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50화 (50/245)

< 16. 성장 (3) -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후반전 시작 휘슬이 울린 후, 잭슨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서 터치라인과 가까운 선수들에게 다급히 무언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맨시티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에이스들을 투입할 걸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선수들은 곧장 다른 선수들에게 감독의 지시를 전달했고, 선수들은 전체적인 진영을 뒤로 물렀다.

그리고 5분이 흘렀다.

나는 제임스와 함께 열심히 다리를 떨고 있었다. 바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첸웬을 빤히 보고 있었고.

맨시티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 중심에는 맨시티의 주장이자 전설, 이제는 노장에 가까워진 케빈 데브라이너가 있었다.

나이 때문에 신체적인 능력이 좀 떨어졌을지라도, 그는 킥 능력과 지능적인 플레이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중앙 미드필더였다.

그런 선수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니, 어리숙한 경기력을 보여주던 맨시티의 유소년 선수들과 경기 감각이 부족해 보이던 2군 선수들이 제 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맨시티는 적극 공격에 나서고 있지 않았지만, 몇 분 동안이나 공을 빼앗기지 않고 있었다.

페널티 박스 바로 앞까지 왔다가 측면으로 공을 돌리거나, 왼쪽 측면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긴 횡패스를 하며 노팅엄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맹수가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전의 모습 같아서 나는 괜히 무서워졌다.

그들의 공격수인 첸웬 또한 백 패스를 반복하며 드리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는 맨시티가 그런 플레이를 반복하자 살짝 지루함을 느꼈다. 경기장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 순간, 첸웬이 백 패스를 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막아!>

노팅엄 팬들의 외침에 화답하듯 로드와 라이언이 첸웬의 앞과 측면을 막아섰다. 몇 미터 간격을 두고, 접근하지 않으려는 게 느껴졌다.

둘은 월드클래스 선수는 둘째치고 1부 리그나 2부 리그의 선수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둘이 긴장하고 있는 게 얼굴에 훤히 드러나 보였다.

첸웬은 왼발을 디디면서 균형을 잡고, 오른발로 디딤발이 움직이는 거리만큼만 드리블하며 전진했다. 마치 공이 첸웬의 발에 딱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드와 라이언은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계속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오른쪽 수비수 한스까지 첸웬 쪽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에 저 훈련을 하는 걸 본 적 있었다.

셋이 타이밍을 맞춰 첸웬을 순간적으로 압박해 볼을 뺏으려는 거였다. 더 물러났다가는 슈팅 각도를 주게 되니까.

하지만 그 순간, 첸웬은 오른쪽으로 살짝 공을 쳤다.

첸웬의 순간적인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던 로드와 라이언이 오른쪽으로 쏠렸고, 첸웬은 순간적으로 생긴 왼쪽의 좁은 공간으로 몸을 확 틀어 돌파했다.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날렵한 움직임에 팬들이 막으라는 소리도 못 내는 사이, 첸웬은 바로 왼발로 슈팅했다.

<아아···.>

긴장하고 있던 팬들이 동시에 안도하는 소리를 냈다.

공은 노팅엄 골키퍼의 긴 팔에 걸려 골대 옆으로 튕겨 나갔다.

나와 제임스 또한

"다행이다···."

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데브라이너의 조율에 이은 첸웬의 창의적인 공격이 계속됐다.

전반전 내내 조용하던 맨시티 원정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노팅엄의 팬들도 질 수 없다는 듯 마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응원전은 우리가 압도적이었지만, 노팅엄 선수들은 20분 동안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래도.

"잘하고 있어!"

제임스의 외침 대로 한 골도 실점하지 않고 있는 선수들은 칭찬받아야 마땅했다. 우리 팬들 또한, 필드 위에 나와 있는 선수들의 응원가를 불러주며 선수들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까까머리(buzz cut) 친구들! 노팅엄의 군인들!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해!>

특히 왼쪽 수비수, 중앙 수비수, 중앙 미드필더 두 명, 오른쪽 윙, 그리고 중앙 공격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팅엄의 감자 머리들에 응원가가 쏟아졌다.

회귀 전처럼 이번 시즌에 기량이 물오르기 시작한 이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맨시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특히 중앙 공격수인 알버트는 벌써 최후방 수비 라인까지 네 번이나 내려올 정도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들의 투지에 주먹을 꽉 쥔 채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바비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바비의 안색이 몹시 나빠져 있었다. 뭔가 불쾌해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디 가려고?"

"화장실에요."

집에 가려는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잭슨에게 바비를 경기장에 잡아두겠다고 약속했었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갈 거면 같이 가자. 나도 음료수 좀 사 오게."

바비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바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역시 빠져나가려고 했었구나.

그런 바비를 보고, 나는 경기장 위에서 뛰고 있는 맨시티의 선수, 그러니까 첸웬을 슬쩍 봤다. 잭슨과 나눴던 대화가 저절로 떠올랐다.

'제가 봤을 때, 바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정해둔 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아마··· 첸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겨울에 바비를 임대해 온 이유는 간단했다.

회귀 직전의 바비는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였다. 유로파리그(각 유럽 리그의 중상위권 팀들이 맞붙는 대회)에서 만나본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즉시 전력감으로 써먹을 수 있는 선수. 그게 다였다.

어차피 떠나보내야 할 선수라 자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혹여나 내가 이곳으로 데려온 나비효과로 무난하게 프리미어리그에 안착할 미래를 바꿨을까 봐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부채감이 늘 있었다.

그런 차에 잭슨에게 저 얘기를 들었던 거다.

'주제넘은 예상일지 모르겠지만, 첸웬에게 열등감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분위기와 몸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맨시티전에서도 틀림없이 최선을 다해 뛸 겁니다. 그러니까, 맨시티전을 관중석에서 본다면 뭔가 느끼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말인데, 바비를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바비는 우리 팀 소속이 아닌 임대 선수였지만, 남은 반 시즌 동안은 틀림없는 우리 선수이자 동료였다.

그러니까, 기왕 우리 팀에 온 거 뭔가 얻어가게 해 주고 싶었다.

"화장실 안 가?"

나는 바비에게 능청스럽게 물어봤다.

"이제 안 마렵네요."

바비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털썩 앉았다.

나 또한 목이 안 마르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우리 분위기가 뭔가 이상해 보였는지, 제임스가 선수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바비는 제임스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저 필드에서 날뛰고 있는 첸웬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

바비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열 살에 맨시티 유소년 팀에 입단했고, 꾸준히 월반해서 열다섯 살에는 U-18 팀의 주장을 맡을 정도로 훌륭한 재능을 가진 유망주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성인팀 감독이자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펩 과르디올라에게서 '열심히 한다면 세계 최고의 팀에서 충분히 뛸 수 있을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렇기에 바비는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부족한 선수들을 챙기길 좋아했고, 훈련이 끝난 후에도 더 잘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 훈련을 코치들에게 부탁하는 소년이었다.

그가 열여섯 살이 되던 여름, 한 동양인 소년의 입단 이후 많은 게 달라졌지만.

'안녕? 난 첸웬이야.'

녀석은 영어라곤 인사와 자기소개 밖에 못 하는 동양인이었고, 자신보다 한 살 어린데도 불구하고, 자신과 똑같은 U18 팀에 입단한 선수이기도 했다.

바비는 첸웬을 처음 본 순간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경계심은 곧 옅어졌다.

주장으로서 첸웬의 안내를 도와주다 보니, 첸웬이라는 소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첸웬은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어수룩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우와··· 우와아아···.'

첸웬에게 배정된 락커를 소개해줄 때는 한없이 기뻐했고, 앞으로 훈련할 곳과 장비들을 하나하나 소개할 때마다 눈과 입이 계속 커졌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바비는 괜히 이곳저곳 더 알려주었다.

다음 날부터 훈련에 합류한 첸웬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드리블, 킥은 성인팀 선수들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지만, 연습 경기에만 들어가면 자꾸 삽질했다.

'첸,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

'이거 봐.'

바비의 마음속에서 첸웬은 경계의 대상이 아닌 알려줄 게 많은 해맑은 녀석이 되었다. 유소년 팀의 감독은 첸웬을 늘 선발로 넣었고, 중앙에서 경기를 조율해야 하는 바비는 첸웬에게 스마트폰의 번역 기능이나 손 그림을 그려 이것저것 설명해줘야 했다.

그렇게 둘은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다.

첸웬도 어느새 훈련장에 오자마자 바비를 먼저 찾기 시작했고, 어학원에서 배운 영어를 이용해 가끔 농담을 걸곤 했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바비는 첸웬이 천천히 실력만 쌓으면 자신과 함께 1군에 데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발기술만큼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 주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걸···.'

'네가 알려줬잖아. 고마워. 이거 좋다.'

첸웬은 바비가 일주일 동안 고생해서 습득한 턴 기술을 한 번만 보고 경기에서 바로 사용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비가 하나를 알려주면 첸웬은 몇 배로 응용해 경기에 적용했다.

감독과 모든 코치의 관심은 첸웬에게만 쏟아졌고, 바비는 점점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던 바비였기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첸웬은 불과 1개월 만에 유소년 리그를 제패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후에는 2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훈련 또한 유소년 팀과 성인팀을 오가기 시작했다.

'고마워. 다 네 덕이야! 너는 내 최고의 친구야!'

바비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했다. 첸웬은 실력만큼이나 정말 끊임없이 공을 차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바비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더 열심히 했다.

첸웬은 1군 교체 명단에 수시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영국에 온 지 반년 만에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다.

그동안 바비가 얻은 건 무리한 트레이닝으로 인한 발목 부상이었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무력감으로 바뀌고, 그게 질투로 바뀌기까지는 불과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첸웬은 1군에 올라가고도 바비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다가왔고, 주말에 놀자고 연락해왔다.

하지만, 바비는 첸웬과 마주하는 것조차 싫었다.

자연스럽게 답장을 하지 않았고, 1군과 유소년이 만나는 순간에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이런 물음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던 바비는 첸웬을 아예 모른척하기 시작했다.

늘 하던 연습들도 하나씩 줄여나갔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롱패스, 중거리 슛, 프리킥, 코너킥, 턴 등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축구 외에 고개를 돌리니 축구 말고 즐거운 게 정말 많았다.

놀기 좋아하는 선수들,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훈련은 딱 팀에서 시키는 만큼만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공부도 잘하지 못해서 다른 진로를 생각하긴 어려웠다. 축구는 이제부터 직업이다. 이게 바비의 새로운 가치관이었다.

실력이 딱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천천히 늘었다.

축구 코치들이 바보가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도 딱 팀에 필요한 만큼만 훈련을 시키는 거였다.

그 이상은 재능을 넘어선 욕심일 뿐이었다.

**

첸웬은 여기로 임대 오기 전보다 더 성장해 있었다.

예전의 첸웬은 화려한 개인기보다 축구계의 전설 리오넬 메시처럼 잔발 드리블을 목표로 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첸웬의 움직임 한 번에 수비라인 전체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또, 첸웬의 슈팅이었다. 이번에는 라이언이 슬라이딩을 해 가까스로 공의 궤도를 틀었다.

20분 동안 몇 번을 얻어맞는 건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곧 실점할 것이고, 그렇게 패할 것이다.

전반전에 날뛰던 선수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선수들의 움직임이 굼떠지고 있었다. 잔뜩 긴장하면 쉽게 지친다. 선수들은 두 월드클래스 선수의 날카로운 경기력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노팅엄 선수들이 얼마나 큰 압박감을 받고 있을지는 바비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적당히 뛰어. 빨리 포기해.'

삑, 삑!

그때, 노팅엄의 교체 사인이 있었다.

알버트 대신 알렉산더를 투입한다는 교체 간판을 대기심이 들고 있었다.

< 16. 성장 (3) -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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