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31화 (31/245)

11. 보은 (1)

“저도 모르겠어요. 돌아오는 내내 폰을 꺼 뒀었거든요. 일단 집에 가서 확인해야겠습니다.”

칼은 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앞에는 그의 에이전트 뮐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칼! 왜 폰을 꺼 둔 거야.”

“배터리가 다 됐더라고. 기사는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일단 들어가자.”

사람들이 대놓고 칼과 뮐러를 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문을 꼭 닫고, 방 안에 들어와서 문을 잠그고 창문까지 잠긴 걸 확인한 후에야 뮐러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에서 바이아웃을 제시했어! 칼, 이제 됐어. 네 목표대로 분데스리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충분히 짐작했던 내용이었다.

한데 이상했다.

분명 기뻐해야 하는 일인데, 칼은 정신이 멍해져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아닌데··· 그래, 잘 됐다.”

“얘 왜 이렇게 덤덤하대. 남 얘기하는 것처럼. 독일 최고의 리그에서도 뛸 수 있고, 프로선수들의 꿈,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뛸 수 있는 건데!”

“···잠깐만.”

칼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다급히 손을 놀려 한 이름을 찾았다. 김도운.

칼은 김도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도운은 몇 초 지나지도 않아 전화를 받았다.

-스페인은 잘 다녀왔어?

“지금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아, 그 얘기 때문인가? 좋아. 기자들 눈도 있으니까 훈련장에서 만나자. 나 지금 훈련장 사무실에서 네 일 처리하고 있어.

“예.”

전화를 끊자마자 뮐러가 물었다.

“왜 그래? 어차피 여름에 이적하는 거, 협상은 천천히 진행해도···.”

“나 훈련장에 좀 데려다 줘.”

“···그래.”

칼은 아직 면허가 없었다. 보통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훈련장에 출퇴근하곤 했다.

뮐러는 칼을 훈련장에 데려다 줬다.

“오후 훈련을 하고 있나 보네. 아무튼, 나 여기서 기다린다?”

“응. 고마워.”

선수들의 차가 주차돼 있었다.

노팅엄에서 국가대표팀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자신뿐이었기에 나머지 선수들은 휴가에서 복귀해 훈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칼은 지금 선수들을 만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최대한 피해서 들어가려고 훈련장 건물의 옆문으로 들어갔는데, 땀에 젖은 할리와 로드, 라이언과 마주쳐 버렸다.

“어어? 바이에른 뮌헨이다.”

“오늘까지 휴가 아니야?”

“잠깐 단장님 좀 만나러 왔어.”

칼은 할리와 로드의 말에 썩은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기사 봤어. 정말 잘 됐어. 바이에른 뮌헨이라니! 도르트문트라니! 가서 우리 잊어버리면 안 된다?”

라이언은 자신이 당연히 떠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 칼은 변명하듯 말했다.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에이, 어떻게 그 두 팀을 거절하냐? 그렇게 큰 기회를.”

칼은 대답하지 못했다. 칼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만큼 아쉬움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 상태였다.

대화를 더 이어나가기가 불편해진 칼은 말없이 웃고, 김도운에게 가 보겠다고 이야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

오늘 올라온 기사는 정말 기쁘면서도 슬펐다.

세계에서도 최상위권 팀 중 하나인 도르트문트의 단장이

‘우리는 6개월 전부터 칼 슈나이더를 관찰하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칼 슈나이더는 컵대회 포함 34경기에서 11골을 넣고, 26어시스트를 해냈다. 잉글랜드 4부리그는 다른 나라의 4부리그와 다르다. 수준이 아주 높다. 칼은 이곳에서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스카우트팀의 판단으로는 당장 다음 시즌부터라도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수 있다. 칼 슈나이더는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라는 극찬을 해 줬고, 독일 최고의 팀이자 세계적인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단장 또한 칼을 영입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두 팀 동시에 칼의 바이아웃을 문의해 간 후,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바로 영입하겠다는 이 종이를 보냈다.

내 손에는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낸 팩스 두 부가 쥐여 있었다.

칼 슈나이더의 바이아웃 500만 파운드(약 75억)를 당장 지급할 수 있다는 증명서였다. 역시 바이아웃은 최소 1,000만 파운드는 해야 했다. 돈도 아쉽고 다른 것도 아쉬웠다.

이래서 정을 안 들이려고 했는데, 이번 시즌이 끝나면 한동안 공허할 것 같았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칼이 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나는 칼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미리 끓여놓은 물로 차를 우려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칼은 테이블의 건너편 소파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칼의 표정을 풀어주기 위해 말했다.

“이번 시즌 4부 리그에서 가장 행복한 선수가 됐으면서, 표정 좀 풀어라.”

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우물쭈물하는 칼을 보며 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이 자식···.

“설마 남을지 떠날지 고민되냐? 미쳤어? 바이에른 뮌헨이랑 도르트문트가 어디 개 이름인 줄 알아?”

그제야 칼이 입을 열었다.

“꼭 이번 시즌이 아니더라도···.”

“칼, 기회는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야.”

“저는 다음 시즌에도 잘 할 수 있는데···.”

“안 돼. 가.”

내 말에 발끈한 건지 칼이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

“아니, 팀의 에이스가 남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떠나라는 단장이 어디 있어요? 제가 그동안 뭐 사고라도 쳤어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칼의 눈을 들여다 봤다.

분명 시즌 초반만 해도 내가 ‘너 우리 팀에서 경력 쌓아서 빅클럽으로 가려고 온 거잖아.’라고 말해도 수긍했던 놈인데.

자기 실력이 2부 리그급이라고 자부했던 놈인데.

그런 놈이 4부 리그에 잔류할지도 모르는 팀에 남겠다고 한다.

“야, 널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이냐. 여기 처음 왔을 때는 2부 리그라고 했잖아.”

“··· 1부 리그에서도 뛸 자신 있어요. 경쟁은 좀 해야겠지만, 실력이야 쌓으면 되고.”

“그래, 근데 왜 남겠다는 거야.”

“그건···.”

34경기 11골 26어시스트.

이런 선수를 갖고 왜 5위냐는 비판을 수시로 들을 정도로 칼은 지는 경기에서도 귀신같이 스탯을 쌓았다.

영입할 때만 해도 두 시즌 정도 데리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칼은 너무 빨리 개화했다.

“여기가 좋아서···.”

팀에게 과분한 수준의 선수를 잡으면 구단에는 당장 이익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선수의 기량이 떨어질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 그에 따라 전 시즌만큼 비싸게 팔 확률이 줄어들기도 한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동물, 그렇기에 칼의 실력이 하향 평준화될 우려도 있다. 축구계에서는 하위 팀의 에이스들이 이런 식으로 잊히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축구단을 운영하려면 많은 선택을 해야 해. 내가 널 안 잡고 싶을 것 같아?”

칼은 말없이 내 두 눈을 바라봤다. 나는 칼의 눈을 피하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나는 늘 높은 확률을 택했어. 그렇게 작은 성공을 쌓아가다 보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구단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높은 확률을 택하고 싶어.”

“제가 남는 건 낮은 확률이라는 거예요?”

“응. 우리는 선수를 가장 비싸게 팔 기회를 놓칠 수 있고, 너는··· 성장이 멈출 수 있지.”

뒷말을 강조했다.

하지만 칼의 얼굴에는 아직도 미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지금 열여덟 살이야. 가장 성장해야 할 때고, 더 높은 수준에서 많은 걸 경험해야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어. 근데 이런 하부리그에서 썩는다? 절대 안 돼.”

구단을 위해서라고 최면을 걸고 있었지만, 솔직히 칼의 미래가 많이 걱정됐다.

칼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칼의 눈은 슬퍼 보였지만, 입가는 조금 웃고 있었다.

“내가 바이에른 뮌헨이나 도르트문트에서도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응.”

“왜요?”

그야 회귀 전의 네가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윙어였으니까. 나비효과로 여러 가지가 변한다고 해도 사람의 재능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

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말했다.

“너는 내가 고른 선수야. 솔직히 당장 뮌헨은 어렵겠지만, 선수단이 얇은 도르트문트라면 무난하게 로테이션 급 정도로는 뛸 수 있을 거야. 확신해.”

“내가 가면 섭섭하지 않겠어요? 이주에 한 번 밥 먹는 사이였는데.”

“너 팔고 그 돈으로 선수 네 명 사 올 거야. 걔네랑 일주일에 한 번씩 먹지 뭐.”

내 말에 칼은 웃음을 터뜨렸다.

“결심했어요.”

“그래.”

“시즌 종료까지 보류할게요. 기사도 그렇게 낼게요.”

“어?”

내가 당황하건 말건 칼은 속이 시원한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더라도 팀에 보답은 하고 가고 싶어요. 이곳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거든요. 만약에 보답도 못 한다면 남죠, 뭐. 그리고···.”

나는 이 멍청한 선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킴은 저에게 늘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주네요. 정말 감사해요.”

“뭔 소리야.”

칼은 내 퉁명스러운 대답을 듣고도 씩 웃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음 주, 이번 시즌 두 번째 노팅엄 더비가 열렸다.

**

노츠 카운티의 구단주가 CEO 스콧 라이트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스콧 라이트는 혼이 빠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이긴다며!”

“저런 걸 어떻게 이겨요··· 상대 팀에 크리스 앨런이 강림한 수준인데···. 하하. 오늘은 즐기는 게 어떨까요. 구단주님.”

구단주는 다 포기해버린 스콧의 멱살을 놓았다. 스콧이 미끄러지듯 자리에 앉아 멍한 눈으로 필드를 내려다본다. 구단주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현재 스코어 3-0. 득점자 칼 슈나이더(7, 44, 61).

대체 저런 수준의 선수가 왜 4부 리그에, 하필이면 가장 꼴 보기 싫은 노팅엄 FC에 있단 말인가.

국가대표 경기를 뛰고 왔는데, 왜 저렇게 쌩쌩하단 말인가.

구단주는 근처 좌석에 앉은 팬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혼이 나가거나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노츠 카운티의 홈구장이었고, 노츠 카운티는 현재 리그 1위였다. 원래 강한 전력이었던 데다가 노팅엄 더비에서 패하고 선수들과 감독이 이를 악문 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리그 1위는 의미가 없었다.

자기 팀이 강등권에 있더라도 더비전을 이기면 만족스러워하는 게 영국의 축구팬이니까.

근데 오늘은 그 반대가 되게 생겼다.

필드 위에서는 칼이 공을 잡고 있었다.

칼이 순식간에 두 명을 제쳐내고 중거리 슛을 쐈다.

또 골이다.

<와아아아!>

소수의 노팅엄 원정 팬들이 환호했고, 노츠 카운티의 팬들의 절반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팬들은 칼의 플레이에 손뼉을 치고 있었다. 해탈한 듯한 모습이었다.

노츠 카운티의 구단주는 정말 오랜만에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활짝 웃고 있는 칼 슈나이더를 보며, 제발 노팅엄 FC가 승격에 실패해 저 선수를 다시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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