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39화 (39/245)

13. 프리시즌 (2)

노팅엄 1년 차 팬, 마야는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팀의 승격이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기쁜 일이 있었지만, 칼의 이적이라는 무척 슬픈 일이 이어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칼은 심지어 미워할 수도 없게 깔끔하게 떠나버렸다. 그녀는 전 연인의 SNS를 훔쳐보는 사람처럼 괜히 도르트문트와 칼의 SNS 계정을 수시로 들락날락하곤 했다.

노팅엄 TV는 칼의 작별 영상을 마지막으로 휴식기에 들어가 있었다.

“또, 그놈의 스마트폰만 보고 있니?”

“엄마. 방학이잖아. 내가 학기 중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어라?”

그때 마야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마야는 눈이 휘둥그레져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야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쉰 후, 들고 온 과일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굶지 말고 먹으면서 봐.”

“고마워 엄마. 엄마밖에 없어.”

마야는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보지도 않고 말하는 마야에게 심통이 난 마야의 어머니는 마야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아야! 엄마! 왜!”

“에휴··· 내가 이런 걸 딸이라고···.”

“왜 그래?”

“됐다. 그거나 봐.”

“응, 고마워.”

마야가 보는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노팅엄 TV에 새 영상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마야는 다급히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익숙하면서 그리웠던 훈련장 영상과 함께 자막이 마야를 맞이했다.

[월요일, 프리시즌 첫날]

푹 쉬다 온 선수들은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었다.

훈련은 보기에도 점점 빠르고 어려워졌고, 결국 나가떨어지는 선수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 중, 가장 헉헉대고 있는 선수에게로 다가갔다.

[할리, 오랜만이야. 휴가 잘 보냈어?]

할리 : 아, 마리··· 휴가는 잘 보냈는데··· 지금은 죽을 거 같아요··· 찍고 있는 거죠?

[응.]

할리 : 이번 시즌도 멋진 모습 보여드릴게요.

할리는 헉헉거리는 와중에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리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는 곧 다른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이동했다.

선수들은 새 시즌을 맞이해 각자의 다짐들을 늘어놓았다.

라이언 : 이번 시즌에는 주전을 목표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바비 : 잘하겠습니다.

알버트 : 제 한계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로드 : 완벽하게 해 보겠습니다.

새로 영입했다는 감자 머리를 한 네 선수도 차례로 자기소개했다.

“윌리엄입니다.”

“로버트입니다.”

“도날드입니다.”

“피터입니다.”

이들은 마치 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비슷한 어투로 인사했다. 외모마저도 비슷해 마야는 이들을 감자 머리라고 외우기로 했다.

자기소개까지 끝난 후에 이어진 건, 주장 알렉산더 샌더스의 이번 시즌 다짐이었다.

알렉산더 : 후회 없는 시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만 더 올라간다면··· 우리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니까요.

영상은 새로 영입된 스포츠 치료사 둘을 소개한 후에 끝났다.

“다시 시작이구나···.”

칼이 떠나며 생긴 마음의 빈 곳에 새 시즌에 관한 기대감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야는 SNS와 커뮤니티에서 노팅엄 FC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상한 기사를 발견했다.

<노팅엄 FC, 전지훈련 장소는 크로아티아의 무인도?>

기사의 내용은 제목을 늘려 쓴 것에 불과했다.

호기심이 생긴 마야는 구단 SNS와 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적였다.

하지만 기사 이상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어떤 팬이 구단에 문의해봤는데 노팅엄 TV에 전지훈련에서 생긴 일들을 짤막하게 요약해 보여줄 거라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마야는 그날부터 노팅엄 TV에 수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지훈련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사흘 후였다.

마야는 노팅엄 TV에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

사흘 전, 런던의 히드로 공항.

노팅엄의 선수들이 차례로 구단 버스에서 내렸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캐리어를 챙겨 공항 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짐을 챙긴 로드와 알렉산더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캡틴, 다른 나라로 전지훈련 가본 적 있어요?”

“음··· 10년 전에 한 번? 애초에 전지훈련을 간 적이 별로 없다. 감독님들이 그런 걸 좋아하는 분들이 아니셨거든.”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자유시간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 아녜요. 자유시간 주면 선수들 모아서 같이 맥주 마시러 가요.”

알렉산더는 평소 보다 신나 보이는 로드를 보며 작게 웃었다.

자신이 주장을 맡은 이후로 이렇게 살갑게 다가왔던 선수는 없었다. 다들 자신을 존경해주기는 했지만, 그만큼 거리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동경해 프로가 되었다는 이 선수는 ‘알렉산더의 뒤를 잇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늘 자신을 쫓아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사소한 거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졌다.

알렉산더는 마침 자신을 찍고 있던 마리아를 발견했다.

“마리아, 피곤하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선수들 따라다니면서 합법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데요.”

“그렇습니까.”

“먼저 가볼게요. 빨리 오세요.”

“예.”

알렉산더는 뒤이어 따라오는 코칭스태프, 감독에게도 사소한 걸 묻고 대답을 들었다. 알렉산더는 이들과 대화를 다 마친 후에 로드를 불렀다.

“로드.”

“네?”

“주장은 선수들과 스태프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로드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자신이 뭔가 알려줄 것 같으면 늘 이런 반응이었다. 싫어할 수가 없는 선수였다.

“코칭스태프들에게 의식적으로라도 말을 많이 걸어라. 선수들만 신경 쓰기에도 힘들겠지만, 주장이라면 더 노력해야 한다. 양쪽 모두와 친해져야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아··· 옙!”

로드는 입으로 자신이 했던 말을 작게 여러 번 반복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알렉산더가 말했다.

“가자. 늦었다.”

“예.”

알렉산더와 로드는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에 합류했다.

*

선수들은 로드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로 전지훈련을 간다는 사실에 모두 들떠 보였다.

구단 직원들이 탑승권을 발급받고, 항공사에 캐리어를 맡기는 동안 잭슨이 전지훈련지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다들 들떠 보이는구나.”

“그럴 리가요.”

그렇게 말하는 할리의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있었다.

잭슨은 할리의 얼굴을 보고, 씩 웃고 말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로 간다.”

선수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크로아티아의 여행 명소 두브로브니크 등 선수들의 설렘을 담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잭슨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무인도로 이동해서, 4박 5일 동안 무인도 체험을 할 거다.”

선수들의 웅성거림이 찬찬히 잦아들었다.

이윽고 다들 조용해져 잭슨을 빤히 바라본다.

선수들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당황스러움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설마··· 미리 준비 못 하게 전지훈련지를 지금 알려준 건가?”

로드는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고, 라이언은 벌써 체념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캐리어에 몸을 기대며 늘어진다.

알렉산더 또한 의외의 상황에 당황해서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할리가 대표로 잭슨이 한 말을 되물었다. 잠깐의 문답 끝에 잭슨은 확인사살을 했다.

“우리는 무인도로 간다. 우리는 그곳에서 4박 5일 동안 생활할 거다. 축구에 관한 훈련은 일절 없다.”

할리는 잭슨에게 다가가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감독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다.”

“···감독님, 전지훈련이라면서요··· 우리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우리가 무인도에 왜 가요···?”

할리의 말에 뒤의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고 있었다. 마리아가 선수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웃다가, 눈빛 빔을 맞고 딴청을 피웠다.

선수들의 그런 반응에도 잭슨의 얼굴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잭슨이 입을 열었다.

“도르트문트와 리버풀의 명감독 위르겐 클롭은 잘 알지?”

“예.”

할리가 답했다. 잭슨의 말이 계속됐다.

“난 그 감독을 아주 좋아한다. 물론 그의 방식도. 클롭은 감독 일을 처음 시작했던 마인츠 시절, 전기도 음식도 없는 스웨덴의 한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었다.”

“예···.”

“마인츠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4박 5일 동안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먹어야 했고, 텐트에서 자야 했다. 클롭은 그게 팀 스피릿을 기르는 일이라고 믿었고, 그 시즌, 2부 리그의 팀이었던 마인츠는 훌륭한 성적으로 1부 리그로 승격했다. 선수들은 5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주장할 때, 실제 사례는 정말로 큰 설득력을 지닌다.

반쯤 포기한 눈을 한 할리와 선수들에게 잭슨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무인도 체험을 통해 팀 스피릿을 기를 것이다. 나는 이 전지훈련을 통해 우리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대답은 없었지만, 반발하는 선수들은 없었다.

잭슨은 선수들을 쭉 둘러보고, 멍한 눈을 한 할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할리,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의 일 잊었냐?”

“마지막 경기요···?”

“나한테 샴페인을 뿌리고 싶다면서. 그럼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야지.”

할리의 어깨가 축 처졌다.

선수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잭슨은 선수들의 분위기를 읽고, 김도운이 제공해 준 정보를 토대로 역시 당황하고 있는 감자 머리 6인방을 향해 말했다.

“무인도에서는 축구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없는 걸 배울 수 있을 거다. 인간으로서 더 강해질 수 있겠지. 마치, 데이비드 워커처럼.”

“당장 가고 싶습니다!”

감자 머리 6인방이 일제히 외쳤다.

옆에서 그들을 찍고 있던 마리아가 깜짝 놀랐는지 움찔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자 머리들은 여기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죠.”

“탑승권은 다 받아오셨습니까?”

“캐리어는 다 맡겼습니까?”

세 감자 머리의 다급한 말에 막 탑승권과 여권을 나눠주기 시작하던 직원들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비행기 시간이 언제였죠?”

“한 시간 반 남았습니다.”

“빨리 들어가죠.”

갈팡질팡하던 선수들은 알버트와 사무엘이 포함된 감자 머리 6인방이 앞장서자 어정쩡하게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잭슨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

무인도에 도착한 후, 선수들은 4인용 텐트와 침낭을 인원에 맞게 받았다. 무인도 생활에 필요한 용품들도 받았다.

낚시도구, 칼, 라이터, 벌레를 쫓는 약과 바르는 약, 그리고 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식량이 보이지 않았기에 알렉산더는 잭슨에게 물었다.

“···이것뿐입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물고기는 낚시로 잡으면 되고, 조개는 직접 캐 오면 되고.”

“음···.”

“원래는 정말 침낭만 갖고 하려고 했는데, 단장이 너희들 다친다고 죽어도 안 된다고 해서 말이다. 일반인들도 참가하는 무인도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한 거지.”

잭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리가 끼어들었다.

“일반인들이 이런 걸 한다고요···?”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아무튼··· 가이드 님 설명이나 들어라.”

“옙.”

할리를 돌려보낸 잭슨은 알렉산더에게 다가가 다른 선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가이드가 이벤트 방식으로 빵, 파스타, 과일, 베이컨 등을 나눠줄 거다. 너만 알고 있어라.”

“아··· 역시. 알겠습니다.”

무인도 체험을 하되 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냐는 알렉산더의 걱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잭슨과 알렉산더는 말없이 선수들, 코칭스태프와 함께 섰다.

가이드는 자신을 도와줄 안전요원을 소개하며 먹을 걸 구하면 자신이나 이들에게 꼭 물어보고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의사항들을 늘어놓았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대체로 질색했지만, 어린 선수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라이언과 로드가 말했다.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응, 이런 거 한번 해 보고 싶었어. 라이언, 너 불 피울 줄 알아?”

“아니···.”

“캡틴은 알아요?”

알렉산더는 이론적으로만 안다고 대답했다. 역시 캡틴이라고 말하던 로드는 자신의 옆에 서서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선수에게도 말을 건넸다.

“바비는 어때? 재밌겠지?”

“음··· 재미는 모르겠고, 할 일만 빨리하면 쉴 수 있겠지? 그렇죠? 캡틴?”

“그래.”

맨시티에서 임대로 온 바비는 늘 효율적인 방식을 선호했다. 이유는 할 일을 빨리 끝내놓고,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알렉산더가 보기에는 할리와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둘은 훈련이 끝나면 가장 빨리 훈련장에서 나가는 선수들이었다.

지난 시즌의 칼처럼 외톨이처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과도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알렉산더는 바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바비는 로드를 비롯한 노팅엄 3인방과 함께 다녔다.

바비의 성향을 잘 아는 로드가 바비의 말을 이어받았다.

“나도 빨리하고 쉬고 싶어. 알렉산더, 뭐부터 하면 될까요?”

로드의 물음에 알렉산더는 잠깐 생각했다.

자신도 무인도에 떨어진 경험은 없는데, 이런 곳에서도 주장 역할을 해야 하다니.

그래도 습관이 입을 움직여줬다. 알렉산더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음··· 일단 조를 나눠서 텐트를 설치하고, 불을 피울 장작을 모으고, 음식을 구해야겠지. 감독님은 어쩌시겠습니까?”

옆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잭슨이 답했다.

“나도 이번에는 캡틴의 명령을 들어보지. 코칭스태프도. 어떤가?”

“좋습니다.”

잭슨의 제안에 코칭스태프 일동이 답했다.

“일단 의무 스태프는 일할 수 있는 인원에서 빼고···.”

잭슨의 손짓에 따라 두 스포츠 치료사와 팀닥터 하나가 무리에서 슬며시 빠져나갔다.

잭슨은 알렉산더를 보며 말했다.

“우릴 잘 써 주게. 참고로 내가 스튜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

알렉산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잭슨은 감독의 책임을 집어던지고 구성원으로서 지내려는 모양이었다.

알렉산더가 불쌍해 보인 건지, 자신의 옆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보고 있던 로드가 의견을 냈다.

“식량 채집은 두 조로 나누는 게 어떨까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조랑 숲에 들어가서 과일을 채취하는 조로요.”

“괜찮군.”

로드의 도움을 받아 알렉산더는 조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감자 머리 6인방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알버트가 대표로 손을 들었다.

“캡틴, 우리는 장작이랑 돌을 모아와도 될까?”

장작과 돌의 공통점은 들고 나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꾸준히.

그들의 속셈을 짐작한 알렉산더가 덤덤한 투로 물었다.

“여기서도 운동하려고?”

“하, 하··· 그렇지 뭐. 오늘 쉬면 근 손실 난다고.”

“안 다칠 정도로 적당히 해라.”

알렉산더의 허락에 감자 머리 6인방은 만족스러워하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어서 할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바비도 거의 동시에 들었다. 둘은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했다.

“나는 낚시할래요. 저 낚시 정말 잘해요.”

“낚시할게요. 어릴 때 많이 했었어요.”

알렉산더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옆에 서 있는 로드가 둘에게 딴지를 걸었다.

“둘 다 움직이기 싫어서 낚시 고른 거지?”

바비가 어색하게 웃었고, 할리는 로드의 시선을 피하며 바비에게 내기를 걸었다.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 같았다.

“내기할래? 누가 더 많이 잡나.”

“귀찮은데···.”

그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이드가 끼어들었다.

“재밌는 얘길 하네요. 그럼 오늘 가장 많은 물고기를 낚은 분에게는 맥주를 드리겠습니다. 500mL짜리 네 캔이요.”

귀찮다고 말하던 바비의 눈이 반짝였다. 할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아직 뭘 할지 정하지 못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이드가 조건을 하나 덧붙였다.

“대신, 지는 쪽은 저녁 식사 때 장기자랑입니다.”

섬에 온 첫날이었기에 배가 덜 고픈 선수들은 부끄러운 장기자랑보다는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할리와 바비는 달랐다.

“좋아. 내가 어웰 강(맨체스터시의 강)에서 보낸 시간이 얼만데.”

“좋아. 트렌트 강(노팅엄시의 강)의 낚시왕이라는 별명을 증명해보죠.”

‘너 낚시 개 못하잖아···’ 라며 중얼거리는 로드가 있었지만, 할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알렉산더는 사이좋아 보이는 그들을 흐뭇하게 보았다.

둘을 포함한 일곱 명의 선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떠났다. 물고기 꼭 잡아 와야 한다고, 많이 잡아 와야 한다고 감자 머리 6인방이 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꼭 잡아 와야 한다고 했다.

“저랑 라이언은 캡틴을 도울게요.”

“고맙다. 우리는 과일을 찾으러 가자.”

“예!”

알렉산더는 라이언과 로드에게서 시선을 떼고, 잭슨에게 말했다.

“감독님, 텐트 설치와 요리 준비 부탁드리겠습니다.”

“명을 받들지요. 캡틴.”

잭슨의 능청스러운 말에 코칭스태프들과 남은 선수들이 웃었다.

어느새 상황에 적응했는지,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알렉산더는 이 무인도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해내고, 물고기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남은 돌과 장작들로 유사 헬스클럽을 만들어 낸 감자 머리 6인방이 그들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단백질이 왜 안 오지··· 오오!”

한 감자 머리의 외침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해가 지기 시작한 방향에서 낚시팀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그물에는 물고기와 조개가 잔뜩 들어있었다.

“성공했구나!”

하지만, 가까이 온 낚시팀 중, 표정이 매우 험악한 선수가 하나 있었다.

할리와 내기를 하기로 했던 바비였다.

“로드, 라이언, 캡틴. 내 말 좀 들어봐요.”

“듣고 있다.”

알렉산더가 대표로 대답했다. 사람들도 바비가 왜 화가 났는지 궁금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낚시면 낚싯대로 낚아야지, 손으로 잡으면 반칙 아니에요?”

“으음···.”

바비의 주장과 더불어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할리를 보니 내기에서 누가 이겼는지 훤히 보였다.

“할리가 잠수해서 물고기 잡아 왔지? 강에서도 그러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로드의 말에 바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생각해? 처음에는 쟤나 나나 낚싯대를 썼는데, 내가 두 마리를 먼저 잡으니까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더니, 한 마리, 두 마리···.”

“그래서 진 거야?”

“지다니! 규칙 위반이잖아!”

바비의 주장에 할리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반박했다.

“낚시는 물고기를 낚는 거지 낚싯대를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잖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할리의 말에 동의했다. 라이언이 조심스럽게 둘에게 물었다.

“그래서 둘 다 몇 마리씩 잡았어?”“내가 다섯 마리, 쟤는 네 마리.”

할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둘 다 잘했네.”

라고 라이언이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바비는 부들부들 떨며 계속 억울하다고 말했다.알렉산더는 그 모습을 보며 바비가 평소에는 승부욕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시즌을 진행할 때, 참고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튼, 가이드는 할리의 승리를 선언했다. 할리는 맥주 네 캔을 다 받았고, 바비는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선수들 앞에서 개인기를 선보여야 했다.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해.”

“대충 춰. 한 캔 마시고 출래? 승자의 아량으로 줄게.”

할리의 말에 바비는 부들부들 대며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길 몇 분, 결국 할리의 맥주 한 캔을 받아 한 번에 마시고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할리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잘한다. 잘해!”

“죽여버린다.”

알렉산더는 차마 그 광경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로드 또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심지어 춤을 시킨 할리마저도 고개를 푹 숙였다.

바비는 춤을 아주 열심히 췄다. 뻣뻣하면서도 리듬이 전부 어긋나는 끔찍한 춤이었지만.

짝짝짝!

몇몇 선수가 일부러 손뼉을 쳐 춤을 끊었다.

바비는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붉어진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할리도 미안한지 괜히 바비 옆으로 다가와 어느새 완성된 스튜를 건네줬다.

선수들의 시선이 민망했던 바비는 그릇을 받자마자 한 숟갈 먹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없어?”

“···그렇네. 이거 왜 이렇게 맛없냐. 너무 밍밍한데.”

바비의 말에 할리가 동조했다.

둘은 스튜가 왜 이렇게 별로냐는 말을 나누다가, 주변이 조용해진 걸 깨달았다.

“다들 왜 그래···?”

둘의 반응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던 로드가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는 맛있어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벌써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저도 맛있습니다.”

“저, 저도요.”

알렉산더와 라이언이 이어서 말했다.

“적은 염분에 이렇게 많은 고기를 담아주시다니,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근육이 커지는 맛입니다.”

또한, 감자 머리들을 대표해 알버트가 말했다.

선수들의 찬양이 계속될수록, 할리와 바비는 스튜를 한 사람이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감독, 잭슨이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너희들은 맛이 없단 말이지···.”

“아, 아니···.”

“저는 사실 한 입도 안 먹었는데, 춤춘 바비가 불쌍해서 동조해 주려고···.”

바비가 먼저 변명을 해 보려다가, 자신의 말을 자르고 들어온 할리의 변명을 듣자마자 눈썹을 찡그리며 외쳤다.

“야! 거짓말하지 마! 솔직히 맛 없었잖··· 죄송합니다.”

잭슨이 그윽한 눈빛으로 할리와 바비를 보고 있었다.

잭슨은 식사가 끝난 후에도 가끔 할리와 바비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로드가 바비의 어깨를 잡은 채로 낄낄거리고 있었다.

“너희들 망했네. 돌아가면 백 퍼센트 지옥 훈련이다.”

“닥쳐.”

라이언은 멍한 얼굴의 할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아. 감독님은 사사로운 일로 그러실 분이 아니잖아.”

“그럴까?”

선수들은 조개구이를 해 먹고 있었다.

각자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느니, 숲에서 동물을 봤다느니, 이 텐트를 몇 분 만에 설치했다는 등 자신의 무용담들을 뽐내고 있었다.

“로드, 이거 옮기는 것 좀 도와줘라. 한 명 더 필요하다.”

“라이언, 가자.”

“응.”

알렉산더의 부름에 로드와 라이언이 빠져나갔다.

둘만 남게 된 할리와 바비는 조개구이를 깨작이며 먹었다. 바비가 중얼거렸다.

“이건 맛있네.”

“솔직히 스튜는 너무 맛없었어.”

“근데 아까 왜 그랬어.”

“살아 보려고 그랬지··· 망했지만.”

할리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은 바비가 말했다.

“아무튼, 감독님도 역시 영국 사람이었어··· 다신 먹기 싫다.”

“공감. 야, 근데 너 오늘 보니까 은근히 승부욕 세더라. 평소에는 다 귀찮아하더니.”

“아니, 그건 불공평한 승부였잖아.”

“흐흐, 아직도 승부를 인정하지 못하는가.”

“에휴··· 됐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바비가 멍하니 하늘의 별만 보고 있자, 심심해진 할리가 말했다.

“야, 맨시티 얘기 좀 해봐.”

“맨시티? 시설도 좋고, 선수들도 잘하지.”

“거기 선수들도 딱 너만큼 훈련하냐?”

바비가 하늘에서 고개를 내려 할리를 바라보았다.

“반반이야. 부상 방지 목적으로 추가 훈련을 하는 선수들도 있고, 아닌 선수들도 있고. 그 수준이 되면 감각을 유지하는 게 목적인 선수들이 많아지거든.”

“대단하네. 최고 리그에서 뛰는 천재들이라 이건가.”

“진짜 천재는 따로 있고.”

바비의 중얼거림에 할리가 관심을 보였다. 천재들이 모인 맨시티에서도 천재라면 그 선수밖에 없었다.

“웬?”

“응. 걔는 진짜 미친놈이야. 내가 원래 어렸을 때는 발롱도르를 받는 게 목표였거든? 훈련도 정말 열심히 했고. 수업 때도 공 튕기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나고 그랬어.”

“오오. 지금이랑 다른데?”

“첸 웬, 걔 보고 포기했으니까. 열일곱 살도 안 돼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데뷔골을 넣고, 월드컵에서 브론즈볼을 받는 천재를 어떻게 이기냐?”

바비의 자조 섞인 말에 할리는 조용히 있었다. 바비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명이라고는 모닥불밖에 없는 무인도에서 본 밤은 별로 그득했다. 바비의 시선이 멈춘 건,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같이 훈련해보면 알 수 있어. 걔는 저런 별 같은 놈이야. 닿을 수가 없지.”

바비의 말이 끝나고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끊은 건, 할리의 명랑한 목소리였다.

“우주선 타고 가면 되잖아?”

“뭐?”

“별에 닿으려면 우주선 타고 가면 된다고.”

바비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로 할리를 쳐다봤다.

“복잡하게 생각해서 뭐 하냐 이거지. 재능으로 못 이길 것 같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약이라도 쓰라고?”

“이거 사상이 위험한 놈이었네···.”

“야! 네가··· 에휴.”

발끈하려던 바비가 한숨을 쉬며 대꾸를 포기했다.

할리가 묻는다.

“걔가 나보다 잘하냐?”

“당연한 걸 묻고 있어. 비교도 안 돼.”

“만약에, 내가 걔보다 우승을 많이 하면, 누가 더 대단한 선수가 되는 걸까?”

“음···.”

바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할리가 말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천잰 줄 알았거든?”

“엉.”

“아니더라고. 칼을 보면서 알게 됐지.”

“그래, 칼은 대단했지. 맨시티 선수들에 비교해도 안 떨어질걸?”

“그래서 목표를 바꿨어.”

바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할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의심 하나 없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노팅엄 FC와 함께 1부에 가서 엄청나게 우승할 거야. 그 팀의 주전 공격수라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겠지?”

“그건 그렇지만··· 넌 3부에서 1부로 올라가는 게 쉬워 보이냐?”

“어려워? 우리 팀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4부에서 3부도 한 번에 올라왔는데.”

“하아··· 로드가 왜 너만 보면 한숨 쉬는지 잘 알겠네.”

“몰라, 어렵든 말든.”

할리가 이어 말했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고. 인생은 단순한 거라고. 그냥 닥친 것만 잘, 재밌게 해 나가면 된다고. 그러다 보면 승격해 있겠지. 뭐. 승격 못 하면 한 해 더 하면 되고.”

“속 편해서 좋겠네.”

“우리 아빠 욕하는 거냐?”

“야, 이런 식으로 훅 들어오면···.”

당황하는 바비를 보며 할리가 킥킥대며 웃었다. 어이없어진 바비는 멍하니 있다가 할리를 따라 웃었다.

마침 알렉산더가 둘을 불렀다. 텐트에 사람들을 배정하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할리가 말했다.

“맞다. 원래는 패스 청탁하려고 했는데.”

“패스 청탁?”

“응, 나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뛰는 거 좋아하니까, 꼭 기억해 두라고. 우리 팀에 너만큼 패스 잘하는 애가 없잖아.”

바비는 할리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알렉산더의 부름에 일단 텐트 쪽으로 뛰었다. 할리와 나란히 뛰며 바비가 말했다.

“네가 패스 길만 잘 볼 수 있으면.”

*

둘째 날에는 급작스러운 비가 왔다.

감자 머리 6인방은 솔선수범해서 텐트와 돌들을 옮겼다. 선수들은 비를 피할 장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비를 바라보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몰래 감독 욕도 했다.

셋째 날에는 감자 머리 6인방의 대활약이 있었다.

이들은 오늘은 유산소를 해야 하는 날이라며 바다를 헤엄치며 프로선수다운 운동신경으로 각종 조개와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이날 노팅엄 FC의 일원들은 해산물 파티를 했다.

넷째 날에는 모기들의 습격이 있었다.

선수들은 모기 욕을 하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

[무인도 5일 차]

할리 : 재밌었다···.

바비 : 더 할래?

할리 : 싫어. 집이 좋아. 클럽 가고 싶어.

5일 차 영상에는 무인도 생활이 끝난다는 걸 아쉬워하는 선수들이 나왔다.

그리고 이 영상이 업데이트된 오늘은 프리시즌 첫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마야는 영상이 끝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상대 팀 선수들과 노팅엄의 선수들이 한창 훈련 중이었다.

상대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최종전을 치렀던 4부 리그 팀 베리. 칼의 골로 간신히 이겼었기에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될 팀이었다.

혼자 경기를 보러 온 마야는 음식과 맥주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훈련하는 선수들을 내려다보았다.

무인도에 다녀온 여파인지 선수들은 무척 새까맣거나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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