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68화 (68/245)

< 22. 로드와 검은 고양이 (2) >

"뒤에 그 애는 네가 데려온 거니?"

집에 도착해서 신발을 막 벗으려던 로드에게 로드의 엄마가 갸우뚱하며 한 질문이었다.

틀림없이 혼자서 집에 돌아온 로드는 소름이 끼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닫힌 문이 먼저 보였고, 로드는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검은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왜 애라고 해서 사람 놀라게 해요···."

로드의 발밑에는 자신의 배를 혀로 핥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로드의 시선을 느낀 건지 핥는 걸 멈추고 바르게 고쳐 앉아 로드를 빤히 올려다 봤다.

"아까 그 고양이인가?"

검은 털에 호박색 눈동자. 경기장에서 만난 고양이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보통 고양이보다 체구가 작았다. 아마 아직 어린 고양이 같았다.

로드와 고양이는 한참 동안 눈싸움을 했다.

처음 경기장에서 만났을 땐 불길한 눈동자라고 느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고양이의 호박색 눈동자가 천진난만하다고 느껴졌다.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건지 모르겠지만, 집안에 고양이를 들일 수는 없었다.

로드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양이를 양손으로 잡아들었다.

고양이는 예상외로 반항 없이 늘어졌다.

"엄마, 문 좀 열어주세요."

"귀여운데 조금만 더 여기 두면 안 될까?"

"아빠 고양이 알레르기 있잖아요. 빨리 내보내야 해요."

로드의 말에 로드의 엄마는 살짝 감동한 얼굴을 했다.

"그것까지 알고 있었니?"

"저 일곱 살 땐가 고양이 데려왔다가 내보냈었잖아요."

"역시 우리 로드 똑똑하고 배려심도 많아요··· 괜히 우리 노팅엄 FC의 부주장이 아니라니까? 기특해 죽겠어."

"왜 그 얘기가 나와요. 빨리 문 좀 열어주세요."

로드의 엄마는 문을 열어주었고, 로드의 손에 안겨있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걸 확인한 로드는 고양이를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서 아직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와 눈을 맞췄다.

"왜 집까지 따라온 거야. 이제 가."

아까와 똑같이 손을 휘저었는데도 고양이는 그저 로드를 향해 울뿐이었다.

"애오옹."

"뭐?"

"애오."

"···가기 싫다고?"

"오옹."

마치 대화가 되는 것 같은 기분에 로드는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고양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쭉 켰다. 이제야 떠나나 싶었는데 오히려 쪼그려 앉은 로드의 다리 사이를 누비며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애옹. 애옹."

"대체 뭐야···."

경기장에서 불길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며 훠이훠이 하며 쫓아냈던 게 미안해지는 애교였다.

로드는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작은 머리를 만졌다.

고양이는 기분 좋은지 그르릉 소리를 냈다.

로드는 더 용기를 내서 등을 쓸었고, 아까부터 자신 쪽으로 향해있는 꼬리를 만지려다가

"냥."

고양이의 주먹에 맞았다.

"꼬리는 싫다 이거냐."

로드가 투덜거리는데 다시 현관문이 열리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드, 이거 그 아가한테 주렴."

"연어예요?"

"그래. 오늘 저녁에 연어구이 하려고 낮에 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연어야. 손님 대접은 해야지."

엄마가 내민 접시에는 싱싱해 보이는 연어 살이 엄지만 한 두께로 많이 썰려 있었다.

로드는 접시를 받아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고, 고양이는 냄새를 맡을 틈도 없이 접시에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배고팠나 보네. 엄마는 다시 들어가 볼게."

"네. 전 접시 들고 들어갈게요."

로드는 멍하니 고양이가 연어를 먹는 걸 구경했다. 별거 아닌 장면인데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연어 조각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고양이는 고개를 들어

"애옹?"

더 없냐는 듯 물어봤다.

"없어. 이제 가."

"애오오···."

로드의 단호한 말에 고양이는 시무룩한 울음소리를 내고, 계단을 폴짝폴짝 내려갔다. 그리고 로드를 흘긋 보고는 관목 사이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로드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밥 달라고 따라온 거였어?"

로드는 이제야 진짜로 퇴근할 수 있었다. 로드는 방에 돌아가 짐을 풀었고,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잠시 후, 아빠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하는 소리에 로드는 현관으로 나왔다.

"로드, 내 아들. 오늘도 잘했냐."

"그냥저냥 했어요. 수고하셨어요."

로드는 아빠와 가볍게 포옹했다. 그리고 아빠는 신발을 마저 벗지 않고 로드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근데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었니?"

"네? 별일 없었는데요."

로드의 대답에 아빠는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왠지 기분 좋아 보여서."

아빠의 말에 로드는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면 아까부터 뭔가 기분이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

"로드! 좋아! 그거다!"

잭슨 감독의 칭찬이 훈련장에 울려 퍼졌고, 선수들은 놀란 얼굴들을 했다.

특히 로드가 가장 놀랐다.

잭슨 감독은 평소에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끝까지 집중해라!"

방금 했던 플레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무척 괜찮긴 했다.

B팀의 기습적인 패스를 예측하고 뛰쳐나가서 헤딩으로 끊어냈다.

자신이 끊어낸 공을 선수들이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바로 위기를 맞이했지만, 공 주변에 있는 선수에게 빠르게 지시해 압박하게 하고, 자신은 빠르게 뒤로 복귀하며 우왕좌왕하는 수비수들을 독려해 순식간에 탄탄한 수비진형을 완성했다.

그래서 B팀은 제대로 역습도 못 하고 공을 돌리다가 결국 빼앗겼고.

"너 오늘 폼 진짜 좋은데?"

"그러게요."

수비 파트너 사무엘의 칭찬에 로드는 적당히 대답했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오늘 왜 이렇게 훈련이 잘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로드는 훈련 끝까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플레이를 했고, 훈련 종료 후에는 잭슨 감독에게 따로 불려가서

"내가 여태까지 너한테 원했던 게 바로 오늘의 플레이다. 너는 시야가 넓고 판단력이 좋으니 오늘처럼 주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해. 다음 경기에서도 오늘처럼만 해주면 좋겠구나."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칭찬이 계속되자 헤벌쭉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선수들의 칭찬까지 받으며 샤워를 마친 로드는 바비, 할리, 라이언과 함께 훈련장을 나섰다.

"너 오늘 약이라도 한 거야?"

"그럴 리가 있냐."

할리의 어처구니없는 진지한 물음에 로드가 그렇게 답했다.

그렇게 훈련장 주차장 문으로 걸어 나가는 데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애옹."

어제의 검은 고양이였다. 자신이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생각하는 동안 고양이가 사뿐사뿐 다가와 로드의 종아리 부근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얘 뭐야? 로드, 너 고양이 키우냐?"

"아니, 어제 집까지 쫓아와서 밥 준 게 다야."

"오오. 그래? 얘 진짜 귀엽다. 흑표범 같아."

할리는 조잘거리며 쪼그려 앉았고, 바비 또한 홀린 듯한 눈으로 고양이를 보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급하게 손을 내밀어 고양이의 머리를 만지려 했고

"니야아앗!"

고양이의 주먹질에 동시에 손을 빼게 됐다. 좀 더 늦게 뺀 바비의 손은 고양이가 할퀸 상처로 붉어져 있었다.

이어서 고양이는 바비와 할리를 보며 하악질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할리와 바비 모두 당혹스러워했다. 특히 바비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로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비, 괜찮아?"

"이렇게 귀여운데 만질 수가 없다니···."

바비는 정말 침통해 보였다.

로드 또한 조금 놀라 있었다. 어제 엄마가 만져도 순하게 있었던 고양이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자신에게도 발톱을 드러낼까 걱정스러워서 한 걸음 물러났지만, 고양이는 로드를 쫓아오며 얼굴을 비비적댔다.

로드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머리를 만졌다. 좋다고 그르릉거린다.

그 모습을 보며 할리는 억울한 얼굴을 했다.

"뭐야 대체. 왜 로드한테만 비비적거리고 우리 손은 싫어하는 거야."

로드에게 한참 동안 비비적거린 고양이는 아까부터 몇 걸음 떨어져서 창백한 얼굴을 한 라이언에게 다가갔다.

"어, 어, 야, 로드. 고양이 좀 붙잡아줘. 나 고양이 무서워."

하지만 로드가 움직이기 전에 고양이가 라이언의 종아리에 도착해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충분히 즐긴 건지 바싹 굳은 라이언에게 애옹거린 고양이는 다시 로드에게 다가와서 몸을 비볐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로드는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줬다. 기분 좋다는 듯 그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 보고 있던 바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로드, 어떻게 고양이랑 그렇게 친할 수 있는 거야? 나도 만져보고 싶어."

"음···."

고양이가 왜 자신을 따르는지 영문을 모르는 로드는 가방을 뒤적여 고양이용 간식을 꺼내 들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홀린 듯이 산 물건이었다.

"이거 주면서 만져봐. 쟤 먹을 거 정말 좋아하거든. 그리고 아까 너무 급하게 만지려고 해서 애가 놀란 것 같아. 그러니까 천천히 만져봐."

"고마워!"

간식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바비는 고양이를 무사히 만질 수 있었다. 라이언도 덜덜 떨면서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하지만, 할리만큼은 간식을 갖고 다가가도 급히 손을 내미는 바람인지 고양이가 머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할리의 손은 더 빨라졌고, 고양이는 민첩하게 할리의 손길을 피했다.

"애옹."

마침내 간식을 다 먹은 고양이는 할리에게 이렇게 울어주고 총총걸음으로 로드에게 다가왔다.

결국, 고양이를 만지지 못한 할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 망할 고양이가."

로드는 고양이용 사료를 꺼내서 그릇에 담아 줬다. 이것들도 아침에 홀린 듯이 산 물건이었다. 왠지 오늘도 얠 만날 것 같아서.

"애오옹."

로드는 고양이가 저녁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고양이가 식사를 마치고 기지개를 켠 후, 로드는 주변의 친구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로드, 너 방금 변태같이 웃었어."

"뭐? 내가 언제."

할리의 말에 로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음··· 변태 같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긴 했지. 좀 느끼했어."

"···."

바비가 이어서 말했고, 로드는 갸웃하며 얼굴로 불만을 드러냈다. 로드 자신은 느끼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라이언이 말했다.

"너 되게 기분 좋아 보였어. 얘 길러보는 건 어때? 잘 맞는 거 같은데."

"애오옹."

마치 '날 키워라.'라고 말하는 듯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가 알레르기 있어서 안 돼. 그리고 책임질 자신도 없고."

하지만, 고양이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찾아왔다.

이번 주 경기가 열리기 전날까지도.

**

"큼큼."

로드는 헛기침하며 선수들의 시선을 모았다.

오늘은 리그 42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오늘 경기를 포함해 다섯 경기.

4위와의 승점 차가 아직도 4점인 만큼 모든 경기에서 이긴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

홈경기였고, 리그 중하위권 팀인 콜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나는 것이기에 꼭 이겨서 1위를 사수해야 했다.

"콜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하위권 팀들에게는 약했지만, 4위 이상의 상위권 팀들 상대로는 50% 확률로 승점을 따낸 팀이야. 그러니까, 절대 방심하면 안 돼."

선수들이 방심하지 않도록 콜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는 걸 되새겨 줬다.

로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 팀의 선수들을 노려봤다.

지금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 직전, 선수들을 잠깐 모아 주장이 연설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부주장인 로드가 거의 다 하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선발로 출전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로드는 경기 전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매번 고민했다. 유튜브로 유명한 연설을 찾아보기도 하고, 책에서 명언을 찾아와서 말하기도 했다.

오늘처럼 상대적인 약팀을 상대로 방심할 것 같을 때는 그 팀의 경계할 점을 집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방금처럼 말한 것이다.

로드는 고개를 돌려 벤치에 앉아있는 알렉산더를 바라보았다. 알렉산더가 자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 오늘 경기도 잘 해보라는 의미였다.

알렉산더는 이 피곤한 걸 십여 년 동안 해온 거였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드는 상념을 떨쳐내기 위해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모여있는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가자! 노팅엄!"

"가자!"

선수들이 로드의 외침을 따라 외치고, 자신의 포지션으로 흩어졌다. 노팅엄의 선수들이 준비된 걸 확인한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와아아아아아!>

휘슬과 동시에 노팅엄의 서포터즈 포레스트의 함성과 응원가가 쏟아졌고, 로드는 달리기 시작했다.

*

"빌어먹을···."

로드는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쳐다봤다.

후반전 12분.

현재 스코어는 0-0.

홈이고 상대는 중하위권 팀인데 경기가 잘 안 풀리고 있었다.

흐름이 좋지 않았다. 경기는 노팅엄이 주도했지만, 마무리 패스나 슈팅이 잘 되질 않았다. 오히려 콜체스터의 역습이 더 날카로웠다. 로드가 기억하기로는 콜체스터의 유효슈팅이 더 많았다.

"다들 정신 차려!"

이런 추상적인 말 밖에 못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선수들의 컨디션은 분명 좋았다.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오늘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경기는 각자가 아닌 하나의 팀이 되어서 경기에서는 간혹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그게 전체로 번져나갈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경기 초반, 바비와 할리가 호흡이 맞지 않아서 중요한 찬스를 날린 후부터 경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선수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다운돼 있었고, 상대 팀의 선수들은 신이 난 건지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주장으로서 어떻게든 해야 했다.

상대 팀의 흐름을 끊던가, 우리 팀의 기세를 올리던가.

로드는 상대가 기세 좋게 들어올 때 거친 태클을 시도할 것인지, 자신이 전진해서 중거리 슛을 때려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삑, 삑, 삑.

그때, 심판의 다급한 휘슬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심판은 선수들에게 공을 멈추라는 지시를 했다.

"관중이라도 들어왔나?"

로드의 수비 파트너 사무엘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안전요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로드는 관중 난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쟤가 왜 여기 있어···."

검은 고양이가 안전요원들 사이를 재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팬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지만, 대체로 웃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심각했던 분위기를 고양이가 환기해준 것이었다.

검은 고양이가 안전요원들을 따돌리고 도망치는 장면이 전광판에 확대대 나오자, 팬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이어서 손뼉까지 쳐댔다.

"잘한다!"

"더 빨리 도망쳐!"

노팅엄의 팬들은 어쩔 수 없는 경기 중단을 즐기기 시작했다.

<오! 검은 고양이! 너는 우리 할리 보다 빠를지 몰라!>

즉석으로 노래까지 만들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로드는 그 광경을 황당한 듯 보다가, 고양이를 바라봤다.

"어···?"

광고판을 넘어 도망가려던 고양이는 관중의 환호가 커지자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필드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관중은 고양이에게 환호하는 거였지만, 고양이는 이 상황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경기는 1분 이상 지연됐고, 고양이는 점점 더 겁에 질려 안전요원들을 피해 필드 위를 뛰어다녔다.

잘 풀리고 있던 경기가 중단된 콜체스터의 선수들도 고양이를 잡기 위해 뛰었지만, 고양이는 잽싸게 피해 다녔다.

더 뒀다가는 고양이가 사람 하나 할퀼 것 같다는 생각해 로드가 나섰다.

로드는 근처로 도망친 고양이를 보며 부드럽게 불렀다.

"고양아."

익숙한 목소리라 그런지 고양이가 뛰다가 멈췄다.

로드는 뛰어오는 안전요원들에게 손을 펴서 내밀어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했고, 쪼그려 앉아서 다시 한번 고양이를 불렀다.

"이리 와."

이번 주 초에 이 고양이를 만나는 바람에 관심이 생겨 고양이에게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먹힌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로드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겁을 집어먹은 고양이는 로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로드의 손가락에 코를 부딪쳤다.

이어서 고양이는 로드의 냄새를 맡은 건지 로드의 팔과 다리에 자신의 몸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오오···.>

팬들이 이 축구장에서 보기 힘든 기묘한 광경에 감탄의 소리를 함께 냈다.

로드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품에 안았다.

고양이는 반항하지 않았다.

'역시 뉴 캡틴이다!'라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로드는 보안요원에게 다가가서 고양이를 내밀었다.

"펠릭스, 얘 드레싱룸에 데려다주고, 제 드레싱룸 가방에 먹이 있거든요? 그거 주세요. 그리고 아마 제 자리에 제 옷 깔아서 주면 얌전히 있을 거예요. 못 나오게 문 잠그는 거 잊지 마시고요."

"어··· 알았어."

보안요원 펠릭스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고양이를 들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

이런 경기 지연은 선수들의 멘탈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경기장의 선수들은 흐름을 바꾸려고 할 때, 일부러 거친 반칙을 하기도 한다. 벤치의 감독은 교체를 감행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우연으로 생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로드는 생각했다.

고양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터치 라인 근처까지 왔던 로드는 돌아가면서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걸 목표로 하자. 그러면 무조건 이길 수 있어. 우리가 저쪽보다 실력이 좋다는 거 잊지 마. 우리는 1위고 쟤네는 15위라고."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의 재촉 때문에 직접 말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로드의 말을 들은 선수들이 전달해줬다.

그렇게 노팅엄은 점점 기세를 되찾았고, 바비의 날카로운 패스에 이은 할리의 정확한 슛으로 1-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

"고양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없었거든요? 근데 로드가 고양이를 내보내고, 우리한테 천천히 하라고 해 줬어요. 그게 정말 도움이 됐어요. 다들 그렇지?"

할리는 오늘 경기에 뛰지 못한 알렉산더에게 로드가 경기장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설명하고 칭찬해주고 있었다.

할리의 말에 드레싱룸에 돌아온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부끄러우니까 그만 좀 말해···."

로드의 말에 할리는 더 로드를 놀리기 위해 애썼고, 결국 로우킥을 맞고 도망쳤다.

로드는 고개를 돌려 알렉산더를 바라봤다.

알렉산더는 로드를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로드는 처음으로 주장으로서 완벽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시리 뿌듯해졌다.

그리고.

"애옹."

로드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는 불길한 징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접한 고양이의 모습은 달랐다.

그저 정체를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뿐이었던 거다.

모든 건 겪어봐야 아는 거라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이 덕에 자신은 주장직에 관해 편견을 갖고 쓸데없는 걱정만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줄곧 자신에게 정신적인 보탬을 그리고 오늘은 경기의 분위기를 바꾸고 주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줬다.

그러니까.

"얘 키워야겠다."

로드의 말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할리가 딴지를 걸었다.

"그럴 줄 알았어. 나 오늘 네가 드루이든 줄 알았다니까."

할리의 말에 선수들이 웃었다.

로드는 개의치 않고 드레싱룸 안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던 직원에게 물었다.

"고양이 훈련장에서 길러도 돼요? 우리 아버지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집에는 못 데려가는데···."

"어··· 잘 모르겠지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일단 이름부터 지어줘야겠는데···."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할리가 물었다.

"너 설마 얘 이름을 알렉산더나 알렉이나 샌더스로 지을 건 아니지?"

둘의 관계를 잘 아는 선수들이 다시 한번 웃었다. 알렉산더 또한 진지한 얼굴로 로드에게 말했다.

"고양이에 내 이름을 붙이는 건··· 좀 그렇다···."

"저도 그렇게 지을 생각 없어요. 얘 이름은···."

로드는 라커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리고 원하는 걸 찾아냈다.

"티케로 할 거예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행운의 신이 이름이죠. 얘는 저나 우리 팀이 삐끗하지 않게 도와준 행운의 화신이니까요."

선수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바비가 벽에 걸려있는 노팅엄의 마스코트 로빈 새 인형에서 로빈후드 모자를 떼어내 가져왔다.

"티케한테 이거 씌워볼 수 있어? 엄청 귀여울 것 같은데."

바비에게서 작은 모자를 받아든 로드는 티케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로빈후드 모자를 올려놓았다.

살짝 삐뚜름하게 쓴 모자가 무척 잘 어울렸다.

바비가 감탄하는 소리를 내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바비가 사진을 찍자마자 티케는 고개를 휙휙 저어 모자를 떨어뜨렸다. 역시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티케를 선수들과 직원들이 사랑스럽다는 듯 보았다.

그리고 이날, 노팅엄 FC의 공식 SNS에는 로빈후드 모자를 쓴 고양이의 사진이 올라왔다.

할리의 로빈 새에 이어 노팅엄의 두 번째 마스코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즌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22. 로드와 검은 고양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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