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43화 (43/245)

14. 포레스트 (4)

‘여러분, 제발 싸우지 말아 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펍 오크스에서 가장 큰 테이블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는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여유 있는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다른 서포터즈의 리더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손에 들린 종이들을 보고 있었다.

종이의 정체는 다음 경기에서 쓸 응원가의 악보와 응원 프로그램이었다.

서포터즈의 리더들은 펍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불길함을 느낀 듯했다.

아마 <노팅엄 치어 배틀>의 결과를 펍 오크스에 발표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그들의 예상대로 1위는 오크스라고 말했고, 이들의 표정은 금세 나빠졌다.

이어서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해 리더들을 자극했고, ‘연습해와.’라고 말하며 다음 경기에서 쓸 응원가 악보와 프로그램을 리더들에게 던지려고··· 해서 내가 다급하게 뺏어 리더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오크스가 자신들의 승리를 예상하고 이걸 만들었다는 사실에 리더들은 자존심이 상한 것으로 보였다.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당장 싸움이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다행히 첫 번째로 입을 연 사람은 오크스와 가장 친분이 있는 젤코바스의 리더였다.

“이 노래 꼭 들어가야 해? 지루해지지 않을까?”

“누가 1등이지?”

“음··· 킴, 얘 너무 재수 없는데.”

젤코바스의 리더는 내게 장난스럽게 말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대신했다.

둘의 대화는 괜찮았다. 둘은 노팅엄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함께했던 동료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절대 싸울 일은 없었으니까.

문제는···.

“너희들은 불만 없지?”

“없어야지.”

맥켄지가 나머지 두 리더에게 말을 건넸다. 젤코바스의 리더가 비꼬는 말을 덧붙인다.

엄연한 도발에 나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도록 의자를 뒤로 살짝 뺐다.

주먹질도 흔히 일어나는 게 영국의 펍인데, 감정의 골이 깊은 두 무리가 한 테이블에 앉아있다니.

특히 버치스의 리더가 걱정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욕을 쏟아낼 것 같은 시뻘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막 버치스의 리더가 입을 열려는 찰나, 파인스의 리더가 먼저 말했다.

“알겠어. 제대로 연습해 올게. 대신, 너희들도 똑바로 연습해와야 할걸? 경기 날 우리보다 목소리 작으면 큰일이잖아?”

아마 이름이 벤자민이었을 거다.

그는 이어서 버치스 리더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의 도발에 눈썹을 찡그리기 시작한 맥켄지와 젤코바스의 리더에게 말한다.

“그리고, 다다음 홈 경기에서는 우리의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할 거야. 우리 파인스는 다음 배틀에서 무조건 1등을 할 거거든.”

발끈하려는 젤코바스 리더의 어깨를 붙잡은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가 재밌다는 듯 벤자민을 빤히 바라본다.

맥켄지와 벤자민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맥켄지는 자신만만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로 벤자민에게 말했다.

“해 봐. 기대되네.”

**

“리버풀의 살라 마네 송을 바꿔봤어요. 《할리! 바비 바비~ 알렉산더······.》 쉽죠? 따라 해보세요.”

《할리! ······.》

노팅엄시의 한 펍에서 키보드와 기타, 그리고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펍의 이름은 파인스(Pines), 벽과 간판에도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 노팅엄 FC의 서포터즈, 파인스의 본거지였다.

한 곡 연습이 끝나자마자 밴드 Small room의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는 오늘의 응원가 선생님, 히메나가 얘기했다.

“솔직히 축구 응원가는 별거 없을 줄 알았는데, 팝송부터 시작해서 동요까지 스펙트럼도 엄청 넓더라고요. 여기에 팬들의 센스가 더해지니까···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거 있죠!”

“하하··· 그런가요?”

히메나의 말에 파인스의 리더 벤자민이 답했다.

“네! 그래서 살라마네 송 바꾼 거 말고, 일 분 정도 되는 노래를 열 곡 만들어 왔어요.”

“이렇게 빨리요?”

벤자민이 놀라서 되물었다.

히메나는 태연하게 답한다.

“곡부터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요. 과제만 없었으면 더 많이 만들었을 거예요.”

파인스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같은 밴드 소속의 보컬, 긴 머리의 남미 남자인 코피가 그들의 판단에 확신을 더해줬다.

“히메나는 가사나 곡 쓰는 건 정말 천재거든요. 과제나 시험은 늘 말아먹지만요.”

“뭐? 너도 그렇잖아!”

파인스의 회원들 앞에서 창피당한 히메나는 화가 났는지 주먹으로 코피의 명치를 정확히 쳤다. 코피는 숨이 안 쉬어지는지 벽을 붙잡고 심호흡했다.

둘의 다툼에 펍에 모인 파인스의 회원들이 낄낄대며 웃는다.

대학생들다운 기운차고 발랄한 모습에 파인스의 회원들은 힘을 얻고 있었다.

Small room 밴드는 경기 전까지 선수별로 응원가를 하나씩 만들겠다고 말했고, 오늘은 인기가 가장 많은 알렉산더, 로드, 할리, 라이언, 바비의 응원가만 만들어 왔다고 했다. 나머지는 그냥 팀을 응원하거나 팬들을 찬양하거나 노츠 카운티를 까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응원가를 부를 타이밍이 더 중요해요. 우리 팀의 기세가 떨어졌을 때랑 기세가 올랐을 때, 그리고 부르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죠. 유명 가수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텐션을 유지하거든요.”

코피의 있어 보이는 말에 파인스의 회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벤자민이 대표로 물었다.

“그것도 도와주실 수 있나요?”

“네, 처음 했던 약속만 지켜주신다면요.”

Small room은 파인스가 이번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만약 1등에 성공한다면 파인스가 서포터즈들을 리드할 때 Small room의 자작곡인 을 전반전, 후반전에 한 번씩 불러준다.

노팅엄의 팬이 된 지 일 년 차인 대학생들이 노팅엄 FC의 모두를 보며 만든 자작곡이라고 했다. 의미 있는 일이고, 노래 가사나 곡도 응원가로 부를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벤자민과 파인스의 회원들은 밴드의 요구를 받아들였었다.

벤자민은 약속의 내용을 되새기고, 코피에게 말했다.

“우리가 못 이기더라도 약속은 어떻게든 지킬게요.”

**

오늘은 제2회 <노팅엄 치어 배틀>이 열리는 프리시즌 마지막 홈 경기 날이었다.

서포터즈 오크스의 회원들은 다 함께 소리치며 서로의 기운을 북돋고 있었다.

“오늘도 이기자고!”

“좋아!”

“목표는 3연승!”

오크스는 <노팅엄 치어 배틀>에서 전부 승리해서 팀을 떠났던 서포터즈들에게 수준 차이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오크스는 서쪽 관중석에 있었다. 나머지 관중석에 있는 서포터즈들이 경기 시작 전부터 주변 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응원가를 부르고, 응원구호를 외치는 게 보였다.

오크스 또한 질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창 몸을 풀고 있는 선수 중, 실수하는 선수들이 있으면 집요하게 물어뜯어 관중과 선수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서포터즈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는 경기장의 풍경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보기 좋네.”

“맞아. 경기 전에는 다들 스마트폰 보고, 작은 전광판에서 나오는 영상 보는 게 다였는데··· 경기가 20분은 일찍 시작한 것 같다니까.”

맥켄지의 친구인 오크스의 한 회원이 맥켄지의 말에 답했다.

맥켄지가 중얼거린다.

“우리 멋진 단장은 이런 광경을 예상했던 거겠지?”

“암, 당연하지. 우리 단장이 누군데. 아무튼, 요즘에는 일반 팬들의 호응도 좋아져서 응원할 맛도 난다고.”

더불어 서포터즈들이 서로 이기기 위해 여러 방식을 사용해 응원의 다양성 또한 올라가고 있었다.

“파인스나 버치스 놈들도 생각보다 열심히 하고 있지··· 특히 파인스가.”

맥켄지의 중얼거림에 회원은 파인스가 있는 반대편 관중석을 바라봤다.

지난 배틀 때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로 응원을 독려하고 있었다.

회원이 말한다.

“지난 경기에서 우리가 리드할 때도 가장 잘 따라와 줬잖아. 그놈들이 목청 하난 대단하더라고. 엄청 필사적으로 소리지르더라니까?”

필사적이라는 말대로였다.

지난 홈 경기, 파인스는 유난히 큰 목청으로 오크스 회원들을 비롯한 서포터즈 전원의 시선을 받았고, 90분 내내 목청을 유지했다. 그들은 전부 목이 쉰 채로 경기장을 나갔다.

그런 상태로 응원 장비까지 정리하고 가는 모습에 오크스 회원들 사이에서는 파인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3년 전에 도망친 서포터즈라는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단장은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건지···.”

회원들의 마음이 변하는 걸 보며 이것 또한 단장의 의도가 아닌가 의심한 맥켄지였다. 맥켄지와 말을 주고받던 회원은 어느새 응원에 집중하고 있었다.

맥켄지는 일단 오늘 이기고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필드를 향해 를 개사한 을 라이언을 향해 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맥켄지는 오늘 경기는 물론 응원 대결까지 당연히 자신들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

“설마··· 지는 거 아니에요?”

가장 어린 오크스 회원의 물음에 맥켄지는 답할 수 없었다.

현재 시각은 후반 14분.

반대편 스탠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장관이네···.”

두 번 발을 구르고, 박수를 한 번 친다.

영국의 전설의 밴드 퀸의 ‘관중과 함께 연주하는 곡’, 의 방식을 차용한 파인스의 응원을 전 경기장의 관중이 따라 하고 있었다.

일반 팬들은 굳이 가까운 서포터즈의 응원을 따라 하지 않는다. 그저 신나는 걸 따라 할 뿐.

그렇기에 오크스는 지난 경기에서 다른 서포터즈의 주변 팬들을 뺏어왔고, 오늘 경기에서 몇 번이나 주변 팬들을 빼앗겼다.

원래는 두 음절짜리 가사였기에 노팅엄이라고 외치는 부분은 급하게 불러야 했지만,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다 같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응원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팅엄 부분을 선수들의 이름도 바꾸며 파인스의 서포터즈는 경기장의 관중을 자유자재로 휘어잡고 있었다.

경기 시작 때부터 파인스의 기세가 심상치 않긴 했다.

하지만, 오크스의 일원들은 그들이 준비해온 게 금세 바닥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전반전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이윽고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구호와 응원가는 계속되었다.

하프 타임 때는 ‘후반전에는 지겨워질 거야.’라면서 오크스의 회원들끼리 서로를 위로했지만, 파인스의 기세는 후반전이 되어도 여전했다.

이번 배틀의 승자는 노팅엄의 리그 개막전에서 응원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일찌감치 포기한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는 망연자실한 회원들의 얼굴을 살피고, 다시 파인스의 응원석을 바라보았다.

파인스는 온 힘을 다해 응원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파인스가 예전보다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

시즌 개막 일주일 전, 나는 파인스의 펍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다··· 오셨군요.”

약속 시각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이미 네 명의 서포터즈 리더가 모여있었다.

나는 온종일 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당연히 오크스가 이길 줄 알았다. 변수가 생긴다면 젤코바스가 하는 거고.

그런데 경기를 보고 있던 내가 듣기에도 파인스의 응원은 압도적이었고, 그렇게 파인스가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새로운 레퍼토리의 쉬운 응원가가 잔뜩 생기긴 했다.

팀을 한 번 떠났던 파인스가 서포터즈 전체를 리드해야 한다는 아주 큰 문제가 생겼지만.

“여기에서 모이자고 했으니 다들 예상하고 계시겠죠? 두 번째 <노팅엄 치어 배틀>의 승리자는 파인스입니다.”

버치스의 리더가 작게 박수를 보냈다. 젤코바스의 리더가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크스의 리더, 맥켄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파인스의 리더를 본다.

파인스의 리더, 벤자민은 이런 분위기를 예상했는지, 내게 짧게 감사의 말을 하고는 지난번의 맥켄지처럼 리더들에게 종이를 직접 나눠줬다.

잠시 후, 젤코바스의 리더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이게 응원가야? 그냥 대중가요를 따라 한 거 아니야?”

“트렌트 대학교의 밴드에서 만든 자작곡입니다. 저희의 새 응원가들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죠. 이 곡도 노팅엄 FC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합니다.”

파인스의 응원가가 풍부해진 이유가 있었구나. 마야의 친구들이 생각보다 굉장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노팅엄 FC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니, 사연이 있는 응원가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우리도 리버풀의 YNWA 같은 가요 응원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벤자민의 설명을 들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할 여지가 적은 주장이었으니까.

이후 벤자민은 응원을 어떻게 진행할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젤코바스의 리더가 점점 하기 싫은 얼굴을 하며 벤자민에게 딴지를 걸었다.

벤자민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설명을 멈추고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제안한 대로 하기 싫은 건 잘 압니다. 3년 전에 도망친 제가 싫겠죠.”

벤자민의 직설적인 말에 젤코바스의 리더가 움찔했다. 프로그램과 응원가를 보고 있던 맥켄지가 고개를 들었다.

“계속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분에게만 하지만, 나중에는 서포터즈 전원에게 하고 싶습니다. 특히 오크스, 젤코바스, 플라타너시스에게요.”

미리 얘기된 건지, 버치스의 리더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저희는 이번 배틀에 필사적으로 임했습니다. 저희가 진심으로 노팅엄 FC를 응원하고 싶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젤코바스의 리더는 불쾌한 표정 대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맥켄지는 가만히 벤자민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도 3년 전의 잘못을 절대 잊지 않고, 노팅엄 FC를 응원하는 데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앞으로도 노팅엄의 서포터즈로 남고 싶습니다. 이건 우리 서포터즈를 비롯한 3년 전에 도망쳤던 서포터즈 전원의 의견입니다.”

말이 끝난 후, 몇 초인지 몇 분인지 모를 침묵이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서포터즈들끼리 의견을 모은 모양이었다.

험악한 기세는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앉아 이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침묵을 깬 건, 계속 조용하던 맥켄지였다.

“사실 난 아직도 너희들이 싫어. 믿지도 못하겠고··· 그래도.”

테이블에 모인 모두가 맥켄지의 말에 집중했다.

“저번 경기에서의 응원은 대단했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벤자민이 놀란 눈을 한 채로 고개를 들었다. 맥켄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그러니까, 다음 경기에서는 지켜봐 주지. 얼마나 잘 리드하나.”

“맥켄지···.”

젤코바스의 리더가 맥켄지를 불렀다. 젤코바스의 리더 또한 목소리가 누그러져 있었다.

맥켄지와 그는 펍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무슨 얘기를 하고 왔는지 젤코바스의 리더 또한 다음 경기에서는 협조하겠다고 한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실이 한 가닥 풀린 것 같았다.

깊은 감정의 골이 파여있는 만큼 앞으로도 문제는 계속 일어나겠지만, 노팅엄 FC의 소규모 서포터즈라는 나무들이 모인 <포레스트>들의 동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다.

관계가 나아질 거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저 폭력적인 상황을 경쟁으로 이끌었을 뿐.

그런 나의 의도를 노팅엄의 사람들이 제멋대로 더 좋은 결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거 어떻게 부르면 되냐?”

젤코바스 리더의 물음에 벤자민이 다급히 손을 움직여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노래를 틀었다.

벤자민이 선창하며 어떤 식으로 부르는지 알려줬고, 맥켄지와 다른 리더들이 따라 불렀다. 이들은 이제 서포터즈의 회원들에게 이 노래를 전파하겠지.

다음 경기에서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경기장 전체로 퍼져 모든 팬이 따라 부르게 될 것이다. 서포터즈는 그 정도로 영향력 있는 존재였다.

나는 처음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이들이 연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불편한 동행의 끝에는 어떤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을까.

기왕이면 노팅엄이 없어지는 순간이나 내가 죽는 순간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다툰다면 말리고,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돕고, 그렇게 이들을 도우며 구단을 운영해나가고 싶었다.

이번처럼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노팅엄의 사람들이나 노팅엄이 좋아진다면 괜찮았다.

결국,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내가 아닌 노팅엄의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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