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67화 (67/245)

< 22. 로드와 검은 고양이 (1) >

훈련 후 드레싱 룸에 선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즌 초반처럼 어마어마하게 힘든 훈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라 다들 체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라이언이 말했다.

"얘들아. 이거 봐. 조지가 SNS에 글 올렸어."

자신의 자리에 누워있던 로드가 벌떡 일어났고, 어제 했던 게임에 관해 신나게 잡담하던 바비와 할리가 라이언에게 다가왔다.

노팅엄의 유일한 내부 출입 기자가 된 조지의 이름은 이제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노팅엄에 관한 좋은 기사를 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보다 먼저 구단의 이적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헌터 형제? 걔네 저번 리그 경기에서 진짜 잘하던데. 바비, 너 원정 경기에서 큰 헌터(테디 헌터)한테 알까기도 당했잖아."

"우연이야. 파인 잔디 밟고 균형 잃어서 그런 거라니까."

"우연은 무슨. 아무튼, 이제 너 맨시티로 돌아가도 괜찮겠다."

"나랑 얘네가 비교가 되냐? 난 다음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고."

할리와 바비가 투닥거리는 사이 라이언과 로드가 SNS 내용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감자 머리들도 떠나는구나···."

조지의 글에는 '헌터 형제의 영입이 다가왔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모두 떠난다.'라고 적혀 있었다.

로드의 중얼거림에 라이언이 소심한 반박을 했다.

"아무리 내부 출입 기자라고 해도 100%는 아니잖아."

"감자 머리들은 떠날 기회가 생기면 떠난다고 했잖아. 조지가 적어놓은 팀들 봐봐. 알버트는 무려 뉴캐슬이고 나머지 선수들도 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것 같은데."

로드와 라이언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우울한 얼굴을 했다. 라이언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헌터 형제 이적료 얼마인지 봤어? 굉장하지 않아?"

조지는 겨울 이적시장에 헌터 형제에게 관심을 보였던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기사를 참조해 노팅엄이 지급할 이적료 추정액을 적어뒀다.

"형이 1,200만 파운드였고, 동생이 800만 파운드쯤 될 거라고 했지. 둘 다 칼보다 더 비싸네."

"칼은 바이아웃이 있었잖아. 그리고 조지가 우리 단장님이 더 깎을 거라고 적어뒀어."

"흐음··· 진짜 대단하다. 우리보다 한두 살 어린 애들인데 벌써 이 정도로 평가받다니."

그때,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드는 낮은 목소리가 있었다.

"너희도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제안을 받았잖아. 아마 너희 이적료도 저 정도는 됐을 거다. 이 나이에 3부 리그 1위 팀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건 정말 굉장한 거니까."

알렉산더가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덮은 채 와 있었다.

알렉산더가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리고··· 고맙다."

알렉산더는 노팅엄을 자신의 집처럼 여기고 있었고, 프리미어리그 팀의 제안을 쉽사리 거절할 수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그런 마음을 담아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드와 할리, 라이언은 다르게 알아들었다.

"에이, 뭘요."

"전 여기가 그냥 좋아서 남은 건데요. 캡틴 때문에 남은 거 아닌데."

"음··· 하하. 저는 별생각 없었네요. 감독님이 좋아서 남았어요."

셋에게는 알렉산더 자신을 위해 남아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들렸다. 그래서 로드는 살짝 헤벌쭉해졌고 나머지는 어색한 얼굴들을 했다.

셋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알렉산더는 자신의 말이 이상하게 전달됐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나 때문이 아니라 노팅엄에 남아줘서 고맙다는 의미의···."

"음··· 그런 거로 해 드릴게요. 부끄러울 수 있죠. 이해해요."

알렉산더는 자연스럽게 변명해보려 했지만, 할리가 놓치지 않고 물어뜯었다.

드레싱룸은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로드의 웃음은 다른 선수들보다 빨리 멈췄다.

**

집 앞에서 할리와 헤어진 로드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아이고, 오늘도 고생 많았다."

어머니가 먼저 맞이해줬고, 이어서 아버지가 맞이해줬다.

"왔어? 오늘도 잘했냐?"

"괜찮게 하고 왔어요. 오늘 휴일이세요?"

"그래. 오늘은 네 엄마랑 데이트하려고."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게 들리네요."

"너 온 거 봤으니 우린 가 보마."

자세히 보니 부모님 둘 다 외출복이었다.

돌아오자마자 부모님을 배웅한 로드는 부모님이 준비해놓은 저녁을 먹으며 TV를 켰다.

노팅엄의 지역 방송으로 채널이 맞춰져 있었다.

-···최근 포레스트에서는 경기장의 남쪽 문 앞에 캡틴의 동상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팅엄 FC의 팬들은 거의 다 돌아온 거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관광객들 때문에 현지 팬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노팅엄은 애초에 노츠 카운티보다 팬이 두 배는 많았다.

그렇기에 노팅엄시는 그동안 팀에 헌신에 온 캡틴 알렉산더 샌더스에 관한 얘기로 늘 들썩이고 있었다.

"대단하다···."

로드 자신 또한 알렉산더를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부주장을 맡아 주장이나 다름없는 일을 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12월경부터 달라진 알렉산더의 모습이나 알렉산더의 한 마디에 따르는 선수들을 보고, 이번에 나온 기사까지 보면서 자신이 저렇게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 괜찮은 건 알렉산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

고민을 마땅히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다.

라이언이나 할리와는 이런 진지한 얘기를 하는 걸 피하는 편이었고, 방금 데이트하러 나간 부모님은 어린 시절부터 '로드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마인드여서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웠다.

평소에는 참견하지 않는 부모님이 편했지만, 지금만큼은 옆집에서 할리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을 녀석의 부모님이 부러웠다.

물론, 할리의 부모님들은 할리가 로드 같았으면 한다는 소리를 매번 하시지만.

"아."

문득, 로드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로드는 스마트폰을 꺼내 칼과 자신의 고민을 쉽게 해결해 준 김도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래서. 무슨 일이야?"

선수가 따로 전화를 걸어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었다.

재계약을 해 달라고 하거나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고 하거나··· 회귀 전에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선수도 있었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로드가 전화를 걸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리고 로드에게서 앞으로 주장직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듣는 순간,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상담사가 아니라고···."

"잘하시잖아요."

"에휴··· 그래."

칼이나 로드나 자기 멋대로 좋게 해석해 놓고 선수단에 소문까지 내 버리는 바람에 최근에도 감자 머리 선수 중 하나의 상담을 해 준 적이 있다.

막상 프리미어리그에 가게 되는 게 두렵다고 했었지.

나는 이적료를 벌어야 해서 이적을 재촉했는데 감자 머리 선수가 그걸 내가 도전을 응원한다고 착각해서 감자 머리 선수들 사이에서의 내 이미지가 좋아졌었다.

선수들의 상담을 해 주면 늘 이런 식으로 좋게 흘러가서 요즘은 스포츠 심리 상담사를 영입할 돈을 아끼고 그냥 내가 겸직을 할까 싶기도 했다.

나는 로드에게 말했다.

"많이 힘들어?"

"심하지는 않아요."

로드는 내년에는 주장을 달고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고, 알렉산더에게 주장을 이어받았다는 스토리로 여러 마케팅의 선봉장이 되어줘야 하는 아주 중요한 선수였다. 또한, 로컬 보이로서의 가치까지 있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물었다.

"캡틴한테는 안 가봤어?"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하겠다고, 컨디션 조절에만 집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해요."

로드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도 바쁘거든?"

"에이, 단장님~."

로드가 씩 웃으며 싹싹하게 말해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컨디션은 어때?"

선수는 아무 고민 없이 축구에만 집중하는 게 최고였다.

고민이 생기면 경기력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다행히 로드는 지난 경기까지만 해도 평점 8점으로 MOM을 받았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으로 골을 넣었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내서.

"지금은 괜찮은데 요즘 좀 피곤해지고 있어요."

"음··· 넌 취미 같은 거 없어? 할리가 그림 그리고 SNS하고 이것저것 하는 것처럼 말이야. 라이언도 퍼즐 맞추기나 레고 만들기 같은 거 하던데."

"그런 걸 다 알고 계세요?"

"선수 관리는 감독뿐만 아니라 단장도 해야 하는 거니까. 아무튼, 너는 쉴 때 뭐하니?"

내 물음에 로드는 턱을 잡은 채 천장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는 이렇게 답해줬다.

"···그러게요? 저 쉴 때 아무것도 안 하고 뮤튜브 추천 채널이나 TV 보는데요. 가끔 할리나 라이언이 놀자고 할 때 노는 게 다고."

데이비드 워커나 크리스 앨런 같은 축구를 워낙 사랑해서 훈련이나 경기가 곧 에너지가 되는 선수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선수들에게는 축구로 생긴 피로를 잠시 잊을 무언가가 대부분 필요했다.

직장인들처럼 8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많으면 네시간 훈련하고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었으니까.

나는 로드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스트레스 해소는 프로 선수로서 꼭 필요해. 넌 공부를 좋아했으니까 책을 더 읽어보는 건 어떨까? 자격증을 따놓는 것도 괜찮고. 그리고··· 스포츠 심리 상담사도 소개 해 줄게. 여름부터 고용할 사람을 미리 데려오면 되니까."

내 말에 로드가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대답한 후 잠깐 침묵이 생겼고, 로드는 분위기가 간질간질했는지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선수도 둘이나 영입하고, 스포츠 심리 상담사도 영입하고··· 그렇게 막 영입해도 괜찮은 거예요?"

"왜 그런게 궁금해?"

"전 다음 시즌부터 주장이잖아요. 이것저것 알아 둬야죠."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로드의 말에서 녀석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로드에게 오늘 대화 중에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혼자 이것저것 신경 썼던 알렉산더가 특이한 거야. 너는 그럴 필요 없어."

"왜요?"

"너는 알렉산더처럼 혼자가 아니잖아. 유능한 동료들이 있고, 나도 있고."

내 장난스러운 말에 로드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잘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우리는 앞으로 알렉산더가 이룬 것만큼의 업적을 쌓으러 갈 거야. 너도 알렉산더의 나이쯤 되면 지금의 알렉산더만큼 칭송받을 수 있을 거고."

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얘 사춘긴가 봐."

"집에 무슨 일 있는 걸까?"

할리와 라이언은 아까부터 로드를 두고 속닥거리고 있었다. 반복되는 둘의 말에 지친 로드는 로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멍하니 있고 싶다니까. 훈련 끝났으면 집에 가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네가 요 며칠 동안 말도 별로 안하고 철학자처럼 멍하니 있으니까 그랬지."

김도운 단장은 좋은 말을 해줬지만, 로드는 여전히 막막한 기분이었다. 이 나이에 주장을 맡아도 되는 건지에 관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욕먹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훈련 때 잡생각들을 많이 했고, 훈련이 끝나면 지금처럼 노팅엄의 빈 경기장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는 필드와 관중석을 멍하니 보곤 했다.

너무 답답해서 시간이 두 달만 빠르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면 프리시즌에 막 들어섰을 테니까.

'너는 알렉산더처럼 혼자가 아니잖아. 유능한 동료들이 있고.'

로드는 김도운이 말한 유능한 동료에 들어가는 두 친구를 흘긋 보고, 다시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너희들 노팅엄 안 떠날 거지?"

"뭐? 여름에는 떠나야지. 나 이번에는 동남아시아에 예약도 잡아 뒀다고."

"아니, 이 멍청한 놈··· 에휴."

할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라이언이 포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앞으로도 여기서 뛰고 싶으니까."

라이언의 대답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로드는 아직도 자신이 왜 멍청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는지 어리둥절한 할리를 가리키며 라이언에게 말했다.

"쟤 좀 데리고 먼저 가 봐. 난 좀 생각할 게 더 있어서."

라이언이 할리를 데리고 사라졌다.

로드는 조금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아무것도 없던 광고판 위로 검은 무언가가 폴짝하고 올라왔다.

"···깜짝이야."

검은 고양이었다.

검은 고양이의 호박색 눈동자가 로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기본적으로 검은 고양이는 불길한 징조를 의미했다.

로드는 괜히 기분이 나빠져 손을 휘적이며 훠이 소리를 내 고양이를 쫓아내려 했다.

멀리서 한 손짓이었지만, 고양이는 순순히 광고판 뒤로 폴짝하고 사라졌다.

"애옹."

작은 울음소리를 남기고.

< 22. 로드와 검은 고양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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