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34화 (34/245)

11. 보은 (4)

“칼!”

“그만! 그만!”

“슈나이더!”

“으아아아악!”

“칼!”

“살려줘!”

“슈나이더!”

선수들에게 붙잡힌 칼이 공중을 날고 있었다.

칼이라고 할 때 준비하고, 슈나이더라고 외칠 때 공중으로 던진다.

자신을 축하해주려는 걸 알았기에 헹가래를 처음 당할 때까지만 해도 기뻤다. 하지만, 막상 공중을 날고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높고 무서웠다.

선수들은 몇 분 동안이나 그렇게 놀다가 칼을 내려놓았다.

힘이 다 빠진 나머지 칼은 선수들이 내려놓을 때 넘어질 뻔했다. 그런 칼을 라이언이 잡아주었다.

“괜찮아?”

“응, 늘 고마워.”

“오늘 최고였어.”

“당연하지. 나잖아.”

칼과 라이언은 서로를 보고 씩 웃었다.

“라이언, 나 좀 앉혀주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질 것 같아.”

라이언은 조심스럽게 칼을 앉혀줬다. 그리고 칼 옆에 나란히 앉았다.

코치들과 교체 선수들이 샴페인을 들고 들어왔고, 서로를 향해서 뿌리고 있었다.

몇몇 선수들은 어디서 가져온 건지 팬케이크 조각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그때, 칼은 잠시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아, 사진.”

“맞다. 사진.”

오늘도 이겼으니까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선수들이 너무 신나 해서 어찌해야 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샴페인 범벅이 된 알렉산더가 선수들을 하나하나 불러 서포터들이 모여있는 골대 뒷좌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시 캡틴이라니까.”

알렉산더는 둘에게도 다가왔다.

“먼저 서포터 석을 배경으로 찍고, 다음에는 W 석, 다음에는 S 석을 배경으로 찍을 거다.”

“예. 좋네요.”

“일어날 수 있나?”

“예.”

“가자. 그리고 오늘··· 고마웠다.”

칼은 씩 웃었다. 무슨 얘긴지 모르는 라이언은 어리둥절했고.

이어서 선수들은 원정 경기를 와 준 팬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원래는 세 번만 찍으려고 했는데, 많은 팬이 찍고 싶다고 목소리를 내서 마리아는 수십 번은 셔터를 눌러야 했다.

걷기도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에 칼은 드레싱 룸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기분이 좋았다.

“칼, 너는 안 해?”

“하고 싶은데 걸을 힘밖에 없어.”

“그럼 다녀올게.”

할리와 로드, 라이언이 샴페인을 들고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감독 잭슨.

선수들은 자기들끼리는 샴페인을 뿌리고 케이크를 묻히면서 놀아도 잭슨 근처는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선수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무얼 하려는지 깨닫고, 제 자리에 서서 구경할 준비를 시작했다.

잭슨의 옛 제자였던 수석코치마저 그들의 움직임을 눈감아 줬다.

잭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어차피 자신이 하는 것도 아니고 혼나는 건 쟤들일 테니까.

“헉!”

하지만, 잭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할리가 샴페인의 뚜껑을 열기 직전, 고개를 돌려 할리와 로드, 라이언을 본 것이다.

잭슨의 강렬한 눈빛에 셋은 저절로 샴페인을 내려놓았다.

“라이언, 너도 이 두 얼간이랑 똑같이 놀 줄은 몰랐는데.”

잭슨의 말에 라이언이 시무룩했다.

로드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샴페인의 뚜껑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저기, 감독님?”

“왜.”

“할리는 그렇다 치는데 왜 저까지 멍청하다고···?”

“야, 내가 뭐 어때서.”

키득대며 상황을 지켜보는 칼은 잘 알고 있었다.

로드는 모범생인 척해도 할리를 따라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오늘은 안 된다. 그런 경기력으로 무슨.”

잭슨의 말에 세 선수 모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잭슨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어딘가에서라도 우승하면 그때는 해도 좋다.”

칼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좋은 감독님이다.

“어? 정말요? 3부 리그 우승도 상관없어요?”

할리의 물음에 잭슨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나한테 어떻게든 샴페인을 뿌리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어··· 음··· 하하하.”

“좋다. 3부 리그 우승도 상관없다.”

“정말이죠?”

예상외의 긍정적인 대답에 할리는 긴장을 풀었다.

잭슨은 씩 웃었다. 칼은 정말 악마 같은 미소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만큼 훈련도 많아지겠지. 원하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해 주겠다. 다음 프리시즌을 기대해라. 아주 특별한 곳으로 전지훈련을 갈 테니까. 휴가 잘 다녀와라.”

할리의 표정이 굳었고, 로드와 라이언은 할리의 등을 퍽퍽 쳤다. 근처에서 얘길 들은 선수들도 잭슨이 떠난 후에 모여 할리를 팼다.

소식 듣고 모인 선수들도 할리를 걷어차고 갔다.

칼도 겸사겸사 할리를 걷어차러 가려는데 구단 직원 하나가 칼을 급히 찾았다.

“칼, 여기 있었네. 인터뷰해야지.”

“또요?”

“기자들이 잔뜩 기다려.”

단체 사진 찍기 전에 MOM 인터뷰는 했는데··· 칼은 아쉬워하며 직원을 따라 미디어룸으로 향했다.

미디어룸에는 먼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하, 순위가 1등 더 높으면 뭐합니까. 결국, 노츠 카운티나 우리나 3부 리그로 가는 건 똑같은데요. 나머지 지표는 우리가 더 좋습니다. 돈도 우리가 더 많이 벌었고, 평균 관중 수도 우리가 더 많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더비전은 누가 이겼죠?”

김도운이 무척 신나 있었다. 늘 어른스럽게 보였던 김도운이 아이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츠 카운티의 CEO에게 전해주십시오. 다음 시즌에도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누가 노팅엄시의 주인인지 보여주겠다고.”

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 최선을 다하길 정말 잘했다고.

**

“도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층 버스를 빌리는 건 쉬워. 선수들 휴가 가면 하지도 못한다고.”

“우승도 아니고 3부 리그 승격이라 시에서도 허락 안 해줄 거야. 그리고 현수막으로도 충분해.”

제임스는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2부 리그에 돌아갈 때는 꼭 퍼레이드를 하자. 그때는 내가 꼭 설득해 볼 테니까.”

“그래!”

그제야 제임스의 표정이 풀렸다. 제임스는 선수들과 놀다 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3부 리그 승격을 기념해 구단에서는 노팅엄시 곳곳에 노팅엄의 승격을 축하하고 팬들의 사랑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또한, 신문 한 면을 할당하거나 라디오, TV 등의 매체에도 우리 선수들과 팬들이 자랑스럽다는 광고를 넣었다.

그리고 오늘은 한 시즌 동안 수고한 선수, 감독, 코치진, 직원들을 위해 파티를 열었다. 선수들과 직원들이 뒤섞여 한창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직원과 선수들은 접점이 적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서로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하이 파이브와 격한 포옹은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시즌의 주인공 칼 슈나이더는 어딜 가도 환대를 받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처럼 헹가래까지는 안 쳤지만, 말 그대로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고 있었다.

“왜 혼자 계십니까.”

“아, 잭슨 왔어요? 평소에도 사람 많이 만나러 다니는데 여기서만큼은 편히 있고 싶어서요.”

“그럼 제가 방해를···?”

“전혀요. 친한 사람은 예외입니다.”

잭슨은 웃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잭슨과 힘껏 포옹했다.

“수고했어요. 한 시즌이나 빨리 승격할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네요.”

“믿어준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스태프들도, 선수들도 열심히 해 줬고요.”

나는 잭슨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어때요? 이제 늙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죠?”

“허허, 그렇네요.”

“아직 한창이라니까요. 진짜 감독일을 못할 정도로 늙으면 그때 보내줄게요.”

“은퇴하긴 글렀습니다. 하하.”

우리는 포옹을 풀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술을 나눠 마시며 이번 시즌 이야기를 했다.

“겨울에 영입한 알버트, 사무엘이 정말 성실합니다. 훈련장 분위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죠? 다음 시즌에는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실력도 일취월장할 거고요.”

“좋네요. 또, 로드와 할리, 라이언의 성장세도 가파릅니다. 3부 리그에서는 한동안 후보로 출전시켜야 하나 했는데, 지금 수준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칼 말고 벨기에에서 데려온 두 명은요?”

“한스와 요한은 무난합니다. 그대로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실전에서 써 보고 생각해야죠. 프리시즌에 친선경기 할 팀 목록을 좀 적어놨었는데···.”

우리는 다음 시즌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나는 문득 감독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즌 중에는 괜히 고민만 더해주는 것 같아 말하지 못한 얘기였다.

“캡틴 말인데요.”

“알렉산더요? 정말 훌륭한 선수죠. 뭐든 알아서 척척 해내서 일을 절반 이상 덜었습니다.”

“다음 시즌 중반 즈음에 기량이 급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

회귀 전, 알렉산더는 다가오는 시즌에 4부 리그에서도 하위권의 성적을 냈었다.

올해 생일이 지나면 서른여덟 살이 되니 기량 하락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조금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걸 고려해서 다음 시즌 계획을 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허···.”

회귀 전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팀을 보여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알렉산더의 삶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앞으로 알렉산더가 원하는 미래를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해줄 계획이었다.

“···믿기 힘들지만, 염두에는 두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어서 다른 얘기를 하며 술을 계속 마셨다. 어느 정도 취했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잭슨의 부인이 와서 잭슨을 데리고 집에 돌아갔다.

잭슨 부부뿐만 아니라 선수들과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고 있었다.

파티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한 선수가 내 테이블로 찾아왔다.

“왔냐?”

“네.”

칼 슈나이더였다.

“너 술은 마실 수 있어?”

“예. 열여덟 살부터 술 마실 수 있어요.”

“그랬나?”

칼은 내가 따라주는 위스키를 천천히 마시며 이 구단에서 있었던 즐거운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칼이 하는 얘기를 들어줬다.

얼마나 지났을까, 칼이 어제 이기고 정말 기뻤다는 말까지 마무리했을 때, 내가 물었다.

“어때, 보답은 충분히 한 것 같아?”

칼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어떠냐니까?”

“···승격까지 제 손으로 이루면 아쉬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있네요.”

“그래서 어쩌려고, 나 너 팔고 사야 할 선수들 목록 다 짜놨는데.”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나는 칼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나 없어도 1부 리그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해야지. 너보다 더 재능있는 애 데려올 거야.”

칼은 안심한 건지 내게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처음 구단에 적응하지 못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미소였다.

애들은 정말 빨리 자라는구나.

“정말 즐거웠어요. 이 구단이 발전하는 모습을 안에서 못 보다니, 아쉽네요.”

“···나도 즐거웠다.”

“1부 리그에 가는 게 끝이에요?”

“설마.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해야지.”

“좋네요.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겠어요.”

“···그래. 수고 많았어.”

칼이 말한다.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말해봐. 가능하면 들어줄 테니까.”

“엄청 어려울 텐데.”

“말해보라니까.”

칼이 진지한 얼굴을 한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칼은 한글자도 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신중한 발음으로 그 부탁이라는 걸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1부 리그로 올라온다면,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게 된다면···.”

뒷말을 듣지 않았음에도, 나는 칼의 부탁이 무엇인지 먼저 깨달아버렸다.

혹시 눈에서 뭐라도 떨어질까, 눈에 잔뜩 힘을 준 채로 칼의 부탁이자 작별인사를 들었다.

“저를 다시 데려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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