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55화 (55/245)

< 17. 노팅엄 유소년 아카데미 (2) >

토비 피셔가 피곤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하루 만에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력서가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토비는 대충 봤을 때 말끔해 보이긴 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정장 끝이 헤져있고, 와이셔츠도 살짝 누리끼리했다. 볼도 움푹 들어가 있었다.

굶주린 백수가 세탁한 지 오래된 정장을 입고 나온 모양새였다.

회귀 전, 토비는 이 시기에 계속된 임금 체납을 견디지 못하고 팀을 나왔다고 했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토비는 원체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먼저 접근하지 못했다. 현재는 스카우트 받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펙이 없는 그에게 괜히 접근했다가 의심당할까 봐, 팀을 나와서 우리 팀에 지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절, 토비는 일단 살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어지간한 구단에는 전부 이력서를 넣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러다 보니 반 시즌이 지나버렸다. 정확히 언제 일을 그만뒀는지 들은 적이 없었기에 기약 없이 기다리다 보니 이렇게 된 거였다.

'너무 깐깐하게 보는 거 아니야? 다 괜찮아 보이는데.'

내가 유소년 단장직에 지원하는 사람들을 죄다 거절하니, 조이가 이렇게 물었었다.

하지만, 지원자에게 특별한 스펙이 있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토비를 뽑을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맡길 일은 유소년 아카데미 '단장(Director)'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성인팀을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소년 아카데미를 총괄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 했다. 토비는 이 시기 나와 비슷하게 20대 초반부터 여러 구단을 떠돌아다니면서 일해 왔기에, 일단 능력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나도 사람이다 보니 유소년 아카데미까지 공을 들이긴 어려워서 업무를 거의 전적으로 맡겨야만 했다.

그렇기에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토비는 적어도 뒤통수를 칠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잘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

회귀 전, 토비와는 벨기에 생활 3년 차에 만났다.

구단주가 데려온 토비는 최신 훈련과 장비를 도입하고, 유소년 아카데미 체계를 정비해 많은 성과를 냈었다.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벨기에 7년 차 우승 멤버 중, 무려 다섯 명의 선수가 토비가 새로 정비한 아카데미의 훈련을 받은 선수였다.

이 선수들은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1군에 올라와 최소 로테이션급 활약을 했었다.

또한, 유소년 리그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내 빅클럽들에게 매 시즌, 비싼 값에 유망주를 보내기도 했다. 이 성과는 그대로 구단의 자금이 되어 구단을 운영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었다.

토비는 10을 투자하면 100을 만들어낼 줄 아는 훌륭한 단장이었다.

그런 토비를 이름만 대면 알 수준의 빅클럽들이 탐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토비는 매년 빅클럽들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전부 거절했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열 건이 넘었다.

토비는 내가 팀을 우승시키고 프리미어리그로 떠나는 순간까지 남아 있었다.

그때, 다른 직원들과 업무적인 일 외에는 교류할 필요를 못 느꼈던 나는 토비에게 호기심이 일었었다. 그렇게 유능한데 대체 왜 빅클럽으로 가지 않는지.

나는 마지막 출근일에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만난 토비에게 물었었다.

"빅클럽으로 왜 안 간 거야? 우리 팀보다 시설도 좋고, 더 재능있는 선수들을 영입하기도 쉽고, 지원도 더 잘해줄 텐데. 어느 팀으로 갔어도 우리 팀보다 낫잖아?"

"그런 걸 궁금해하시는 분이셨습니까? 주변에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해봐."

그가 말해준 이유는 황당하면서도, 내게 많은 걸 느끼게 해줬었다.

"이 팀의 구단주님이 제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주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최대한 지원해주시려고 애쓰셨죠."

"그게 다야?"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

이때의 나는 다른 사람의 일 처리를 잘 믿지 못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내가 직접 일을 처리했으며 직원들을 평가해야 할 때는 성과, 그러니까 숫자를 믿었었다.

공정하다는 평가는 받았다. 하지만, 충돌도 있었다.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나였기에 우리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직원이 다른 팀으로 스카웃 받아서 떠나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팀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유능한 사람이 이런 이유로 팀에 매여있었다니.

나는 이 순간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의 기억은 영상 편집에 경험이 적은 마리아에게 일을 맡겨보기도 하는 것처럼 회귀 후의 내 행동에 꽤 영향을 끼쳤다.

"이제 가시는 거죠?"

"응, 그동안 덕분에 편하게 일했다."

"단장님처럼 능력 있는 분이랑 또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서도 잘하실 겁니다."

"띄우기는, 그럼 잘 있어라."

그러니까, 그는 의리도 있고, 능력도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

*

그래서, 나는 우리 팀에 토비를 꼭 데려오고 싶었다. 토비나 내가 부임하지 않을 벨기에의 내 원 소속팀한테 미안한 건··· 나중에 갚을 방법이 있다.

일단 토비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준비한 말을 꺼냈다.

"브런치를 주문했는데, 일단 먹고 얘기해도 될까요? 마침 오네요."

브런치라고 치기에는 많은 양의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다. 토비는 순간 입맛을 다시다가 내게 들켰다. 민망한 건지, 내 시선을 외면한다.

나는 그걸 정말로 못 본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시간이 애매해서 식사를 못하고 왔거든요. 미스터 토비가 오기 전에 나올 줄 알고 주문했는데, 늦게 나왔네요. 죄송합니다. 혹시 몰라서 일단 미스터 토비 것도 주문했는데 점심이라고 생각하고 드시겠어요?"

"호의를 거절할 순 없죠. 감사히 먹겠습니다."

토비가 다급히 말했다. 늘 차분하고 냉정했던 사람의 이런 모습이 조금 어색했지만, 이해는 갔다.

토비는 이 시절 하루에 한 끼 정도밖에 못 먹었다고 했다. 토비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생선튀김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먹어도 돼.'라고 주인이 말해주길 기다리는 애완견 같은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말했다.

"먹죠."

식사 후, 토비의 호감도가 많이 올랐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토비의 얼굴에 행복이 대놓고 드러나 있었다.

나는 추가로 주문한 커피를 마시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저는 2년에 Tier를 한 단계씩 올려 6년 뒤에는 노팅엄 유소년 아카데미를 Tier 1로 만들 계획입니다."

나는 내 계획을 말하는 척하면서, 토비가 좋아할 얘기를 늘어놓았다. 다 회귀 전에 토비가 구단에 요구했던 것들이었다.

"스태프 고용, 유소년 영입의 실질적인 권한은 대부분 유소년 단장에게 있습니다. 저는 그저 최종 결재만 할 겁니다."

"유소년 육성이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소년 선수들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는 장기 계약을 제안할 생각입니다."

"전력 분석 코치 팀을 신설해 유소년과 코치들에게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해 줄 계획입니다. 이력서를 보니 이에 관한 이해도가 있으신 것 같아서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 그럼 미스터 토비가 어떤 식으로 유소년 팀을 운영해나갈지 들을 수 있을까요?"

내가 늘어놓는 얘기를 집중해서 듣던 토비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해 온 태블릿을 꺼내 작동시켰다.

화면을 키자마자 회귀 전, 토비가 보여줬던 유소년 팀 조직도가 보였다.

토비가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열다섯 살을 기준으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생각입니다. 최종적으로는 U7(7살 아래), U9, U12, U15팀이 1그룹, U18, U21이 2그룹이 될 겁니다. 또한, 그룹별로 감독을 한 명씩 배정하고, 두 그룹의 훈련을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우리 팀의 재정이나 규모상 그럴 여건이 안 되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섯 팀이 아닌 공식적인 세 팀과 임시적인 한 팀으로 구성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시적인 한 팀이요?"

"U7팀은 공식 팀이 아닌 레크레이션 강사 수준의 직원을 고용해서 운영하려고 합니다. 이른 나이부터 구단에 익숙해지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그 상위 단계 계약을 하게 될 테니까요."

"좋네요."

공식적인 세 팀은 U12, U15, U18이라고 했다.

"그룹별 훈련은 어떻게 운영할 거죠?"

"열다섯 살 아래의 그룹은 '선수 자체의 성장'에 중점을 둘 거고, 열다섯 살 위의 그룹은 '팀의 일원으로서의 성장'에 중점을 둘 겁니다. 또한, 연령이 아닌 신체 성장에 따라 피지컬 훈련도 다르게 할 거고···."

"그러려면 피지컬 코치도 영입해야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룹을 두 개로 만들면서 감독을 하나 더 영입하겠다고 했고··· 무조건 필요한 건가요?"

"네. 꼭 필요합니다."

앞서 우리 구단이 재정이나 규모가 부족하다고 했는데도, 토비는 당당하게 코치가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토비는 양보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물론, 지금은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선지, 내 눈치를 보는 게 보였지만.

"좋아요. 자신만만한 게 마음에 드네요."

나는 토비를 안심시켰다.

토비는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고, 유소년 선수들의 훈련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뤄지는 걸 이용해 일정을 어떻게 조정할지도 얘기했다. 또한, 감독들과 함께 유소년 선수 하나하나의 온갖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할 거라고도 했다.

토비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유소년 아카데미에 관해 내게 한 시간 동안 설명했다. 나는 토비가 이 시절부터 회귀 전에 보여줬던 걸 다 구상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마음에 들어요. 그대로 진행하도록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계약 자체는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토비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건 개인적인 얘기입니다만··· 혹시, 새로운 훈련법이나 훈련 장비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혹여나 내가 계약서를 쓰지 않을까 걱정되는지 토비는 방어적으로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토비가 회귀 전 가장 먼저 훈련에 도입했던 물건을 떠올리며 토비의 물음에 가장 좋은 대답을 해 줬다.

"관심 있습니다. 최근에는 발달한 VR기기로 프로 선수들의 시점을 유소년 선수들에게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줄 수 있는 훈련법을 봤는데, 괜찮아 보였죠."

"그걸 아십니까?"

"예, 정보통이 있거든요."

이 시기에는 빅클럽에서도 일부 진보적인 클럽들만 이 장비를 갖고 있었기에 토비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나는 토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마무리를 했다.

"새 유소년 단장에게 제안하고, 구단에도 도입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외 시설이나 장비도 필요하다면 최대한 지원하고요."

회귀 전, 토비는 새로운 훈련법과 장비에 몹시 관심이 많았고, 그걸 적용해서 성과를 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기에 토비는 내 말이 끝난 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계약서 가져왔는데, 쓰실 거죠?"

"음, 그런데···."

"쓰기 전에 궁금한 건 다 물어보세요."

토비가 이런 걸 물어봐도 되나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가, 결국 물었다.

"노팅엄 FC가 지금 기세대로라면 당연히 2부 리그로 승격하겠지만, 대도시의 팀도 아니고··· 대형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괜찮겠습니까?"

노팅엄 시에 사는 게 아니고서야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홈 경기마다 노팅엄 시에 사는 관중이 이만 명, 관광객 팬들이 오천 명 정도 찾아와서 입장료 수입이 아주 많거든요. 그리고, 푸드 코트 수입도 있고, 사람이 많은 만큼 팬숍 수입도 있고··· 그 외의 수익도 있죠. 이번 시즌이 끝난 후에 선수들을 팔아서 벌 이적료도 있습니다."

회귀 후 우리 구단이 이뤄놓은 건 정말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4부에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크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 자부심이 내 말에 자연스럽게 담겼고, 토비는 내 말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나는 이날, 옛 동료이자 우리 팀의 새 유소년 단장을 얻을 수 있었다.

**

토비를 고용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내 사무실에는 내 호출을 받아 모인 세 명의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소년 아카데미 단장, 토비 피셔입니다."

"1군 팀 감독, 잭슨 포터입니다."

"유소년 팀 감독, 알피 로버츠입니다."

"저는 소개 안 해도 되죠?"

내 말에 셋이 웃었다.

앞으로 노팅엄의 선수단을 운영해 나갈 네 명이 내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살짝 묘하긴 했다.

잭슨은 평소대로 허허거리는 영감님이었지만, 토비와 알피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토비는 잭슨과는 처음 만나는 거였고, 알피와는 드문드문 인사했다고 들었다. 토비는 일주일 동안 유소년 아카데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유소년 선수들은 어떤 수준인지를 파악하느라 알피와 제대로 인사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오늘 둘이 천천히 얘기할 기회를 줄 계획이었다. 일단은 리그 때문에 바쁜 잭슨을 먼저 보내야 해서 1차 용건부터 꺼냈다.

"유소년 선수들을 어떻게 육성해야 할지,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서요."

"흐음. 그래서 저도 불렀군요."

잭슨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소년 시기는 선수와 팀에게 있어 정말로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어떤 훈련을 하냐에 따라 1부 리그에서 뛸 재능을 갖고 있었던 선수가 3부 리그의 평범한 선수로 전락할 수도 있고, 원래라면 하부 리그에서 뛰어야 할 선수를 1부 리그에서 뛰게 해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훈련을 하는지는 구단의 철학, 그러니까 구단이 어떤 선수를 선호하냐에 따라 결정된다.

잭슨이 말했다.

"미스터 킴이 생각하고 있는 건 있습니까?"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선수를 원합니다."

내 말에 세 명이 관심을 보였다.

"적응이요?"

토비의 물음에 나는 이어서 더 자세히 말했다.

"노팅엄 시는 런던 같은 대도시가 아니고, 지역 팬들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팀이 아무리 잘하더라도 어느 시점이 오면 구단의 성장은 멈출 겁니다. 그리고 이건, 선수를 영입하는데도 영향을 끼칠 겁니다."

세 명은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멀티 포지션과 다양한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수급하고 싶습니다.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제너럴리스트를 키우고, 영입을 통해 스페셜리스트를 데려오는 게 제 그림입니다. 그래서, 잭슨 감독님 같은 분을 모셔온 거기도 합니다. 잭슨 감독님은 한 전술을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여러 전술을 사용하는 분이니까요. 이런 분들에게는 제너럴리스트 스타일의 선수들이 잘 맞죠."

잭슨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비가 손을 들고 물어왔다.

"그럼, 잭슨 감독님이 은퇴한 후에도 같은 스타일의 감독님을 모셔올 건가요?"

"예. 기왕이면 이번 시즌 은퇴하는 알렉산더가 그런 스타일의 감독으로 컸으면 좋겠지만요."

토비는 뭔가 적기 시작했고, 알피는 날 보며 감탄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잭슨은.

"좋습니다. 저도 노팅엄이 그런 방향으로 가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 의견에 동의했다.

나머지 둘 또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손사래 치며 말했다.

"여러분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은데···."

"저도 좋습니다."

먼저 알피가 말했고,

"그렇게 방향을 확실히 잡아준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향 자체도 마음에 들고요."

토비 또한 동의해줬다.

"음··· 그럼 이걸로 끝?"

내 물음에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잭슨은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가보겠습니다. 두 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락처를 교환하죠."

연락처를 교환한 후 잭슨은 내게 인사하고 방을 떠났다.

조금 당황해서 말없이 있었다. 그러니, 침묵이 방안에 깔렸다.

알피와 토비는 통성명 말고는 제대로 대화해 본 적 없는 사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먼저 토비에게 말을 걸었다.

"한 주 동안 살펴본 유소년 아카데미는 어땠나요."

"비효율적이더군요."

"뭐요?"

알피가 발끈했다. 시작이 안 좋은데, 라고 생각하니 토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능력 있는 감독과 능력 있는 코치가 있는데, 업무가 쓸데없이 과중하고 자신의 장점을 못 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능력 있는 감독이라는 말에 알피의 표정이 밝아졌다. 참 쉬운 사람이다.

나는 토비에게 물었다.

"계획은 준비해 오셨죠?"

"예. 미스터 로버츠, 미스터 킴, 앞으로 유소년 아카데미를 어떻게 운영할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미리 말한 대로 토비는 알피에게 설명할 자료를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알피는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내가 진지하게 듣는 자세를 하자 따라 하며 토비의 말을 들었다.

일주일 전, 카페에서 얘기했던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부적인 숫자 정도만 차이 날 뿐.

나는 별 질문이 없었지만, 같이 일할 알피는 질문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룹을 두 개로 나누면 저는 어느 쪽 감독을 하는 겁니까?"

"열다섯 살 이상 그룹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U18팀이요."

"다 좋은데··· U7 임시 팀을 맡아줄 코치에 열다섯 살 미만 그룹을 맡을 감독과 코치는 어쩔 겁니까? 인원이···."

토비가 나를 보며 말했다.

"단장님에게 스태프 고용 권한을 받았습니다. 예산이 허락하는 한에서 스태프들을 고용할 겁니다. 물론, 알피 감독님과 상의해서요."

"오오···."

순간 날 보는 알피의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줄 알았다.

알피는 전력분석팀, VR팀 등 궁금한 걸 더 물었고, 이윽고 만족했는지 토비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사이가 좋아진 것 같으니 아주 좋았다.

다만.

"그리고 알피 감독님께서는 일이 준 만큼, 이 양식에 맞춰서 유소년 선수별로 보고서를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토비가 내미는 빽빽한 표가 가득한 종이를 보고 알피가 굳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토비가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일주일 만에 가능하시죠?"

"이걸 어떻게 일주일 만에 합니까? 이걸 선수마다 한 장씩 만들어야 한다면서요. 시간이 더 있어야죠."

"참고로 한 장이 아니긴 합니다. 이건 맨 앞장이에요."

"뭐요?"

토비가 파일철 하나를 꺼내자, 알피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모습을 재미있게 보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둘의 다툼도 말릴 겸 나는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두 분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눈싸움을 하던 둘이 동시에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우리 유소년들을 책임져 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말을 꼭 해 놓고 싶었다.

유소년을 키우는 수많은 축구인이 성적을 내기 위해, 좋은 유소년을 만들기 위해 자주 잊는 사실을.

"몇 살이 됐든, 유소년 선수들은 어린애들입니다. 그러니까, 유소년 선수들은 이 노팅엄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은 다시 서로를 보고, 동시에 내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당연하죠."

< 17. 노팅엄 유소년 아카데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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