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레전드 (4) >
알렉산더는 리그 최종전이 홈경기인 건 노팅엄에 천운이 따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노팅엄 팬들의 힘찬 응원가는 노팅엄의 선수들에게 여러모로 힘을 주고 있었다.
특히 자신이 노팅엄 팬들의 응원가에 큰 힘을 받고 있었다.
《친구를 만났네. 십 년 만이었네.》
《친구가 나한테 물었지.》
《'너희 팀의 주장은 누구야?'》
《알렉산더 샌더스!》
《아직도?》
《앞으로도! 영원히!》
응원가가 끝나자 노팅엄의 팬들은 다 함께 함성을 질렀다. 응원가나 함성이나 팬들은 골이 들어가기 전부터 열심히 불렀으나 선제골이 들어간 이후에는 두 배는 더 크게 부르고 외치고 있었다.
선덜랜드의 선수들은 이런 분위기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몸이 점점 굼떠지고 있었으며 집중력 또한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알렉산더는 자신이 주로 맞붙고 있는 선덜랜드의 주장, 대니 영과의 헤딩경합에서 세 번째로 승리했다.
"둔해진 것 같은데. 벌써 피곤한가?"
알렉산더의 물음에 대니 영은 얼굴을 붉혔다. 그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뛰었다.
반면 노팅엄의 선수들은 좀 과할 정도로 활발하게 뛰고 있었다. 가끔은 너무 지나쳐서 알렉산더가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알렉산더가 헤딩한 공은 라이언에게 향했고, 라이언은 할리의 앞 공간을 향해 패스했다.
하지만, 흥분한 할리는 패스보다 빨리 달렸고.
삑!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리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아쉬워하는 할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할리. 혼자 너무 급하게 들어가지 마라. 내 움직임을 보고 움직여도 안 늦는다."
"예··· 죄송해요."
"급한 건 저쪽이다. 저쪽은 어떻게든 두 골을 넣어야 하니 수비라인이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때, 발 빠른 네가 해 줘야 한다. 집중하자."
"예!"
알렉산더는 할리를 진정시킨 후 대니 영을 향해 돌아갔다. 할리는 노팅엄의 미드필더들을 향해 움직였다.
선제골을 넣은 후 노팅엄은 철저하게 수비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원래는 알렉산더와 할리 모두 수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타겟형 스트라이커인 알렉산더만 공격 진영에 남고 할리는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로 내려가 적극적으로 수비에 참여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잠시 후, 선덜랜드가 패스 실수를 했고, 할리에게 공을 빼앗겼다.
이른 시간의 실점과 노팅엄의 기세등등한 팬들에게 기가 죽은 선덜랜드의 선수들은 옆에서 옆으로 안전한 패스만 하려고 하다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전력 질주를 반복한 할리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할리가 태클한 공은 근처에 있던 바비에게 향했다.
바비가 알렉산더를 보았다. 알렉산더는 바비가 또 한 번 높은 패스를 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노팅엄의 양쪽 윙이 달리기 시작했고, 태클에서 막 일어난 할리가 뒤늦게 달리기 시작했다.
바비의 패스가 높게 쏘아졌다.
"이이익!"
대니 영이 기합을 외치며 먼저 자리를 잡은 알렉산더를 힘으로 누르려고 했다.
대니 영보다 덩치가 작은 알렉산더는 조금 흔들렸지만,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12월부터 피를 토하는 노력으로 만들어온 몸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동안 거의 교체로만 출전하거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자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동안의 준비는 모두 오늘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켜!"
알렉산더는 거칠게 말하며 대니 영을 등으로 살짝 밀어내며 뛰었다. 대니 영이 뒤늦게 뛰었지만, 늦었다.
알렉산더는 공중에서 정확히 머리에 공을 갖다 댔고, 우측면에 있던 감자 머리 선수가 공을 받기 위해 중앙으로 달려왔다. 패스는 정확히 감자 머리 선수의 발로 향했고, 선덜랜드 선수들이 감자 머리 선수에게 다급하게 모여들었다.
감자 머리 선수는 선덜랜드 선수들의 틈을 노려 알렉산더에게 패스했다.
<와아아아아!>
팬들의 함성을 뒤에 업으며 알렉산더는 곧장 드리블해 상대 진영으로 뛰었다. 뒤늦게 쫓아오는 선덜랜드의 선수들, 아직 남아있던 수비수 두 명이 알렉산더를 향해 좁혀왔다.
"캡틴!"
알렉산더는 정면을 응시한 채로 발만 움직여서 왼쪽으로 패스했다.
그 순간, 뒤에서 흑표범같이 나타난 할리가 잽싸게 공을 낚아채고 세게 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선덜랜드 수비진영은 알렉산더와 감자 머리 선수들에 의해 완전히 붕괴했고, 할리는 편안하게 일대일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의 조언이 효과가 있었는지 할리는 골키퍼를 상대로 흥분하지 않고,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정확하게 슛했다.
공은 적당한 속도로 데굴데굴 굴러 골망을 흔들었다.
골망을 흔들기도 전에 팬들은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이어서 할리의 응원가가 경기장을 채웠다.
《Come on. Come on. 할리! 할리!》
이어서 할리에게 멋진 어시스트를 한 알렉산더의 응원가가 쏟아졌다.
《사랑한다. 샌더스. 언제까지나!》
잉글랜드의 온 구단에서 쓰이는 《사랑한다. '구단 이름'. 언제까지나!》 응원가에 알렉산더의 이름을 넣어 팬들은 합창하고 있었다.
골 세레머니를 하던 할리는 자신의 골을 축하하러 와준 알렉산더에게 말했다.
"패스 좋았어요!"
"그래, 그렇게 침착하게 하니까 잘 되잖나."
"역시 캡틴이에요. 그런데···."
"응?"
"왜 제 응원가보다 캡틴 응원가가 더 길죠?"
《사랑한다. 샌더스. 언제까지나!》
알렉산더의 응원가는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후크 송이었다.
할리의 말에 몹시 기분이 좋은 상태인 알렉산더가 진하게 웃으며 할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오늘만 좀 봐 줘라."
할리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어시스트 해 줬으니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뭐? 하하."
알렉산더는 최고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통틀어도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장의 모든 팬이 자리에서 일어난 채 양팔을 쭉 벌리며 응원가의 마지막 소절을 불러주었다.
《오~ 알렉산더, 우리는 널 사랑해!》
알렉산더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끊임없이 달렸고, 전반전은 2-0으로 끝났다.
*
드레싱룸에 돌아온 선수들에게 잭슨 감독은 전반전 경기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경기력에 무척 만족했다는 뜻이었다.
"후반전은 똑같이 간다. 집중력이 떨어져 보이는 녀석은 바로 교체시킬 거다."
"예! 보스!"
"그리고 캡틴, 할 말 없나?"
잭슨의 말에 알렉산더가 고개를 들었다. 알렉산더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짧게 말했다.
"아까 말했던 대로 난 오늘 우승하고 싶다. 우승까지 45분 남았다. 끝까지 지금처럼 침착하게 경기하자."
"알겠습니다! 캡틴!"
알렉산더를 비롯한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코치들과 스포츠 치료사들의 간이 얼음찜질과 테이핑하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되었고, 알렉산더는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맞이했다.
*
알렉산더는 후반전이 시작한 후, 막 투입된 선수처럼 끊임없이 경합하고, 달리고, 패스했다.
승기가 확실히 보였기에 알렉산더는 3위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온몸을 불사르듯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경기 시각 78분까지 노팅엄은 선덜랜드를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선덜랜드 골키퍼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노팅엄은 4-0 정도로 앞서고 있었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2-0 상황이 유지되었고, 노팅엄의 왼쪽 윙 요한의 돌파로 경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패스! 패스!"
요한은 다른 선수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상대 수비수 앞에서 헛다리를 짚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했다.
선수들은 패스를 달라는 걸 포기하고, 일부는 공을 빼앗겼을 때 역습을 대비하기 위해 움직였고, 나머지는 요한이 크로스를 올리거나 슈팅을 할 걸 대비해 페널티박스 안에 하나둘 들어왔다.
문제는 선덜랜드의 선수들도 그걸 막기 위해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였다.
페널티박스 안은 거의 열두 명에 달하는 선수로 가득 찼고, 상대 수비수가 쉽게 뚫리지 않아 답답해진 요한은 각도가 없는 위치에서 냅다 발을 휘둘렀다.
공은 힘차게 쏘아졌고, 수많은 선수 중 선덜랜드 수비수의 허벅지에 맞고 튀어 올랐다.
"내놔!"
두 번째 골의 주인공 할리가 우월한 점프력으로 뛰어올라 헤딩했다.
수비수의 방해 때문에 반동을 주지 못해 슛은 흐물거리며 골대 구석으로 향했다.
선덜랜드의 중앙수비수가 헤딩으로 할리의 슛을 걷어냈다.
또, 페널티박스 중앙으로 떠오른 공을 향해 선덜랜드의 골키퍼를 비롯한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엄청난 난전 상황이었다.
노팅엄의 선수는 넷. 선덜랜드의 선수는 골키퍼를 포함해 아홉 명이었다.
선덜랜드의 골키퍼는 같은 선덜랜드의 수비수 대니 영과 부딪히며 미처 뛰어오르지 못했다. 이번에 공을 머리에 댄 건 바로 바비였다.
그 순간, 알렉산더의 머릿속에서는 강한 직감이 떠올랐다.
저 자세로 슛을 한다면 골키퍼에게 막힐 것이다. 하지만, 골키퍼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기에 아마 이쯤으로 튈 것이다.
직감은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깊게 고민할 틈도 없이 알렉산더는 헤딩이 튈 거라고 예상한 장소로 미리 뛰었다.
"어?"
바비가 헤딩한 공은 골키퍼에게 막혔고, 알렉산더의 허리춤으로 날아왔다.
높이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예상이 맞은 거였다. 수많은 경기를 뛰어온 경험 덕분일까.
알렉산더는 이 순간에 해야 할 슛을 잘 알고 있었다.
보통의 자세로 슛을 하기도 헤딩하기도 어려운 높이였다. 또한, 공이 떨어지기도 전에 차는 발리슛은 자신의 장기가 아니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장단점에 관해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렉산더는 살짝 점프하며 발 안쪽으로 공을 맞히기로 했다.
알렉산더와 골대 사이에는 선덜랜드 선수가 셋이나 있었다.
이 사이로 넣을 수 있을지 이런 거 생각할 틈은 없었다.
감독 잭슨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혹시나 이번 기회가 끝나면 교체될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알렉산더는 이 슈팅이 골망을 가르길 간절히 바라며 발을 공에 갖다 댔다.
공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
-샌더스는 오늘 은퇴하는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네요. 정말 대단한 활약입니다.
-전반전 기록을 살펴보면 팀에서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한, 첫 골의 어시스트를 어시스트 했고, 두 번째 골은 직접 어시스트 했습니다. 이번 경기 최고의 선수(MOM)를 받아도 부족하지 않아요.
-이런 선수가 꼭 은퇴해야 하는 걸까요?
해설자들은 이 경기를 어떻게 보고 있나 궁금해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빼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알렉산더는 정말 오늘 경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 또한 해설자의 마음과 같았다. 알렉산더의 은퇴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12월 이후의 알렉산더는 3부 리그에서 로테이션 선수 정도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그런 선수로 변했다.
그리고, 오늘은 리그 3위 팀인 선덜랜드를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팀에게 중요한 플레이를 해 주고 있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오늘 응원가의 절반 이상을 알렉산더에 관한 노래로 채웠다.
그리고 응원가를 부르지 않을 때는 알렉산더가 공을 잡을 때마다 환호와 박수를 끊임없이 보내줬다.
구단 공식 SNS에서도 경기장을 찾지 않은 팬들의 알렉산더에 관한 헌사가 이어졌다.
-나는 노팅엄의 팬이 된 지 얼마 안 된 인도네시아 사람이야. 캡틴의 이야기는 나한테 깊은 울림을 줬어. 그래서 난 오늘 캡틴이 웃으면서 은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오늘 경기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당신은 영원한 나의 캡틴일 거예요.
-멋진 마무리를 했으면.
등 SNS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든 사람들의 댓글도 종종 보였다.
내부 출입 기자 조지도 만약 오늘 리그에서 우승한다면 알렉산더를 중심으로 노팅엄에 관한 기사를 또 쓰라는 팀장의 지시를 들었다고 했다. 또한, 알렉산더를 스카이스포츠에서 단독 인터뷰하고 싶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축구에 관련된 많은 사람이 알렉산더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그동안 보여줬던 헌신이 보답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이런 지지에 화답하듯 경기 내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기는커녕 더 정교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내 유소년 시절 봤던 알렉산더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2부 리그에서 스트라이커 자리의 모든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었던 그 모습이었다.
회귀 전 이맘때의 알렉산더는 4부 리그에서도 퇴물 선수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회귀 전, 보답받지 못했던 그의 헌신이 오늘 여기에서 보답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의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감회에 젖어있는 동안 요한이 과감한 돌파를 시작하고 있었다. 요한은 공을 질질 끌었고, 결국 슈팅했다.
공은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그리고 그 공은 알렉산더에게 튀었고, 알렉산더는 마치 족구를 하는 것 같은 자세로 슈팅했다.
공은 선덜랜드의 수비수들 사이를 지나서, 골망을 흔들었다.
"와아아아아!"
나와 제임스는 크게 환호하며 얼싸안고 기뻐했다.
경기는 80분에 가까웠고, 점수는 3-0이었다.
사실상 자력 우승을 확정 짓는 골이었다.
나와 제임스는 알렉산더의 세레머니를 지켜보며 계속 환호했고, 서포터즈의 주도로 시작되는 알렉산더의 응원가들을 불렀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일곱 번째 응원가가 불릴 때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고, 구단의 직원이 급히 날 찾아왔다.
3-0 승리.
노팅엄은 알렉산더가 했던 약속대로 2부 리그에 복귀하게 됐다.
3부 리그 1위로.
**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알렉산더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필드에 엎드렸다. 자신의 표정을 카메라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켰어. 지켰다고."
5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 순간의 감정에 취해서 했던 약속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던 꿈같은 약속은 오늘 현실이 되었다.
알렉산더 자신의 손에 의해서.
온몸의 긴장이 전부 풀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누구에게라도 내 축구 인생은 분명히 가치 있고 빛나는 것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걸 가진 기분이었다.
그때, 알렉산더의 어깨에 손이 하나 얹혔다. 알렉산더가 고개를 돌리니 로드를 비롯한 노팅엄의 선수들이 보였다.
"로드? 너희들···."
"역시 캡틴이에요."
"미안하다. 해트트릭은 못 했어."
알렉산더의 말에 로드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충분하다 못해 넘쳐요. 앞으로도 알렉산더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일 거예요. 아무튼··· 자요. 일어나요. 갈 데가 있어요."
로드가 손을 내밀었고, 알렉산더는 그 손을 잡았다. 알렉산더는 로드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음···?"
이상했다.
경기장에 모인 팬들이 3부 리그 우승을 하고, 2부 리그 승격을 확정 지은 팀의 팬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로드는 알렉산더의 손을 잡은 채로 경기장 중앙으로 향했다. 다른 선수들은 알렉산더에게 한 마디씩 던지며 터치라인 쪽으로 물러났다.
"캡틴! 고생 많았어요."
"이따 봐요!"
"저기서 잘 구경할게요."
알렉산더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기에 로드에게 물었다.
"대체 지금 무슨···?"
"곧 알게 돼요. 자, 저도 가볼게요."
알렉산더를 센터서클의 정중앙에 데려다 놓은 로드는 터치 라인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로드의 뒤통수를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김도운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다들 준비.>
그 말과 동시에 경기장이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알렉산더는 눈을 부릅뜨고 관중석을 살폈다.
팬들이 전부 녹색의 커다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카드··· 섹션?"
<시작하겠습니다. 캡틴. 왼쪽을 봐 주세요.>
알렉산더는 홀린 듯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왼쪽은 노팅엄의 서포터즈 <포레스트>가 모여있는 홈 서포터즈 석이였다.
녹색 물결 중앙에서 흰색 물결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홈 서포터즈 석이 전부 흰색이 되었을 때, 다시 중앙에서 녹색의 무언가가 나왔다.
Alexander
19
녹색의 정체는 노팅엄의 유니폼이었다. 알렉산더의 이름과 등 번호가 적힌.
수천 명이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카드섹션에 알렉산더는 감동보다는 감탄했다.
그리고, 유니폼이 흩어지면서 알렉산더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와아···.>
다른 팬들과 선수들, 직원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알렉산더는 찡해져서 그대로 굳었다.
알렉산더의 얼굴은 또 한 번 흩어져서 이번에는 글자가 되었다.
[우리의 영원한 캡틴]
<캡틴, 오른쪽과 왼쪽도 봐 주세요. 오른쪽 먼저요.>
측면 좌석에 앉은 일반 팬들 또한 카드섹션의 참여자였다.
알렉산더의 오른쪽에는 알렉산더의 입단일부터 오늘까지의 날짜가 적혀 있었고, 왼쪽에는 알렉산더의 득점, 어시스트 기록이 적혀 있었다. 오늘 경기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알렉산더가 왼쪽을 본 직후, 알렉산더의 왼쪽, 중앙, 오른쪽 관중석에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졌다.
[당신은 노팅엄의 전설입니다.]
그리고 노팅엄과 전설 부분만 뒤집혀서
[당신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모든 메시지가 사라지고, 마지막 메시지가 나왔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이어서 팬들은 각자 든 종이를 흔들며 큰 함성을 쏟아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고개를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이 풍경을 가슴 깊이 담겠다는 듯이.
그리고 그러고 있는 알렉산더에게 로드가 마이크를 들고 달려갔다.
<와아아아아!>
알렉산더가 로드에게서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알렉산더는 마이크를 입에 댔다가 뗐다가를 반복했다. 팬들은 계속해서 알렉산더를 연호했다.
한참을 그런 후에야 알렉산더가 마이크를 입에 댔다.
<여러분.>
그리고, 알렉산더의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만 오천 명의 팬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23. 레전드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