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1화 (21/245)

7. 노팅엄 더비 (2)

“다녀오마.”

“다녀오세요.”

이때를 기다렸다.

아버지, 자신, 아들 모두 노팅엄 FC의 팬이었던 리처드가의 웨인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들 휴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휴고의 대답이 들렸다.

“응? 들어와요.”

휴고의 방 안에는 노팅엄 FC 관련 용품이 가득했다. 사인 된 축구공부터 시작해 경기를 기념하는 머플러, 유니폼 등.

어린 시절 자신의 방을 보는 것 같아 잠시 멈칫했던 웨인을 휴고가 불렀다.

“아빠, 왜요?”

“그게 말이다···.”

휴고는 자그마한 손으로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했다.

“내일 노팅엄 경기 있지···.”

휴고의 눈에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자신이 노팅엄 경기를 보러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몹시 쓸쓸해 하던 휴고다.

경기장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아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말을 하긴 불편해 웨인은 이렇게만 물었다.

“이길 것 같니?”

“노팅엄 더비요?”

“응, 이번 시즌 노츠 카운티는 강하다고 직원이 그래서···.”

“우리도 강해요!”

휴고가 소리쳤다.

“노츠 카운티가 2위라고 해 봤자 승점은 2점밖에 차이 안 난다고요. 이번에 우리가 이기면 뒤집을 수 있어요.”

“그, 그렇니?”

“네! 그리고 우리 팀 홈경기잖아요. 우리는 이번 시즌 홈경기에서 한 번밖에 안 졌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겨요!”

모태 노팅엄 팬인 휴고는 아이답지 않은 구체적인 이유까지 곁들였다.

자기 말에 취해 잔뜩 신난 휴고에게 웨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꼭 이기면 좋겠구나. 다시 하던 거 하렴.”

“네에.”

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섰고, 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고가 혹여나 경기를 보러 같이 가자 할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었다.

하지만 웨인은 몰랐다.

문을 닫기 직전, 휴고가 자신을 바라보며 꼬마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

[한 시간 후, 노팅엄 FC와 노츠 카운티의 더비 경기가 열립니다. 브라운은 오늘 어느 팀이 이길 것 같나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들으며 웨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디오를 틀어놓은 건 웨인이었다. 이 채널로 맞춘 것도 웨인이었다.

‘내기해서 궁금한 거야. 경마할 때는 처음 본 말도 응원하고 그러잖아.’

자신은 노팅엄의 팬을 그만뒀다. 웨인은 라디오를 끄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냐, 준비 안 하고?”

“예?”

언제 온 건지 아버지 고든이 거실 입구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웨인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준비요? 저요?”

“휴고한테 다 들었다. 오늘 경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면서? 내가 너 어릴 때 말하지 않았냐. 궁금한 건 직접 확인하라고.”

고든은 벌써 노팅엄의 유니폼을 입고, 머플러까지 두르고 있었다. 고든의 다리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휴고 또한 몸에 맞는 작은 유니폼과 노팅엄의 문양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신과 경기를 보러 가고 싶은 휴고를 탓할 생각은 없었기에 웨인은 고든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그건··· 회사에서 내기해서 그런 거예요.”

“오히려 좋네. 내기 확인하러 가는 건데 뭐 그렇게 부담이냐? 노팅엄을 꼭 응원할 필요는 없잖아?”

고든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버리는 바람에 웨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괜히 자존심을 부리는 것 같이 되어버려서.

“그래도···.”

“아빠, 오늘 같이 가면 안 돼요?”

어제 조용했던 건 오늘을 위해서였던가.

웨인은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는 휴고에게 뿌듯함과 동시에 아찔함을 느꼈다.

“이거 아빠랑 같이 입고 싶은데···.”

휴고는 자신의 몸을 돌리며 등에 적힌 글자와 등 번호를 보여줬다.

SON

7

고든 또한 등을 보여준다.

GRANDAD

61

“네 것도 준비해 놨다.”

고든이 들고 있던 유니폼을 펼쳐 보여줬다.

DAD

35

웨인은 유니폼을 홀린 듯 바라봤다. 각자의 나이가 적혀있는 할아버지-아버지-아들 유니폼이라니. 저걸 입고 셋이 함께 경기장에 간다면 무척 즐거울 것이다.

‘넘어갈 뻔했다.’

웨인은 정신을 차리고 또 한 번 거절하려고 했다. 그때 아들 휴고가 치고 들어왔다.

“아빠··· 못 가요?”

어느새 울 것 같이 눈이 그렁그렁해진 휴고를 보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웨인은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거절을 몇 번이나 삼킨 후에야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와! 아빠랑 같이 간다!”

고든이 웨인에게 유니폼을 건넸다.

웨인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유니폼을 입었다.

웨인의 눈이 유니폼에 잠시 가려진 틈에 고든과 휴고가 서로를 향해 윙크했다.

*

지난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 이후로 경기장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경기장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져 웨인은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와아아.”

노팅엄의 응원가를 바이올린으로 멋지게 연주한 길거리 음악가에게 휴고가 박수와 함께 1파운드짜리 팁을 넣었다.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웨인 또한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정말 많네요.”

“요즘에는 최소 만 명은 경기장에 오니까.”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려면 10분이나 남았고, 경기까지는 30분가량이 남았는데 길거리가 노팅엄 FC를 상징하는 물건을 가진 사람들로 절반 이상 차기 시작하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고, 리처드 3대 또한 함께 걷고 있었다.

머플러들을 파는 노점도 무척 많았다.

5부리그로 떨어질 때만 해도 대부분 사라졌었는데, 2부 리그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적었지만 지금도 아주 많아 보였다.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경기장에 도착했다.

표와 소지품 검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경기장에서 흘러나왔다.

“이거 무슨 냄새에요?”

“들어가 보면 알 거다.”

“할아버지! 오늘은 프라이드 치킨 사주세요! 양념 된 거로!”

“그래, 그래.”

직원들과 보안요원들의 얼굴도 무척 밝아져 있었다.

보안검사를 하던 도중 리처드 삼대의 등을 본 직원이 소리쳤다.

“어머, 아들, 아빠, 할아버지라니··· 너무 귀여워요!”

경기를 보러 온 팬이나 다른 직원들도 리처드 삼대의 유니폼을 신기해 했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 보안검사가 끝난 후 리처드 삼대는 나란히 서서 잠깐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부탁해 웨인 자신의 스마트폰에도 사진을 담았다.

“헤헤헤.”

휴고가 쑥스러워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좋아하는 티를 내니,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나 먼저 가서 줄 설까?”

“그래그래.”

“다치지 않게 조심히 뛰어.”

“네~.”

휴고가 잔뜩 신나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웨인은 고든과 함께 천천히 따라 들어가다가 밖에서 맡았던 냄새의 근원을 발견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에서 봤던 가게들이잖아요? 시즌 내내 운영하는 건가요?”

휴고가 줄을 서고 있는 가게가 정면에 보였고, 복도 양 끝에도 가게가 보였다. 일정 간격을 두고 여러 가게가 영업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미스터 킴이 부임하면서 한 일 중에 두 번째로 잘한 일 같아. 경기장 음식의 고급화! 그동안 대충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식은 부분이 남은 음식이나 그냥 짜기만 한 음식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첫 번째는 뭔데요?”

“감독 포함해서 선수단을 제대로 개편한 거.”

경기를 본 적이 없으니 고든의 말이 와닿지는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가게를 들여놓은 건 잘한 것 같긴 했다.

“아빠! 할아버지! 빨리 와요!”

휴고의 부름에 고든과 웨인은 빠르게 줄 선 곳으로 갔다.

“오오···.”

동그란 철판 위에 빨갛고 끈적한 소스가 묻은 닭튀김들이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게인 마이크의 한국식 양념치킨이에요! <노팅엄 푸드 리그>에서 1등 한 가게에요.”

“푸드 리그?”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에 웨인이 갸웃했지만, 고든과 휴고는 자기들만의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정말 재밌었는데, 그렇죠. 할아버지? 저도 이 가게에 투표했었거든요.”

“그러냐. 나는 반대쪽 핫도그 가게에 했는데.”

“아버지, 푸드 리그가 뭐에요?”

웨인은 괜히 소외감을 느꼈다.

“입점할 가게를 대회를 해서 뽑았거든. 그 대회를 <노팅엄 푸드 리그>라고 불렀었다. 관중한테 투표권을 줘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가게 순서대로 입점하는 방식으로 가게를 뽑았었지.”

“이번 겨울 휴식기 때도 할 거라고 했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

“···별걸 다 하네요.”

노팅엄의 경기장은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건물이 바뀐 건 아니었지만, 33년간 팬이었던 웨인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구단에는 많은 것이 생겨있었다.

플라스틱 잔에 담긴 맥주를 들고, 휴고에게는 콜라를 사주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웨인은 좌석에 바로 가지 못했다. 멈춰서 경기장 전체를 바라보았다. 놀라서.

고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오늘처럼 꽉 차진 않지만, 평소에도 절반 이상은 찬다.”

2만 석이 가득 차 있었다. 지역 더비 경기라는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이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난 <노팅엄 푸드 페스티벌> 때의 만석은 무료 행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료 행사 따윈 없었다.

“아빠, 가요.”

웨인은 휴고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아 경기장을 계속 살폈다.

그때, 경기장 곳곳에서 환성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전광판이 보였다.

전광판에서는 푸드 페스티벌 때 자신을 노팅엄의 사장 겸 단장이라고 소개했던 김도운과 양복을 입은 누군지 모를 사람을 비춰주고 있었다.

둘은 신경전을 벌이는지 서로를 향해 입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단장이랑 얘기하는 사람은 누구냐?”

“노츠 카운티의 CEO에요.”

“저런 기 싸움에서도 지면 안 되지.”

고든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김도운이 노츠 카운티 CEO의 악수를 무시해버렸다.

<와아아아아아!>

옆을 비롯한 모든 관중석에서 함성이 쏟아졌고, 노츠 카운티의 원정 팬들만이 야유를 보냈다.

김도운이 자리에 앉자 구단주 제임스 휘팅엄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마 잘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역시, 유소년 출신은 다르구만.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

고든이 사이좋은 단장과 구단주를 보며 흐뭇해하며 손뼉을 쳤다.

웨인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기억하는 경기장의 마지막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모두 우울하고 짜증 내고, 화가 나 있는 그런 곳이었는 데.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힘찬 박수로 맞아주세요!>

쏟아지는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양측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악수했다. 웨인이 모르는 선수투성이였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알렉산더 정도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 모르는 선수들이네.”

“아빠, 내가 알려줄게요.”

휴고가 손가락을 들어 알렉산더와 그 주변에 모인 삼인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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