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49화 (49/245)

16. 변화 (2)

바비는 경기가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경기장에 와 있었다. 바비는 경기장을 목표 없이 돌아다니며 팬들과 경기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노팅엄의 팬들은 맨체스터 시티라는 지난 시즌의 챔피언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무척 들떠 보였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을 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온 팬들도 자주 보였다.

노팅엄의 팬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 경기 명단 봤어? 오늘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에이, 정신 차려라.”

승리를 기대하는 팬들도 일부 있긴 했지만, 소수였다. 팬들도 오늘 경기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바비는 모자를 푹 눌러쓰며 팬들을 지나쳤다.

‘패배주의는 무슨. 현실적인 거 가지고.’

바비는 지난주 잭슨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기 직전 경기장을 돌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바비는 임대로 여기에 온 이후 모든 경기에 나섰기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바비는 유혹적인 냄새를 풍기는 한 가게 앞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핫도그랑 탄산수 하나씩 주세요.”

할리가 양념 치킨집과 더불어 가장 맛있다고 했던 핫도그 가게였다.

“소스는 다 발라 주세요.”

“네~.”

소스 맛이 특히 일품이라고 했지. 바비는 빠르게 나온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며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게 몸을 돌려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음악을 한참 동안 듣다가, 팬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 복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을 때, 구단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통로로 향했다.

“이쪽은 구단 관계자만··· 아, 바비!”

보안요원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바비를 알아보고 비켜줬다. 바비는 보안요원에게 인사하고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 한 관중석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구단의 VIP나 관계자들만 앉을 수 있는 관계자석이었다.

“왔어?”

“네.”

바비는 팀의 단장과 구단주에게 차례로 인사했다. 평소 오고 가며 안부 정도는 묻는 사이였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다만, 경기를 같이 볼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단장, 김도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잭슨이 너 여기 잡아두라고 하던데.”

잭슨은 온전한 휴식이 아닌, 경기장에 나와 경기를 보라고 지시했다.

잭슨의 지시가 아니었더라면 바비는 관계자 석이 아닌 집에서 경기를 봤을 거였다. 경기장이나 팬들이나 경기장 음식이나 음악이나, 구경은 재밌게 하긴 했지만, 바비는 집에서 쉬거나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선수였으니까.

“어디 안 갈 거예요.”

“그래, 그래. 여기 앉아.”

바비가 앉자마자 구단주,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발목은 괜찮아요?”

“가벼운 염좌라서 걷는 데 크게 문제는 없어요.”

잭슨은 바비의 결장을 가벼운 부상이라고 설명할 거라고 했다. 바비는 준비해온 대로 제임스에게 답했다.

제임스는 안타깝다는 걸 얼굴에 훤히 드러내며 바비를 위로했다. 바비는 죄책감이 들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임스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건지 다른 말을 꺼냈다.

“바비 선수는 임대로 온 게 아니었으면 저기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경기장에는 맨시티의 선수들과 노팅엄의 선수들이 하프라인을 경계로 나뉘어서 제각기 몸을 풀고 있었다.

제임스는 맨시티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바비에게 물었고, 바비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이러다 선수 전부를 물어보는 거 아닌가 바비가 생각하는 찰나 김도운이 끼어들었다.

“그만 물어봐. 경기 보기도 전에 지치겠다. 모처럼 받은 휴간데.”

“아, 그렇네. 죄송해요.”

“아니에요.”

이어지는 김도운의 말에 제임스는 바비에게서 완전히 시선을 뗐다.

“제임스, 맨시티 선발 명단 봤어? 첸웬이 빠지고, 선수단도 거의 2군이더라.”

“정말? 그럼 첸웬은 왜 몸을 푸는 거야?”

경기장에서는 첸웬이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선수들과 장난치고 있었다. 첸웬의 주변에는 첸웬을 찍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 팬들이 있었다. 첸웬은 그들에게도 가끔 손을 흔들어주며 팬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후반전에 나오지 않을까. 첸웬이 경기 욕심 많은 건 유명하잖아.”

“안 나왔으면 좋겠다···.”

김도운과 제임스는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눴다. 바비는 둘 옆에서 가만히 맨시티의 첸웬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비가 계속 조용히 있는 게 신경쓰였는지, 김도운이 바비에게 물었다.

“선수단 분위기는 어때요? 잘 준비돼있어요?”

“음···.”

첸웬에게서 고개를 돌린 바비는 어제까지도 함께 훈련한 선수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

사흘에 한 번꼴로 경기가 있는 박싱데이 기간에 격한 훈련은 절대 하지 않는다.

경기 다음 날 간단한 회복훈련을 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며 손발을 맞춰보는 전술 훈련 정도만 가볍게 한다.

이런 느슨한 일정에도 선수들, 특히 감자 머리 선수들은 다가오는 맨시티와의 경기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바로 개인 훈련을 통해서.

바비는 할리와 함께 퇴근하던 도중 감자 머리들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룸에 잠깐 들렀다.

“다들 그만!”

그때, 노팅엄의 낡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한 공간에 스포츠치료사 폴린이 난입했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들고 있던 역기를 조심스럽게 하나둘 내려놓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바비와 할리는 함께 퇴근하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멈춰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알버트. 솔직히 말해봐요. 몇 개 했어요.”

“폴린이 정해준 대로 다섯 개밖에 안 했어···.”

“거짓말 마요. 밖에서 다 보고 있었어요. 다른 감자들도 도망갈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들은 잔소리 좀 들어야 해요. 프로 선수한테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요?”

역기를 내려놓은 감자 머리들은 알버트에게 시선이 집중된 동안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다가 폴린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한테 다 보고할 거예요.”

“안 돼···.”

“그럼 정해준 개수만 했었어야죠. 나랑 감독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예요? 다들?”

“미안··· 맨시티랑 경기할 거 생각하니까 너무 흥분돼서···.”

대표로 알버트가 말했고, 감자 머리들이 단체로 고개를 숙였다.

바비는 그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동안 함께 훈련해 왔지만, 지금까지도 감자 머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데이비드 워커를 존경한다는 이들은 늘 훈련하고 또 훈련했다. 이들의 우상인 데이비드 워커처럼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바비가 생각했을 때 데이비드 워커라는 선수는 재능이 있었으나 그게 늦게 발견된 선수일 뿐이었다.

정해진 한계가 있고, 그 이상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올라설 수 없다는 게 바비의 가치관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시즌 감자 머리들이 하는 모든 건 바비에게 있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본래 참견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기에 별말 안 했을 뿐.

아마, 자신처럼 압도적인 재능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그 막막한 벽을 만났을 때, 이들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바비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폴린과 감자 머리들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 쉴 줄 알아야죠. 다들 얼음 목욕 1분씩 해요.”

“아니, 그것만은··· 아까 했잖아.”

“운동했으니까 또 해요. 내가 호명하는 선수들만 나와요. 알버트, 사무엘······.”

폴린은 여섯 명의 주축 감자 머리들을 전부 불렀다. 알버트가 소심하게 반항했다.

“캡틴도 같이 운동했는데 왜 캡틴은 빠져···?”

구석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알렉산더가 움찔했다. 폴린은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말했다.

“경기에 뛴 사람들만 쉬는 거예요. 캡틴은 더 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거기 할리랑 바비.”

“넵.”

“넵.”

실실거리면서 선수들을 구경하던 할리와 상념에 빠져있던 바비가 괜히 몸을 뻣뻣하게 세우며 답했다.

“당신들도 개인 훈련 하러 온 거예요?”

“전혀요.”

“절대 아니죠.”

“그럼 빨리 집에 가서 쉬어요.”

그렇게 바비는 할리와 함께 훈련장을 나갔다.

그다음 날도 모레도 감자 머리 선수들은 스포츠 치료사들과 코치와 실랑이를 벌이며 열정적으로 훈련했다.

스탭들이 없었다면 부상을 입거나 컨디션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바비는 생각했다.

그 분위기에 동화된 다른 선수들도 박싱데이라는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걸 잊은 듯 열정적으로 훈련했다.

그렇게 바로 어제까지도 선수들에게는 의욕이 넘쳐흘렀다.

*

바비는 감자 머리들과 다른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떠올리며 김도운과 제임스에게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다칠까 걱정될 정도로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했고, 의욕이 넘쳐 보였다고.

“그리고, 다들 맨시티랑 경기하는 게 너무 기대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오우.”

제임스가 정말로 기뻐하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바비가 이야기하는 사이, 선수들은 준비운동을 마치고 드레싱 룸으로 들어갔다가, 이제 경기를 위해 입장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다가, 아까부터 별말 없이 앉아있는 김도운에게 물었다.

“넌 누가 이길 것 같냐? 내기할래?”

“좋아. 난 무승부에 걸게.”

“무승부?”

의외의 대답에 제임스가 되물었고, 바비 또한 고개를 돌려 김도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김도운이 무승부를 고른 이유는 무척 간단했다.

“무승부가 되면 맨시티 홈경기장에서 재경기 하잖아. 그럼 입장 수익이 어마어마하다고. FA컵은 이래서 좋아. 홈, 어웨이 상관없이 큰 구단이랑 입장료를 똑같이 나눌 수 있다니.”

“참나··· 아무튼 그럼 넌 무승부다? 나는 노팅엄이 이기는 쪽에 걸건데··· 바비도 할래요?”

제임스의 말에 바비가 물었다.

“전 노팅엄이 지는 쪽인가요?”

“그렇죠. 50파운드(약 7만 3천 원) 내기로 하죠.”

바비는 경기장의 선수들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맨시티의 명감독 펩 과르디올라가 벤치에서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맨시티의 선수들은 그들의 주장인 케빈 데브라이너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관중은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함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전반전, 노팅엄의 경기장에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좋아! 뛰어라, 알버트!”

제임스와 김도운이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노팅엄의 스트라이커 알버트가 중앙 미드필더 라이언의 패스를 막 받아 달리고 있었다. 맨시티의 유소년 수비수 하나와 후보 수비수 하나는 그동안 계속된 노팅엄의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아···.”

제임스와 김도운이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알버트의 슈팅은 아쉽게도 골대 옆으로 살짝 빗나갔다.

제임스가 바비에게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깝죠!”

“아··· 예.”

바비는 지금의 경기력이 믿어지지 않아 얼떨떨하게 답했다.

비록 맨시티가 3명을 유소년으로, 5명을 후보 선수로, 나머지 3명만 1군 선수로 채우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했을 때 맨시티가 당연히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예상대로 경기의 흐름은 맨시티가 잡고 있었다. 맨시티는 노팅엄에게 슈팅, 패스성공률, 점유율 등 모든 지표에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노팅엄은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확실한 컨셉으로 맨시티를 효율적으로 상대하고 잇었다. 수비수 네 명, 미드필더 네 명이 페널티박스 주변에 똘똘 뭉쳐 맨시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있었고, 할리와 알버트라는 단 두 명의 공격수만으로 날카로운 역습을 해내고 있었다.

맨시티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제대로 된 슈팅을 한 번도 때리지 못했다. 노팅엄은 방금 슈팅을 포함해 세 번이나 때렸고.

점수는 0-0이었지만, 경기력 자체는 노팅엄이 더 좋았다.

제임스가 멍해져 있는 바비를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설마, 내기 이겨보겠다고 정말 맨시티를 응원하던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그냥 경기력이 정말 대단해서··· 놀라서요.”

“이대로 후반전까지 가면 우리 팀이 이길지도 모르겠어요.”

제임스의 희망찬 말에 김도운이 딴지를 걸었다.

“아니지, 무승부가 될 거야.”

셋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맨시티의 허무한 중거리 슈팅을 마지막으로 전반전이 끝났다.

스코어는 0-0.

노팅엄의 팬들은 맨시티에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경기장 전체를 응원가로 채우며 기뻐했고, 선수들 또한 활짝 웃으며 드레싱룸으로 향했다.

하지만, 맨시티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인 첸웬과 주장이자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인 케빈 데브라이너를 동시에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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