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메이크 축구 명가-100화 (100/245)

< 33. 위기의 10월 (1) >

"결국, 잡혀가 버렸어···."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내 그 모습을 제임스와 조이가 안쓰럽다는 듯 보고 있었다.

조이가 말했다.

"엄청난 경사잖아. 축하해줘야지."

제임스도 말했다.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히려 이 일을 시작으로 우리 팀의 이미지가 생길지도 몰라. 잉글랜드의 작은 바이에른 뮌헨이라고! 아니면 작은 레알 마드리드가 괜찮을까?"

제임스의 쾌활한 목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우울해질 뿐이었다.

"우리가 차라리 그렇게 큰 팀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앞에 놓인 건 맥주로 가득 찬 술잔과 노팅엄 지역 신문이었다.

신문 1면에는 아주 익숙한 얼굴 여섯 명이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로 노팅엄의 로컬 보이 3인방과 헌터 형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감독, 사우스게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의 제목은

<노팅엄 FC의 다섯 소년, 국가대표가 되다!>

였다.

제임스가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언급한 건, 두 팀이 제2의 국가대표팀이라고 불릴 만큼 자국의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필요할 때 차출을 거절할 수 있는 청소년 대표팀은 차라리 괜찮았어. 하지만, 국가대표라니··· 이건 은퇴 말고는 빠져나올 길이 없잖아. 그것도 무려 다섯 명이나."

"그래도 할리는 이번에 안 갔잖아."

할리는 국가대표 명단에 뽑히기는 했지만, 훈련 첫날 가벼운 발목 부상을 입는 바람에 바로 복귀했다.

나는 할리와 관련된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할리도 10월 말에 꼭 데려갈 거라고 말했어. 결국, 시간 문제야."

"사우스게이트랑 얘기했어?"

제임스가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사우스게이트는 2020유로와 2022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우승시킨 명장으로서 모든 잉글랜드 국민의 영웅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자조하듯 말했다.

"내 우울함엔 관심이 없냐."

"에이, 어쩔 수 없는 일은 털어버리는 거야. 아무튼, 무슨 얘기 했어?"

"그냥 잘 부탁한다고. 앞으로 신세 많이 질 것 같다고."

이건 우리 선수들을 엄청나게 부려먹겠다는 얘기였다. 제임스 또한 그 뜻을 알아듣고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그때, 조이가 맥주잔을 탁자 위에 탁탁 치며 말했다.

"자, 우울한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오늘은 축하하러 모인 거잖아."

"맞아. 잠깐일 수도 있겠지만, 무려 리그 1위라고!"

제임스가 조이의 말을 바로 받았다. 나 또한, 그 말을 들으니 우울감이 금세 사라져버렸다.

우리의 유망한 다섯 선수가 괜히 차출된 게 아니었다.

우리 노팅엄 FC는 8월부터 9월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물론, 더비 카운티를 이기고 올라간 리그컵에선 하필이면 우승을 다투는 팀인 뉴캐슬을 만나는 바람에 4-0이라는 점수 차로 처절하게 당했지만, 아무튼 리그에서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리그컵 경기가 뉴캐슬의 홈 경기장에서 열려 많은 관중 수입과 중계권료, 그리고 리그 상금까지 챙겨 패했다는 기분보다는 이겼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아무튼, 우리가 무패로 헤쳐나가고 있는 챔피언십 리그는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8월부터 국가대표 스카우트가 방문하기 시작했고, 9월 초에는 코치가 왔다. 그리고 명단 발표가 있는 9월 중순에는 감독까지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2부 리그를 폭격하는 팀의 주축이자 20살 이하의 젊은 선수들, 그리고 한 팀에서 뛰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사우스게이트가 나를 직접 찾아와 얘기해줬다.

물론, 이 다섯 명이 회귀 전에 국가대표로 뛰긴 했다. 하지만, 원래 로드와 할리는 2년 후, 헌터 형제는 내년에 국가대표가 된다.

점점 회귀 전과 많은 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까 날 우울하게 만든 거기도 했다.

"도운? 뭐해? 마셔, 마셔."

"그래. 알겠어."

조이의 재촉에 나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우울함이 맥주와 함께 뱃속으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조이와 제임스도 바로 마셨다.

가장 먼저 마신 조이가 말했다.

"맛있다. 근데 제임스. 네 냉장고에 한국 맥주도 좀 넣어놓으면 안 돼?"

"오, 괜찮은 생각인데? 좋아."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말했다.

"괜찮은 것도 있는데 지뢰가 몇 개 껴 있으니까 내가 사 놓을게. 공간만 비워놔 주라."

내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가 말했다.

"10월 A매치 휴식기가 되기 전에 사 놔야 해?"

"알겠어. 알겠어."

"너희 나라 맥주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거든."

"오케이."

조이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는 작년부터 A매치 휴식기가 되면 모임을 가졌다. 선수들이나 감독, 코칭스태프 또한 사흘간의 휴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국가대표에 차출되는 선수들은 누릴 수 없는 휴가였지만.

우리는 구단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제임스의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제로 잡담을 나눴다.

몇 분이 흘렀을까 제임스가 리그 상황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

"리즈랑 빌라··· 정말 무섭지 않냐?"

"솔직히 다음 경기에 3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

챔피언십 리그는 해설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역대 최고급이라고 말할 정도로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단 무패 팀이 무려 세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리즈 유나이티드와 아스톤 빌라, 그리고 우리 노팅엄 FC.

우리가 1위지만 리즈와는 승점 2점 차, 아스톤 빌라와는 3점 차였다.

한 경기로도 뒤집힐 수 있는 수치였다.

또한,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리그 순위가 전체적으로 극단적이었다. 언론들은 리그 순위표를 딱 절반으로 나눠 천상계, 지하계라는 식으로 불렀다.

1위부터 12위까지의 승점 차가 불과 7점에 지나지 않았고, 12위와 13위의 승점 차이가 6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1위부터 12위까지는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13위부터는 강등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천상계 팀은 너무 잘하고 있고, 지하계 팀은 너무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가 리그 1위고, 우리 팀에서 이달의 선수랑 감독상을 다 받았잖아."

8, 9월 이달의 감독상은 당연하게도 잭슨이였다.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물리치고 1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8월 이달의 선수는 루카였다. 루카는 언론에서 돌아온 천재라는 식으로 떠들고 있었다.

9월 이달의 선수는 로드였다. 9월 내내 딱 1실점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마 로드가 이번 A매치 기간에 데뷔까지 한다면··· 몸값이 더 오르고, 빅클럽들이 또 달려들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또···.

"또, 또. 뭔 고민하는 거야?"

"아··· 미안."

조이가 날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조이의 손에는 빈 맥주병이 들려 있었다.

조이가 살짝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수들이나 감독님은 알아서 잘할 거야. 기세를 이렇게 잘 탔잖아."

"그렇겠지?"

이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적당히 동조했다.

제임스도 말했다.

"맞아. 네가 판을 이렇게 잘 깔아줬는데, 무조건 잘할 거야."

"하하··· 내가 무슨···."

"챔피언십에서 너만큼 해준 단장이 어디 있겠니?"

내가 민망해하자 조이까지 날 몰아붙였다. 나는 헛웃음 소리만 냈다.

그때, 제임스가 말했다.

"자, 노팅엄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위해 한 병씩 마시자."

"적당히 좀 마셔라. 내일도 일해야 하잖아."

"에이, 내일은 오전만 쉬자. 한 달에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우리 주말에도 일하는데."

제임스의 말에 조이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져 내 몫의 맥주병을 땄다.

제임스가 크게 외쳤다.

"노팅엄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위하여!"

"예에에에!"

셋은 함께 소리를 지르며 병을 부딪쳤다.

**

"어머어머, 네가 루카니? 잘생기기도 했지. 편하게 있으렴."

루카는 발랄한 흑인 아주머니 앞에서 어색하게 미소지은 채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콕스 아주머니. 며칠 동안만 실례하겠습니다···."

"이유는 들었단다. 우리 할리도 아침마다 못 일어나는데, 겸사겸사 깨우면 되지 않겠니."

"예··· 막 대해 주세요."

"그래그래. 먹을 것 좀 챙겨줄게."

"괜찮···."

할리의 어머니가 루카의 말을 듣지도 않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할리는 이런 활기찬 모습이 자연스러운 듯 루카에게 말했다.

"가자. 내 방은 2층이야. 침대가 두 개니까 하나는 네가 쓰면 될 거야."

"침대가 두 개? 형제라도 있어?"

"아니. 내가 워낙 친구를 많이 데려와서."

"아아···."

라이언이 국가대표에 뽑히는 바람에 깨워줄 사람이 사라졌다. 라이언은 걱정했지만, 루카는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부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대표 소집 첫날, 할리가 깁스를 하고 루카의 집에 찾아왔다.

'라이언이 너무 걱정하더라. 그냥 우리 집에서 A매치 기간이 끝날 때까지 같이 지내자. 내가··· 아니 우리 엄마가 깨워줄 거야.'

루카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할리가 워낙 막무가내라 반쯤 강제로 끌려온 거였다.

루카는 할리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두 분 모두 할리처럼 쾌활한 분들이었다. 할리의 부모님은 루카를 마치 둘째 아들처럼 편하게 대해 줬다.

할리의 부모님이 워낙 말이 많았기에 루카는 끊임없이 말을 받아줘야 했고, 결국 아홉 시쯤이 되어서야 부엌에서 나올 수 있었다.

루카는 몸을 씻고, 할리의 방으로 돌아가 빈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슬슬 잘 준비를 하는데, 아직 물기가 남은 채로 거침없이 방 안에 돌아온 할리가 그걸 막았다.

"좀 이따 자도 되지 않아? 아직 10시도 안 됐는데."

"나 아침에 일어나려면 지금은 자야 하는데···."

"우리 사흘 동안 휴가잖아."

"아, 그랬지?"

루카 또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게임은 루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으니까.

휴가가 끝난 후에도 루카는 할리와 함께 훈련장에 나가고, 집에 돌아와서 게임을 반복했다.

훈련 시간에는 열심히 했다.

그렇게 A매치 기간이 하루하루 흘러갔고,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선수들이 돌아오기 전날이 되었다.

루카는 열 시가 되어서도 자지 않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게임패드를 잡은 할리에게 이렇게 물을 뿐이었다.

"3시간만 하면 보스 깨는데 조금만 더 할까···?"

"그럴까···?"

루카는 결국 할리와 함께 게임을 즐기고 새벽 한 시에 잠들었다.

다음 날, 할리의 어머니와 라이언 덕에 다행히도 지각은 하지 않았다.

*

"리아아아아."

"세자르!"

세자르는 자신의 연인 오리아나를 품 안에 안으며 함께 몇 바퀴를 돌았다. 둘은 길가에서 탱고라도 출 태세였다.

오리아나가 세자르의 품에 안겨 세자르의 눈을 빤히 올려다 봤다. 세자르 또한 오리아나를 마주 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

"응. 나도."

둘은 데이트를 즐겼다.

세자르는 A매치 기간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매일 더비 시에 오리아나를 만나기 위해 오고 있었다. 오리아나는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낮에 만나서 카페에서 공부하는 식으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A매치 기간 마지막 날인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카페 테이블에 앉아 한참 동안 집중하던 오리아나는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연인 세자르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야? 괜찮아?"

"내가 자주 오는 게 싫어···?"

세자르가 지레짐작하고 상처받은 얼굴을 해서 오리아나가 세자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세자르의 일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지지난번 주까지만 해도 이틀에 한 번만 왔었잖아."

"걱정하지 마. 팀 훈련 시간에는 제대로 참가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팀 엄청 잘 나가는 거 알지?"

오리아나는 세자르의 말에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

"이야! 국가대표들 왔어?"

"로드! 데뷔 축하해! 어땠어?"

로드는 가방을 뒤적여 자신이 입었던 잉글랜드 국가대표 유니폼을 꺼내 들었다. 등 번호는 클럽에서의 번호와 같은 19번이었다.

"최고였어. 이거 내 라커에 보관할 거야."

"오오."

국가대표 경기에는 로드만 출전했다. 하지만, 국가대표에 뽑혀서 함께 훈련했다는 사실만으로 다녀온 선수들은 모두 자부심을 느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테오 헌터가 가장 신나게 떠들며 공을 들었다.

"새 기술 배워왔어. 닉이 알려준 기술이야."

"닉? 월드컵 득점왕 니콜라스 마카키스?"

"응! 이번 훈련 때 친해졌어."

할리의 물음에 테오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이어서 테오는 공을 꺼내 드레싱 룸 안에서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였다.

"어어?"

"와하하하하!"

그리고, 공을 잘못 컨트롤 하는 바람에 공을 문 쪽으로 흘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잭슨 감독이 들어온 거였다. 잭슨은 공을 가볍게 차서 테오에게 다시 건네줬다. 테오는 공을 잡아든 채로 굳었다.

잭슨은 말없이 드레싱 룸 전체를 천천히 바라봤다.

시끄럽게 떠들던 선수들이 하나둘 조용해졌고, 이윽고 드레싱 룸 전체가 조용해졌다.

한참 후에야 잭슨이 입을 열었다.

"국가대표팀에 차출됐던 선수들은 몸 상태를 점검해야 하니 일단 스포츠과학팀으로 가라.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필드로 나와라. 10분 뒤까지다."

"예!"

로드는 가장 힘차게 대답하며 잭슨이 왜 말없이 선수들을 봤는지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평소보다 시끄럽긴 했지만, 딱히 잭슨이 싫어하는 행동이나 규정을 위반한 건 없었다.

그래서 로드는 자신의 옆에서 신발 끈을 조이고 있는 라이언에게 말했다.

"라이언, 오늘 잭슨 감독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 조심해야겠어."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았다고?"

라이언은 잭슨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뭔가 생각하시는 것 같았는데."

< 33. 위기의 10월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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