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4화 (24/245)

8. 노팅엄의 12월 (2)

병원에는 마리아가 카메라맨들과 먼저 와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먼저 촬영했다고 했다.

선수들은 일단 역할을 나눴다. 공도 못 찰 상태의 아이들, 아기들과 놀아줄 두 선수와 카메라맨이 함께 사라졌고, 밖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한 선수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불성실하게 하지 말아라.”

어린 세 선수는 알렉산더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감시할게요.”

로드의 말에 칼, 라이언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고, 마리아와 카메라맨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 알렉산더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넌 나랑 같이 가야 하는데?”

“···당연히 감시할 필요 없죠. 다들 프론데, 알아서 잘할 겁니다.”

칼과 라이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렉산더마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알렉산더와 로드, 그리고 남은 카메라맨은 함께 자신들이 담당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라이언은 남아 있는 마리아를 보며 물었다.

“마리, 우리는 재미 없는데, 알렉산더랑 로드 찍는 게 낫지 않아요?”

“재미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지. 이쪽이 이야깃거리가 더 많을 것 같아.”

“그래요···? 마리, 요즘 프로 같아졌어요.”

“이 일이 적성에 잘 맞나 봐. 도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칼, 라이언, 마리아는 바로 병실로 향했다.

“서프라이즈~.”

문을 열자마자 입을 연 건 마리아였다. 칼이나 라이언이나 둘 다 해맑은 성격이 아니었기에 서로 미루다가 답답해진 마리아가 먼저 나선 거였다.

“와우! 칼 슈나이더다!”

“브라우니도 있어!”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칼과 라이언이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마리아는 그저 웃으며 카메라를 들어 보일 뿐이었다.

다행히 칼과 라이언은 금세 적응했다.

“지난 더비에서 넣은 골 정말 멋졌어요.”

“고마워.”

“칼의 드리블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나요? 왜 그렇게 잘해요?”

“비밀은··· 이따 운동장에서 알려줄게.”

“와아!”

아이들이 묻고, 이들이 답해준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떠들었기에 대답만 하면 돼서 칼과 라이언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아이가 축구경기 중에 큰 게 마려우면 어떡하냐는 짓궂은 질문을 해서, 아이들이 까르륵 웃고 칼이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사이 라이언은 병실 구석에 앉아있는 한 아이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에 관해서는 미리 조사하고 왔기에 저 아이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노아? 왜 혼자 있어. 이리 와.”

노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라이언은 칼에게 양해를 구한 후 노아에게 다가갔다. 마리아 또한 라이언을 따라왔다.

“노아?”

“크흠, 혹시 따로 얘기할 수 있겠나?”

“음··· 좋습니다. 노아 할아버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했지만, 노아는 김도운이 말한 대로 유쾌하게 행동하는 조로증 병과 싸우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라이언은 미소를 머금은 채 노아를 따라 병실 구석으로 향했다.

“저는요? 노아 할아버지. 촬영해도 될까요?”

미인 축에 드는 마리아가 해맑은 미소로 다가오자 노아는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의사 표현은 확실히 한다. 노아는 고개를 젓고 마리아의 눈치를 봤다.

혹여 마리아가 실망했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그럼 밖에 나가서는 같이 놀 수 있죠?”

마리아는 노아의 마음을 헤아려 그렇게 말했다.

노아는 안심한 얼굴을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가 떠난 후, 노아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잠깐 실례했네.”

“예.”

“내가 자넬 따로 부른 건 궁금한 게 있어선데···.”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노아 할아버지.”

아이 같았다가 다시 할아버지가 된 노아를 보며 웃고 있던 라이언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어린 시절에 십 년이나 병원에 있었다고 들었네, 노팅엄 TV를 보니 지금도 잔병치레가 가끔 있을 정도로 몸이 약하다고 하고, 근데 왜 그렇게 위험한 운동인 축구를 하는 건가? 무섭지 않은가? 다른 안전한 일을 하면서 즐겨도 되지 않나?”

예상 못 한 진지한 질문이었기에 라이언은 웃음기를 지웠다. 진지함에는 진지함으로. 라이언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더 건강해지라고 유소년 팀에 보낸 거였어요. 태어나서 처음 다니는 학교에도 잘 적응 못 해서 친구를 만들라고 보낸 거기도 했죠.”

노아가 라이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언은 말을 계속했다.

“하기 싫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재발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도 해서 무섭기도 했고요. 그런데 세상에는 적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생각보다 공을 잘 차더라고요.”

라이언은 숨을 한 번 골랐다.

“축구 덕분에 로드와 할리라는 친구도 만들었고, 자신감이 생겨서 학교생활에 적응도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프로가 돼서 만 명이 넘는 관중에게 응원도 받을 수 있죠. 축구 덕에 모든 걸 얻었어요. 축구를 빼놓고선 내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위험하더라도 축구를 하는 거예요. 노아 할아버지, 더 궁금한 게 있나요?”

노아는 무언가 깊게 생각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수염을 뜯어내고 모자를 벗었다.

열 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나이였지만, 노아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었다.

노아의 말투 또한 평범한 어린아이처럼 돌아왔다. 조금 어른스럽긴 했지만.

“만약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도. 계속할 거예요?”

“당연하죠. 혹시나 다시 아파지더라도, 마지막에는 꼭 축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노아라는 똑똑한 꼬마가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언은 얌전히 노아를 기다렸다.

마침 칼과 마리아가 이들을 불렀다. 슬슬 나가서 시축을 연습해야 한다고.

라이언은 노아의 손을 잡아 일으켜 줬고, 노아는 말없이 라이언을 졸졸 따라갔다.

시축 연습은 간단했지만, 몸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어려웠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경기장에서 공을 차 본다는 건 아이들에게 설렘을 가져다 줬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가져다 줬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라이언과 칼은 멋진 자세로 공을 차는 방법을 열심히 알려줬다. 칼은 약속한 대로 드리블하는 법까지 알려줘야 했다.

“자, 노아. 받아요.”

라이언이 노아에게 살살 패스했다.

노아는 라이언이 알려준 대로 공을 발바닥으로 잡고, 살짝 앞으로 친 후 인사이드로 공을 밀어 찼다.

공은 데굴데굴 굴러 작은 골대에 정확히 들어갔다.

“와, 이제 잘하네요.”

라이언의 칭찬에 노아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요.”

“응.”

“경기장에 사람들이 엄청 많죠?”

“그렇죠?”

“만 명 넘게?”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아는 걱정에 가득 찬 얼굴을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면, 엄청나게 떨릴 거 같은데··· 내가 긴장해서 실수하면 어떡하죠. 부끄러운데.”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반대니까.”

“반대요?”

라이언은 자신이 뛰었던 이번 주 경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경기장에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돼요. 그게 긍정적인 응원이라면요. 노팅엄의 팬들이라면 당연히, 노아와 여러분을 응원할 거예요.”

*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린 이 홈경기에는 만 오천 명에 달하는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광판에서는 노팅엄 TV를 통해 선수들이 다녀온 봉사활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중은 경기를 기다리며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힘든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경기 15분 전이 되었을 때, 장내 아나운서가 방송했다.

<크리스마스보다 이틀 일찍, 경기장에 산타클로스들이 찾아왔습니다.>

여러 선수와 아이들이 손을 잡고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앙증맞은 꼬마 산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전광판을 통해 아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노팅엄 병원의 어린이 병동 아이들.

이어서 전광판이 관계자석을 비췄다.

<와아아아아아!>

휠체어에 탄 아이들이 있었다. 시축하지 않는 병동의 아이들을 위해선지 일부러 의자까지 싹 해체해놓은 모양이었다.

노아는 라이언의 손을 잡고 센터서클에 나와 있었다.

센터서클에는 여섯 방향으로 작은 골대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선수들에게 패스를 받아 자신의 골대를 향해 골을 넣어야 했다.

선수들은 아이들에게 패스했고,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골망을 흔들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노팅엄 FC가 골을 넣었을 때 보다 더 크고 긴 환호가 쏟아졌다. 아까부터 노아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라이언의 말대로 환호성을 들으니 오히려 더 기운이 났다.

선수들과 아이들은 짝을 지어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건지 별의별 세레머니가 다 있었다.

세레머니를 미처 생각 못했던 라이언이 순간 고민에 빠졌다. 그때 노아가 라이언의 유니폼을 당겼다.

“주먹 인사 알아요?”

“알아요. 할리가 가끔 해서.”

“그럼 가장 쉬운 거로 한 번 해요.”

라이언과 노아는 오른손을 내밀고 손바닥끼리 한 번, 손등끼리 한 번, 그리고 주먹을 맞부딪혔다.

세레머니 후, 노아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부탁 하나 있는데, 들어 줄 수 있어요?”

“말해 봐요.”

“오늘 골 넣고 내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이 세레머니를 해 주세요. 손바닥은 부딪힐 필요 없고 주먹을 부딪치는 시늉만 해 주면 좋겠어요.”

“이렇게요? 근데 나 골 거의 못 넣는데.”

“다른 선수가 넣었을 때 해도 괜찮아요.”

노아가 허공에 주먹을 부딪치는 시늉을 했다. 라이언도 따라 했다.

노아가 씩 웃으며 말한다.

“그럼 나도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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