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35화 (35/245)

12. 새로운 시즌맞이 (1)

도르트문트의 공식 홈페이지에 칼의 사진이 올라왔다.

<칼 슈나이더, 도르트문트와 5년 계약 완료>

칼은 친정팀 뮌헨이 아닌 도르트문트를 선택했다. 이유는 더 많이 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칼의 계약은 불과 사흘 만에 진행됐다. 혹시 마음을 돌려 바이에른 뮌헨으로 갈까 불안했는지, 도르트문트의 단장이 칼의 제안을 모두 수용했다고 했다.

도르트문트의 운영진에게서 칼을 영입했다는 소식을 언제 알릴지 들었다.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춰 노팅엄 TV와 홈페이지에 칼의 작별 영상을 올리기로 했었다.

나는 도르트문트의 홈페이지를 끄고, 노팅엄의 홈페이지를 열었다.

작별 영상은 잘 올라와 있었다. 나는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영상 속의 칼은 노팅엄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독일로 떠나기 전, 마리아와 미리 만든 영상이라고 알고 있었다.

마리아의 말로 영상이 시작됐다.

[정말··· 아쉬워요.]

칼: 저도요.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런 건 익숙해 지지가 않네요.]

마리아의 힘없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팬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칼: 네.

칼이 시선을 옮겨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화면 속의 칼이 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칼: 솔직히 이곳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잠깐 들르는 곳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칼: 하지만 여기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팬들은 정말 사랑스럽고, 멋졌습니다. 어떨 때는 동네 사람 같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죠.

칼: 동료들은 최고였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팀으로 뛰었고, 강등권에 있던 팀을 3부 리그까지 올려놓았습니다.

칼은 무슨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처럼 감독 잭슨을 비롯해 코칭 스태프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말했다. 내 이름도 나왔지만, 어제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적당히 듣고 흘렸다.

칼: 이 정도면 빼먹은 사람은 없겠죠?

[네.]

칼: 그럼 이제 줄여야겠네요.

칼: 노팅엄은 제 두 번째 고향입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꿈꾸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영어도 까먹지 않도록 SNS로 자주 말을 걸어주세요.

칼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칼: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우리 캡틴 알렉산더나 데이비드 워커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기량을 유지하고 있겠습니다. 너무 늦으면 안 돼요. 저는 이 팀에서 꼭 내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거든요.

칼: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매일 훈련장에 나가면 볼 수 있었던 선수를 이젠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괜히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다.

“에이 씨.”

이래서 정이 들면 안 된다는 거다.

앞으로는 떠날 확률이 극히 적은 로드, 할리, 라이언이나 아껴줘야지.

칼의 이적 소식은 그날 저녁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꽤 큰 이슈가 되었어야 했다. 이적시장이 조용한 가운데 도르트문트라는 빅클럽이 영입한 유망한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무슨 우연인지 칼이 언급했던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선수 데이비드 워커의 업적을 기리는 각종 기사 때문에 칼의 이적 소식이 묻혀버렸다.

그나마 찔끔찔끔 나오던 기사도 이날 저녁 유럽의 최고 클럽팀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난 후에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

“흐, 흐어어엉···.”

“뭘 그렇게 우냐.”

“어떻게 안 울어···.”

조이는 아까부터 말도 못 하고 끅끅거리고 있었고, 제임스는 소리 내서 울고 있었다.

TV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준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수비수이자 오늘 은퇴를 선언한 데이비드 워커가 인터뷰하고 있었다.

제임스와 조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데이비드 워커는 잉글랜드의 사람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받아야만 하는 선수니까.

데이비드 워커는 잉글랜드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고, 축구계의 관념을 바꿔버린 잉글랜드 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였다.

온갖 매체에서 그의 다큐멘터리를 툭하면 틀어주었기에 데이비드 워커에 관해 모르는 축구팬이 없을 정도였다.

데이비드 워커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어린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바이에른 뮌헨을 극적으로 잡아낸 ‘누캄프의 기적’을 직접 보며 축구에 빠져들게 된 데이비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월드컵 우승, 발롱도르’라는 목표를 가진 채로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재능이 부족했다.

데이비드는 스무 살까지 프로 입단 테스트에 줄줄이 불합격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공사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7부 리그에 소속된 아마추어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7부 리그(아마추어 리그)에서 2년, 6부 리그(세미프로리그, 전업 선수와 비전업 선수가 뒤섞여 뛰는 곳)에서 3년을 노력한 데이비드는 3부 리그, 2부 리그의 팀으로 차례로 이적하며 프로선수가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2부 리그에서 더 올라가지 못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 시기에 현재 슈퍼 에이전트 중 하나로 꼽히는 T 에이전시의 대표 태현석을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는 태현석의 도움을 받아 효율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그와 어울리는 팀과 감독을 찾았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축구계에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 시즌, 2부 리그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인 데이비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후보 선수로 이적한다. 시즌 초반 후보 선수답게 경기에 출장도 못 하던 데이비드는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우연히 뛰게 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대활약하고, 차츰 주전으로 도약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월드클래스 선수로 급격히 발전해 팀을 이끌고 첫 번째 꿈이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고, 국가대표에 뽑혔다.

그의 나이가 서른두 살일 때였다.

처음 뽑힌 국가대표에서 바로 치르게 된 유로에서는 팀을 유로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확실한 월드클래스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이비드는 2년 동안 꾸준히 폼을 유지해 두 번째 꿈이었던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FIFA 올해의 선수상도 받았다. 데이비드의 포지션은 수비수였기에 더 극적이었다. 2006년 칸나바로 이후로 무려 16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으니까.

그리고 작년에는 세 번째 꿈이었던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며, 축구팬이나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다.

그는 필드 위에서 늘 최선을 다한다는 게 무엇인지 직접 보여줬고, 늦은 나이에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수였다.

현역 선수들과 축구팬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 하면 한 손에 꼭 꼽혔다, 월드컵과 유로 우승에 목말랐던 잉글랜드 팬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고.

호날두와 메시만큼의 꾸준한 괴물은 아니었지만, 데이비드는 정말 큰 영향력을 가진 선수였다.

TV 속의 데이비드가 말한다.

[나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꿈을 이뤄주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데이비드는 은퇴한 후, 바로 T 에이전시 소속 에이전트가 된다.

그리고 에이전시의 대표 태현석이 미처 관리하지 못하는 하부리그의 선수들을 전담하는 에이전트로서 살게 된다.

나는 데이비드가 관리하게 되는 선수들의 이름을 떠올려봤다. 데려오고 싶은 선수들이 몇 있었다.

그때, 내 상념을 끊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데이비드 워커를 뚫어져라 보던 조이였다.

“도운, 근데 워커 머리 보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며칠 전에 영입한 선수들이 전부 감자 머리던데···.”

데이비드는 늘 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다. 6mm 정도의 반삭 머리, 일명 감자 머리. 조이는 TV 속 데이비드의 머리를 보며 내가 다음 시즌을 대비해 며칠 전에 영입한 선수들을 겹쳐 본 것이다.

“다들 데이비드 워커 흉내라도 내나?”

조이는 제대로 봤다. 새로 영입한 선수들과 데이비드는 큰 관계가 있었다. 겨울에 미리 영입했던 알버트와 사무엘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들은 일종의 집단 추종자들이었다.

“워커를 존경하는 선수들이거든. 워커 흉내 낸 거 맞아.”

“응? 정말이었어?”

데이비드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4년 전이다.

늦은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은 전 세계의 나이 많은 선수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데이비드를 흉내 내는 추종자가 되었다.

이 추종자들은 데이비드가 성과를 낼 때마다 늘어났는데, 내가 영입한 선수들은 이들 중 정말로 1부 리그까지 올라가게 되는 선수들이었다.

이 추종자들의 기량 만개로 잉글랜드 리그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나이 많은 선수들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현상은 ‘워커 신드롬’이라고 불리고, 이들은 ‘워커 세대’라고 불리게 된다.

또한, 이들은 데이비드 워커를 존경한 나머지 그의 은퇴를 기념해 감자 머리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래서 더 주목받게 된다.

며칠 전에 3부 리그 수준이 안되는 런던 4인방에게 방출을 통보하고, 4명의 워커 세대와 같은 날에 계약서를 썼는데 이들은 서로를 보자마자 마음이 통한 듯 씩 웃고, 계약서를 쓰자마자 훈련장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얘네들은 훈련에 미친 놈들이었다.

이들은 데이비드 워커를 따라 한다며 훈련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오고, 훈련이 끝나고 남아서 한 시간을 더 하는 종자들이었다.

지난겨울에 영입했던 알버트와 사무엘 또한 대표적인 추종자였다.

이 둘 덕에 훈련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잭슨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이들도 휴가에서 돌아올 때는 감자 머리가 되어있을 것이다.

추종자들, 그러니까 감자 머리들을 영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 나이가 있는 선수들이라 이적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3부리그 승격을 확정 지은 직후, 나는 스카우트팀에게 시켜 다른 팀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라도 이들을 다 데려오라고 했다.

노츠 카운티가 어제 우리가 20대 후반, 30대 초반 선수들을 영입한다고, ‘늙은이들만 영입한다. 노팅엄의 단장은 시야가 아주 좁은 것 같다.’라고 디스했지만, 이번 시즌 그들은 무척 후회하게 될 것이다.

기왕 3부까지 올라온 거, 우리는 이번 시즌에 2부까지 갈 생각이니까.

*

다음 시즌에는 출입을 금지했던 1만 석을 다시 열 계획이었다.

팬 포럼에서 말했던 대로 일부 좌석을 프리미엄 석으로 개조 공사하는 중이었다. 프리미엄 석이 완공되면 우리 경기장의 최대 수용인원은 대략 2만 5천여 명이 될 것이다.

이런 대규모 공사는 팬들이 없는 이 기간에만 가능했다.

가능한 한 빨리, 날림공사 없이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하루에 두 번은 공사장에 출근하고 있었다.

“테이블과 좌석의 사이가 더 넓었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테이블 하나와 좌석 두 개를 임시로 놓았던 반장이 답했다.

“이 정도요?”

“아뇨. 이 정도.”

“이거 너무 넓은 거 아녜요?”

“다리를 쭉 뻗고도 공간이 남아야 해요. 팬들이 쾌적하게 경기를 볼 수 있어야 프리미엄 석이죠. 기존 좌석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 의미가 없어요.”

나는 직접 좌석과 테이블을 움직여 내가 원하는 정도의 넓이를 보여줬다. 반장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능한가요?”

“예. 그럼 본격적으로 설치 시작할게요.”

“좋아요. 저녁때 또 봐요.”

반장이 썩은 미소를 보여주며 나를 배웅했다.

다른 직원에게서 얼핏 들으니 이렇게 공사장을 자주 찾아오는 사장은 처음이란다. 진짜로 싫어 죽겠단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봐야지.

나는 계단을 내려가서 드레싱룸 옆의 한 방으로 향했다.

이곳도 한창 공사 중이었다.

2부 리그 시절 선수들을 위해 쓰던 마사지실인데, 방 자체가 너무 좁아서 옆의 쓰지 않는 방과 하나로 합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훈련장에서도 똑같은 마사지실을 만들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는 피지컬 코치와 수석코치가 많이 안 좋은 상태의 선수들에게만 마사지를 해 줬지만, 이번 시즌부터는 경기에 뛴 모든 선수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이제 이 방의 주인이 될 스포츠 치료사를 영입하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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