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98화 (98/245)

< 32. 해리 더비 (2) >

해리를 사무실로 데려온 후, 티 테이블에 앉혀 뒀다.

해리는 내가 차를 타는 동안 딴짓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괜히 민망해진 나는 차와 과자를 내 오며 잡담을 건넸다.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해리의 거대한 폭탄 머리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그 머리 스타일이었어?"

"아뇨. 스무 살쯤 바꿨어요. 덩치가 더 커 보이게 하려고요. 그러면 상대 선수가 위압감을 느낄 것 같아서요."

해리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

"예."

"반박기사를 내 달라고 했지? 개인 인터뷰도 할 수 있다고 했고?"

"네. 맞습니다."

"둘 다 해 줄 수 있어. 스카이스포츠에 우리 내부 출입 기자가 있어서 그분에게 기사를 내 달라고 하면 조미료 없는 깔끔한 기사가 나갈 거야."

"정말입니까?"

해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근데, 기사를 내기 전에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해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준비해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를 내면 더비의 팬들이 널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거든. 안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 보겠지만."

"왜요? 저는 그 단장과 샘만 싫은 건데."

"혹시 둘이 너에게 했던 말을 녹음한 거 있어?"

"아··· 아뇨."

해리는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표정이 나빠졌다.

"더비의 단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인터뷰가 실린 반박기사가 나가면 자기가 잘못했다고는 절대로 안 할 거야. 그런 적이 없다고 하거나, 네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하겠지."

"아···."

나 또한 이번 일을 이용해 더비 관계를 구축해보려 하고 있었지만, 해리에게 자신이 할 인터뷰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건지는 짐작 가는 대로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네 억울함을 풀어주는 동시에 이 경기의 화제성을 더 올릴 계획이야. 널 돕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순수하지는 않다 이거지."

해리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런 얘기까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정도는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해리가 일의 전말을 알게 되면 노팅엄에 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찝찝하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말이 없었고, 나는 계속 얘기했다.

"일이 진행되면 저쪽에서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 팀의 팬들은 믿어줄 거야."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단장과 샘은 왜 그런 인터뷰를 한 걸까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떠올리며 말했다.

"더비의 재정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거든. 리그컵 대회에는 팬들이 경기장에 잘 안 오니까, 아마 너를 발끈하게 해서 화제성을 올려보려고 한 걸 거야. 그러면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을 테니까."

"그 말은··· 제가 인터뷰를 하면 더비 단장의 계획대로 된다는 말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지, 맞지만···. 너는 적어도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되겠고, 우리 구단은 장기적인 이익을 얻게 될 거야. 나도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거든."

해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해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생각하니? 인터뷰할 거야?"

할 얘기를 마친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라도 거절한다면 더비 만들기 계획을 수정해야 하니까.

해리는 내 얘기를 듣는 동안 고민을 마친 건지 바로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더비의 팬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해도, 답답한 채 살기는 싫습니다."

"좋아. 저쪽의 기만에 놀아날 필요는 없지. 딱, 단장이랑 선수만 저격하자."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활짝 웃으며 해리에게 이제부터 할 일을 술술 얘기했다.

"인터뷰는 조지랑 하면 돼. 연락처 알려줄 테니까 장소랑 시간은 둘이 정하면 돼."

"조지가 누군가요?"

"아, 우리 구단 내부 출입 기자."

나는 조지의 번호를 알려주고, 이어서 말했다.

"노팅엄 TV 촬영도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팬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이 일을 알게 하려면. 이건 내가 따로 연락해 줄게."

"감사합니다."

"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해리가 말했다.

"아까 해 주셨던 말도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준 사람은 별로 없었거든요. 역시 로드가 단장님을 칭찬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순간 섬뜩해졌다. 로드의 칭찬이라면 뻔했다. 나는 나한테 찾아오는 선수들이 더 늘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더불어, 아까부터 조금은 심각해진 해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했다.

"넌 나한테 상담 같은 거 받으러 오지 마라. 감독님한테 가."

해리가 작게 웃고 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더비 카운티의 한 사무실에서는 샘이 단장과 단둘이 만나고 있었다.

"플레밍. 당신이 말했던 대로 이런 기사가 났어. 괜찮은 거야?"

샘이 내민 스마트폰 안에는 더비의 단장 플레밍과 샘이 해리에게 했던 인터뷰가 거짓이라는 해리 본인의 반박 인터뷰가 있었다.

'단장과 샘이 했던 말은 모두 거짓이다. 단장은 팀에 남고 싶다고 한 내게······.'

라며 플레밍과 샘이 했던 말을 그대로 얘기했고,

'더비 팬들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오히려 만나는 게 너무 기대된다. 비록 다른 팀으로 필드 위에 서게 됐지만, 더비의 팬들이 보는 앞에 필드 위에 서는 게 내 꿈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더비 팬들에게는 긍정적인 말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괜찮은 거 맞아? 내가 봐도 해리가 한 인터뷰가 진짜 같은데. 팬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샘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자 플레밍은 아주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증거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그저 계획대로 하면 됩니다."

플레밍의 평온한 표정에 안정을 얻은 샘이 한쪽 입꼬리만 올리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반박 인터뷰하려고 날 부른 거지?"

"맞습니다."

샘은 이제 씩 웃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플레밍은 샘이 그러고 있든 말든 이야기를 계속했다.

"해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 주시면 됩니다. 저희 목적은···."

"화제를 올려 팬들을 더 모아보려는 거지. 수고한 나한테는 보너스를 좀 주고."

"···그렇죠."

샘이 끼어들었음에도 플레밍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밍이 말했다.

"원정 좌석 예매율은 매진이나 다름없습니다. 홈 좌석이랑 중립 좌석 예매율도 쭉쭉 올라가고 있죠. 이제 기사 하나로 쐐기를 꽂으면 됩니다."

"그래도 의외야. 단장이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프로 올라오고 망나니가 다 됐지만."

샘의 말에 플레밍이 씁쓸한 듯 웃으며 말했다.

"구단의 재정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우리 같이 대형 스폰서가 붙지 않는 프리미어리그 구단은 입장료 수익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샘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그렇게 이유를 들어봤자 나쁜 놈은 나쁜 놈일 뿐이야. 나처럼 속 편하게 즐겨."

멈칫한 플레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마리아. 영상 만들 때, 오늘 아침에 나온 해리 인터뷰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그때의 억울한 심정을 최대한 잘 표현하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네. 할 수 있어요."

"기사를 본 팬들 반응도 영상으로 만들면 좋겠고요."

"이해했어요!"

마리아는 사명감에 가득한 목소리로 힘차게 답했다. 이어서 내게 말했다.

"더비를 직접 만든다니··· 상상도 못 했어요."

"실패할 가능성도 있는 걸요."

나는 노팅엄 TV에 올라갈 영상을 제작해줄 마리아에게 더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괜히 헛다리 짚어서 내 의도와는 다른 영상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리아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아는 영상을 만드는 것보다는 내 계획에 반한 것 같았다.

"그래도요. 정말 대단해요. 해리의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구단도 이익을 챙기는 거잖아요. 새총을 한 번 쏴서 두 마리를 잡는 거잖아요."

"해리의 억울함을 다 풀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저쪽은 끝까지 아니라고 할 테니까요."

마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우리는 끝까지 해리의 말이 진짜라고 하는 거죠.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논쟁이 계속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더비가 만들어질 거예요."

"그래서 해리의 억울함을 다 풀어줄지 모른다고 한 거군요."

"네. 맞아요."

마리아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해리도 구단 사람들이 자길 믿어준다면 고마워할 거예요."

"그럴까요?"

"네. 아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마리아는 또 궁금증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답해줬다.

"져도 이득, 이기면 훨씬 더 이득이에요."

"우리는 져도 이득이라고요?"

"네. 더비 관계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잭슨의 1부 리그 승격 계획을 이루려면 리그컵에서 일찍 탈락하는 편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이걸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말을 돌렸다.

"···이기면 다음 라운드부터는 빅클럽들과도 경기를 치를 수 있어서 훨씬 더 이득인 거예요. 리그컵 대회는 상위 팀과 대결할 때 입장료 수익을 딱 절반으로 나눠서 가지거든요. 우리가 입장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아스날 같은 팀과 상대한다고 생각해 봐요."

"좋을 것 같아요."

수억 원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다. 또한, 빅클럽과 경기할 때는 중계권료가 수십, 수백 배로 뛴다. 잘만 된다면 10억이 넘는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더비 카운티 쪽은 지면 무조건 손해를 보겠죠."

마리아가 이해됐다는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날 빤히 올려다 봤다.

"갑자기 왜 그래요?"

"요즘 따라 돈을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답했다.

"선수들이랑 잭슨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특히 잭슨이 이번 시즌에 엄청나게 힘내겠다고 했거든요."

무려 1부 리그에 한 번에 올라가겠다고 했었지.

마리아는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무리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아, '더비 만들기 계획'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세요. 마리아한테 밖에 얘기 안 했거든요."

"정말요? 저한테 밖에 안 했어요?"

뭔가 핀트가 어긋난 것 같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기쁜 듯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꼭 비밀로 할게요."

*

노팅엄의 선발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향하는 터널에 일렬로 서 있었다.

"원정 팬이 7,000명이나 왔대."

"어디서 들었어?"

"직원이 얘기해줬어."

로드와 요한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는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들으며 더비의 드레싱 룸 쪽을 흘긋 보고 있었다.

로드가 해리에게 말했다.

"다 해리 널 응원하러 온 걸 거야."

"열심히 해야겠다."

해리의 말에 다른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원래도 주전 자리를 얻기 위해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네 얘기까지 들으니 나도 열 받더라고. 죽을 힘을 다해 뛸 거야."

"나도!"

이적 후 첫 선발로 나서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5인방 또한 더비 카운티에게 경쟁심을 보였다.

"널 못 알아본 구단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열심히 도울게."

해리는 다른 선수들과 수비 파트너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더비의 선수들이 터널로 들어왔다.

그들 중, 해리의 눈에 들어온 한 선수가 있었다.

"여, 오랜만이다. 친구."

바로 더비 카운티의 중앙 수비수이자 해리의 옛 동료인 샘이었다.

< 32. 해리 더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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