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63화 (63/245)

< 20. 내부 출입 기자 (3) >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지 웹이라고 합니다."

김도운은 조지가 내민 손을 잡으며 인사에 답했다.

"노팅엄의 단장 겸 사장 김도운이라고 합니다. 킴이라고 불러주세요. 음, 어디서 뵌 분 같은데···."

김도운의 의문 섞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에 모여있던 오크스의 서포들의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기자래."

"좋은 기사를 쓰겠다고 해서 인터뷰 해 주고 있었어."

서포터들의 이야기를 듣던 김도운이 조지를 보며 아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조지를 더 관찰하는 듯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김도운의 입가는 살짝 웃고 있었다.

"스카이스포츠 소속 기자분 아닙니까? 이제 생각나네요. 노아와 라이언에 관한 기사부터 시작해서 저희 팀을 긍정적으로 보는 기사를 많이 써주셨죠."

"절 아시는군요···."

조지는 며칠 전처럼 또 놀랐다.

알렉산더와 똑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무슨 기사를 쓰시려고···."

김도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지는 바로 답했다.

"알렉산더에 관한 기사를 써 보려고 취재 중이었습니다."

"어떤···?"

"그의 축구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사를 쓰려 합니다."

김도운이 서포터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조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한테는 선물 같은 기사겠군요. 알렉산더에게도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펍에 오셨나요?"

"아, 별 이유 없어요. 평소에도 자주 놀러와요."

서포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새 김도운에게 맥주를 권하고 있었다. 김도운은 맥주를 받아들고, 조지 옆에 앉아 서포터들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맥켄지 아저씨, 살 더 찐 거 아니에요?"

"으하하, 푸드 코트에 새로 들어온 스테이크 가게가 내 취향이더라고."

"적당히 드세요. 그래야 더 오래 표 팔아먹으니까."

김도운의 농담에 서포터들이 와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는 넌 우리 구단만 키우다가 애 못 키우게 되는 거 아냐? 연애는 언제 하려고 그래! 하하하."

살이 쪘다고 공격받은 맥켄지가 김도운에게 반격했고, 김도운의 얼굴이 굳는 걸 보며 서포터들이 또 한 번 웃기 시작했다.

"그럼, 일 그만두고 연애나 시작해 볼까요."

"맥켄지, 빨리 맥주 원샷 해."

"단장님이 화내시잖아."

김도운이 나름 반격해 봤지만 서포터들은 장난스럽게 받았다.

"내가 두 잔 연속으로 마시는 묘기를 보여줄 테니 봐 달라고. 하하하."

맥켄지는 정말로 맥주를 두 잔 연속으로 마셨다. 김도운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조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동안 봐온 단장 겸 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서포터들과 이렇게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들은 보통 팀의 경영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기에 서포터들을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생각한다. 그들이 신경 써야 하는 건 오직 구단주니까.

이게 바로 유소년 출신 단장 겸 사장의 장점이라는 것일까.

김도운에 관한 기사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팀 재계약이나 이적은 어떻게 되는 거야?"

조지는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김도운과 서포터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최근 노팅엄에서 화제인 이야기.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을 들을 게 뻔한데 여기까지 온 김도운이 이상했다.

하지만, 김도운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비밀유지조항이나 다른 구단, 선수들과의 관계 때문에 뭐가 어떻게 되고 있다··· 라고 얘기하긴 그렇네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2부리그 승격을 대비해서 선수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거예요."

김도운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지는 왠지 모르게 김도운이 유난스러운 몸짓을 보인다고 느꼈다.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나 활짝 핀 어깨와 가슴. 그리고 느릿하게 서포터들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우리 미스터 킴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번에도 칼이나 바비, 감자 머리 선수들처럼 특별한 선수를 데려오는 거야?"

이어서 서포터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고, 펍 안은 왁자지껄해졌다. 호기심과 걱정이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을 쭉 지켜본 조지는 속으로 감탄했다.

의도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나이 많은 단장이나 사장이 보여줄 만한 노련한 기술이었다. 서포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 두면 금세 다른 서포터들, 그리고 팬들에게도 퍼져나갈 테니 효과도 좋을 테고.

언제 김도운의 기사를 쓰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김도운이 말을 걸어왔다.

서포터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고, 조지는 김도운과 단둘이 대화하게 되었다.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요."

"왜 노팅엄에 관한 좋은 내용의 기사들을 써 주시나요? 알아보니 기자님은 프리미어리그의 더비 카운티를 담당하는 기자님이시던데."

"아, 그건···."

못 할 말도 아니었기에 조지는 왜 자신이 노팅엄의 팬이 되었는지 김도운에게 차근차근 얘기해줬다.

"저는 노팅엄시 출신이고 축구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노팅엄 FC나 노츠 카운티를 응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경기 수준이 낮아 보였었거든요."

혹여나 서포터들이 노할까 조지가 작게 말했다.

"그래서 어릴 때는 AC밀란,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펩이 온 후의 맨체스터 시티 같은 팀을 응원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강팀들을 사랑했죠."

조지는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축구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다고 했다. 그리고 영국 축구계 전체를 주무를 수 있는 기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물론 그의 목적은 영국의 하위권 팀들이 아닌 최상위 팀들의 모든 정보를 아는 기자였다.

조지는 신입 때부터 하부 리그의 구단들을 적극적으로 두들기며 구단 출입 기자가 되었다. 모든 이적은 이어져 있고, 정보는 많을수록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부임하고 얼마 안 지나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노팅엄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하더군요."

푸드 코트의 고급화, 특별 이벤트 정도는 미국의 구단이나 유럽의 유명 구단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노팅엄 TV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자 시점에서 봤을 때, 어느 정도 싹이 보이는 구단이었기에 구단 내부 출입 기자가 될 구단 후보로 선정하고 자주 찾아왔을 뿐이었다. 고향이니까 찾아오기도 쉬웠고.

그때까지만 해도 조지는 노팅엄에 애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로드와 알렉산더의 관계를 들으며 축구 팬으로서 갖고 있던 로망을 떠올렸고, 라이언과 조로증을 앓고 있는 노아와의 교감을 보며 축구라는 스포츠에 관해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노팅엄의 팬이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기사를 쓰게 된 거죠."

"그렇군요."

김도운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조지를 보고 있었다.

김도운이 이어 말했다.

"내부 출입 기자에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뭐, 그렇죠. 많이 알게 되면 좋으니까요."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다. 조지는 생각에 빠진 김도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도운이 말했다.

"연락처 좀 주시겠어요."

조지가 명함을 꺼내 김도운에게 넘겼다.

김도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마음에 들지만, 직원들과 감독님, 선수들과 상의할 시간이 필요해요. 대신 오늘은 지금 쓰고 있는 기사를 쓰는 걸 도와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알렉산더의 기사요?"

"네, 제가 알렉산더랑 친분이 있거든요. 막 노팅엄에 이적해 왔을 시기의 모습을 아주 잘 알죠."

"아, 유소년 출신이라고 하셨었죠?"

"네, 그리고···."

조지가 고개를 갸웃하자 김도운이 말했다.

"구단에서도 돕겠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알렉산더에 관한 이야기를 모으겠다고 공지하겠습니다."

"와우···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기사를 쓰는 데 구단이 도와준단다. 이런 적극적인 협력을 처음 본 조지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김도운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알렉산더에 관한 건 은퇴식만 준비하고 있었는데··· 특집 기사까지 써 주신다니 정말 기쁘네요."

"아닙니다. 제가 쓰고 싶어서 쓰는 건데요."

"기사는 언제쯤 완성될까요?"

"일주일이요."

미리 정해놨기에 쉽게 답할 수 있었다.

김도운이 이어서 말했다.

"그럼, 기사가 올라가기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줄 수 있나요?"

어려운 부탁인 줄 알고 긴장했던 조지는 이내 표정을 풀고 편하게 대답했다.

"네, 그 정도야 뭐."

**

김도운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조지는 훨씬 더 수월하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먼저 조지는 이번 시즌 후반기부터 도르트문트의 주전으로 도약한 칼 슈나이더와 통화했다.

-으음··· 캡틴에 관한 거라···.

"아직도 캡틴이라고 부르나요?"

-예, 뭐. 알렉산더 샌더스라는 이름보다는 캡틴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서요.

조지는 묻고 칼은 답했다. 칼은 점점 편해지는지 술술 얘기했다. 어느 정도 얘기가 다 나왔다 싶었을 때, 조지가 칼에게 물었다.

"정리하면요?"

-캡틴은 팀의 베테랑이 무얼 해야 하는지 정말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적응하지 못할 때, 무리하게 말을 걸지 않고 전술 설명이나 장비 관리사가 축구화를 어디에 갖다 놓는지 같은 딱 필요한 것만 도와줬었거든요.

"오오. 세심하네요."

-그렇죠. 또, 필드 위에서는 팀의 에이스가 뭘 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지고 있을 때와 이기고 있을 때 둘 다 말이죠. 캡틴에게 이런 걸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 도르트문트에서 이 정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을 거예요. 캡틴은 은퇴하더라도 캡틴이 가르쳐 준 건 제가 기억할게요.

좋은 마무리라 생각됐기에 조지는 고맙다고 말했다.

칼은 김이 새는지 이렇게 물었다.

-끝이에요?

그러고 보니 칼에게 부탁할 게 있었다. 김도운 단장은 칼을 얘기할 때,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미묘한 반응을 보였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나중에 김도운 단장에 관한 특집기사를 써 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나요?"

-오, 정말요? 얼마든지 도와드릴게요. 할 말 많아요.

역시나였다.

이어서 만난 건 구단의 공지를 통해 알게 된 알렉산더와 같은 시기에 노팅엄에 온 팬이었다.

조지는 그 팬과 경기장에서 만났다.

"저는 그때 막 스무 살이 됐었고, 노팅엄의 한 양조장(술을 만드는 곳)에 취직해 노팅엄으로 왔었습니다. 그 당시 양조장의 직원들은 모두 노팅엄을 응원했고, 저는 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팅엄을 응원했었죠. 그러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사해온 날에 이적해 온 알렉산더 샌더스라는 신입 선수였습니다."

필드에서 할리가 슈팅을 하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다. 조지와 팬은 할리에게 열심히 손뼉을 쳐 줬다.

오늘은 3월의 첫 경기가 한창이었고, 승점 차이가 불과 2점인 3위 팀과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패배한다면 2위나 승격 직행이 불가능한 3위까지 떨어질 수 있어 몹시 중요한 경기였다.

알렉산더가 출전했다면 팬과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역시나 알렉산더는 교체 명단에 있었다.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알렉산더 샌더스라는 신입 선수에 관심이 생겼다고요."

"그렇죠. 저는 노팅엄 경기를 볼 때마다 알렉산더를 응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팀에 애정이 생겼고, 알렉산더가 뛰지 않는 경기에도 노팅엄을 응원하게 됐죠."

팬은 낯선 노팅엄시에서의 생활을 알렉산더와 노팅엄 FC라는 팀을 응원하며 견뎠다고 했다. 특히 알렉산더와는 동병상련 비슷한 걸 느껴서 더 애정을 가졌다고 했다.

"노팅엄시에 온 지 3년쯤 됐을 때, 중간에 일을 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 알렉산더가 나오네요."

팬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열렬하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주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은퇴 날짜가 다가올수록 팬들은 알렉산더가 선발로 나오든 교체로 나오든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박수를 끝낸 후 팬이 돌아오며 말했다.

"그때 마침 알렉산더도 슬럼프에 빠져 있었죠. 700분 동안 공격포인트가 없었나···? 아마 맞을 겁니다. 경기를 보는 재미도 없었고, 일하기도 싫었던 저는 노팅엄을 떠날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주에 일을 그만두자··· 라고 생각했을 때, 알렉산더가 골을 넣었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한 거죠."

팬은 그날을 떠올리는지 경기장을 보고 있었지만, 눈에 초점이 없었다.

"한 주만 더 있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알렉산더의 경기를 보고, 뭔가 찝찝해졌었거든요. 알렉산더는 다음 경기에서도 또 골을 넣었고, 그다음 경기에서도 넣었습니다. 그렇게 그 시즌에 알렉산더는 2부리그 득점 2위를 했습니다.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했었고요. 그리고 저는··· 어느새 슬럼프를 극복했었죠."

팬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팬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알렉산더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조지는 팬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팬은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는 그의 가족사진이 있었다.

"그때 고향으로 돌아갔더라면 지금의 가족을 만나지 못했겠죠. 알렉산더와 노팅엄은 제 인생의 동반자이고, 인도자였습니다."

이날, 노팅엄은 선제골을 먹혔고, 교체로 들어간 알렉산더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아슬아슬하게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조지는 알렉산더의 도움을 받아 팀 닥터로 진로를 잡은 마야라는 학생도 만났다. 또, 노팅엄을 거쳐 간 선수들과도 연락했다. 직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고, 지금의 노팅엄 선수들과도 인터뷰했다.

조지는 심지어 휴가까지 내고 뭔가에 홀린 듯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모았다. 정신없는 일주일이 그렇게 지났고, 김도운의 메일함에 조지가 보낸 메일이 왔다.

"벌써 다 쓴건가."

김도운은 메일함을 열었다.

맨 위에는 <불탔던 숲 노팅엄 FC와 불을 견뎌낸 거목, 알렉산더 샌더스> 라고 적혀있었다.

< 20. 내부 출입 기자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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