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89화 (89/245)

< 28. 최종 점검 (2) >

"특별한 지시사항은 없다. 늘 하던 대로 하고··· 다치지만 마라."

"예!"

도르트문트의 감독은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감독의 말을 듣는 다른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칼마저도 노팅엄의 새 선수들의 기량 정도만 궁금한 것이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감독이 칼에게 말했다.

"그리고 칼."

"예."

"팬서비스 똑바로 하고. 우리 팀 단장이 신신당부하더라."

"당연하죠."

아시아 투어 때는 워낙 일정이 빡빡해서 절반 이상을 억지로 웃어야 했지만, 지금은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칼은 모처럼 진심으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경기 시작 전, 양측 선수단이 터널로 나와 나란히 섰다.

양 측 선수단은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이였기에 조용했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있던 칼과 할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이었다.

그때, 정장을 입은 한 직원이 들어와 선수들에게 외쳤다.

"선수분들. 죄송합니다만, 방송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 5분 정도 늦게 입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 조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수들은 김이 샜다는 얼굴로 터널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거나 서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 노팅엄의 로컬 보이 3인방은 중간에 선 칼에게 다가왔다.

칼은 먼저 가장 친한 라이언과 주먹 인사를 하며 말했다.

"대충 반년만이네."

"그러게, 별로 안 된 것 같은데."

라이언과는 지난 시즌의 겨울 휴식기 때 함께 식사했었다. 작년에는 자신이 노팅엄에 와서 이번에는 라이언이 독일에 왔었다.

칼은 이어서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여자에게 말했다.

"마리아도 오랜만이에요. 얼굴이 더 화사해졌네요."

"정말?"

마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칼은 마리아와도 가볍게 포옹했다. 마리아는 다시 카메라를 잡고 칼이 로컬 보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찍었다.

칼은 로드에게도 인사를 하려다가 로드의 뒤에 보이는 이상한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로드··· 오랜만인데··· 쟤는 뭐야?"

로드와 라이언, 할리가 고개를 돌려 칼이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의자 여러 개에 새우잠 자세로 누워있는 루카가 보였다.

로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 팀의 새 중원 사령관인데··· 잠이 많아서."

칼은 별 특이한 선수도 다 있구나 싶어 고개만 끄덕였다.

로드가 이어서 말했다.

"쟤는 워낙 낯을 가려서 라이언이나 할리하고만 친해."

"그래?"

칼이 이곳에 와서 적응에 어려워할 때도 라이언과 할리는 순수하게 호의를 드러낸 선수들이었다.

"칼, 너 키가 더 큰 거야?"

"응. 독일 가서 좀 더 크더라고."

로드와의 짧은 얘기가 끝나자마자 할리가 칼에게 다가왔다. 할리와 칼은 아까 나란히 서 있을 때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이 대답하기 곤란한 이야기를.

"왜 말 안 해줘. 일 년에 얼마 받냐니까?"

"어··· 음."

곤란해하는 칼을 보며 라이언은 고개를 저었고, 로드는 직접 끼어들었다.

"야,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라고 멍청아."

로드에게 혼나는 할리를 보며 칼은 라이언에게 말했다.

"여전하네."

"그렇지?"

그때, 칼의 눈에는 할리를 혼내는 로드의 등이 보였다.

칼이 물었다.

"어? 너 캡틴··· 아니, 알렉산더 번호 받았네?"

"아, 응···."

"목표를 이뤘네. 잘 됐다."

로드가 살짝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칼은 자연스럽게 다음 화제로 이어갔다.

"알렉산더는 전력분석관 됐다면서. 어디 있어?"

"벤치에서 감독님이랑 같이 있을 거야. 하프 타임 때나 끝나고 인사해 봐."

"오케이."

칼은 여전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더 어른스러워진 로컬 보이들을 보고, 노팅엄의 나머지 선수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너희 셋이랑 요한, 한스 말고는 다 모르겠다. 구단 SNS 페이지를 가끔 찾아봐서 이름이나 얼굴은 대충 알지만."

"일 년 동안 많이 바뀌었거든."

라이언이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아까 경기 지연을 알렸던 직원이 다시 들어와 경기 입장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한 명의 주심과 두 명의 부심, 그리고 대기심까지 총 네 명의 심판진도 복도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은 로컬 보이들에게 말했다.

"좋은 경기 하자."

*

선수 입장 준비가 완료됐다는 말이 전달됐는지 장내 아나운서가 양 팀의 선발 선수들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있었다.

먼저 원정팀인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을 소개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1.5군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2군 선수 같은 이름을 모르는 선수에게는 적은 환호가 안드레 뮐러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의 이름에는 팬들의 큰 환호가 있었다.

그리고, 8번째로 불린 한 선수의 이름에는 어마어마한 환호가 쏟아졌다.

<우리의 옛 친구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도르트문트의 No. 11.>

<와아아아아아!>

<칼 슈나이더!>

칼의 앞에 서 있는 9번. 안드레 뮐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 진짜 사랑받는구나."

"음··· 하하."

"아까 몰래 경기장 돌아다니는데 네 얘기가 많이 돌아서 찾아보니까 네가 이 팀 3부 리그로 승격할 때 에이스였다면서."

"뭐···."

칼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이어서 노팅엄의 선수들이 차례차례 호명됐다.

팬들은 선수들의 이름을 따라 외치며 환호했다.

안드레가 중얼거렸다.

"무슨 챔피언스리그 치르는 기분이네. 여기 분위기 괜찮네."

이어서 주심의 외침에 선수들은 필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칼이 막 터널을 나와 햇빛이 쏟아지는 필드로 나왔을 때, 익숙한 노랫소리가 칼의 귀에 들려왔다.

<칼 슈나이더, 칼 슈나이더, 우리에게는 칼 슈나이더가 있지.>

칼은 순간 멈칫했다가 뒤에서 오는 선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관중석에는 자신의 예전 유니폼을 들어 보이는 팬들도 있었다.

오랫동안 멀어져 있어서 조금 희미해졌었던 이곳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안드레가 말했다.

"누가 보면 홈 경기장에 온 줄 알겠어?"

칼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안드레의 말대로 정말 홈 경기장에서 뛰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칼은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다고 느꼈다.

선수단끼리 악수하고,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선수들끼리 사진을 찍은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

약 10분간의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도르트문트는 일방적으로 공격했으나 슈팅 한 번 날리지 못했다. 노팅엄의 수비수 네 명, 미드필더 네 명으로 이루어진 두 줄 수비가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공격수 둘의 기습적인 압박은 덤이었다.

칼은 도르트문트의 오른쪽 윙어로서 수시로 중앙으로 움직이며 노팅엄 선수들을 살피며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 할지 생각했다. 도르트문트의 감독은 선수들에게 많은 자유를 줬기에 생긴 습관이었다.

잠시 후, 칼은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야 할지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과 공을 주고받던 안드레에게 말했다.

"받자마자 달린다."

"알겠어. 들어간다."

둘은 일 년간 호흡을 맞췄기에 긴말이 필요 없었다.

자신에게 제대로 된 공이 오지 않아 슈팅 한 번 날리지 못한 안드레는 몹시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안드레는 칼의 또렷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칼에게 공을 넘겼다. 서로 믿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안드레는 22살의 나이로 독일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를 맡은 분데스리가 득점 2위의 스트라이커였다.

안드레의 움직임에 노팅엄의 선수들이 유난히 많은 신경을 쓰는 게 칼의 눈에 보였다.

칼은 볼을 잡은 채로 측면으로 달렸다. 노팅엄의 선수들은 쫓아오지 않았다.

노팅엄은 선수를 쫓는 것보다 자신들의 진영을 유지하는 걸 중요시하는 수비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칼은 이런 상대를 분데스리가에서 많이 만나봤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전술이었다.

이런 상대를 뚫는 방법은 간단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누르거나, 환상적인 팀워크로 상대방을 정면에서 뚫어내거나··· 개인기술로 뚫어버리거나.

칼은 자신의 앞에 선 왼쪽 측면 수비수를 봤다.

이름이 아마 테오 헌터였을 것이다.

칼은 공을 발로 굴리며 자신의 앞을 막아선 어린 수비수에게 물었다.

"테오 헌터 맞지?"

테오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칼은 헌터 형제가 영입됐을 때, 김도운이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세 명의 로컬 보이들과 함께 우리 팀의 기둥이 되어줄 선수들이라고 생각하고 큰돈을 투자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선수라는 말이었다.

칼은 공을 제자리에 둔 채 상체를 왼쪽으로 옮겼다가 오른쪽으로 공을 살짝 쳤다. 움직임은 순식간에 이어졌다. 칼은 크로스를 올리기 위해 돌파하려는 척을 한 것이다. 하지만, 테오는 칼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칼은 속으로 감탄하며 다시 한번 왼쪽으로 공을 옮겼다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칼은 마치 로벤처럼 왼발 슈팅을 노리려는 듯 슈팅 자세를 취했다.

살짝 늦게 쫓아오는 테오는 적극적으로는 달려들지 않았다. 옆의 로드가 칼 쪽으로 다가오며 칼이 슛할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칼은 슈팅할 생각을 순식간에 접고, 테오와 로드 사이의 공간을 바라봤다.

테오와 로드 사이에는 사람 한 명 반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둘이 다리만 뻗는다면 돌파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칼은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몸을 틀었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을 상대해 본 칼로서는 무척 허술한 수비였기에.

칼은 90도로 몸을 확 틀며 공을 뻥 차고 달렸다. 알렉산드로 파투, 카카 같은 속도가 장점인 드리블러들이 자주 사용하는 급격한 방향전환에 이은 급가속이었다.

도르트문트에 적응하기 위해 연습해 몸에 익힌 것이었다.칼은 테오와 로드 사이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테오는 발도 못 뻗었고, 로드가 아슬아슬하게 발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칼을 막는 수비수는 없었다. 오직 골키퍼와 골대만 보였다.

그냥 슛해도 됐으나, 4부 리그 시절의 노팅엄처럼 자신이 다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테오가 뒤늦게 쫓아와 칼에게 슬라이딩 태클을 해 봤지만, 칼은 이미 공을 중앙으로 패스했다.

중앙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안드레는 발 안쪽으로 정확히 공을 골대 구석으로 찼다.

노팅엄의 골키퍼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렇게 안드레는 첫 슈팅에 첫 골을 넣었다.

"좋아! 나이스 패스!"

"그래."

노팅엄의 경기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칼은 안드레와 가볍게 손을 부딪치고, 안드레가 원정 팬들에게 세레머니를 하러 달려가게 두었다.

그리고 칼은 테오에게 다가갔다.

"다음엔 다른 기술로 갈 거야. 잘 봐둬."

"어··· 예?"

칼은 당황한 테오를 두고 다시 도르트문트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

실점 후, 노팅엄의 중앙 미드필더 듀오인 라이언과 루카가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 팀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저런 드리블을 한 적이 없는데."

"연습했나 보지."

"어쩌지? 미드필더 라인을 더 내려서 우리도 합류해야 하나? 테오 혼자 못 막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러면 공격을 아예 못하게 돼."

루카의 말에 라이언은 고심하기 시작했다. 감독이나 로드의 특별한 지시는 없었다. 이럴 때는 미드필더의 중심인 둘이 라인의 간격을 조절해야 했다.

그때, 루카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르트문트 선수들 말이야. 다 이겼다는 얼굴을 하고 있네."

"응?"

루카는 해맑은 얼굴의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보고 있었다.

라이언이 말했다.

"뭐···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잖아. 수준 차이가 크게 나니까."

"···기분 나빠."

루카가 중얼거렸다. 잠시 후, 루카가 랩 하듯이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루카는 살짝 흥분한 것 같았다.

"라이언, 수비 진영은 그대로 가자. 대신, 빌드업 방식을 좀 바꾸자. 내가 패스해달라고 할 때만 패스해주면 내가 알아서 할 게. 내가 패스해달라고 말 안 하면 뒤로 패스하고."

"어···? 알겠어."

"그리고 내가 볼 지키고 있을 때는 최대한 패스하기 편한 쪽으로 움직여 줘. 진영 유지하는 거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어··· 그래도 되나?"

"그냥 그렇게 해 줘. 수비에는 구멍이 살짝 생길 수도 있지만··· 이대로 두면 맨시티 경기처럼 돼 버릴 수도 있으니까. 분위기를 한 번 바꿔보려고. 딱 10분만."

불쾌한 얼굴을 하는 루카를 처음 보는 라이언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몇 분 후, 도르트문트의 골키퍼가 노팅엄의 스트라이커 세자르의 슈팅을 손끝으로 간신히 막아냈다.

골대를 벗어난 공은 엔드라인을 넘어갔다. 노팅엄의 코너킥이었다.

도르트문트의 골키퍼는 수비수들에게 소리를 빽빽 지른 후, 코너킥을 막기 위해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온 칼에게 물었다.

"저 중앙 미드필더 뭐야?"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칼이 가끔 노팅엄에 관한 정보를 찾아본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골키퍼는 칼에게 저 중앙 미드필더가 어떤 선수인지 물어본 것이었다.

"루카 바르뎀."

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키퍼가 말했다.

"바르뎀? 너희 또래 중에 엄청 유명했던 애 아냐?"

"응, 매년 언론에서 뽑는 세계 10대 유망주에도 뽑힌 적 있었어. 바르셀로나 출신이고··· 방황 좀 하다가 이 팀에 왔다고 하더라."

"이야. 역시 바르셀로나 출신은 다르긴 다르네. 방금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루카는 방금 라이언과 함께, 아니 거의 공을 혼자 몰고 페널티박스 앞까지 왔다. 일부러 상대 수비를 끌어들이고, 자잘한 방향전환과 순간 가속, 그리고 옆에 있는 라이언을 이용해서 만들어 낸 성과였다.

페널티박스 앞에 도착한 루카는 측면에 패스하는 척하며 중앙으로 정교한 로빙 패스를 했다.

그의 패스를 읽은 세자르가 도르트문트의 수비수들보다 한 발자국 먼저 뛰어나와 슈팅했고, 골키퍼가 간신히 막아낸 거였다.

골키퍼가 말했다.

"방심하면 안 되겠네. 자, 다들 집중해!"

골키퍼의 말에 방금 루카의 환상적인 패스를 직접 느낀 수비수들과 일부 미드필더들은 힘차게 대답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적당적당히 대답했다.

코너킥을 차는 선수 또한 루카였다. 칼은 루카가 수신호 후에 로드와 눈을 마주친 걸 우연히 목격했다.

그 순간, 공을 차라는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고르게 서 있던 노팅엄의 선수들이 일제히 골대 쪽으로 달렸다. 하지만, 로드는 루카 쪽으로 갑자기 달렸다.

루카는 동시에 낮고 빠른 코너킥을 올렸다. 딱 목 정도의 높이로.

로드를 마크하던 수비수는 로드를 놓쳤다. 칼이 뒤늦게 달려봤지만, 루카의 빠른 코너킥은 로드의 머리를 맞고 골망을 흔들어버렸다.

노팅엄의 동점 골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해졌었던 경기장이 후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로드! 로드! 로드!>

<루카! 루카! 루카!>

골을 넣은 로드는 뒤늦게 자신을 쫓아 온 칼을 보며 물었다.

"어때?"

"제법이네."

로드는 씩 웃고 가볍게 세레머니를 했다. 친선 경기였기에 격한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노팅엄의 선수들도 모여서 로드의 골을 축하해 줬다.

그 모습을 보며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표정이 나빠졌다. 다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경기 재개 휘슬이 울렸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마치 리그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전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칼이 있었다.

*

<와아아아아!>

경기는 도르트문트의 3-2 승리로 끝났다.

노팅엄의 팬들은 졌으나 잘 싸운 선수들에게 환호와 응원가로 답해주고 있었다.

칼은 세 골 모두에 관여했고, 노팅엄의 선수 중 테오만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칼은 테오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아예 포기해버릴 상황임에도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저런 선수들은 적당한 재능만 있다면 대부분 좋은 선수가 된다.

칼은 아쉬운 패배에 서로를 위로하는 노팅엄의 선수들을 바라봤다.

중앙 미드필더 루카는 말할 것도 없고 세자르라는 공격수도 2부 리그의 공격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르고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로컬 보이 3인방도 일 년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수고 많았다. 네 몸값이 괜히 1억 유로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더라. 혼자서 세 골을 다 만드는 게 어딨냐?"

언제 왔는지 노팅엄의 단장 김도운이 칼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팅엄의 경기력 자체는 만족스러웠는지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려 있었다.

칼이 웃으면서 답했다.

"열심히 해 줘야 노팅엄에 도움이 되죠."

"어이고··· 그래, 고맙다. 그런데 우리 팀 어땠냐?"

김도운은 평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칼을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칼은 잠시 적당한 표현을 생각해내고 말했다.

"드레싱 룸 돌아가면 감독님한테 혼날 것 같아요."

노팅엄이 정말 잘했다는 간접적인 표현에 김도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바로 가야 하지?"

"네. 다음에 식사라도 한 번 해요."

"좋지."

마치 대화가 끝난 것 같은 흐름이었다.

하지만, 칼에게는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있었다.

칼이 입을 열었다.

"1부 리그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이번 시즌에 갈 거야."

"네?"

김도운의 대답에 칼이 당황했다. 빨라도 다음 시즌이라고 얘기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김도운이 이유까지 설명해줬다.

"잭슨 감독님이 이 갈았어. 꼭 승격할 거라고 해서 컵대회 같은 것도 2군 선수랑 유소년 선수들만 내보내기로 했어. 겨울에도 선수 몇 영입할 자금 융통하는 중이고."

"와우. 챔피언스리그도 예상보다 빨리 갈지도 모르겠네요."

챔피언스리그 얘기가 나오자 김도운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김도운이 칼을 빤히 바라봤다.

칼은 그 모습을 보며 김도운이 지금 둘이 나눴던 약속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게 된다면 자신을 노팅엄으로 데려가겠다는 그 약속을.

김도운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었기에 노팅엄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도운에게 말했다.

"기다릴게요. 정말 얼마 안 걸릴 것 같네요."

< 28. 최종 점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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