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82화 (82/245)

< 25. 선수들의 프리시즌 (3) >

"못하겠어."

루카가 도끼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쿵 하는 소리가 나서 선수 몇이 루카 쪽을 바라봤다.

할리가 장작을 마저 패며 물었다.

"왜?"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해. 하루 훈련시간은 길어봤자 2시간인데."

루카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땀에 젖은 옷을 손으로 펄럭이며 그루터기에 주저앉았다.

할리는 잠시 고민했다. 프리 시즌에는 온종일 훈련하는 일도 다반사라는 말로 루카를 질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할리 주변에는 루카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 루카가 도끼질을 그만하겠다고 하는 건, 다른 핑계를 들긴 했어도 그저 지겹고 하기 싫어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리는 루카의 흥미를 깨워주기로 마음먹었다.

정신없이 야영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로드를 위해서.

"너 <최고의 도끼>라는 게임 해봤어?"

"어? 너 게임도 좋아해? 나 그 게임 엄청 재밌게 했었어."

"이것저것 다 해."

할리는 도끼가 나오는 온갖 드라마나 영화, 만화, 게임 등을 떠올리는 걸 멈췄다. 한 번에 걸렸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 게임 튜토리얼에서 도끼 내려찍는 법을 연습해보잖아?"

"맞아! 그거 엄청 어려웠지."

"이런 식으로 했~지?"

'했~지?'라고 말할 때, 할리는 도끼를 힘차게 휘둘러 장작을 하나 팼다.

루카가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럼?"

"잘 봐."

루카는 어느새 일어나서 도끼를 집어 들었다. 할리는 자연스럽게 장작을 그루터기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는 거야!"

루카는 할리가 의도한 대로 장작을 하나 팼다. 할리는 게임에서 나오는 정확한 동작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틀리게 했다.

자신처럼 장르 문화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틀린 걸 보면 고쳐 주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리는 루카에게 손뼉을 치고, 팔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너 진짜 잘한다. 그런데 방금 팔을 이 각도로 움직인 거야? 다시 한번 보여주면 안 돼?"

*

로드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장작더미를 보며 옆에 앉은 할리에게 말했다.

"네가 이렇게 쓸모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야, 설마 그동안 내가 쓸모없었다고 말하는 거야?"

"응. 이제 알았냐?"

로드의 대답에 할리가 발끈하려고 했다. 로드는 할리가 말하기도 전에 옆에 막 앉는 라이언의 맥주에 자신의 맥주캔을 내밀며 선수를 쳤다.

"라이언. 오늘은 고마웠어."

"하하. 뭘."

라이언이 로드의 건배를 받으며 말했다.

그리고 로드는 혀를 차고 있는 할리에게 기습적으로 말했다.

"너도 오늘은 고마웠다."

할리가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막상 고맙다는 말 들으니까 소름 돋네."

"···나도 소름 돋아."

할리와 라이언은 헌터 형제와 루카를 케어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았다.

신입 선수들이 뭘 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으면 먼저 나서서 팀을 짜 주고, 앞장서서 일했다. 로드는 덕분에 편하게 텐트들을 만들고, 식사도 준비할 수 있었다.

야영장에는 10인용 대형 텐트가 네 개 만들어져 있었고, 선수들은 잭슨 감독이 만든 토마토 버섯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참고로 스파게티 면은 구단에서 고용한 가이드가 제공했다. 선수들의 몸 상태 관리를 위해 적절한 음식을 제공해 줄 예정이라고 했다.

로드는 선수들을 살펴봤다.

헌터 형제는 세자르와 함께 앉아 있었다. 동생 테오가 손에 물고기구이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오늘 물고기를 사냥한 걸 자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테디는 살짝 미소 지은 채로 테오의 얘기를 듣고 있었고, 중간마다 세자르가 뭐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의 연인 오리아나가 얼마나 예쁘고 착한지를 말하고 있을 거다.

"해리도 여기 왔으면 좋았을 텐데."

로드는 더비 카운티에서 영입한 중앙수비수의 이름을 말했다. 둘은 이번 시즌의 파트너로서 휴가에서 돌아오고 이틀 동안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어쩔 수 없잖아. 종아리 근육에 알 수 없는 통증이 있다는데."

할리의 말에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는 이어서 웨일스 3인방과 스코틀랜드 2인방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코칭스태프 근처에 앉아 있었다.

라이언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역시 베테랑 선수들은 다르네."

이 다섯 명은 이십 대 중후반에 접어든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첫 체력 테스트 때부터 정말 열정적이었다. 선수 생활의 전성기로 접어든 만큼 이들은 이번 시즌 주전이 되길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카는 멍한 얼굴로 혼자 앉아 있었다.

루카는 첫날부터 다른 선수들과 굳이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혼자 멍하니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런 루카를 보며 로드가 말했다.

"돌봐 줘야 하는 동생 같은 느낌이야."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고, 할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할리를 보며 로드가 물었다.

"아니야?"

"잘 모르겠어."

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드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피식 웃으며 할리의 등을 탁하고 쳤다.

"그럼 네가 가서 말동무나 해 줘. 나는 라이언이랑 놀고 있을 테니까."

"그래."

할리는 바로 일어나서 루카에게 향했다. 할리는 루카의 옆에 앉아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로드와 라이언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더불어, 두 명의 남자도 할리와 루카를 보고 있었다.

*

"마스코트도 내가 그렸거든!"

"마스코트?"

"우리 구단 곳곳에 붙어있는 로빈후드 새 말이야. 그거 내가 그린 거라고."

"정말? 그럼 너 다른 그림도 그릴 수 있어?"

"응. 따라 그리는 정도면 뭐."

"그럼···."

할리와 루카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게 여기까지 들려왔다.

새 선수들의 개성 때문에 혹여나 전지훈련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할 수 있었다.

감독 잭슨이 말했다.

"루카는 온전히 제 몫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네요."

"긍정적인 변수죠?"

"예. 그렇습니다. 이제··· 걱정은 좀 더셨습니까?"

잭슨의 물음에 나는 캠프장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지훈련이 워낙 걱정돼 첫날 밤에만 특별히 이곳에 온 나였다.

잭슨이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내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의외로 할리가 잘 해주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로드, 할리, 라이언 셋 다요. 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셋이 정말로 애쓰고 있습니다."

"로드는 잘하고 있나요?"

주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내 사무실에까지 찾아왔던 녀석이었다. 지금 표정을 보면 몹시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잭슨의 생각은 다를 수 있기에 물었다.

"예. 분위기를 잘 읽을 줄 알고, 행동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훌륭한 주장이 될 겁니다."

"···다행이네요."

전지훈련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걸 확인했고, 로드도 괜찮다는 걸 들었으니 마음이 완전히 편안해졌다.

나는 가이드에게서 받은 맥주를 홀짝이며 캠프장을 구경했다.

타오르는 장작불에 큰 텐트들.

가끔은 이런 곳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랑 조이 불러서 놀러 갈까.

"이번 시즌은 잔류를 목표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 예. 그렇죠."

잭슨의 말에 생각에서 빠져 나왔다.

잭슨은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말했다.

"역시··· 그런 목표로는 열심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시즌에도 승격을 노리고 싶습니다."

"예?"

"체력 테스트와 어제의 팀 훈련으로 확인했는데, 미스터 킴이 4부 리그 때 데려왔던 요한 위페르의 기량이 급상승했습니다. 한스 또한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요. 다치는 선수가 많지만 않다면···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해볼 만 하다고요? 승격이?"

나는 믿을 수 없어서 물었다. 잭슨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승격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좋았다. 프리미어리그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강등을 당해도 돈을 최소 1억 파운드(약 1,457억 원)는 벌 수 있었으니까.

잭슨이 이어서 말했다.

"이번 시즌의 전술은··· 언론에서 떠드는 방식대로 말한다면 4-4-2입니다. 선수단 전체를 왼쪽 측면에 더 밀착시킨 비대칭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겁니다. 우측 윙에서 뛰어줄 발이 빠른 테디 헌터와 우측 스트라이커로 뛸 할리에게 넓은 공간을 주는 거죠. 그리고 둘을 라이언이 받쳐 줍니다. 뒤에서는 한스가 든든하게 수비에 집중할 거고요."

"그럼 공격 전개는 왼쪽에서?"

"네. 테오 헌터, 요한, 루카, 세자르가 중심이 될 겁니다. 우리 팀의 전술은 약 10년 전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동화를 썼던 레스터시티 전술의 좌우 반전 버전입니다."

레스터시티는 2015-16시즌에 0.02%의 확률을 뚫고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한 기적을 직접 써낸 팀이었다.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내 가슴이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대신, 컵대회는 전부 포기하겠습니다."

"음··· FA컵도 어렵나요?"

"네. 목표를 이루려면 체력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로테이션을 거의 돌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후우···."

잭슨의 진짜 요구가 나왔다.

컵대회는 구단의 좋은 돈벌이다.

리그 외의 경기로 추가 입장료를 받을 수 있기도 하고, 상위 라운드로 가서 프리미어리그의 팀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어마어마한 추가 수입이 생긴다. 방송 중계비, 입장료 수익 등 말이다.

광고 효과에 스폰서들도 아주 좋아한다.

잭슨은 이걸 전부 포기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승격을 노려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잭슨이 이어 말했다.

"이번 시즌의 핵심은 라이언과 루카입니다."

"루카는 그렇다 치고··· 라이언이요?"

생각해보면 라이언은 로컬 보이 3인방 중 회귀 전의 모습을 모르는 유일한 녀석이었다. 2부 리그까지 무난히 따라오고,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는 걸 보면 잭슨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긴 했다.

"예. 라이언은 그동안 공격에서 수비까지 모든 걸 맡았죠.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프랑스의 레전드 은골로 캉테가 레스터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볼 탈취를 1순위로 맡길 생각입니다."

"그럴듯하네요. 특히 키가."

캉테도 작고, 라이언도 작으니까.

하지만, 루카가 4-4-2 전술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라이언은 이것저것 다 잘했으니까 걱정 안 해요. 근데, 루카는 괜찮겠어요? 4-4-2면 중앙 미드필더가 어마어마하게 뛰어야 하는 전술이잖아요."

"그렇죠. 주로 라이언이 공을 빼앗고, 루카가 공을 앞으로 보내긴 하겠지만··· 때론 반대 역할을 해야 하기도 하죠."

중앙 미드필더를 두 명만 놓는 전술은 두 중앙 미드필더에게 어마어마한 부담을 준다.

나는 루카를 슬쩍 보며 말했다.

"쟤를 많이 뛰게 할 수 있겠어요?"

"계획은 여러 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해 보고 싶습니다. 해내겠습니다. 미스터 킴 같은 단장을 만나 이 팀에 오게 된 건 제 일생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요. 한 시즌도 허투루 보낼 수 없습니다."

잭슨의 말을 들은 나는 고민을 끝냈다.

"좋아요. 컵대회는 포기하죠."

AFC 본머스도 4부 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까지 4년에 걸쳐 승격했는데, 우리는 그걸 1년 앞당겨 3년 만에 승격해 보자고 결심했다.

회귀 전,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잭슨 감독이 이렇게 결의에 차 있었으니까. 지원을 못 해줄망정 브레이크를 밟아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컵대회를 통해 얻을 거라고 예상했던 수익이 조금, 아주 조오금 아쉬웠다.

"···잭슨.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지 그걸 왜 저한테 얘기해서 이렇게 골치 아프게 만들어요. 선수 선발은 감독 권한이니까 그냥 알아서 해도 됐잖아요."

"미스터 킴과는 앞으로도 솔직하고 깔끔한 관계가 되길 원하니까요. 만약에 제가 컵대회에서 갑자기 2군 선수들과 유소년 선수들을 내세웠으면 무척 당황하셨을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다른 팀의 감독들은 그러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나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아직 잭슨의 말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미스터 킴을 기대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 솔직히 기대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잔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승격할 수도 있다니. 어떻게 안 설레나. 1년만 있으면 나도 맡아보지 못한 프리미어리그 팀의 단장 겸 사장이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래요. 기대하게 됐어요. 근데 왜요? 오히려 부담되지 않아요?"

"그 부담감이 동기부여가 됩니다."

역시 탑클래스 감독이 될 사람이라 그런지 사고방식부터가 대범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그럼 진짜 기대합니다?"

"그러십시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잭슨에게 물었다.

"큰 목표를 가진 만큼 강한 팀과 연습해보는 게 좋겠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좋아요. 그러면,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시티와 친선경기를 잡을게요. 두 팀이라면 2군 선수가 나와도 우리보다 셀 테니까."

< 25. 선수들의 프리시즌 (3)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