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28화 (28/245)

9.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 (2)

“킴, 죄송한데 안 보여요.”

“킴, 비켜줘요.”

“도니, 안 보인다잖아.”

“아, 미안.”

라이언을 비롯한 유소년 셋과 제임스의 불평에 일단 자리에 앉았다.

어제 영입한 선수들이 오늘 나올 줄은 몰랐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일어났던 거였다.

제임스는 장내 아나운서의 새 선수 투입 소식을 들으며 내게 물었다.

“너무 빨리 투입하는 거 아냐?”

“괜찮을 거야. 2부리그도 아닌 4부 리그인데.”

“저 셋이 그 정도라고?”

“원래는 3부 리그를 대비해서 데려오려고 했던 선수들이야.”

“정말?”

맨시티의 유망주 바비는 누가 봐도 성공적인 영입이었다. 그만큼 노리는 팀도 많았다.

선수를 회유하려는 다른 구단과는 달리, 바비가 무척 수동적인 선수였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맨시티의 유소년책임자를 설득하는 데에 집중했다.

구단이 어린 선수를 임대 보낼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급료 분담 비율과 유망주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였다.

나는 급료의 절반을 우리 구단에서 지급하겠다는 조항과 일정 경기 이상 출전시킨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리고 굳이 다음에 또 임대할 곳 찾지 않게, 우리 구단에서 일 년 더 데리고 있겠다고, 일 년 반짜리 임대 계약을 제안했다.

유망주가 차고 넘치는 맨시티는 흔쾌히 이 조항에 수락했고, 덕분에 경기장에서 흐리멍텅한 눈으로 하품하고 있는 저 빡빡머리 선수가 우리 팀에 오게 된 거였다.

저래 봬도 경기는 대충 하지 않으니까, 잭슨과 트러블도 없을 것이다.

“바비 스미스는 이해가 가, 근데 알버트와 사무엘은? 둘 다 서른인데 4년 계약이라니, 괜찮겠어?”

갓 서른 살에 접어든 두 선수, 공격수 알버트와 중앙수비수 사무엘은 지금이 아닌 이번 시즌 종료일에 벌어질 한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만개하게 되는 선수들이었다.

물론 이번 시즌에도 3부 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기에 실력도 충분하고, 꼭 그 사건이 없더라도 꾸준히 열심히 해 오던 선수들이었기에 절대 손해는 안 볼 것이다.

“2년만 있어 봐. 몸값이 최소 열 배는 뛸 테니까.”

“서른두 살이 되는데?”

특별한 세대로 불릴 선수들이거든, 이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내가 말없이 웃기만 하자 제임스는 눈썹을 찡그리고는 치사한 놈이라며 꿍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칼은 오늘도 잘하네.”

주전 대부분이 빠진 상황에서 두 경기나 무승부를 이뤄낸 건 절반 이상이 칼과 알렉산더 덕이었다.

두 경기에서의 골은 매크로처럼 똑같았다.

칼이 말도 안 되는 돌파를 해내서 크로스, 어느새 페널티박스 가운데에 비집고 들어간 알렉산더가 정확히 헤딩해서 골.

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소중한 승점 2점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지키기는 어렵겠지?”

제임스의 눈이 칼 슈나이더를 보고 있었다. 아쉽다는 마음이 전해져온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같이 식사하는 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보내줘야지. 약속했으니까.”

“그래···.”

“일단 지금 경기나 생각하자. 시즌이 끝나려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응.”

**

“겨울 이적시장에 나이 많은 선수를 두 명 영입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4년 계약은 정말 아니잖아. 기량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나이인데!”

“수석 스카우트가 진행한 영입 아닐까? 우리 단장이 그럴 리가 없잖아.”

버릇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기에 40대 아저씨들은 후반전에 나온 신입생들을 보자마자 또 불평했다.

마야는 생수 한 컵을 들이키고, 아저씨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마야는 김도운의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술이 어느 정도 깼다.

김도운은 이곳에 부임한 후, 정말 많은 것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지금 경기장에 나온 선수들은 대단한 선수는 아닐지라도 분명 지금 팀에 필요한 선수들일 것이다.

“괜찮을 거 같아요.”

“마야, 아무리 그래도···.”

“단장이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어요.”

“···정말이야?”

그리고 이 부정적인 아저씨들마저도 김도운이 한 일이라면 최대한 믿고 싶어 했다.

강등권에 있던 팀을 여기까지 끌어올렸고, 팬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해 평균관중 1만 대를 달성한 단장이다. 심지어 팀에 애정도 많다. 절대로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야의 믿음은 불과 10초 후에 보답받았다.

“어? 어어어어어!”

“고오오올!”

시작은 에이스 칼의 발끝에서였다.

칼은 오른쪽 측면에서 갖은 개인기를 반복하며 수비수와 미드필더 하나를 모으며 진영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측면으로 공을 받으러 나온 신입, 알버트에게 패스했고, 알버트는 맨시티 산 특급 유망주 바비에게 바로 공을 넘겼다.

골대에서 30m 정도 되는 거리, 경기장의 사람들과 바비를 파악하지 못한 상대 팀의 선수들은 바비가 상식적으로 중앙의 알렉산더에게 패스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만은 바비가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었나 보다. 알렉산더는 바비가 공을 잡자마자 페널티박스 안으로 뛰었다. 상대 수비수는 어쩔 수 없이 알렉산더를 쫓아가야 했고, 이 오프 더 볼(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 플레이로 생긴 공간으로 바비는 강력한 중거리 슛을 때렸다.

얼마나 센 슛인 건지, 공은 골망을 출렁이고 다시 페널티박스까지 튕겨 나왔다. 골키퍼는 제자리에 서서 골대 안에 들어갔다 나온 공을 멍청하게 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환호하던 이들은 리처드 가의 아들, 휴고의 말에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치킨 먹어요!”

마야 곁에 모인 사람들은 다 함께 양념치킨을 먹으며 동점 골을 기뻐할 수 있었다.

*

골을 넣은 당사자 바비는 세레머니를 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바비는 다른 건 몰라도 발목 힘에 정말 자신이 있기에, 페널티박스 밖이라도 슈팅 각도만 나오면 바로 슛을 때리는 선수였다.

하지만, 자신은 어제 임대를 온 선수였다.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세레머니가 끝난 후, 노팅엄 진영으로 돌아가던 중 주장 알렉산더에게 다가갔다.

“내가 중거리 슛을 할 걸 어떻게 알았어요?”

“미리 봤으니까.”

“미리?”

“스카우트 팀에 부탁해 너의 경기 영상을 몇 개 봤다.”

“오늘요?”

“아니, 며칠 전에.”

며칠 전이면 자신의 임대가 확정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내가 여기 올 걸 알고 있었나 보네요.”

알렉산더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올 만한 선수는 다 확인했다. 알버트는 침투를 좋아하는 스트라이커니 생각하고 있으면 패스하기 편할 거다. 사무엘은 패스 기술이 떨어지니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공을 받아줘야 한다. 그리고 칼 슈나이더의 위치를 늘 생각하고 있어라. 전개가 막히면 무조건 칼에게 패스해. 어떻게든 해낼 테니까.”

그럼 대체 몇 개를 봤다는 거야.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바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는 끄덕였다.

바비는 팀 훈련 외에는 축구와 관련된 활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 바비가 보기에 새 팀의 주장은 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삐익!

심판의 재개 휘슬이 아니었다면, 몇 분을 더 생각해볼 만큼 이상한 사람이었다.

바비는 경기 시작 후에도 알렉산더를 흘긋거렸다.

*

심판의 종료 휘슬과 함께, 제임스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역시 도니야! 의심한 내가 쓰레기야!”

“띄우지 좀 말라니까.”

최종 점수는 2-1, 노팅엄은 드디어 3연속 무승의 사슬을 끊었다.

부상 선수가 한 명도 복귀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정말로 큰 성과였다.

결승 골의 과정 또한 만족스러웠다.

어제 영입한 수비수 사무엘의 태클로 공을 빼앗았고, 바비가 가까이 와서 공을 받아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칼과 함께 원투패스를 하며 전진한 바비는 침투하는 알버트에게 깔끔한 공간 패스를 찔러줬고, 알버트까지 데뷔골을 넣었다.

첫날부터 이렇게 호흡이 좋다니, 정말 놀라웠다. 앞으로가 너무 기대됐다.

그리고 나는 내 옆에 쪼르르 앉은 세 명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긴장 좀 해야겠다?”

모처럼 만의 승리에 기뻐하던 로드, 할리, 라이언이 급격하게 울상을 지었다. 새로 영입한 선수들과 이들의 포지션은 정확히 겹쳤다.

사실 로드나 라이언은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포지션은 같아도 스타일이 달라 공존했으면 공존했지 경쟁할 확률은 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리는 투 톱 자리에 알렉산더라는 거대한 산이 하나 버티고 있어, 정말 험난한 주전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로컬 보이인 이 세 명이 주전 자리를 차지해줬으면 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마야와 친구들은 대학교 기숙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재밌었어!”

“이러다 우리 구단 정말 승격하는 거 아냐?”

“야, 설레발 자제야. 마야, 뭐 해? 아직도 속이 안 좋아?”

“괜찮거든.”

마야는 스마트폰 화면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오늘 활약한 선수들 영상 뜨나 안 뜨나 보고 있어. 새 글 떴다. 어라?”

새 글이 올라왔음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고, 마야는 스마트폰을 다시 눈앞으로 가져와 글을 확인했다.

신입 선수들의 동영상이 아닌 공지사항이었다.

<안녕하세요. 노팅엄 팬 여러분.>

우리 노팅엄 FC에서는 2월 17일 경기 3시간 전, 팬들을 초청해 팬 포럼을 열고자 합니다.

참가 자격은 이번 시즌 시즌권을 보유한 서포터입니다.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 중 20명을 추첨할 계획입니다.

포럼에서는 이번 시즌 남은 계획과 다음 시즌 구단 계획을 얘기하고,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합니다.

포럼의 내용은 영상으로 노팅엄 TV에 게시됩니다.

팬분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자 감독 잭슨 포터, 단장 겸 사장 김도운, 구단주 제임스 휘팅엄, 주장 알렉산더 샌더스가 참가하니 많은 서포터가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거.”

마야가 손민국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손민국이 내용을 쭉 읽자마자 물었다.

“신청하게?”

“당연하지.”

마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손민국은 그럼 그렇지라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

“웩, 엄마. 오늘 또 건강 주스만 잔뜩 먹었어.”

“잘했어, 휴고. 그렇다면 또 그놈의 게임을 했나 보구나···.”

막 거실을 지나쳐가려던 휴고의 할아버지 고든과 아버지인 웨인이 움찔했다.

“하하, 여보 그게···.”

웨인이 아내 리사 리처드에게 변명하는 사이 고든은 도망쳤다.

“아, 아버지!”

“할아버지, 나도 같이 가요.”

휴고 또한 은근슬쩍 웨인의 손길을 피해 도망쳤다.

결국, 웨인 리처드는 부인 리사 리처드 앞에 홀로 서야 했다.

리사는 웨인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역시··· 이놈의 술 좀 못 끊어요?”

“하하.”

“왜 휴고만 주스를 먹고 고든이랑 웨인은 술을 먹는 건데요! 고든은 간도 안 좋으면서, 웨인은 술 먹으면 주정 부리면서···.”

리사가 술을 먹지 말라는 건 다 웨인과 고든을 걱정해서였다. 고든이 휴고를 데리고 도망친 사이 웨인은 한참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퀭한 눈으로 주방에 도착한 웨인은 식탁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고든을 찾아냈다. 용건도 있었고 마침 잘 됐다.

“아버지.”

“뭐냐.”

“어제 왜 절 버리셨어요.”

“크흠··· 어쩔 수 없었다. 네 부인이 얼마나 무서운데···.”

웨인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깜짝 놀라 멈췄다. 막 리사가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웨인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마침 진짜 용건도 있었다.

“아버지, 이거 보셨어요?”

고든 또한 곁눈질로 리사의 눈치를 보며 웨인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을 봤다. 고든은 곧 화면을 뚫어지게 보기 시작했다. <노팅엄 팬 포럼 공지>를 끝까지 본 고든이 말했다.

“가야겠구나.”

“그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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