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61화 (61/245)

< 20. 내부 출입 기자 (1) >

[노팅엄 FC의 공식 SNS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어두컴컴한 방, 노트북만 켜 놓은 채로 작업하던 한 남자의 노트북 화면에 뜬 알람이었다.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쥔 후, 새 글을 열었다.

<다음 시즌 유니폼 및 홈 시즌 티켓 변경 안내>

"오호···."

먼저 홈에서 입을 유니폼이 보였다.

녹색과 흰색이 세로줄로 번갈아 나오는 상의에는 예전에 발표한 대로 메인 스폰서 엑스피아(XPIA)가 깔끔한 폰트로 적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색감이 아주 괜찮았다.

직업 때문에 그동안 수천, 수만 개의 유니폼을 보아온 남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청나게 잘 뽑혔네. 알렉산더 이름으로 마킹 해야지···."

원정 유니폼은 같은 세로줄 패턴에 아주 어두운 녹색과 검은색이 조화돼 있었다.

하의까지 검은색이고, 얼핏 보면 세련된 올블랙으로 보여 유니폼 모델로 나온 할리가 훨씬 더 날쌔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당연히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메이저 업체일 거라고 생각하던 남자는 유니폼을 자세히 뜯어보다가 유니폼 가슴팍에 그려진 업체의 로고를 확인하고 갸웃했다.

거미 모양, 아라크네라는 중소 규모의 스포츠 업체다.

신기하게도 구단은 중소 업체와 계약한 모양이었다. 남자가 알고 있는 바로는 분명 메이저 업체에서도 제안했었는데···.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남자는 프런트를 믿었다.

"우리 프런트가 일 하나는 잘하니까, 잘 알아보고 했겠지··· 오, 아라크네에서 스폰액을 메이저 업체의 두 배나 줬다고? 역시, 우리 구단이 호구 같아 보여도 손해는 안 본다니까. 미스터 킴이랑 일대일 인터뷰 하고 싶다···."

댓글에 달린 스폰 금액 추정치를 보고, 남자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유니폼 서드 킷, 홈 유니폼이나 원정 유니폼이 상대 유니폼의 색과 겹쳐 입을 수 없을 때 입는 유니폼은 공모를 받는다고 했다.

"공모전 참 좋아하네."

늘 성과가 좋았기에 불만은 없었다.

이어서 나온 건, 다음 시즌 홈 티켓을 다 모으면 선수단의 단체 사진이 된다는 안내였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의 발안자는···.

"또 할리라고? 좋아. 이건 전국 단위 조회 수 나온다."

남자는 중얼거리면서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SNS를 왼쪽화면으로 밀어두고, 오른쪽은 워드 프로그램을 켰다. 그리고 사진을 옮겨오며 출처를 적은 후 무서운 속도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워드 프로그램의 빈 화면이 순식간에 글자와 사진으로 채워져 간다.

남자는 그러면서도 SNS의 댓글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중소업체랑 계약했네. 우리도 이제 아디다스나 나이키, 적어도 퓨마 같은 곳이랑 용품후원계약을 맺어도 되잖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네.

└내 생각에는 후원금 때문인 것 같아. 아라크네가 후원한다는 금액이야(링크).

└└금액은 괜찮긴 한데 중소 업체가 선수들이 필요한 걸 잘 지원해줄 수 있을까?

└└└나도 걱정이긴 하지만, 우리의 신 미스터 킴을 믿자고. 그래서 나는 재계약 소식이 없는 것도 참고 있어.

└└└└맞네. 킴이 사인했을 거라는 걸 잊고 있었어. 킴의 선택이라면 무조건 믿어야지. 난 그럼 저 유니폼 예약하러 간다.

노팅엄 서포터들에게 있어 단장 김도운의 성 킴과 신을 뜻하는 갓(god)은 같은 의미로 통하고 있었다.

그건 이 어두운 곳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는 남자이자 영국의 유력 스포츠 언론 겸 방송사 '스카이스포츠'의 3년 차 기자인 조지 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노팅엄 출신의 조지 웹은 재작년쯤 노팅엄의 팬이 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부 리그의 팀인 노팅엄의 기사를 써 주곤 했었다.

1부 리그 구단에서 노팅엄에서 있었던 일들이 일어났다면 전 세계로 기사가 퍼져나갔을 텐데, 4부, 3부 리그에서 일어난 이야기라 정성 들여 기사를 써도 묻히는 게 아쉬웠다.

-또 할리야? 얘 따로 구단에서 디자이너나 기획자로 고용해야 하는 거 아니야?

최근에는 할리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대체 어느 구단의 마스코트를 선수가 직접 그린단 말인가. 그것도 공정한 공모전을 통해서. 또, 어느 구단의 선수가 구단을 위해 이런 훌륭한 아이디어를 낸단 말인가.

성인이 될 때까지 노팅엄에 살면서도 노팅엄 FC라는 구단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자신을 팬으로 만든 지금의 구단과 구성원은 하나하나 정말 매력이 넘쳤다.

자신하건대, 이 팀은 프리미어리그에 가기만 한다면, 영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지는 축구 기자로서 이 구단을 더 널리 알리고 싶었다. 구단과 더 친분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이 노팅엄이라는 구단은 팬들과는 잘 소통하면서 자신과 같은 기자들에게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다.

그게 정말 아쉬웠다.

그때였다. 문이 쾅하고 열리며 복도의 빛이 방을 밝혔다. 이어서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방의 불이 켜졌다.

"조지! 넌 대낮에 대체 왜 불을 끄고 컴퓨터를 하는 거니?"

조지의 어머니였다.

조지는 습관처럼 죄송해요 라고 하다가 이어지는 어머니의 분노에 가득 찬 말과 등짝 스매시에 비명을 질렀다.

"조지! 그리고 부르는 데 왜 안 내려와?"

"불렀어요? 왜요? 악! 악!"

짝, 짝하고 조지의 등에서 시원한 소리가 났다. 조지는 분명 피멍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손맛은 그만큼 매웠다.

"스튜 만들어 달라며!"

어머니가 화난 이유를 깨달은 조지가 어머니의 손을 몸을 비틀어 피하며 말했다.

"아, 집중해서 그랬어요. 집중해서."

"열 번이나 불렀어!"

"죄송해요."

"아이고, 이런 게 스카이스포츠 기자라니. 너 직장에서 잘 하고 있는 거 맞아?"

조지의 어머니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조지는 등이 너무 아파서 툴툴거리며 답했다.

"잘하고 있다니까요. 방금도 할리 기사 써서 보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요. 노팅엄에 연락해서 할리에게 단독 인터뷰 신청해야 해요."

조지의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노팅엄의 열렬한 팬이었고, 구단 사람과 통화한다는 말에 한 발자국 물러나 조지가 통화하는 걸 들을 준비를 했다.

조지는 노팅엄의 언론담당관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할리라면 무조건 인터뷰하겠다고 할 거예요. 일정 잡히면 연락 줄게요.

직원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조지의 어머니가 다급히 물었다.

"어떠니? 만나게 해준다니?"

"아마도요? 할리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터뷰하기 가장 쉬운 선수로 꼽히거든요. 아무튼, 나 그럼 내려가면 돼요? 엄청나게 배고프네요."

"그래, 스튜는 식탁에 있단다. 아, 근데 옆집 리차드 씨가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조지는 어머니가 뭘 물어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른다니까요."

"일주일이 지났는데 뭐 진행된 거나 아는 거 없니?"

"내가 내부 출입 기자도 아니고, 노팅엄이 누굴 영입하려는지 재계약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정말 몰라?"

어머니는 눈에 띄게 아쉬워했고, 조지는 자신도 답답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직원들 입이 정말 무겁다니까요."

"에휴, 어쩔 수 없잖니. 팀의 핵심인 감자 머리 전사들은 다 서른 살 근처라서 떠날 것 같은데 재계약 소식이나 대체자를 구했다는 소리는 없지. 유소년 3인방은 프리미어리그 몇 팀의 이적설이 시즌 내내 나오고 있지··· 바비도 안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조지 또한 노팅엄의 팬으로서 최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1위이긴 하지만, 한두 경기면 뒤집힐 수 있는 차이까지 쫓기고 있었다. 노팅엄은 초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 3, 4위 팀이 무서운 연승행진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 시즌에 관한 확신도 없으니 팬들이 불안해하는 것이다.

"왜 짐을 챙기니? 어디 나가?"

"내일 아침에 레스터 시티 취재하러 가야 해서요. 스튜 먹고 좀 있다 출발해야 해요."

"거기 갔다가 다시 집에 오니?"

언제 등짝을 때렸냐는 듯 조지의 어머니는 조지가 떠난다는 사실에 몹시 아쉬워하고 계셨다.

축구 기자로서 전국을 계속 돌아다녀야 했기에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도 아쉬우신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런던 본사로 바로 가야 할 것 같아요."

**

다음 날 오후, 조지는 스카이스포츠에서도 축구에 관한 보도를 담당하는 자신의 팀으로 돌아왔다.

"왔어?"

그리고,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팀장의 자리까지 가서 손을 내밀었다.

"자, 팀장님. 100파운드(약 15만 원) 주세요."

조지의 말을 들은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조지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전형적인 금발 머리 미인 엘리자베스 러셀은 30대가 되었는데도 더 아름다워져서 스카이스포츠 축구 보도 팀의 구성원들을 괴롭게 했다. 많은 기자가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했었지.

조지는 설레려는 마음을 다스리며 살짝 내려갔던 손을 올렸다.

엘리자베스의 책상에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 팀들의 순위가 매 주 갱신되고 있었다.

그녀는 3부 리그의 순위표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노팅엄은 참 신기한 팀이란 말이야. 승격 첫 시즌인데 아직까지 1위라니··· 4위랑 승점 4점 차 밖에 안 나지만···."

"노팅엄이 두 번 비긴 사이에 치고 올라왔으니까요. 그래도,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걔네는 2, 3, 4위, 우리 노팅엄은 1위에요."

조지는 1위를 특히 강조하며 말했다. 조지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엘리자베스와 조지는 내기를 했었다.

조지는 본래 노팅엄 시 근처에 있는 더비 시의 프리미어리그 팀, '더비 카운티'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한데 조지가 어느 순간부터 노팅엄에 관련된 기사에 더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고, 더비 카운티에 관한 기사는 딱 필요한 만큼만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이번 라운드까지 노팅엄이 1위를 유지하면 100파운드를 주겠다고 했고, 만약 1위에서 내려온다면 조회 수도 안 나오는 노팅엄에 관해 기사를 쓰는 걸 절반으로 줄이라고 조지에게 제안했었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조지, 원래는 노팅엄의 내부 출입 기자가 될 거라고 기계적으로 기사를 썼던 거잖아?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하부 리그 팀들의 내부 출입 기자가 돼서 영국 축구판의 모든 걸 다 아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고."

"예. 하지만··· 노팅엄이 너무 매력적인 팀이 되어버렸거든요. 아무튼, 잘 받겠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미리 준비해놓은 100파운드짜리 지폐를 받으며 조지가 실실 웃었다.

그런 조지를 보며 엘리자베스가 뼈를 쑤시는 듯한 말을 꺼냈다.

"근데, 그렇게 좋은 기사를 많이 적어주는데 노팅엄은 너한테 특별한 정보 하나 안 주는 거야? 대체 왤까? 단장이나 구단주가 폐쇄적인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네 능력이 부족한 걸까?"

"그게, 다른 기자들한테도···."

"좀 더 분발해봐. 들인 노력만큼 성과가 없잖아. 재작년에 노아에 관한 기사 정도만 괜찮았었어."

조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엘리자베스 러셀 팀장은 신입 때부터 특출 났던 사람이었다.

경력이 많은 기자보다 특종 냄새를 잘 맡아서 순식간에 프리미어리그의 팀 브라이튼의 담당 기자가 됐고, 통역 일을 하던 현재의 슈퍼 에이전트 태현석과 친분을 쌓아 팀장이 된 요즘에도 굵직한 이적 소식을 매 시즌 팬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 이른 나이에 팀장이 되었고, 얼마 안 있어서 국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조지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지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들인 노력들은 분명히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팅엄에는 더 큰 잠재력이 있어요. 이건 팬이 아니라 기자로서 하는 말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조지를 빤히 바라봤다. 부끄럽긴 했지만,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엘리자베스가 픽 웃었다.

"그래, 잘 해봐. 오늘 내기에서 졌으니까··· 앞으로는 더비 카운티 기사 빵꾸만 안내면 간섭 안 할게."

"감사합니다."

"아, 근데 너 또 출장 생겼는데. 더비 카운티에서 다음 시즌을 대비해서 하부 리그 선수를 영입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는데···."

출장이라는 말에 조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모처럼 런던에 돌아왔으니, 런던에 마련한 숙소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기분이 급격히 우울해졌다.

"노팅엄에서 선수를 데려오고, 2군 선수를 노팅엄에 판다는 것 같던데?"

"정말이요?"

조지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조지는 자리로 돌아가서 다 풀지도 않은 짐을 금방 다시 챙겼다.

"가보겠습니다. 기사 다 쓰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엘리자베스는 손을 흔들어서 조지를 보내줬다.

조지가 떠나자마자, 엘리자베스 근처 테이블에 앉아있던 기자 하나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왔다.

"노팅엄이 그렇게 좋을까. 뭐, 5부까지 떨어졌다가 2부로 돌아가기 직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삿거리긴 하죠."

"그렇지."

"근데, 팀장님이 조지의 편의를 일 년 동안 봐줄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그런 내용의 기사는 한 일주일 정도 돌다가 사라진다고요. 축구계에서 십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동화 정도잖아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엘리자베스가 중얼거리며 조지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기자의 말대로 엘리자베스는 조지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노팅엄의 기사에 치중하다 더비 카운티의 기사에 실수가 있으면, 엘리자베스가 직접 메꿔줄 때도 있을 정도였다.

이번에도 내기를 핑계로 노팅엄에 관한 기사를 써도 좋다는 간접적인 허락을 했다.

이건 엘리자베스가 생각했을 때 의미가 있는 일들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갸우뚱하고 있는 기자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말이지. 노팅엄의 진격이 2부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거든. 그래서 조지가 꼭 노팅엄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모든 걸 알아올 수 있는 내부 출입 기자가 됐으면 좋겠어."

< 20. 내부 출입 기자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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