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포레스트 (2)
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문을 열었다.
누가 맥주를 쏟은 건지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친근한 냄새였다. 펍 안에서는 험상궂고 배 나온 아저씨들이 감자튀김을 안주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이들은 펍에 들어온 게 나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줬다.
“우리 단장님이 오셨네!”
한 아저씨의 말에 펍의 모두가 환호하기 시작했다. 단장님 오셨네~ 라는 말로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이곳에 모인 아저씨들은 모두 노팅엄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무려 20년 전 유니폼에서 이번 시즌 유니폼까지, 이 아저씨들은 자신들이 노팅엄의 골수팬들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들이셨다.
“오크스 여러분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의 정체는 서포터즈 <오크스>의 회원들. 이 펍은 오크스의 회원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노팅엄 치어 배틀>을 제안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먼저 오크스의 리더이자 이 펍의 주인인 맥켄지에게 술을 주문했다.
“맥주? 위스키?”
“맥주로 주세요.”
내가 맥주를 받아 들자, 이곳저곳에서 나를 불렀다.
“단장님! 여기서 마시세요!”
“여기가 더 좋아. 여기 오면 네빌이 끝내주는 개인기를 보여준다니까.”
“내가 언제··· 그래도 여기 와, 단장! 개인기는 생각해 볼 테니까.”
와하하하! 펍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그들과 따라 웃으며 그냥 가게 주인 맥켄지 바로 앞에 앉았다. 어디 앉기 애매할 때는 우두머리 앞에 앉는 게 마음 편하다.
맥켄지 바로 앞에 앉아있어도 오크스의 회원들은 날 자꾸 부르고, 대답을 해 주면 환호했다.
이들은 날 몹시 좋아했다.
오크스는 노팅엄이 5부 리그까지 떨어졌을 때, 전원이 떠나지 않은 유일한 서포터즈였다. 그만큼 팀에 충성심도 강했고, 팀이 잘할 때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부임한 후에 팀이 4부 리그에서 3부 리그까지 올라왔고, 팬들도 많이 돌아왔으니 날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근데 무슨 일로 왔어? 서포터즈에 소속된 회원들을 가능한 한 다 모아 달라니.”
맥켄지가 자신이 마실 맥주를 따르며 물었다.
“혹시 구단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어? 다른 서포터즈도 다 모였다던데.”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회원이 이어서 물었다. 그 후, 걱정하는 말과 시선들이 쏟아진다. 다른 회원들도 한 마디씩 다 던져서 펍은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나는 목소리를 키워 혼란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구단 재정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요. 오늘은 구단에서 새 이벤트를 진행하기 전, 서포터즈 여러분의 동의를 받고 싶어서 온 거예요. 다른 서포터즈들도 지금 설명을 듣고 있을 거예요.”
제임스, 조이, 마리아를 비롯한 직원들도 지금 담당한 서포터즈들 앞에 서 있을 거다. 다들 잘 하고 있겠지. 여기만큼 어려운 곳은 없으니까.
“오오, 우리는 미스터 킴이 직접 온 거야? 이거 감동인데?”
“의리의 오크스 여러분들이잖아요.”
“하하하. 역시 우리 단장님이라니까.”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몹시 흡족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어서 오크스의 회원들이 ‘미스터 킴!’이라고 소리치며 맥주를 부딪쳐 댄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이러다가 할 말을 못 할 것 같아 나는 맥켄지에게 부탁했다.
잠깐 말 좀 하게 회원들 시선 좀 모아 달라고.
잠시 후, 펍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또 어떤 프로젝트로 노팅엄 FC를 더 좋은 구단으로 만들어줄까 기대하는 얼굴들이다.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가짐으로 입을 열었다.
“노팅엄 치어 배틀을 개최해볼까 합니다.”
“그게 뭔데?”
맥켄지의 물음에 나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서포터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기장에 배치돼서 응원 대결을 펼치는 이벤트다.
여기서 평균 데시벨(악기사용금지), 주변 팬들의 호응도, 팬들의 투표, 경기를 뛴 선수들의 투표를 통해 1위를 한 서포터즈에게 특권을 주는 거다.
“간단하게 말해서, 서포터즈 간에 응원 대결을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말입니다.”
예상대로 오크스의 반응은 별로였다.
일단,
“그런 걸 왜 해? 이기면 뭘 주는데?”
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예상했던 질문이었기에 차분하게 답했다.
“그다음 경기에서 서포터즈들의 응원을 주도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패배한 서포터즈들은 응원 방식이든 응원가든 모두 그 서포터즈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펍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조용해졌다.
맥켄지가 그들을 대표해 묻는다.
“다른 사람이 이 제안을 했으면 무조건 거절했을 거야. 하지만, 자네니까 묻겠어. 이 이벤트의 취지가 뭔가?”
서포터즈 간의 갈등을 경쟁이라는 요소로 풀기 위해서··· 라는 말은 쏙 넣어놓고, 이 이벤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입 밖에 냈다.
“작년부터 신규 팬들이 많이 유입되지 않았습니까? 대학생 팬들이 특히 그렇죠. 그런 팬들은 아직 응원가와 응원 문화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이벤트를 시즌 내내 진행한다면, 2만 5천 명이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를 수 있게 될 겁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또한, 응원가, 응원 방식을 주도하는 서포터즈가 자주 바뀌며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게 문화가 된다면, 새로운 팬들을 불러올 것이다.
“물론, 모든 서포터즈가 찬성하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는 진행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거 아쉽게 됐군.”
맥켄지가 계속 말했다.
“우리는 무조건 반대야.”
오크스의 회원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맥켄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설득이 안 되면 진행이 안 된다. 강행해봤자 골수팬들의 마음만 상하게 하는 것이고.
예상했던 바였다. 애초에 우리 팀의 응원은 오크스가 주도했었다. 굳이 이 이벤트에 참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준비해놨던 두 번째 전략을 위해 조이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어느새 바 밖으로 나온 맥켄지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계획은 정말 마음에 들어. 온 관중이 한목소리로 응원한다니? 멋지잖아. 로망이잖아. 하지만, 안 돼. 플라타너시스 놈들이랑 젤코바스(Zelkobas, 느티나무) 놈들은 괜찮지만, 파인스(Pines, 소나무)나 버치스 놈들이 응원을 주도하는 꼴은 못 본다고.”
파인스과 버치스는 팀이 몰락하고 응원을 오지 않았던 대표적인 두 서포터즈였다.
그때,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조이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그래그래, 맛 좋은 칵테일을 준비해 놓을 테니까, 빨리 돌아와. 술이나 마시자고.”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펍 밖으로 나와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응, 그대로 진행하나 해서. 네 말대로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내 두 번째 전략은 서포터즈 간의 경쟁심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노팅엄 FC에서 규모가 있는 서포터즈는 열한 곳.
서포터즈에 소속된 회원들끼리 아는 사이인 경우는 몹시 흔했기에 만약 반대하는 서포터즈가 나온다면, 찬성한 서포터즈 측에서 직접 연락하게 해 ‘우리랑 붙는 게 무섭냐?’라는 식으로 도발하게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서포터즈를 발끈하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대결 무드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조이의 말에 나는 점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파인스랑 만나고 있잖아.
“응.”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맙대.
“기회?”
-응, 5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 도망쳐서 정말 미안했대. 하지만, 미안하다고 제대로 말할 기회가 없었잖아? 기존 서포터즈들은 파인스 같은 서포터즈들이 미울 테니까 그냥 말을 걸었다가는 싸움만 나는 거고.
“그렇지.”
-하지만, 이런 대결 방식이라면 자신들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대. 오크스보다 더 멋진 응원을 보여줘서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겠대.
“···.”
빌어먹을.
서포터즈들을 사실상 이간질하려고 했던 내가 너무 쓰레기 같이 느껴진다.
알렉산더 같은 선수부터 이런 팬들까지, 이 팀의 사람들은 너무 착하다. 회귀 전의 내가 팀의 성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과는 반대다.
역시 구성원 하나하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팀이다.
자기반성을 마친 나는 조이에게 말했다.
“알겠어. 작전은 취소야. 대신, 그 말 그대로 전할게. 실패하면 다른 방법 찾지 뭐.”
-그래.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스마트폰 너머의 조이가 웃고 있을 것 같았다.
*
나는 조이에게 전해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 새끼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예. 참고로 다른 서포터즈는 모두 찬성했다고 합니다.”
오크스와 함께 5부리그에 남았던 플라타너시스와 젤코바스도 조이의 말을 제임스와 마리아가 그대로 전하자 수락했다고 했다.
“우리만 남았다 이건가···.”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고민하자 오크스의 회원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맥켄지, 그냥 하지 뭐. 설마 우리가 지겠어?”
“진정성 있는 응원이 뭔지 한번 보자고. 궁금하잖아?”
나는 작게 ‘맞아요. 안 질 거예요.’, ‘맞아요. 궁금해요.’ 라고 중얼 거렸다. 맥켄지가 나를 이상한 놈 보듯 봐서 딴청을 피워야 했지만.
맥켄지가 펍에 모인 오크스의 회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찬성하는 거야?”
“그래! 한번 해보자고.”
“응원 대결이라니, 재밌을 것 같잖아?”
“수준 차이를 보여주자고!”
회원들이 모두 찬성 의사를 내는 걸 쭉 둘러본 맥켄지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성공했구만.”
“그렇네요.”
“이번 이벤트도 성공하길 빌겠어. 일단 시작한 거 열심히 해 줄 테니까.”
“무조건 잘 될 겁니다. 안 된다면 그렇게 만들 거고요.”
맥켄지가 씩 웃었다.
“자, 하기로 한 이상, 꼴찌는 용납 못 해. 우리 자존심이 있지, 무조건 1등 하자고. 알겠어?”
“좋아!”
“파인스나 버치스 같은 놈들이 우리한테 응원을 시킨다고 상상해봐. 개 같잖아?”
오크스의 회원들이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장 내일부터 퇴근하자마자 여기 모여서 연습을··· 아니! 지금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오오오오!”
어우, 분위기가 살벌하다. 곧 엄청 퍼 마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슬슬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어딜 가나 우리 단장님. 단장님도 오늘은 함께 해야지. 명예 오크스 회원으로 임명해줄 테니까.”
“하하··· 영광이네요.”
“그럼 잔을 들어. 다 같이 한 잔 마시고 시작하자고.”
나는 어느새 따랐는지 모를 맥주가 가득 찬 잔을 받아서 어색하게 들었다.
오크스의 회원들은 이 분위기가 익숙한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자기들의 잔을 들고 있다.
멕켄지가 잔을 위로 치켜들며 외친다.
“오크스!”
“치얼스(Cheers)!”
나는 이날 열두 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 오크스의 회원들도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부인들에게 무척 혼났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
그리고 이날부터, 노팅엄시의 수많은 펍에서 노팅엄 FC의 응원가와 응원구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노팅엄 FC는 이번 프리시즌부터 프리미엄 석을 개장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기에 선수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음식을 먹기 편하고 공간이 넓었기에 경기장을 찾는 가족들이 애용하고 있었다.
프리시즌 두 번째 홈경기가 열리는 오늘, 그 가족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집단이 있었다.
“마야, 나 떨려.”
“마야, 나도···.”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미스 마야, 공연자들이 부족하다는 정보를 준 건 정말 고마운데···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곡도 급히 준비한 거고···.”
긴 머리의 남자 둘, 빡빡이 남자 한 명, 그리고 귀를 드러내는 숏컷을 한 여자가 노팅엄 1년 차 팬, 마야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들 중 둘은 코피와 히메나라는 마야의 친구들이었고, 나머지는 둘과 같은 밴드에 소속된 학생들이었다.
이 네 명은 오늘 하프 타임에 필드에서 공연하기로 돼 있었다. 몇 시간이나 일찍 와서 리허설도 했고, 장비 점검도 다 했지만, 막상 관중이 들어차니 겁을 먹은 것이었다.
마야는 겁먹은 이들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 오천 명이야. 설레지 않아?”
“그래서 무섭다고.”
“무서워··· 사람 너무 많아··· 호응 안 해 주면 어떡하지···.”
마야가 자신의 테이블에 놓인 잔을 조심스럽게 내밀며 말했다.
“마실래?”
“안 돼. 술 마시고 실수하면 어떡해.”
술을 몹시 즐기는 코피가 술을 거절하다니.
마야는 이들이 정말로 긴장했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나 고민했다.
“마야, 먼저 왔네요. 친구분들인가요?”
그때, 노팅엄 유니폼을 입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조합의 리처드 삼대가 나타났다. 웨인에게 반갑게 인사한 마야는 할아버지 고든과 아들 휴고에게도 인사했다.
“잘 지냈어. 휴고?”
“네!”
노팅엄 포럼에서 통성명한 이들은 오늘같이 경기를 보자고 미리 얘기하고 바로 옆 좌석을 잡았다.
마야와 가장 가까운 좌석에 앉은 웨인이 물었다.
“친구분들은 표정이 왜 저래요?”
“오늘 하프 타임에 공연하기로 돼 있거든요. 5분 동안.”
“와우, 대단한 분들이셨네.”
“안 대단해요!”
마야의 친구 히메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니 그녀의 짧은 숏컷이 찰랑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웨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여기 사람들은 축구를 보러 온 거니까, 엄청 깐깐하게 보지 않는다고요.”
“···그럴까요?”
히메나는 감정 기복이 몹시 심한 친구였다. 표정이 점점 편해지더니, 어느새 마야가 먹던 양념치킨을 쏙 뺏어 먹는다.
“야!”
“음~ 맛있다. 마야, 여기 정말 편하지 않아?”
“말 돌리지 마. 너, 피자 내놔.”
“힝, 여기.”
마야는 히메나의 앞에 놓인 피자를 한 조각 뺏어온 후에야 안도했다.
둘의 모습을 옆에서 보던 밴드 멤버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할리, 하~ 할리, 하~ 할리, 하~ 할리 콕스!>
<콕스! 오~ 콕스, 오~ ······.>
“경기 전부터 엄청 열심히 하네.”
코피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노팅엄 치어 배틀>이 열린다고 했다.
이들 아래에서 열심히 응원가를 부르고 있는 서포터즈의 이름은 <파인스>. 소나무들이라는 뜻으로 노팅엄의 서포터즈 <포레스트>에 소속된 소규모 서포터즈라고 했다.
“할리, 하~ 할리···.”
마야는 서포터즈의 응원가를 작게 따라 해 봤다.
쉬운 리듬이라 금방 따라 할 수 있었다.
“할리 콕스의 응원가는 야야 투레와 콜로 투레 형제의 응원가를 따서 만든 거란다.”
“정말요?”
태어날 때부터 노팅엄을 응원한 할아버지, 고든이 손자 휴고에게 응원가의 유래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래, 이름이 네 음절로 된 선수라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응원가지.”
파인스가 새 응원가를 부를 때마다, 고든은 휴고와 함께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응원가에 어떤 유래가 있는지 설명해줬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휴고 뿐만 아니라 마야와 밴드 멤버들까지 함께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고든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느린 곡도 응원가로 쓸 수 있단다. 셀틱, 리버풀, 도르트문트의 이 대표적이지. 느린 곡을 몇만 명이 합창하면 빠른 응원가와는 다른 맛이 있어. 허허, 엄숙하고 진지해진다고 해야 하나. 속에서 뭔가가 막 끓어오르지.”
“정말요? 느린 곡도 응원가로 쓸 수 있어요?”
“그렇지? 뜻이 좋아야겠지만.”
축구의 응원가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히메나가 묻고, 고든이 답해줬다.
“짧은 응원가는 관중이 많이 따라 해 주네요.”
“그렇지,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간단한 박자의 짧은 곡이나 동요 같은 익숙한 곡을 따다 쓰니까.”
“···감사해요. 많이 참고됐어요.”
질문과 함께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던 히메나가 방긋 웃고, 밴드 멤버들을 모았다. 마야는 옆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들었다.
“지루한 곡 같은 거 하지 말고, 응원가를 필드 위에서 하면 어떨까? 우리 급하게 준비한다고 곡도 엉망이잖아.”
“오? 차라리 호응이라도 많이 받아 보자?”
“응! 그거지!”
코피와 히메나가 하이 파이브를 했다.
나머지 둘 또한 긍정적인 내용의 중얼거림을 하고 있었다.
“코드도 쉽고.”
“드럼도 기본 비트면 되고. 히메나, 너도 칠 수 있지.”
“응. 5분짜리 메들리로 만들어볼까?”
이후는 본격적인 음악 얘기였다.
마야는 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리처드 가족과 함께 응원가를 따라부르며 놀았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밴드의 멤버들은 응원가들을 계속 따라부르며 듣고,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10분 후, 마야의 친구들과 밴드 멤버들은 제대로 준비해보겠다고 내려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