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내부 출입 기자 (2) >
"도니··· 어떡하지."
"머리 아프네. 재계약이라도 속도를 내 볼까?"
제임스의 걱정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는 SNS의 한 페이지에서 팬들이 '이러다 우리 팀 다음 시즌에 산산조각 나는 거 아니냐?', '이적 소식은 됐으니까 재계약 소식이라도 가져와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끊임없이 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저런 질문이 달리기 시작한 지 몇 주가 됐는데도 "재계약 진행 중이다.", "이적도 진행 중이다."라는 내 대답밖에 못 듣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불안이 점점 커지는 모양이었다.
제임스가 묻는다.
"로드랑 할리, 라이언의 재계약은 거의 다 끝났다고 했나?"
"아니. 얘들은 계약 기간이나 세부 조항도 협의 다 끝났는데··· 가장 중요한 주급이 문제라서 올스탑 상태야. 셋의 팀 내 중요도가 다르고, 포지션도 달라서 급여를 어떻게 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이지···."
이번 시즌, 공격수 할리는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도약했다.
로드는 수비수이면서 지난 시즌부터 주전이었고, 이번 시즌도 전 경기 풀타임 출전했다. 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핵심 선수다.
라이언은 미드필더면서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로테이션으로 뛰었다. 감자 머리 선수 둘과 바비라는 포지션 경쟁자가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선수들끼리 얘기하지 않는다면 보통 서로가 얼마만큼 주급을 받는지 모른다.
기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가장 흔했지만, 아무래도 하부 리그에 있는 만큼 기자들의 관심이 적어 이 부분에서는 안심이었다.
프로이니 당연히 여러 조건에 따라 주급을 다르게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공격수가 일반적으로 수비수보다 주급이 높고, 팀내 위상을 고려하는 등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적으로도 무척 친한 관계라는 게 문제였다.
백 퍼센트 서로의 주급을 알게 될 것이고, 뭔가 불만이 생긴다면 불화의 싹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재계약을 질질 끌고 있는 것이었다. 스카우트들과 아무리 의논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며 제임스에게 말했다.
"이적에 힘을 좀 덜 쏟고, 재계약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면 더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재계약 소식만 알린다면 팬들은 조금 안심할 테니까···."
축구 시장에서 이적발표는 보통 시즌이 끝난 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구단의 보드진과 스카우트들은 보통 6개월 전부터 계약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적은 구단의 장기적인 준비와 노력에 의한 결과인 것이다.
축구계에서 갑작스러운 이적을 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다.
급한 이적으로 성공하는 사례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대부분 팀을 심각하게 망친다.
물론, 변수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즉흥적인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니폼이나 마스코트, 팬샵의 기념품들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스카우트들과 끊임없이 연락하며 우리가 팔 선수와 사올 선수를 정해놓고 차근차근 이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적 작업을 뒤로 미루는 게 꺼려졌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팀에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까.
"선수들 이적도 중요하긴 한데···."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맨시티와의 경기 이후 선수들과의 개인 면담을 했던 걸 떠올려봤다.
나는 그날 선수들에게 이적하고 싶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승격을 앞둔 2부 리그 상위권 팀들의 제안이라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1부 리그 팀의 제안이라면 후보라도 가고 싶습니다.'
감자 머리 선수 1번. 알버트는 이렇게 말했고,
'임대 연장은 안 받아 주더라. 지난 경기에서 왜 그렇게 잘했어?'
'그러게요.'
맨시티는 바비를 로테이션 선수로 쓸 것이라면서 임대 연장을 거절했다. 바비 또한 맨시티에서 도전하고 싶은 것 같아 보였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선수들도 꽤 있었지만, 일단 팀의 핵심인 감자 머리 선수들은 1부 리그에 갈 가능성이 있다면 이적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재계약을 빨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이적이 좀 늦어지더라도."
제임스의 의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내부 출입 기자가 있었으면 훨씬 더 수월했을 텐데···."
원래 우리 구단에는 내부 출입 기자가 두 명 있었다.
다만, 2부 리그에서 5부 리그로 떨어진 후, 두 분 모두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은퇴하셨었다.
이후 내가 부임했고, 팀을 재건하는 과정에 있었기에 일부러 기자들과 거리를 뒀다.
내가 그동안 행했던 각종 프로젝트나 뜬금없는 선수 영입을 만약 기자들이 알았더라면 괜히 팬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어서 일을 어렵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보통 기자들과도 거리를 뒀으니, 웬만한 신뢰 없이 임명할 수 없는 내부 출입 기자는 당연히 없었던 거다.
내부 출입 기자는 일반 기자들과 역할이 달랐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부 출입 기자는 구단의 비공식 대변인 같은 존재였다.
'비공식'이기 때문에 구단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어려운 이적 협상 중이라는 내용, 구단에서 하려고 하는 프로젝트를 미리 흘릴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었다. 헛소문이 돌 때도 아니라고 확인해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들끓는 여론을 안정시킬 수도 있고, 상대 팀 서포터들을 동요시켜 이적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도 있었다.
또, 팀에 애정까지 있다면 구단 사정을 잘 아는 만큼 날카롭게 구단의 운영을 비판할 수도 있으며,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편드는 기사를 적어줄 수도 있었다.
물론, 신뢰 관계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나 내부 출입 기자로 들였다가 팀 내 비밀이 허무하게 퍼져나가는 경우도 축구계에 간혹 있는 일이었다.
나는 3부 리그에 올라온 후 기자들을 늘 살펴보고 있었다.
내부 출입 기자 후보는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우리 상황이 급하다고 갑자기 내부 출입 기자로 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제임스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어디 믿을 수 있는 괜찮은 기자 하나 안 떨어지나."
**
"두고 보라지··· 정말 멋진 기사를 써 줄 테니까."
더비 카운티의 관계자를 만난 후, 여유가 생긴 조지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단장이나 구단주가 폐쇄적인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네 능력이 부족한 걸까?'
'좀 더 분발해봐. 들인 노력만큼 성과가 없잖아.'
조지는 엘리자베스의 말을 끊임없이 곱씹으며 의욕을 충전하고 있었다.
"일단 더비 카운티가 2군 선수 하나에 300만 파운드(약 43억 원)를 더해 노팅엄의 알버트를 산다고 했으니···."
혼잣말은 조지의 말버릇이었다.
조지는 끊임 없이 혼잣말하며 이적설에 관한 기사를 완성했고, 일단 업로드한 후 엘리자베스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제 기사는 조지의 손을 떠났다. 엘리자베스가 검토하고 기사를 내리든 그대로 두든 할 것이다.
"멋진 기사를 어떻게 쓰지···."
좀 더 임팩트있고, 노팅엄에 관한 기사라는 의미도 있는 그런 게 필요했···.
"맞아. 알렉산더!"
영감이 떠오른 조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지는 그동안 모아뒀던 노팅엄의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호텔을 떠나 노팅엄의 훈련장으로 가야했다.
*
"죄송합니다만, 기자님은 못 들어갑니다."
"알아요. 기다리려고 온 거예요."
"인터뷰는 구단의 허락을 받고···."
"이미 받았어요. 자요. 허락 받았으니까 주차장 안에 있어도 되죠?"
조지는 자신을 수상하게 보는 경비원에게 열심히 자기변호를 했다. 경비원은 구단의 허가증까지 확인한 후에야 옆으로 물러났다.
아직도 자신을 수상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경비원 몰래 한숨을 쉰 조지는 휑 비어있는 훈련장의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노팅엄 선수의 절반 정도는 이미 퇴근했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알렉산더와 감자 머리 선수들, 그리고 몇몇 선수들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노팅엄 TV에서 볼 수 있듯이 추가 훈련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로드를 비롯한 로컬보이 3인방과 바비가 함께 퇴근했다. 이어서는 감자 머리 선수들이 나왔다. 조지는 그들에게 밝게 인사하며 명함 정도만 건네고 다음에 보자고 말했다.
조지가 기다리는 선수는 알렉산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는 가장 마지막으로 훈련장 정문으로 나왔다.
"샌더스!"
알렉산더는 자신의 성을 부르는 조지를 보며 갸웃했다.
관계자가 아니라면 주차장 안에 들어올 수 없는데, 얼굴이 익숙하긴 한데 누구인지가 기억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누구시죠?"
알렉산더의 공손한 물음에 조지는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스카이스포츠의 조지 웹 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생각났습니다. 작년에 몇 번 인터뷰한 적이 있었죠?"
"예. 맞아요."
"우리 팀에 꾸준히 좋은 기사를 써 주시는 분이고요. 저도 반갑습니다."
노팅엄에 호의적인 기사를 많이 쓰긴 했으나 알렉산더가 알 줄은 몰랐다. 조지는 벌써 주장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구단에 인터뷰 허가를 받았는데 혹시 시간 되시나요?"
*
알렉산더는 조지를 데리고 훈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훈련장 안에는 선수들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게 간식과 음료가 마련된 작은 바가 있었다.
처음 들어와보는 훈련장 내부의 모습에 조지는 끊임없이 두리번거렸다.
"여긴 처음 들어와 보네요."
"자요."
알렉산더가 봉투째로 과자를 담아와서 테이블에 놓았다. 이어서 놓이는 음료는 오렌지 주스다.
조지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오늘 훈련에 관해 간단하게 물어봤다.
알렉산더는 시즌 막바지라 회복훈련 위주로 하고 있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어떤 인터뷰를···?"
알렉산더의 물음에 조지는 헛기침을 하며 생각을 잠시 정리했다.
조지는 노팅엄의 상징, 알렉산더에 관한 특집기사를 내기로 결심하고 여기에 온 거였다.
"샌더스의 축구 인생에 관한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팬들과 주변 선수들, 직원들의 이야기를 모두 모아서요. 샌더스의 축구 인생은 노팅엄의 역사 그 자체니까, 샌더스뿐만 아니라 노팅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음···."
말만 들어도 부담스러운지 알렉산더는 거절하기 직전의 표정을 했다.
조지가 다급히 말했다.
"샌더스는 이번 시즌에 은퇴하잖아요. 샌더스가 그동안 노팅엄에 어떤 걸 남겼는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조지는 은퇴를 앞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하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고 알렉산더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조지는 생각했다.
다행히 알렉산더가 반응을 보였다.
"음··· 제 특집 기사라니···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르겠군요."
"당연히 좋아할 겁니다. 노팅엄의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고 있을 겁니다. 또, 샌더스에게는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거고요."
"나쁜 얘길 들으면 어떡합니까?"
알렉산더의 인간적인 물음에 조지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건 제가 다 잘라내겠습니다. 저는 기자지만, 노팅엄과 샌더스의 팬이거든요."
알렉산더의 허락이 떨어졌고, 다음 날부터 조지의 취재가 시작됐다.
*
조지는 프리미어리그 팀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본업이 있었다.
그렇기에 동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고, 런던에서 더비로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갈 때 노팅엄에 들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만난 건 이년 전 알렉산더와 함께 이슈가 되었던 노팅엄의 부주장이자 로컬보이, 로드 테일러였다.
"캡틴에 관해 기억하는 거요? 당연히 많죠. 근데 저랑 캡틴 사이에 있던 일은 노팅엄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데."
"네, 그건 적당히 넘길 거예요. 사람들이 궁금해할 건 실제로 만난 알렉산더가 어떤 사람이었냐는 거죠."
"아하.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말할 수 있죠."
조지는 로드에게서 황혼기에 접어든 알렉산더, 유소년 선수를 대하는 알렉산더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조지는 노팅엄을 응원한다는 마크가 붙어있는 한 펍으로 향했다. 펍 이름은 오크스. 노팅엄의 골수 서포터들이 모인 장소였다.
"내가 이곳에 막 이사 왔을 때, 알렉산더 샌더스도 이적해 왔지."
"오오, 그렇습니까."
"그래서 내가 노팅엄을 응원한 기간이랑 알렉산더가 이 팀에 있던 기간이랑 같다고."
한 서포터가 정말로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정보를 재미있고 쉽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게 바로 조지가 생각하는 기자의 역할이었다.
알렉산더의 삶을 되돌아보며 노팅엄을 모르는 영국 사람들에게 이 팀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었다.
알렉산더가 프랜차이즈 스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렉산더의 축구 인생은 노팅엄의 역사와 같았으니까.
이번 기사는 엘리자베스 팀장이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며 조지는 열심히 서포터들이 말하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서포터들은 술에 취해 알렉산더에 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 출입문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손님이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오! 우리 단장님 오셨네!"
노팅엄의 사장 겸 단장, 김도운이 인사하면서 들어오다가 서포터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조지와 눈이 마주쳤다.
조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김도운에게 인사했다.
< 20. 내부 출입 기자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