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92화 (92/245)

< 29. 특별한 개막전 (3) >

"크로스 최고였어!"

"헤딩도 멋졌어요!"

첫 골을 넣은 세자르와 어시스트를 한 테오 헌터가 서로를 향해 포효하고, 끌어안았다.

둘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데뷔 첫 득점 포인트를 지역 더비 경기에서 올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곳은 홈 경기장이었다. 친선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함성이 둘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헌터! 헌터!>

<로페즈! 로페즈!>

관중은 두 선수의 등에 적힌 성(Second name)도 외쳐 주고 있었다.

"잘했어!"

형 테디 헌터는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중인 세자르를 건너뛰고 테오에게 달려왔다.

테디는 테오에게 헤드락을 걸며 신나게 떠들었다.

"야, 나랑 연습할 땐 이 정도로 못했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잘해?"

"오늘 상대가 형보다 못하니까 그렇지."

"짜식."

테디는 씩 웃고 테오의 등을 팡 소리 나게 쳤다.

"아파!"

"아부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다?"

"한 살밖에 차이 안 나잖아. 뭘 많이 커."

"흐흐."

테디는 불평하는 테오를 보며 계속 웃었다.

테오는 흥분 때문인지 어느새 아픈 걸 잊고 경기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구단 정말 괜찮지 않아? 전 구단이랑은 비교도 안 돼."

헌터 형제가 지난 시즌 소속됐던 구단은 평균 관중 5,000명 정도의 팀이었다. 그렇기에 테오는 이런 환호성을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고, 그만큼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테디가 기뻐하는 테오를 흐뭇하게 보며 동의했다.

"구단 사람들도 괜찮고, 팬들도 좋은 것 같더라. 역시 어머니가 말해준 대로야."

테디 또한 노팅엄에 점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프리 시즌을 지내며 이곳의 선수들, 직원들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도 골 하나 넣어. 어시스트도 좋고."

"말이 쉽지."

"그러면 엄마가 좋아할 거 아니야."

부모님이 없는 둘은 자신들을 돌봐주는 에이전트 로빈을 몰래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둘은 로빈을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로빈이 지금 이 경기장에 와 있었다. 헌터 형제의 데뷔전을 보고,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테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열심히 해야겠네."

"그래."

그때, 노팅엄의 선수들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테오에게 다가왔다.

"골 넣었으면 등짝 맞는 건데···. 캡틴. 그냥 데뷔 어시스트도 골처럼 축하 해 주면 안 돼?"

할리가 로드에게 물었다. 할리도 경기장에서는 로드를 캡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노팅엄에는 프로 데뷔 첫 골이든 이적 후 첫 골이든 골을 넣으면 등짝이든 어디든 때리면서 기쁨을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테오는 멀리서 세자르가 절뚝거리는 걸 슬쩍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할리를 포함한 다른 선수들의 테오를 축하하고 싶다는 눈빛을 받은 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맘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주심 아저씨 눈빛이 매섭다. 빨리 진영으로 돌아가자. 이러다 다 경고받겠어."

그제야 선수들은 첫 골의 기쁨을 너무 오래 누렸다는 걸 깨달았다. 노츠 카운티의 원정 팬들은 야유도 보내고 있었다.

노팅엄의 선수들은 테오의 어깨나 등을 가볍게만 두드리며 진영으로 서둘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드 또한 테오와 테디와 함께 진영으로 돌아가며 짧게 축하를 해줬다.

"잘했어. 첫 경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멋졌어."

"고마워요. 캡틴."

"그리고···."

로드는 세자르에게 했던 말을 또 했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너무 흥분하면 안 돼. 더비 경기는 언제 격렬해질지 모르거든. 훈련 때 하던 대로 차분하고 신중하게 경기하는 거 잊지 마. 알겠지?"

"네, 조심할게요. 캡틴."

"그래. 끝까지 잘하자."

"네!"

*

테오는 상대 팀 오른쪽 윙인 톰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톰은 공격도 못 하고, 수비도 못 하는 무력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테오는 간결한 스텝 오버로 또 한 번 톰을 제쳐냈다.

톰은 한 번 휘청거린 후 뒤늦게 테오를 쫓아왔다.

톰이 가까스로 테오에게 가까이 붙었을 때, 테오는 공을 받으러 내려온 요한에게 패스해버렸다.

톰은 약이 많이 오르는지 무척 억울하고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톰은 자신을 약 올린 테오를 볼 틈도 없이 급하게 요한을 쫓기 시작했다.

테오 또한 요한에게 패스를 받을 위치에 있기 위해 다시 열심히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아아··· 아깝다."

테오가 탄식을 흘렸다. 테오의 앞 포지션인 왼쪽 윙 요한은 엔드라인까지 달려서 크로스를 올렸고, 할리가 높게 점프해 헤딩했다. 하지만, 공은 크로스바 위를 스쳐 지나갔다.

테오는 안타까움을 접어두고 제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테오의 뒤에서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허억. 좀 살살 해라. 따, 따라가질 못하겠다."

40분 내내 테오에게 농락만 당한 톰의 눈은 살짝 풀려 있었다. 벌써 체력 고갈이 온 모양이었다. 테오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빨리 지치기 때문에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던 잭슨 감독의 연설을 떠올렸다.

테오는 걱정스러워져 톰에게 괜찮은지 물으려 했다. 하지만.

"뭐해, 빨리 수비 위치로 돌아가야지."

왼쪽 윙 요한의 말 때문에 급히 움직여야 했다.

테오는 돌아가는 와중에 톰을 슬쩍 바라봤다. 톰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호흡이 돌아온 건지 괜찮아 보였다.

테오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이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톰이 지친 걸 이용해 한 점 더 득점한다면 데뷔전에서 MOM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잠시 후, 노츠 카운티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테오는 공을 달라고 소리쳤다.

*

전반 종료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테오는 페널티박스 바로 옆까지 올라가서 톰을 앞에 두고 개인기를 하고 있었다.

"모, 못가."

톰이 웅얼거렸지만, 테오는 몸만 움직이는 바디페인팅과 빠른 순발력으로 톰을 휘청 거리게 만들었다. 이제 달려서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골을 노리거나 더 좋은 자리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해 어시스트를 쌓을 수 있었다.

"안 돼!"

하지만, 테오가 톰을 지나치는 순간, 테오는 발목 부근이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을 받으며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테오는 넘어지자마자 본능적으로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페널티박스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페널티킥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삑! 삑!

주심이 다급히 휘슬을 불었고, 주변에 있던 요한과 세자르가 다가왔다. 세자르는 톰에게 화를 냈고, 요한은 괜찮냐고 물었다.

테오는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다가 점차 발목 부근에 통증이 생기는 걸 느끼며 요한에게 말했다.

"좀 아픈데요··· 팀 닥터 좀 불러주시겠어요."

요한은 손을 흔들어 팀 닥터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테오를 보며 말했다.

"많이 아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 데뷔 경기부터 다치면 얼마나 손핸데. 괜찮을 거야."

테오는 그 순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데뷔전을 치르는 형, '테디 헌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상태 확인해야 하니까."

하지만, 어느새 달려 나온 노팅엄의 팀 닥터가 테오를 막았다. 테오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테디를 찾았다.

다행히도 테디는 자신을 다치게 한 톰에게 달려가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주심 또한 아주 다행히도 노팅엄의 페널티 킥 선언을 했다.

<와아아아아!>

관중의 함성 소리 때문에 테디는 큰 목소리로 테오에게 물었다.

"괜찮아?"

"응, 페널티킥도 얻어냈잖아. 오늘 MOM은 틀림없이 나야."

"아니, 발목 괜찮냐고."

"완전 괜찮아악! 살살 좀 해 줘요."

테오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팀 닥터가 갑자기 발목을 잡는 바람에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테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테디를 보며 테오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진정해."

"뭘 진정해···."

테디는 어린 시절부터 테오가 누군가에게 다치면 늘 광분하며 상대를 때려 눕혔었다. 둘이 프로 선수가 된 후에는 테오가 다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테디가 지금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기에 테오가 다급히 말했다.

"형, 여긴 경기장이야."

"나도 알거든? 말로 할 거야."

테디는 짜증 섞인 얼굴로 테오에게 말했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서 서성이는 톰에게 말했다.

"야, 너 사과 안 하냐?"

톰이 입을 열려는 순간, 노츠 카운티의 다른 선수가 말했다.

"뭔 사과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뭐?"

"고의로 다치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쟤 속도가 너무 빨라서 톰이 늦은 것뿐이잖아. 너희 페널티 킥도 얻었다고. 적당히 해."

"···적당히? 말이 좀 그렇네."

둘의 분위기가 묘했다. 둘만이었다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겠지만, 둘 주위에는 약 45분 넘게 뛴 혈기왕성한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 고의도 아니었는데 뭔 사과를 하냐?"

"고의든 아니든 다치게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냐!"

노팅엄과 노츠 카운티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어느 순간부터 선수들은 가슴팍을 끼리 부딪치거나, 양손으로 가슴팍을 밀치기 시작했다.

삑! 삑!

주심이 다급히 휘슬을 불며 선수들을 막았다.

"그만, 다들 떨어져!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전부 경고나 퇴장이야!"

하지만, 더비 경기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팬들 또한 이 상황을 부추기는 응원을 하고 있었다.

<잘한다! 노츠 카운티에는 뭐든 지지 마라!>

다툼은 점점 격해져 주심이 말리기 어려울 지경이 되고 있었다.

루카와 라이언은 그 광경을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다.

라이언이 말했다.

"데뷔전 한 번 인상적으로 치르네. 소감이 어때?"

"옆에서 보는 건 재미있네."

"너도 참가할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아직 밀치거나 멱살 잡는 수준이었기에 망정이었다. 잘못하면 곧 주먹다짐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루카가 고개를 저었다.

"나 싸움 싫어해. 맞으면 아프잖아."

"아주 그럴듯한 이유네. 그럼 말리기라도 하자."

"좋아."

둘은 그제야 선수들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흥분한 선수들을 제지해준 선수들 덕에 다행히도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진정된 걸 확인한 주심은 싸움의 시발점이 됐던 테디와 노츠 카운티의 선수에게 옐로 카드를 꺼냈다.

테디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나는 노팅엄 지역 신문의 첫 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첫 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2골, 1어시스트 & 1페널티 킥 유도, 무실점, 패스성공률 98%, 그리고 옐로카드>

이었다.

기사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이랬다.

2만 5천 명의 함성 속에서 지역 라이벌 노츠 카운티를 물리친 신입 선수들은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3-0이라는 완벽한 스코어를 만들어 냈고, 노츠 카운티의 팬들이 한동안 노팅엄의 팬들 앞에서 축구 얘기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고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신입 스트라이커 세자르 로페즈는 두 골을 넣었다.

2부 리그 이적시장에서 가장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선수, 테오 헌터는 공수에서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줬고, 로페즈가 한 골을 넣는 걸 도왔다.

해리 킹은 어린 주장 로드와 함께 무실점에 일조했으며, 루카 바르뎀은 그 이름값에 걸맞게 98%의 패스 성공률, 키 패스 5회라는 어마어마한 경기 장악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테오 헌터와 마찬가지로 2부 리그 이적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테디 헌터의 데뷔전은 별로였다. 이번 경기의 유일한 흠결이었던 전반전 막바지 다툼의 시발점이 되어 옐로 카드를 받았으며 심지어 경기력이 좋지도 않았다.

(중략)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선수들이 다투는 걸 보며 스콧 단장과 괜히 서로한테 '미안합니다.', '미안해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문득 났다. 가드 오브 아너를 하면서 시작했는데 대체 왜···. 더비 경기에는 선수들의 화를 돋우는 마력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튼, 나는 이 기사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골치 아프네···."

"뭐가요? 노팅엄 더비도 완벽하게 이겼고, 선수들은 다 잘했는데. 테디도 안 좋은 기사가 좀 나왔지만, 평균적인 활약은 보여줬잖아요."

마리아가 티 테이블에서 쿠키를 먹다가 물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사무실에 찾아오는 마리아였다.

"테디의 에이전트에게 약속한 게 있어서요."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

"헌터 형제를 우리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어줄 거라고 했거든요. 테디의 이미지 관리도 그중 하나니까··· 이런 식으로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게 둘 순 없어서요. 사소한 트집으로 시작해서 선수의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 버리는 게 기자들이잖아요?"

마리아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남은 쿠키를 입에 다 털어 넣은 후 말했다.

"테디에 관해 가장 안 좋게 썼던 기자한테 수정해서 다시 올려 달라고 요청하는 건 어떨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론사에 너무 많이 간섭하려고 하면 우리에 관해서는 무조건 나쁜 기사만 쓰는 신문사가 돼 버릴 수도 있어서요. 무엇보다··· 더 깔끔한 다른 방법이 있어요."

"다른 방법이요?"

마리아의 기대된다는 얼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포터즈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려고요."

< 29. 특별한 개막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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