC 구단주)』
『잠시 휘청했을 뿐, 이번 시즌에는 무조건 우리가 이길 거다. - 김도운(노팅엄 FC 사장 겸 단장)』
“봤죠. 겁먹은 강아지가 왈왈! 하고 짖는 것 같지 않습니까.”
“흐흐흐, 그렇지?”
“예, 흐흐흐.”
“따라 웃지 말게.”
“옙.”
노츠 카운티의 구단주, 제이미 블레이크의 단호한 말에 CEO 스콧 라이트가 입을 다물었다.
“이번 시즌에 좀 잘한다고 기고만장해졌다고. 완벽히 밟아 놔야지.”
“그렇죠.”
“이번 시즌으로 노팅엄시의 주인이 노츠 카운티라는 걸 다시 보여주자고.”
“틀림없이 잘 될 겁니다.”
노츠 카운티는 노팅엄시를 가로지르는 트렌트강을 사이에 두고 노팅엄 FC와 약 150년 동안이나 지역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팀이었다.
북쪽의 노츠 카운티와 남쪽의 노팅엄 FC.
이 지역 라이벌 구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팅엄 팬들의 비웃음을 샀었다.
지역 라이벌인데 만날 수가 없네~.
하면서.
구단주와 CEO는 노팅엄시 출신이면서 노츠 카운티의 오랜 팬이기도 했다.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해 최근 감독과 선수들에게 승리 시 일주일 치 주급을 보너스로 지급한다는 동기부여까지 해 둔 상태였다.
“절대로 지면 안 돼. 알았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시즌 1위를 할 거라고 평가받는 팀인데.”
이적시장도 완벽했고, 스쿼드는 탄탄했다. 선수 다섯쯤 다쳐도 전력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두꺼웠다.
“노팅엄을 뭉개버리는 거로 시즌 절반을 마무리하면··· 참 좋겠군. 큭큭큭.”
구단주가 웃는 모습을 보던 CEO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눈치껏 따라 웃었다.
“큭큭큭.”
“따라 하지 말게.”
“옙···.”
결과는 안 좋았지만.
*
시간이 흘러 경기 당일이 되었다.
2023-24시즌 23R, 노팅엄 FC의 홈구장에서 열리는 노팅엄 더비.
총 46경기를 치르기에 정확히 절반을 가르는 경기가 될 것이다.
이런 경기에서는 무조건 관계자 석에 앉아 보는 게 관례였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관중석으로 갔는데,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내가 오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노츠 카운티의 CEO, 스콧 라이트입니다.”
“처음 보는 건 아니죠. 올리버 톰슨을 넘길 때 잠깐 보지 않았습니까? 기억력이 나쁘시네요.”
잭슨과의 불화로 어쩔 수 없이 올리버 톰슨을 판 팀이 노츠 카운티였다. 계약서를 쓸 때 의기양양한 표정이 얼마나 재수 없었던지.
“그래요? 나는 기억 안 나는데?”
이걸 신경전이라고 하는 건가.
마침 전광판에 비추는 카메라가 우릴 잡고 있었다. 구단 관계자를 비추는 모양이었다.
“악수나 하죠.”
자신이 이겼다는 듯한 거만한 표정.
노팅엄의 팬들은 노츠 카운티 CEO의 얼굴과 내 얼굴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건 본 경기 이전의 신경전이기도 했다.
팬들의 기대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노츠 카운티와는 이번 올리버 톰슨 같은 특수한 영입 건을 제외하면 교류할 일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악수하자는 걸 못 보고 못 들은 것처럼 무시하며 그의 앞을 지나 내 자리에 앉았다.
<와아아아아!>
무시당할 줄 몰랐는지 CEO는 선 채로 굳었고, 팬들의 함성이 내게 쏟아졌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오늘 지면 나 정말 우스워진다.
나는 나를 대놓고 노려보고 있는 노츠 카운티의 CEO의 시선을 무시하며 필드를 내려다보았다.
필드에는 더비전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알렉산더와 세 유소년이 목소리를 높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